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7강(출2:4-6, 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1. 03:00

출애굽기 강해 제7(2:4-6, 1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27()

 

그의 누이 미리암의 역할(2:4)

 

만약 젊은 히브리 부부가 나일 강 하구에 서서 갈대밭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면 애굽 사람들은 대충 눈치를 챌 것입니다; “십중팔구 신생아 사내아기를 갈대상자에 태워서 물길이 얕은 갈대 숲 속에 안전하게 띄워두고 그것을 엿보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기의 목숨이 위험합니다”(1:22, 2:1-3). 그래서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는 직접 나서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조상들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큰 딸인 미리암에게 특별히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갈대상자에 들어있는 아기의 운명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를 한눈 팔지 말고 부지런히 살펴보도록 하라”(2:4, 6:20, 7:7, 15:20).

미리암은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으며 동생을 사랑하고 있는 누나입니다. 그녀는 나일 강가에서 갈대상자를 멀리서 주시하고 있습니다; “막내 동생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걱정과 함께 그녀 또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4). 그렇게 동생인 아론과 모세를 끔찍하게 사랑하며 레위 지파답게 하나님 신앙이 뛰어난 여인이 미리암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훗날 여선지자로 불리게 됩니다(15:20, 12:1-2, 5-6). 그녀는 비록 동생인 아론과 더불어 모세를 비방하다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12:1-16). 하지만 그녀가 아론과 함께 오랜 세월 모세를 보좌하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일은 어느 일 개인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팀플레이가 요청되며 동역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장차 출애굽의 역사와 오랜 광야생활에 있어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도우면서 삼남매가 동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당장은 출애굽 직후에 80대 중반의 나이가 된 그녀 미리암이 이스라엘 여인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모세의 노래 다음에 히브리 여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15:20-21).

 

바로의 딸 핫셉수트 공주의 등장(2:5-6, 10)

 

나일 강 하구에서 모세의 생명을 구원하게 되는 여인이 바로의 딸이라고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2:5).  그녀는 나일 강으로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발견한 것입니다(2:3-5). 그녀의 이름은 핫셉수트(Hatshepsut Queen)입니다. 그녀는 투트모세1세의 딸입니다. 역사적으로 모세가 태어난 그 해 BC 1,526년경에는 애굽 제국을 두 명의 권력자가 함께 통치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인 아멘호텝1(BC 1,551-1,524)가 정권말기가 되자 차기 바로로 유력시되는 그의 매부 투트모세1(BC 1,524-1,518)와 함께 제국을 통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핫셉수트가 모세를 나일 강 갈대 숲에서 건져낼 때에는 아직 정식 공주가 아닙니다. 2년이 지나야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가 되어 투트모세1세라고 불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의 딸로서 정식으로 행세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그녀를 바로의 딸이라고 자신 있게 기술하고 있습니다(2:5). 어째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정권말기의 바로인 아멘호텝1세보다는 당시에 차기 바로로 유력한 투트모세1세의 세력이 더 크다고 하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핫셉수트 공주에 의하여 나일 강에서 건짐을 받고 그녀의 양자로서 왕자 급의 대우를 받으면서 모세는 40년간 왕궁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현실정치의 흐름과 권력의 향배에 대하여 정치적인 안목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자신 있게 자신이 태어나던 그 해에 이미 핫셉수트는 공주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양어머니가 되고 있는 핫셉수트는 애굽 제국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여자 바로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바로 투트모세1세가 적자로서는 공주인 자신만을 남기고 짧은 6년 통치 후에 별세를 합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서자인 남동생과 결혼을 하고 그를 다음 바로인 투트모세2(BC 1,518-1,504)로 옹립을 합니다. 14년 후에 남편이 적자인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별세를 하자 그녀는 후궁에게서 태어난 서자를 황제로 옹립하고 자신이 섭정을 합니다. 그 섭정의 세월이 18년이나 됩니다. 그때 그녀는 실제로 여자 바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어린 바로 투트모세3(BC 1,504-1,450)가 잘 성장하여 친정(親政, 황제나 왕이 섭정을 벗어나서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때 핫셉수트 태후(Queen Hatshepsut)가 실각을 한 것입니다. 그녀가 권력을 잃어버린 그 해가 바로 40세의 모세가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친 때입니다(2:15). 모세의 양어머니가 권력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다면 모세가 그 정도의 일로 애굽 밖으로 도망을 치지는 아니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11-15). BC 1,446년에 80세의 모세가 동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고 있으므로 그가 도망을 친 해는 정확하게 BC 1,486년입니다. 그러므로 여자 바로 핫셉수트의 섭정기간은 BC 1,504부터 BC 1,486까지 18년간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록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있는 일부 역사학자들은 BC 1,498부터 BC 1,483년까지라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핫셉수트는 훗날 여자 바로로 불릴 정도로 대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히브리인이 강에 버린 사내아기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대담하게 그 아기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 있습니다(2:5-6, 10a). 그리고 그 아기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1:10b).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애굽에서는 신의 아들이며 황제의 집안에서만 사용하는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에서는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2:10). 따라서 아므람과 요게벳이 낳은 둘째 아들 모세는 그 이름자에서부터 두 가지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첫째, 동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내는 해방자로서의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서 동족들에게 전해주는 신과 같은 존귀한 선지자로서의 삶입니다(12:6-8, 34:10-12, 82:1, 6, 10:34-36,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