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5강(출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4. 10:11

출애굽기 강해 제15(3: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4()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3:6a)는 말씀의 의미

 

흔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모세에게 소개하면서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인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것입니다(3:6a). 그 뜻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족보 가운데 빠져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족보를 참고하면, 분명히 아브라함의 아들은 8명입니다. 그 가운데 약속의 아들이며 적장자는 이삭입니다(17:19). 하지만 이삭에게는 1명의 이복 형과 6명의 이복동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21:9, 13, 25:1-6). 그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삭에게 승계를 시키고 그것을 대물림하여 영원한 언약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하고 계십니다(17:19). 그렇다고 하여 이삭의 이복형제들 7명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명과 후손들의 인생도 모두 돌봄의 대상이고 구원과 영생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4:16, 9:24).

그와 동일한 의미가 이삭의 하나님으로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쌍둥이 가운데 사실 맏이는 에서입니다(25:25). 이삭은 사내다운 풍모의 에서를 좋아했습니다(25:28). 에서도 아버지 이삭을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조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조상의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습관이 없었습니다(25:27, 34). 그저 자신이 부잣집에 장자로 태어나서 한평생 누릴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냥하기를 좋아했기에 세상의 것들을 무력으로 쟁취하고 다스리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자연히 장인집안의 재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36:2, 24-25). 그래서 훗날 호리 부족의 땅 세일산과 그 들판이 모두 에돔 족속에게 병합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에돔 들로 불리게 됩니다(32:3, 36:9).

결론적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직선적인 계보로만 연결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 인식에 대하여 무엇인가 다르다고 하는 관념이 위와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밝히신 자신의 정체성은 구원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으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 있는 복음적인 하나님의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4:16).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린 이유(3:6b)

 

모세는 조상의 하나님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사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 땅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15:12-13). 아브라함이 잠이 들어 있는 상태가 되자 비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생의 생과 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30:19-20).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인하고서 그 옛날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3:6b).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면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을 손과 팔로써 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얼굴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 형상과 음성만을 보고 듣기를 원합니다(12:8). 결코 하나님의 영적인 진면목을 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적인 진면목을 볼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두 가지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을 한 모습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님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을 때에 답변하신 주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12:45),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둘째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부활 승천하여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21:27).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창조주를 왕으로 섬기게 됩니다. 햇빛보다 더 밝은 주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가 영원토록 성도들을 비추게 됩니다(22:3-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의 몸을 입고서 부활을 맞이한 성도들이기에 하나님의 진면목을 대하고서도 그 체질이 허물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고전15:20-24, 벧후3:12). 영원한 생명이 담겨 있는 부활의 몸을 입고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존전에서 소멸되지 아니하고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권세입니다(14:3, 14:25). 그리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대로 경영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