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3강(출2:23-3: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13. 16:39

출애굽기 강해 제13(2:23-3: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2()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첫 번째 단계(2:23)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첫 번째 단계는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것입니다(2:23).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견디지를 못하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고된 노동이 없거나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꾸며서 부르짖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충분히 먹고 살 수도 있으며 별로 고통스럽지도 아니한데 마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속아서 부르짖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감정적인 사치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러한데 눈이 밝으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꾸밈과 사치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진실하고 정직한 부르짖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첫 번째 단추로서 작동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두 번째 단계(2:24)

 

두 번째 단계는 그들이 부르짖고 있는 내용을 말씀에 비추어보는 것입니다(2:24). 기본적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십니다(4:10, 2:24a, 8:22). 그러므로 하나님의 귀는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오늘 날 인류의 수가 70억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만약 10%의 인구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마치 그 옛날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자손처럼 현대판 노예의 삶을 강요 받고 있다고 가정을 해봅니다(2:23). 그렇다면 7억명의 사람들이 생명과 운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주고 부디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7억명의 부르짖는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대한 귀를 가지시고 그 모든 부르짖음의 소리를 듣고 계신다고 하여 그 모든 간구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을 하고 계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사실을 본문이 정확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2:2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간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하실지 하나의 검토과정을 거치시고 있습니다. 그 검토의 기준이 믿음의 조상들과 세운 언약에 비추어보는 것”(2:24b)이라고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의 열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나님이 이미 준 바 있는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지 그것이 검토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고 한다면 어떠한 예언의 말씀이 간구에 대한 검토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그것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사례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일종의 판례법(case law)과 같은 성경말씀이 비슷한 경우를 만나게 되면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그 말씀과 예언의 원리가 밝은 빛으로 비추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날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세 번째 단계(2:25)

 

하나님의 예언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때가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미리 주어집니다. 그리고 나중에 정해진 때가 되어야 비로서 이 땅에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의 기다림과 준비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세 번째 단계가 본문 가운데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5).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무엇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준비하고 계셨을까요?

첫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자손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셨습니다(1:12). 사내아기를 낳을 경우 죽이라고 바로가 명령을 내렸지만 히브리 산파들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도록 만들었습니다(1:17).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의 경우에는 태어난 지 석 달 동안 집에서 몰래 양육되었으며 나일 강 갈대 숲 속에 버려졌지만 바로의 딸에 의하여 구함을 받게 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습니다(2:2-6).

둘째로, 출애굽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의 족장인 아므람의 둘째 아들을 애굽 제국의 최고실력자가 되는 핫셉수트 태후의 양자로 만들고 있습니다(2:10). 모세는 애굽의 황궁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방법을 40년간 배우게 됩니다(7:21-23). 그 다음에는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 르우엘의 사위가 되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과 백성들의 소송을 처리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목축을 하면서 생존하는 기술까지 철저하게 40년 동안이나 습득하게 됩니다.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이며 제사장의 이름으로 적격입니다. 모세는 장인 르우엘로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과 종교재판을 하는 방법 등을 배운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이드로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3:1). 모세의 장인은 모세를 광야의 지도자로 만드는 탁월한 스승입니다. 그는 사위인 모세에게 광야에서 목축을 하는 방법과 물을 찾는 방법 그리고 많은 무리를 이끌고서 광야생활을 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준 사람입니다(3:1). 더구나 출애굽한 이후에도 사위인 모세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관료조직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18:17-22). 그리고 구체적으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의 조직을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18:23-27).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네 번째 단계(3:1-4)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네 번째 방법은 때가 되면 준비된 사람을 불러내어 사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 바 ‘calling out’입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장인 르우엘의 맏사위로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인 이드로로부터 틈틈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무를 배우고 백성들의 소송을 다루는 방법도 습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아남는 기술도 익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막과 광야의 지도자 자격이 갖추어지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호렙 산 떨기나무의 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를 부르고 있습니다(1:1-4).

처음에 모세는 메마른 떨기나무 사이에서 계속 불이 붙어서 타고 있는 광경이 신기하여 그곳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마른 장작에 불이 붙어도 활활 타오르기 마련인데 어찌하여 메마른 산 호렙에서 가시나무 관목인 떨기나무가 완전히 타버리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으로 기이한 광경입니다. 모세는 제 눈을 의심하면서 흥미롭게 그곳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3:4). 특이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모세를 출애굽의 일꾼으로 불러서 사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바야흐로 모세를 부르심으로써 출애굽의 역사가 레일 위에서 굴러가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