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2강(출2:23-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3. 04:39

출애굽기 강해 제12(2:23-2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1(주일저녁)

 

애굽 제국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투트모세3세의 죽음(2:23a)

 

애굽의 분열기인 제2중간기를 청산하고 BC 1,570년에 통일왕조 신 왕국시대를 열었던 인물이 아흐모세1세입니다. 그는 본래 애굽 제17왕조로 불리는 테베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모세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애굽인들이 세운 테베왕국은 오랜 세월 힉소스인들이 세운 애굽 제15왕조(BC 1,674-1,567)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들은 힉소스인들의 왕을 애굽의 정식 바로로 섬기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했던 그들이 마지막 왕 카모세 때 힉소스인인 바로를 몰아내고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카모세가 전사합니다. 그러자 그의 동생인 아흐모세가 전쟁을 계속 수행하여 마침내 BC 1,570년에 힉소스인들이 세운 애굽 제15왕조의 수도인 고센 땅 아바리스를 점령하게 됩니다. 요컨대, 상이집트의 테베왕국이 하이집트인 힉소스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힉소스인들의 저항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지방세력들은 여전히 애굽의 국내외에 남아 있었습니다. 애굽 내에 힉소스의 세력이 봉국의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그들을 애굽 제16왕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도전이 계속 되었기에 통일왕조인 신 왕국의 제18왕조는 계속 그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국경 동쪽으로 이미 쫓겨난 힉소스인들이 국내의 힉소스 세력들과 결합을 하여 함께 공격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18왕조의 바로들 곧 투트모세1세와 2세 그리고 3세의 원정은 계속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일강 상류와 중류에 살고 있는 누비아(오늘 날의 수단)인들의 반란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사실 과거의 통일왕조인 중 왕국이 무너진 것도 누비아인들의 반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들이 남쪽의 누비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또는 동쪽의 힉소스인들의 세력을 박멸하기 위하여 자주 원정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워서 애굽의 나폴레옹으로 불리고 있는 바로가 투트모세3세입니다. 그는 10세에 바로로 즉위하였기에 18년 동안 태후인 핫셉수트의 섭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20세의 성년이 되자 태후는 그를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삼아서 자주 국경바깥으로 내몰았습니다. 자연히 투트모세3세는 전쟁에 능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28세가 되었을 때에 태후가 별세를 하고 드디어 친정(親政, 직접 통치)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안정을 위해서 태후의 양자인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사전에 그 기미를 알아 채고서 애굽을 탈출해버렸습니다(2:14-15, 7:29). 그 후에도 투트모세3세는 원정을 계속했습니다. 남쪽의 누비아인들과 동쪽의 힉소스인들을 뿌리뽑지 아니하고서는 애굽 제국의 평화가 지켜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비아인들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키고 동쪽으로 계속 원정하여 힉소스인들의 고향인 북부 시리아 곧 아무르인들의 본거지까지 정복했습니다. 일찍이 바벨로니아까지 세운 바 있는 찬란한 아무르인들의 역사가 그 빛을 잃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국내외의 모든 위협적인 적대세력을 잠재워버린 가장 유능한 황제가 투트모세3세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BC 1,450년에 별세를 하고 나자 4년 후에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던 모세를 다시 부르시게 됩니다(3:4, 4:19).

참고로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애굽의 과거의 통일왕조였던 중 왕국이 누비아인(오늘날의 수단인)들의 반란으로 분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제2의 중간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둘째, 그렇게 애굽 제국이 분열되고 내란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동북쪽의 셈족인 아무르인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역사학자들은 힉소스인들이라고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의 원주민 가운데 함족인 아모리 족속이 있는데 때로는 그 이름이 셈족인 아무르 족속과 비슷하여 혼용이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무르인들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유목민들로서 일찍이 수메르인들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파괴하였으며 그 세력이 동방으로 계속 확장이 되어서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 흔적이 소위 아무르 강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본래 유목민이며 말을 잘 다루는 아무르 인들이 힛타이트인들의 뛰어난 철기문명을 받아 들여서 전차를 만들고 철궁을 만들어서 전투에 사용하게 되자 그들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근동은 물론 애굽의 땅까지 유린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의 에게 해까지 진출하여 유럽의 고대문명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존재를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과 혼동하게 되면 창세기 말씀의 해석에도 어려움이 발생을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네 자손이 4대만에 이 땅(가나안)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15:16). 아브라함 당시에 가나안의 후손인 아모리 족속은 그저 가나안의 산간지방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하나의 족속에 불과합니다(10:15-16). 그들이 가나안 전체의 지배족속으로 성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르 족속이 가나안 지역을 석권하였을 때에 그 이름이 비슷하여 아모리 족속이라고 손쉽게 불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역사적 해석이 될 것입니다.

 

원정군의 병참을 책임지고 있는 고센 땅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통(2:23b)

 

아흐모세1세는 BC 1,570년에 고센 땅에 있는 아바리스를 점령하고서 셈족인 힉소스인들을 동쪽 국경바깥으로 몰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고센 땅에 살고 있는 같은 셈족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축출하지는 아니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찍이 BC 19세기에 애굽으로 이주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300년 이상 고센 땅에 살면서 엄청나게 애굽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의 수가 만만하지가 아니했습니다(1:9). 만약에 동쪽으로 쫓겨간 힉소스인들이 다시 쳐들어 올 경우에는 동조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흐모세1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고센 땅을 병참기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1:11). 동쪽으로 힉소스인들을 쳐부수고자 원정을 떠날 때에 후방지원을 수도인 먼 곳 테베가 아니라 가장 시나이 반도에 근접하고 있는 고센 땅에서 받고자 계획한 것입니다. 그 정책을 변함없이 아흐모세1세가 세운 제18왕조의 후계자 바로들이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책은 마치 일본제국이 만주와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조선 땅을 병참기지로 삼고 후방지원을 하도록 한 정책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때 조선의 백성들은 일본군대의 중국진출과 태평양진출을 동시에 지원하기 위하여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동일한 역사가 그 옛날 고센 땅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특히 BC 1,486년부터 투트모세3세의 친정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생은 더 심해졌습니다. 바로는 멀리 메소포타미아 상류까지 진출하여 아예 힉소스인들의 고향인 아무르 제국까지 뿌리를 뽑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많은 원정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눈을 붙일 겨를도 없이 산업시설을 가동하고 군마를 키워내어야만 했습니다. BC 1,450년에 투트모세3세가 별세를 했지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아니했습니다(2:23).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대목(2:24-25)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있습니다(15:13-16, 46:3-4, 2:24). 그때부터 애굽 제국의 역사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운명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직접적으로 개입하시기를 시작하시면 모든 피조물들의 운명과 집단적인 역사가 변화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의 도래를 하나님께서는 아모리들의 죄악이 관영(차고 넘침)됨으로 말미암아라고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예언 가운데 말씀하시고 있습니다(15:16). 아무르 족속인 힉소스인들이 우세한 철기문명을 앞세워서 많은 족속을 침략하고 지배했습니다. 그 야만적이고도 공격적인 침략행위로 말미암아 약한 백성들의 무죄한 피가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북부 시리아 땅에서부터 애굽 땅까지 흘러내린 수백 년 동안의 피의 양을 하나님께서 측정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자손들까지 힉소스인들과 투트모세3세 사이의 전쟁 사이에 끼어서 노예와 같은 삶을 계속 강요 받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예언으로 준 말씀이 응할 때가 마침내 도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예언을 붙들고 기도할지라도 그 때가 도래를 하여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리를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