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72강(히12:1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3. 04:42

히브리서 강해 제72(12: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7()

 

징계가 없으면 연단이 없고 연단이 없으면 열매가 없다(12:11-13);

 

본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앞 구절에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모님)들은 잠시 (인간인) 자기의 뜻대로 (자녀인)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2:10).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좀더 깊이 있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성도들에게는 육신적인 이 세상의 부모님이 계시고 하늘의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도들은 두가지의 신분을 지니고 있기에 세상의 부모님과 영적인 아버지의 훈육을 모두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훈육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2)  둘째,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세상의 부모님은 인간인 자기의 뜻대로 자녀인 우리를 징계하면서 훈육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10a). 그 말은 부모님 역시 인간인지라 그 안목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인 자신들이 경험하고 체득한 지식과 지혜의 범위 안에서 자녀들이 잘 성장하도록 지도 편달하는데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목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고 현세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그에 비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훈육은 다릅니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모두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공의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그러한 공의의 정신을 나먼저 실천할 수 있도록 훈육을 하십니다.  

(4)  넷째,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오직 하나님은 우리(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2:10b)고 약간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성도들이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고 훈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렵고도 고달픈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징계와 고침이 있을 때에 비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자녀의 모습이 형성이 되고 성도들에게 영적인 유익함이 현실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힘든 징계와 훈육의 과정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의 유익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거룩함이 무엇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12:11);  

(1)  첫째,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을 통해서만 약한 부분이 강하게 되고 하나님의 병사로 세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가 힘든 과정의 이수를 통하여 얻게 되는 유익입니다. 성도들이 육신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으면 도저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연단을 통하여 단련된 병사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12:11b).

(2)  둘째, 모든 징계는 아무리 그것이 사랑의 매라고 하더라도 맞는 그 순간에는 아프고 쓰립니다. 이 세상에서 징계를 기쁘고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12:11a). 훈육의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견디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인간의 이기적인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새기게 됩니다(12:11c). 그리고 죄에 물든 육신의 요구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서 그 심령 속에 평강의 열매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12:11d). 나아가서 이 세상을 이긴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12:10b).

이제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좀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연단의 과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서술입니다; “징계를 받는 과정 중에 성도들은 빨리 곧은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길이 굽어져 있기 때문에 징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은 길을 달려가기에도 몸이 피곤하고 다리를 절고 있다면 그것부터 고쳐 달라고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함을 받아야 성도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씀입니다”(12:12-13 의역).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얻느니라”(12:11);

(1)  이 세상에 아무리 사랑의 매라고 하더라도 맞는 사람은 아픕니다. 비유를 하자면, 교도행정이 사회에 이롭다고 하더라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당사자는 괴로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군대에 입대를 하여 훈련을 받으면서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당시에는 슬프고 억울하고 괴로운 심정에 휩싸이는 것이 징계이고 사실은 훈육의 과정입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장은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아픈 것입니다. 그 가장 깊은 이유는 사람이란 비록 피조물이지만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며 이 세상에서는 최고의 지혜자이며 스스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유의지와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것을 징계라는 훈육의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다시 서게 만들려고 하니 그것이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3)  그렇지만 반드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1)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정직하게 서야만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피조물인 자신이 얼마나 큰 안목의 차이와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2)    그 결과 자신의 협소한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받아 들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피조물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어떠한 희생과 헌신을 해야만 하는지를 배워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징계와 훈육의 과정을 통하여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연단이 된 이른바 하나님의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 안에서 맛볼 수 있는 평강의 열매는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갈등이 사라진 상태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이 죽고 영생의 몸을 입고서 다시 부활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경우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지만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영생의 몸을 입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대로 40일 후에 승천을 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좌정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신원이 완전히 회복이 되고 창조주의 영광을 회복하신 것을 말합니다.

2)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이 한 마디로, 육신적인 괴로움과 갈등이 사라지고 영원한 하나님 아들의 평강을 회복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7). 그와 같은 하나님의 평강을 징계와 연단의 과정을 거친 성도들이 마침내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을 마친 후에 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열매입니다.    

둘째로,그러므로 피곤한 손연약한 무릎일으켜 세우고”(12:12);

(1)  히브리서 저자가 위와 같은 이치를 미리 말해준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쓰러진 성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연단과 훈육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게 되면 어떠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설 수가 있으며 어떠한 열매를 얻게 되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2)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두가지의 신분으로 살아가느라고 얼마나 그 손이 바쁘고 피곤한지 모릅니다;

1)    먼저 복음사역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영 쉽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으로 자신들의 소원성취와 영달만을 위하여 모두들 달려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 동떨어지게 자기를 부인하고 협소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 갈등과 괴로움이 대단합니다.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스스로 처자식과 함께 먹고 살 양식을 구해야만 합니다. 하루 종일 일터를 뛰어 다니면서 품꾼일을 하자니 다리가 천근만근이 되어 이제는 일어서기도 힘이 듭니다.

(3)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힘을 내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의 권면과 같습니다; “성도가 얻게 될 하나님 자녀의 영광은 이 세상의 잠깐 동안의 고난과 비교할 때 비할 바가 없이 크고 황홀하기 때문입니다”(8:17-18 의역).

셋째로,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2:13);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두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자신이 가고 있는 굽은 길을 버리고 빨리 곧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집과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2)  또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정직하고도 겸손하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곧은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선택하여 가고자 하오니 부디 세상살이에 피곤한 손과 저는 다리를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백성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함의 은혜가 왕성하였기 때문입니다(4:23, 4:40).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일이란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제12장 첫머리에서 적고 있는 다음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그러므로 자신을 드려서 주님의 복음사역을 계승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그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에게 치유의 은혜가 크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