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26강(출5:5-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9. 01:16

출애굽기 강해 제26(5:5-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14()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바로는 모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5:5)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주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5:3-4).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재 애굽인들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백성들을 애굽의 변방 고센 지방에서 노예생활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여호와라고 하는 신은 일종의 하급 신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5:2). 애굽에는 신들이 많습니다. 주신(主神)만 하더라도 둘이나 됩니다; “그 옛날 고 왕국시대에 수도인 멤피스 놉 지방과 인접한 헬리오폴리스 온 지방에서 섬기던 주신인 태양신 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 왕국시대와 신 왕국시대 때에 수도인 테베 곧 지역의 주신인 아몬(공기와 바람의 신)이 제국의 주신으로 승격이 되어 있습니다”(41:45). 기타 각 지방에 토착 신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주신의 부하들인 하급 신에 불과합니다. 그들 하급 신보다는 오히려 바로가 현인신으로서 더 격이 높습니다. 바로는 주신의 아들 곧 태양신의 아들로서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여호와를 겁내거나 그의 말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바로는 애굽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황제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측면이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자기 앞에 서있는 모세와 아론을 세상적인 권력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차제에 한번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모세의 말에 그의 동족들이 어느 정도 호응을 할 것인지 따져보는 것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강제노역의 강도를 더 높일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불만과 원성이 터져 나오게 만듭니다. 둘째,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면 그들은 모래와 같아서 바로가 두려워할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하나같이 모세와 아론을 중심으로 힘을 결집하여 바로에게 당당하게 노역의 강도를 줄여달라고 다시 요구를 해온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큰 압력이 될 것입니다. 셋째, 그러한 경우에는 안보적인 차원에서 인종청소를 하든가 하는 군사적인 대응이 불가피합니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바로의 정책이 나타날 것입니다. 당장은 자신을 예방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물러가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5:4-5).

 

모세일행이 조상신 여호와를 들먹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판단한 바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5:6-9)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제노역을 감독하고 있는 애굽인 감독들과 그들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는 히브리인 기록원들을 모두 소집합니다(5:6).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방법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5:7).

둘째로, 흙 벽돌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짚을 제공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5:7). 그러하다면 이제부터 인부들이 직접 짚을 대신할 수 있는 풀이나 벼를 베어낸 그루터기를 찾아 나서야만 합니다(5:10-12). 어디서 그 많은 재료를 구할 것입니까? 가당치도 아니한 명령입니다. 자연히 인부들이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시간만큼 생산량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명령은 실로 가혹합니다. 벽돌의 수를 줄여주지 아니하겠다는 선언입니다(5:8a). 한 마디로, 죽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는 그 정도로 심정이 상해 있습니다. 모세의 말을 따라서 민족의 숫자만 믿고서 감히 바로에게 자기 조상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등 정치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으니 그것이 발칙하다는 바로의 심사가 그렇게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5:8b).

셋째로, 과업을 달성하지 못할 것은 뻔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첫 번째 대안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출애굽을 허용해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철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선동을 하여 자신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입니다(5:20-21). 그 경우에는 바로의 다음 말이 설득력을 가질 것입니다;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5:9). 참고로, 여기서 바로는 역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의 주장이 마치 진리처럼 들립니다. 그 이유는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말을 따르고 있는 백성들에게 유리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결과만이 초래되고 있으니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결론입니다. 그저 백성들을 선동하기 위하여 떠벌리고 있는 유언비어이니 그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바로의 술책이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의 말은 상당히 교묘한 논리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적인 논리를 뛰어넘자면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생을 깊이 있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면 그 결과가 세상적인 축복과는 다르게 전개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전파를 세상적인 권력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했는데 그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15:18-19, 17:14).

두 번째 대안은, 모세와 아론을 중심으로 한층 세력을 공고히 하여 바로에게 정치적인 압력을 더욱 가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바로가 군사적인 대응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앞으로의 역사가 전개될 것인지 바로 역시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