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6강(출3:7-8a)(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4. 10:13

출애굽기 강해 제16(3:7-8a)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5()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3:7)

 

미디안 광야 호렙 산 불타고 있는 신기한 떨기나무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3:7).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고 계시는 그때는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해 BC 1,446년경입니다. 어느 듯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나 되고 있는 시점입니다(12:40-41).

 돌이켜보면, 애굽으로 이민을 온 이후 처음 71년 동안은 행복했습니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그때까지 살아 있어서 그들을 봉양하고 보호했기 때문입니다(50:21-26). 그 다음 총리 요셉의 공로를 알고 있는 통일 애굽 중 왕국 제12왕조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애굽 제국이 분열이 되는 제2 중간기가 찾아왔지만 같은 셈족인 힉소스인들이 쳐들어와서 정권을 장악했기에 역시 셈족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안전하게 고센 땅에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흐모세1세가 힉소스인들을 쫓아내고 BC 1,570년에 애굽 제국을 다시 건설한 신 왕국 제18왕조가 문제입니다. 그들은 쫓겨간 힉소스인들과 언제라도 내통이 가능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보상의 위협요인으로 인식했습니다(1:10). 그래서 철저하게 감시하면서 탄압하기를 시작했습니다(1:10).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빨리 증식이 되고 있는 것도 애굽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있어서는 큰 골치거리였습니다(1:7, 12).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수를 줄이기 위하여 강제노동을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 신도시와 병참기지를 건설하면서 그들을 강제노역의 현장으로 끄집어낸 것입니다(1:11). 애굽인들을 감독으로 세우고 그 아래에 히브리인 기록원들을 두었습니다(5:14-15). 그리고 노역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습니다(1:13-14).

마침내 고된 노동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한 목소리로 부르짖기를 시작했습니다(2:23). 그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째, 이스라엘 자손을 내 백성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3:7a).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게 되면 그것은 그 백성들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애굽의 바로와의 대결로 그 성격이 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애굽인 감독자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부르짖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3:7b). 과업의 할당량이 자꾸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5장의 기록을 미리 참조해보면, 벽돌 굽기 등의 과업을 제 때에 달성하지 못하면 감독자들의 징벌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5:6-19).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3:7c). 그 근심의 내용은 아무런 대책이 마련이 되지 아니하고 강제노동이 계속되면 필경은 온 민족이 말살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면서 출애굽의 역사에 개입을 하시는 이유와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 때문입니다(2:24-25). 먼저, 창세기의 기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BC 1,876년경 야곱이 식솔 70명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가나안 땅의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 총리로 있는 11번째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아들여서 이민을 간 것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남부 본거지를 떠나기 전에 조상들과 연고가 많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46:1). 그는 그 옛날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예언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15:13-14). 그래서 자손들의 장래에 대하여 걱정을 많이 하면서 신탁을 구한 것입니다”.

그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46:3-4). 장차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번성을 할 것이며 반드시 출애굽의 역사가 있을 것임을 확약하고 있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고난과 고통의 긴 세월이 있을 것임을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바야흐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개입이 시작이 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3:8a)의 의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직접 강림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언급하고 계십니다(3:8a). 일찍이 야곱이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들어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시겠다고 언급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46:4). 똑 같은 말씀을 여기서 모세에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뜻은 과거에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들어가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반대로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나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애굽으로 이민을 간 이후부터 야곱의 행동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중요한 변화만 간추려보아도 다음과 갔습니다;

첫째로,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찬양을 하지 아니하고 축복만을 해주고 있습니다(47:7). 신하된 자로서 황제폐하 만만세!정도의 구호를 외침으로 바로를 먼저 찬양해야만 하는데 그는 그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알현을 마치고 물러나올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에게 축복만 해주고 나오고 있습니다(47:10). 상당히 고자세입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애굽의 황제에게조차 아부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당당하게 축복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애굽 총리 요셉의 부친으로 애굽의 명당에 장사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47:29-30). 야곱은 오로지 선산이 있는 헤브론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메시아를 만나서 부활하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인 야곱의 평생의 소원입니다(11:16, 5:24-29, 8:56). 이스라엘의 신앙이 자손들에게 대물림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요셉의 두 아들을 각각 이스라엘의 지파로 받아들입니다(48:5-6). 그리고 그들에게 세겜 등 가나안 땅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습니다(48:22). 400년 후에나 가능한 기업의 분배에 대하여 당장 눈앞에 닥치고 있는 것으로 야곱은 믿고 있습니다(11:1). 그것이 이스라엘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지 아니하면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는 믿음의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옛날 하나님의 선지자 야곱에게 임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시 모세에게 임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의 역사를 일구어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장이,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3:8a)라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