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23강(출4:24-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7. 21:36

출애굽기 강해 제23(4:24-2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11()

 

할례에 둔감한 모세는 애굽화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현실을 반영하다(4:24, 26)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도록 제도화가 되어 있습니다. 할례제도는 이삭이 태어나기 1년 전에 처음으로 실시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으며 서장자인 이스마엘의 나이는 13세였습니다(17:24-25). 그리고 할례의 제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자에게도 할례는 적용이 되었습니다(17:12). 그러한 제도적인 특징 때문에 훗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진심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브라함처럼 그 마음 속에 할례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2:28-29, 15:19-21). 할례제도가 시행된 그 이듬해에 아브라함의 집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이 출생을 합니다. 그는 최초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게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21:4). 아직 고통에 대한 기억을 남기지 아니하고 있는 갓난아기 시절에 포경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특혜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마치 모태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아들 이삭의 영적인 장자라고 말할 수 있는 야곱 곧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애굽 제국 고센 땅에 살면서 그만 할례제도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400년 이상을 함 족속의 거대한 제국에 살면서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종교적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동화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도 실시를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독실한 집안에서는 할례제도를 갓난 아기 때에 슬쩍 실시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그러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지금 애굽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세의 가정에서 발견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출애굽의 사명을 받은 모세는 신나게 미디안을 떠나서 애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4:20). 자신의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지니고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자 숙소에 들었습니다(4:24a). 그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현신하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4:24b). 모세는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할례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후에 밝혀집니다(4:26). 그렇다면 그 대목은 모세가 얼마나 애굽인처럼 되어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배워야 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둔감한지 그의 아내인 십보라와 대조적으로 비교가 될 정도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는 그의 부모님인 레위 족장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만큼의 하나님 신앙심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6:18-20). 그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에 그에게 할례를 행해주셨는데 모세는 그것을 크게 의식하지 아니하고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갓난아기인 둘째 아들을 할례도 행하지 아니하고서 함께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고 있다가 도중에 하나님의 뜨거운 경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4:20, 18:4). 이 대목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 그리고 성도들에게 있어서 출애굽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신앙훈련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모세가 그 정도의 영적인 안목밖에 못 지니고 있다면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과제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할례와 제사에 익숙한 십보라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미디안 제사장 집안의 신앙생활을 반영하다(출4:25-26)

 

모세는 40세에 도망자가 되어 애굽을 탈출합니다. 그는 아라비아 서북쪽 지방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만납니다.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모세는 신변의 안전을 얻게 됩니다(2:21). 그리고 장인 이드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방법과 광야에서 백성을 이끄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사상에 어긋나기 때문에 많이 생략이 되고 있는 이야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선민이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는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자손에게서 오히려 모세가 하나님 신앙을 배우고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보다 미디안 광야의 제사장 집안이 더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본문은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십보라는 처음에 모세가 애굽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세의 몸에 할례가 행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는 장남 게르솜을 낳자 8일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2:22). 남편은 타국에서 객이 되고만 자신의 서글픈 신세한탄만을 하면서 장남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장남의 할례식에 참석도 아니하고서 멀리 목축현장으로 떠나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모세가 장남 게르솜의 할례에 참여를 하였더라면 차남 엘리에셀의 할례에도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18:4). 그러나 그는 전혀 할례의 중요성을 인지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애굽인들의 나라에서 탈출시키려고 길을 떠나고 있는 모세가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지도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있는 처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장면을 보시고서는 기가 막혔습니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모세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즉각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치명상을 가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지극히 다행스럽게도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가 하나님의 의도를 재빨리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남편이 너무 애굽 행을 서두르고 있기에 그만 갓난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고 출발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재빨리 할례를 행했습니다(4:25a).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두려운 하나님의 현신이 모세를 놓아주고서 사라지고 있습니다(4:26a).

마음에 여유가 생긴 십보라가 남편 모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bridegroom of blood)이로다”(4:25b).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라고 설명이 뒤따르고 있습니다(4:26b). 따라서 피 남편이라는 호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기게 됩니다;

첫째로, ‘바보 같은 남편’(a stupid husband)이라는 비난의 뜻이 내포되고 있습니다. 함족인 애굽 사람의 압제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기 위하여 모세가 애굽으로 들어가고 있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두 민족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기에 출애굽의 역사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무엇보다 선행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당장 육체적으로는 할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17:14). 그런데 그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얼마나 십보라가 보기에도 한심합니까? 그래서 참지를 못하고 따갑게 쏘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피를 중시하는 남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에 생명력이 있으며 피로써 용서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9:4-5, 17:11). 그래서 아담부부의 아들인 아벨이 피의 제사를 드린 바가 있으며 그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4:4).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그 전통을 쫓아서 제물의 피로써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15:9-10).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모세를 피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