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4강(출1:12-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0. 09:44

출애굽기 강해 제4(1:1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24()

 

하나님의 뜻과 세상제국의 황제 바로의 뜻과의 충돌(1:12-17)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자손을 이 땅에서 번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35:11, 46:3). 그 이유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예언이 그들의 자손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12:3, 26:4).

참고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2-3).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승계가 됩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7:19),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2-4).

바야흐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됨으로써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이 승계가 되고 있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35:10-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46:3-4).

그런데 세상제국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황제의 뜻은 정반대입니다. 황제는 자신의 안위와 왕가의 안녕을 위하여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나 집단을 사전에 모두 제거해버리려고 합니다. 황제는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그 일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여기 애굽 제국의 최고 권력자인 바로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1:9-10).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애굽 고센 땅에서 번성하여 하나의 어엿한 민족을 이루게 되면 그때 출애굽을 시켜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15:16, 46:3-4). 일찍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그대로 시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26:4). 그런데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영구히 제국의 노예로 삼고서 부리고자 합니다. 바로의 정책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1:11).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바로의 뜻보다 우세하게 나타납니다. 그 결과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1:12). 바로는 이에 크게 반발을 합니다. 그는 여자의 태를 열어서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은 없지만(20:17-18) 사람의 목숨을 거두고 종자를 말살시키는 사탄과 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참혹한 정책을 실시합니다; 첫째, 중노동의 강도를 엄청나게 높입니다. 도로를 빨리 건설하기 위하여 흙 이기기 작업을 더 많이 시키고 병참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벽돌 굽기에 박차를 가합니다. 거기에 농사일까지 맡아서 하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지독하게 혹사시키고 있습니다(1:14). 둘째, 그래도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줄어들지를 아니하자(1:12) 마침내 사내아기를 모두 죽이고자 합니다. 히브리 산파 가운데 우두머리인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그 일을 시행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1:15-16).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브라와 부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내아기를 모두 살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바로의 명령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그 일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여인이 주저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저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치 그 옛날 야곱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빌려주듯이 그렇게 역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31:7-12). 양들이 새끼를 밸 때에 무늬가 있는 나무의 속껍질을 보여주면 얼룩이나 점박이가 태어나도록 만든 것과 동일한 역사입니다. 즉 두 여인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바로의 문책이 비껴가게 만든 것입니다(1:18-19). 그와 같이 강력하게 보호해주겠다는 언질이 있었기에 두 여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