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8강(출3: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4. 20:53

출애굽기 강해 제18(3:1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7()

 

하나님의 모세 설득,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3:12a)는 언약의 위력

 

모세가 과거의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에 출애굽의 주역으로서의 자리를 사양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3:11). 40년 전에 모세가 이미 시도를 했던 일입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힘을 자신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애굽의 바로에게 대항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자신을 민족의 지도자로 여기지 아니하고 있는 동족들의 배신으로 완벽하게 좌절이 된 바가 있습니다(2:14). 그래서 애굽을 탈출하여 지금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양치기로 40년의 세월을 지내오고 있는 모세입니다(7:7, 7:23). 이제는 그 옛날의 열정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패기도 없습니다. 처가살이 40년만에 파삭 늙어버린 80세의 노인이 모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모세 자신을 민족의 지도자로 삼아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3:10). 그것은 한 마디로, 한참 철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40년 전에 도와줄 일이지 이제 늙은 모세를 사용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겠다고 하시니 모세의 생각에는 짜증스럽고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리고 군사력도 없는데 바로가 왜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토해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현실성이 없는 권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제의에 대하여 보기 좋게 퇴짜를 놓고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 나올 줄을 미리 아시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화도 내지 아니하시고 모세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다음과 같이 달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3:12). 인간이 신의 능력을 옷 입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드시 임재하여 함께 계시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인생 가운데 가장 얻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확약의 말씀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21:33)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의 영혼에 좌정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모세는 자연인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화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역사는 모세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획과 추진으로 성취가 되어나갈 것입니다. 모세는 단지 자신의 몸과 마음만을 하나님에게 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모세의 걱정과 근심이 그리고 패배의식이 갑자기 날라가 버리는 순간입니다.

그와 똑 같은 일이 일찍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가 머물고 있는 하란 땅을 떠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3).

둘째로,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의 인생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2-4).

셋째로, 또한 야곱의 인생 가운데는 특이하게도 세 번이나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입니다(47:9); 첫째, 야곱이 가출하여 하란으로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꿈 가운데 벧엘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둘째, 하란 땅 장인 라반의 집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가나안으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강력한 보호하심을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31:3). 셋째, 가나안 땅의 흉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굽으로 이민을 가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말도록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약속을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격려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야곱)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46:3-4).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열조들이 어쩔 줄을 몰라서 주저하고 있을 때에 강력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조치하시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동일한 조치가 모세에게 주어지자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동족을 출애굽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자신의 경험으로는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써는 절대로 이룰 수가 없는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단단하게 약조를 하시고 계시니 이제는 걱정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3:10-12). 한 마디로, 수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천군만마(千軍萬馬, 엄청난 군대)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결론을 맺어보자면,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그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이제 그 믿음의 반석 위에 모세가 올라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낸 증거(3:12b)

 

하나님이 모세를 보냈다고 하는 증거는 무사히 동족을 출애굽시켜서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여 오게 하는 것이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3:12b). 그 말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매가 없이 땅에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말씀의 씨가 땅에 떨어지면 생명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점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55:10-11). 그러므로 호렙 산에서 모세를 불러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현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출애굽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을 시키는 목적은 애굽의 범신론이 아니라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을 만들어내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나라와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번성하게 하신 것입니다(19:6, 46:3). 일찍이 그들의 조상들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듯이 이제는 그 후손들을 그렇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 종교교육을 어디서 어떻게 실시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출애굽의 목적과 방법이 이제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3:12b).

출애굽의 기적과 충격만으로써는 거룩한 백성들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드시 출애굽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여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12). 그 종교교육은 분명히 하나님의 산에서 장차 실시가 될 것입니다. 광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그 거룩한 산에서 영적인 생명을 공급 받는 말씀공부와 안식일의 묵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제사법과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내면화되고 행동화될 것입니다. 광야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엄청난 노력이 마침내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기도와 신앙생활로써 정립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출애굽과 그 이후의 역정을 미리 엿보게 해주고 있는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3:14)의 의미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피조물은 한 마디로, 타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 태생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반대개념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창조주입니다.

모세가 자신을 애굽으로 들여보내고 있는 조상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 성격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3:13). 모세의 질문은 애굽에서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애굽의 황궁에서 40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애굽 제국을 움직이고 있는 범신론적인 사고와 제사법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애굽에는 수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주신은 멤피스의 태양신인 와 테베의 공기와 바람의 신인 아몬입니다. 그리고 현인신인 바로도 주신인 태양과 바람의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바로의 눈은 특별히 태양과 달과 매의 정기를 받고 있는 신의 눈이라고 백성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애굽 제국의 황제인 바로는 나일 강의 소유주이며 악어라고 선지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29:3, 32:2). 그리고 나일 삼각주 농경지대에서는 농사일을 크게 도와주고 있는 소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제 애굽 고센 땅에서 430년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이 어떠한 신인지를 설명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미 400년 이상을 애굽 제국에서 살아왔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념과 의식은 애굽화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애굽식입니다. 그들은 조상신에 대해서도 그 신격과 위격이 어떻게 되는지를 이제는 묻고자 할 것입니다. 과연 어떠한 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이라고 설명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 대답을 들어야 모세가 바로 앞에서나 동족들 앞에서 하나님의 정체를 설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가나안 땅에서는 필요가 없었던 똑똑한 질문이 이제 모세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조상들의 하나님은 한 마디로, 자신은 온 세상과 우주의 창조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 이외에는 모든 신들이 피조된 것들이라고 천명하고 계시는 내용입니다(44:6-1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 자신만이 유일한 창조주이므로 그 점을 애굽에 가서 동족들과 바로 앞에서 속 시원하게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3:14). 만약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아니하게 되면 창조신인 하나님과 피조신인 애굽의 신들 사이에 한판 승부가 있게 될 것이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승리를 할까요? 당연히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승자가 되실 것입니다. 피조된 우상들은 부수어질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지만 창조주는 피조물이 어찌할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