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9강(출2: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2. 08:22

출애굽기 강해 제9(2: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30()

 

모세의 선택, 동족인 히브리 사람 편에 서다(2:11-12)

 

모세는 두 개의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며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가시적인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내밀한 것입니다. 먼저 그의 비밀스러운 정체성은 히브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히브리인인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2:1-3, 7:20-21). 그리고 젖을 뗄 때까지 생모이며 동시에 유모인 요게벳의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2:7-10a). 어머니 요게벳은 히브리인 레위 지파의 족장인 아므람의 아내입니다(6:20). 그러므로 출생의 비밀을 말하자면, 모세는 레위 지파의 족장의 둘째 아들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밝힐 수 없는 비밀에 속합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젖을 떼자마자 바로의 황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2:10b). 그는 당시 새로운 바로로 즉위한 투트모세1세의 딸인 핫셉수트 공주의 양아들로 입적이 된 것입니다(2:10c, 7:21). 황궁에서 모세는 3살 때부터 40세까지를 지내게 됩니다(7:23).

모세가 40세가 될 때까지 바로의 황궁에서 겪은 일을 대략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모세가 3살이 되어서 황궁으로 핫셉수트 공주의 양아들로 들어갔을 그 때가 공주의 부친인 투트모세1세가 정식으로 황제로 즉위를 한 해입니다. 정확하게는 BC 1,524년입니다. 투트모세1의 신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학설이 있습니다; 첫째, 그는 한때 공동통치를 한 바 있는 아멘호텝1세의 사위라는 설입니다. 둘째, 아멘호텝1세의 아버지이며 신 왕국시대를 열었던 위대한 황제 아흐모세1세의 사위라는 설입니다. 그런데 유능한 장군이며 자신의 능력으로 제국의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투트모세1세의 정치적인 역량을 감안한다면 두 가지 학설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는 아흐모세1세의 사위가 됨으로써 처남인 아멘호텝1세의 통치말기에 함께 제국을 공동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정치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아멘호텝1세의 뒤를 잇기 위해서는 또 그의 사위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이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통치연대의 추정에 있어서는 성경의 연대계산에 보다 근접하고 있는 주장과 상당히 늦은 연대로 보고 있는 주장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은 성경의 연대계산에 기초하여 고대사회의 정치적인 변화를 권력구조적인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업에 있어서 저보다 먼저 성서의 배경사를 깊숙하게 연구하고 있는 장인수 박사의 연구결과가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음을 차제에 밝혀두고자 합니다.

둘째로, 모세의 양어머니인 핫셉수트 공주는 그녀의 아버지 투트모세1세가 즉위한지 6년이 지나서 갑자기 죽고 나자 유일한 적자로서 제국의 상속자(Queen Hatshepsut)가 됩니다. 그녀는 서자출신 이복동생과 결혼하여 함께 제국을 통치합니다. 그 남편의 이름이 투트모세2세입니다. 그런데 남편마저 적자를 남기지 못하고 14년후에 별세합니다. 그녀는 후궁의 소생인 왕자를 자신의 양자로 입적하여 적자인 황태자로 만듭니다. 그리고 10살짜리 황태자를 투트모세3세로 세우고 자신은 황태후가 되어서 18년 동안 섭정을 합니다. 그 시대가 여자 바로 핫셉수트의 통치기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모세는 양어머니 핫셉수트의 최 측근이 됩니다.  그의 나이 22세부터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왕자로서 그렇게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한 자가 모세입니다(7:22). 그렇지만 양어머니가 죽고 나자 28세가 된 투트모세3세가 친정을 하면서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모세를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모세를 멀리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역을 하고 있는 현장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모세의 행적을 살피도록 조치하고서 그를 제거할 명분만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셋째로, 모세는 투트모세3세의 견제를 벗어나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자신의 동족들의 단합된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7:23). 그는 본래의 신분이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레위 족속의 족장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세력을 규합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누나 미리암과 친형 아론과 내통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동족들의 힘을 결집하기 위하여 결기를 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어떤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2:11). 모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 애굽 사람을 기습하여 살해하고서 암매장을 하고 맙니다(2:12). 애굽 제국의 왕자이면서 동시에 히브리인인 자신의 주위에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지지세력으로 몰려들 봉화를 올린 셈입니다(7:25).

넷째로,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모세는 자신이 동족을 괴롭히고 구타하는 애굽 사람을 은밀하게 쳐죽였으므로 이제는 동족들이 자신을 해방의 기수로 받들고 자신의 수하가 될 줄 알았습니다(7:25). 그러나 노예근성에 이미 완전히 물들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국에 대한 반란과 해방을 도모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이 전혀 없었습니다(16:3). 조상들의 하나님이 신위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주는 해방과 독립은 원하고 있지만(2:23) 자신들의 힘으로 그 꿈을 실현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민족입니다. 따라서 투트모세3세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봉기를 꿈꾸면서 모세가 하늘로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이가 없게도 공중분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이상한 소문을 들은 동족들이 도리어 모세를 믿지를 못하고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4, 7:27-28).

그렇지만 하나님 신앙의 전통을 강조하고 있는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모세의 행동을 믿음의 측면에서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4-26). 모세가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 호사를 누리는 것보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기를 소원했다는 지적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은밀하게 유모이자 생모인 요게벳의 집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훗날 80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에게 친형 아론과 친누나 미리암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4:14-17, 27, 15:20).

 

모세의 궐기에 대한 동족들의 배신, 그리고 모세의 위기와 탈출(2:13-15)

 

모세는 애굽의 황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사람입니다(7:22). 애굽인 황제와 귀족들이 제국 내의 여러 다민족을 다스리고 있는 곳이 황궁입니다. 그곳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민족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또한 메소포타미아의 어느 나라가 침략해올 것인지를 항상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황궁에서 민족과 민족 사이의 갈등과 통치술을 익힌 셈입니다. 그 결과 양어머니의 별세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을 때 그가 생각한 것은 자신의 동족의 대동단결을 통해서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삼고 제국 내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되찾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추정이 됩니다(7:25). 그래서 애굽 사람과 히브리사람의 갈등을 보고서 과감하게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의 편을 든 것입니다(2:12, 7:23-24).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모세와 다릅니다. 그들은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사이의 갈등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싸우며 서로 반목을 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오히려 자기들끼리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생활에서의 해방이나 민족독립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마음에 영 와서 닿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점을 모세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상황은 심각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나이가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 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와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7:23-29).

그 사건으로 모세의 은밀한 기도가 갑자기 탄로가 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다”(7:26)는 여론을 일으켜서 동족들을 단결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 세력을 규합하여 바로인 투트모세3세에게 대항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동족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삽시간에 발각이 되고 만 것입니다(2:13-14). 바로가 그 일에 대하여 보고를 받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즉시 체포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2:15a). 다행스럽게도 사건의 발생지역이 당시의 황도인 테베에서 상당히 떨어진 고센 지방입니다(2:11). 따라서 모세는 시나이 반도를 통하여 멀리 도망을 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는 더 먼 나라 아라비아의 서북면 미디안 땅까지 피신을 하고 있습니다(2:1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