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86강(히13:24-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9. 03:39

히브리서 강해 제86(13:24-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22()

 

히브리서의 저자가 차제에 이탈리아에서 온 자들의 문안인사를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13:24-25)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 들어오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너희를 보리라”(13:23). 사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 불리고 있으며 에베소교회의 담임목사인 디모데가 감옥에서 석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를 만나기 위하여 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디모데가 자신을 방문하게 되면 그와 함께 이 편지 히브리서를 전달받게 되는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속히 그렇게 디모데와 함께 너희 교회와 성도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미에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리라.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3:24-25). 마지막 인사말씀을 그와 같이 히브리서 저자가 적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교회 내의 화합과 결속이 최우선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교회의 인도자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먼저 문안을 해야 합니다(13:24a).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그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13:24b). 그와 같이 교회가 단합이 되어 있으면 외부에서부터 두가지의 놀라운 일이 다가오게 됩니다; ①하나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교계의 지도자들로부터 문안의 인사를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13:24c). ②또 하나는 히브리서 저자의 문안과 축복의 기도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3:25).

(2)  둘째, 먼저 이탈리아에서 온 자들이 히브리서 저자와 만나고 있으며 동시에 저자와 디모데가 해당 교회의 성도들을 방문할 때에 자신들의 문안도 꼭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몇가지 사실을 더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디모데가 어디에서 석방이 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시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히브리서의 저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디모데는 로마의 감옥에 갇혔다가 이제 석방이 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2)    둘째, 히브리서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므로 그가 현재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은 이탈리아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그곳은 마케도니아이거나 고린도 지역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사도 바울의 지시에 따라 디모데와 함께 마케도니아에 오래 머무르고 그와 함께 고린도까지 가서 사도 바울로부터 1 6개월간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부한 바 있는 실라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18:5, 11).

3)    참고로, 실라는 헬라세계에 익숙한 헬라파 유대인인데 그는 로마식 이름 실루아노로 불리고 있으며 그 역시 사도 바울처럼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16:37, 고후1:19). 실라는 또한 일찍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젊은 지도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 히브리정경에도 밝은 자입니다(15:22, 32).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유럽의 첫 선교지인 빌립보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그 다음에 데살로니가교회도 개척하게 됩니다(15:40, 16:25, 37, 17:4). 그 후에도 실라는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를 방문하여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18:5, 11).

4)    실라는 디모데와 그 사역의 방향이 다릅니다. 실라는 헬라어 뿐만 아니라 히브리정경의 이해에도 뛰어난 선지자였으므로 사도 바울의 제2차 및 제3차 선교기간 동안에 그의 저술활동을 많이 돕고 있습니다(고후1:19, 살전1:1, 살후1:1). 반면에 디모데는 목회사역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후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되어 로마로 압송이 되고 나자 실라는 예루살렘교회로 돌아가 사도 베드로를 돕고 있습니다(벧전5:12). 훗날 실라는 디모데가 로마로 압송이 되자 그를 대신하여 소아시아의 에베소교회를 돌보고 또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를 돌본 것으로 보입니다. 

5)    셋째, 아마도 히브리서 저자의 서신을 가장 먼저 받아 보게 되는 교회가 소아시아의 에베소교회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성도들이 담임목사였던 디모데가 로마로 끌려가서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한다면(13:24a)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디모데와 함께 풀려난 교계의 지도자들로부터 문안의 인사를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13:24c).

(3)  셋째, 히브리서의 저자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축복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고 있는데(13:25) 그 대상이 둘입니다; ①하나는 그의 서신을 가장 먼저 받아 보게 되는 교회의 성도들로 보입니다. ②또 하나는 모든 교회와 그 성도들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이 지도자와 함께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잘 화합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차질없이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는 것입니다”(13:2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3:24);

(1)  성도들에게 있어서 문안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사람들도 모두 교제를 할 때에 하고 있는 인사치레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문안은 주님 안에서 인사를 먼저 하고 축복의 기도를 드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문안을 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원수진 것이 있으면 주님께 맡기고 사랑으로 풀어야 하고 인간적으로도 용서하기를 먼저해야 하는 것입니다(12:19). 그렇게 땅에서 풀게 되면 하늘에서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통로가 풀려서 당사자에게 임하게 됩니다(16:19). 그러한 의미에서 성도들의 문안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나 자신에게나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의 편지를 받아 보게 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두가지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교회의 인도자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을 원망하지 말고 먼저 성도들이 문안을 하라는 것입니다(13:24a). ②또 하나는 성도들 사이에 불편한 관계를 모두 주님 안에서 기도로 맡겨서 해결을 받고 속히 모든 성도와 더불어 화해를 하고 서로 문안을 하라는 것입니다(13:24b).

(3)  부득이 한 사정으로 로마로 압송이 되어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제 석방이 되고 있습니다(13:23a). 그들이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를 떠나서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머물고 있는 고린도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디모데가 도착을 하면 그와 함께 그 옛날 함께 사역을 했던 마케도니아 지역을 순방하고 이어서 소아시아 에베소까지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3:23b). 로마의 감옥에서 오랜 세월 수감생활을 했던 교계의 지도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교회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한가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화해와 단합이 넘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신들의 교회에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절실한 의미를 담아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3:24c)고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3:25);

(1)  히브리서 저자가 자신의 이 편지를 받아보게 되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넓게 보자면,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좁혀보자면, 디모데가 목회를 오래하고 있었던 교회들입니다.

(2)  진정으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성도들은 두가지의 매듭을 기도로 풀고 있는 자들입니다; ①하나는 영적인 지도자에게 진심으로 문안하며 갈등을 기도로 주 안에서 풀고 있는 자입니다. ②또 하나는 다른 성도들과 서로 용서하고 주 안에서 화합할 줄 아는 자입니다.

(3)  참고로, 어떤 사본에는 축도 다음에 아멘이 마치 후렴처럼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개역개정본에서는 그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비록 생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서 저자의 마음은 모든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지도자들에게 문안하고 또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성도들과도 화해를 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문안을 먼저하고 있다면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 같은 모습을 오랜 세월 로마의 감옥에서 고생을 하다가 이제 막 풀려나온 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성도들이 땅에서 매듭을 먼저 풀 때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막힘이 없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16:19).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서신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3:25). 동일한 은혜가 지금까지 히브리서 강해를 읽으신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도 바울의 소아시아 유럽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