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제21강(출4:10-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6월 9일(월)
모세의 변명,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의 숨은 의미(출4:10)
피조물인 인간은 그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뜻대로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기 위하여 평소에 다양한 교감을 하고 계십니다. 그 일단의 예가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으로 유인하여 쳐서 죽입니다. 그리고 완전범죄를 도모하기 위하여 그 시신을 암매장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보이지 아니하는 경로를 통하여 그 일을 보고 받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카인은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곧 합당한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창4:8-12). 이미 카인이 행한 모든 일을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부여에 대하여 자신은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40세가 될 때까지 바로의 황궁에서 왕자의 교육을 받고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 모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입니다. 말과 글에 능하지 아니하면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대국가에 있어서 왕자교육은 뛰어난 말솜씨와 설득력을 배양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훗날 스데반이 영적인 눈을 떠서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1-22). 그런데 모세는 자신이 애굽 말과 히브리 말에 어둔한 자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일까요?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는 목자입니다(출3:1). 40년 세월을 그렇게 지냈습니다(출7:7, 행7:23, 29-30). 그 옛날 애굽 바로의 황궁에서 지낸 화려한 시절의 기억을 상당히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일개 양치기 생활로 연명을 하고 있는 처지에 그 옛날의 영광에 대하여 생각을 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결코 한 가지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40년 전에 그가 애굽에서 도망을 쳐서 나올 때에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배신한 일입니다. 모세는 동족의 편을 들고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지를 얻어서 바로에게 대항을 하려고 시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어버린 자가 바로 자신의 동족들입니다. 애굽 사람을 쳐서 암매장을 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관청에 고발했습니다(출2:14-15). 그 결과 모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동족들을 도와주려고 했더니 도리어 모세를 고발하고 마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사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출3:7-12). 한 마디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섭섭합니다. 모세가 40년 전에 동족으로부터 받았던 배신감과 절망감을 조금도 고려하지 아니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여 모세는 말로써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과 입장을 한번 헤아려 달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출4:10).
창조주의 답변,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의 완전한 의미(출4:11-17)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변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답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을 지은 창조주가 바로 나 여호와이다. 달변자의 입이나 눌변자의 입이나 모든 입을 다양하게 창조하는 자가 바로 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런 걱정을 하지 말고 모세 너는 너의 사명을 감당할 생각이나 하도록 하라. 원한다면 내가 너를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뜻으로 ‘출4:11a’절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 답변은 모세의 말을 직선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그 속에 담아서 우회적으로 변명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모른 척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직선적으로 받아들여서 정직하게 주권자가 답을 하고 있는데 피조물인 사람이 무엇을 더 변명하고 주장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발언을 할 때에는 정직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말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우회적으로 또는 내심으로는 다른 결과를 바라면서 능청스럽게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마치 상세한 설명처럼 따라붙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4:11b). 명백하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입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 등 장애자를 만드는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장애자들은 마치 모세처럼 창조주 하나님께 한 말씀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사명을 부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부디 저의 장애를 완전히 치유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사명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영육간에 강건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두 번째 의미는 모세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세상적인 세력이 없는 자신이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상대로 하여 무엇을 말하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나갈 수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암담합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맡기를 고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간파하신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4:12).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을 하시면서 가정교사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세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진심을 정확하게 간파하시고 그 해결책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동족을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40년 전에 그는 히브리인이면서도 애굽의 왕자라는 막강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모세는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적인 역량을 결집해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족들은 거절했습니다. 지금 모세는 그때보다 훨씬 못한 처지입니다. 정치적인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애굽으로 가서 동족들을 설득하며 바로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한 마디로 명쾌하게 거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
하나님께서 모세의 진심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다시는 변명과 핑계를 댈 수가 없도록 다음과 같이 완벽한 보완장치를 하시고 계십니다; “첫째, 친형인 아론이 너를 도울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너를 위하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모두 동원할 것이다(출4:14). 둘째, 아론이 너의 대변인이 될 것이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할 것이니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출4:15-16). 셋째, 백성들에게 할 말을 내가 모세 너에게 먼저 줄 것이다(출4:15b). 너는 그 말을 전부 형 아론에게 전달하라(출4:15a). 그러면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출4:16a).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백성들로부터 신적인 권위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출4:16b)”. 이제 모세가 더 이상 사양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완벽하게 그의 걱정과 근심을 모두 걷어가 버리는 보완장치가 마련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철두철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완전히 승복하고 있음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발령을 내리시고 계십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4:17). 평소 양을 치는 지팡이가 졸지에 출애굽의 역사와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홀로 바뀌고 있는 순간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함께 하시면 한낱 지팡이도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별볼일이 없던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 모세가 갑자기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을 시키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그 운명이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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