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69강(히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 08:37

히브리서 강해 제69(1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4()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1-4).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믿음생활의 여덟 가지 비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먼저 설명을 해봅니다;

(1)  첫째, 성도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 점을 예수님과 부자청년과의 대화에서 잘 엿볼 수가 있습니다(18:18-23). 그 청년은 많은 재산과 지위를 세습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마치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그 많은 재물을 관리하고 높은 지위를 세습하여 누리는데 사용이 되고 마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을 얻는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영생의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나서야 합니다”(18:22 의역). 하지만 그 부자청년은 과감하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를 못하고 돌아가고 맙니다.

(2)  둘째, 성도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악한 영들은 자꾸만 사람들을 죄라는 올가미로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이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한 마디로 그 비결은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시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머물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 이 세상에 큰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12:1-4, 22:16-18, 왕상9:4-8).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계승하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한다는 약속이 역사적으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 바로 히브리정경이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 성도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인내를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전체 인생에 걸치는 마라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속도로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4)  넷째, 믿음의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벌써 인내의 경주를 온전히 마치고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차지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서 끝까지 자신의 믿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5)  다섯째,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생활의 모범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늘 묵상하면서 그 믿음의 삶의 원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을 시켜나가야 합니다.

(6)  여섯째, 구체적으로 영광과 영생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어떤 수치를 참으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으로 선포하신 것과 그 복음을 실천하는 모범을 자신의 생애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백성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대교 선민사상과 예수님의 만민구원사상이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교지도자들은 선민만의 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선민 유대인들에게는 현세적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처형을 당할 때까지 온갖 악의적인 시비와 모욕에 시달리시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들도 그와 같은 고난을 참고 복음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일곱째, 구체적으로 복음을 거역하는 죄인들의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피곤해 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시고 복음사역을 끝까지 감당하신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작과 협박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거나 낙심하신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바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낙심하거나 지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명완수의 길을 달려가야만 합니다.

(8)  여덟째, 제자들의 복음사역은 예수님처럼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는 정도에까지 이르지는 아니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기 쉽게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15:20).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종인 제자들이 홀로 힘들게 복음사역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복음사역의 특징은 제자들인 성도들이 복음의 주인이신 주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6:32).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소가 하나의 겨리로서 밭을 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왕상19:19-21). 어미소와 새끼소가 하나의 겨리로 연결이 되어 함께 보조를 맞추어서 밭을 갈고 있습니다. 힘이 센 어미소가 큰 힘을 사용하여 힘이 약한 새끼소를 보호하며 그 발걸음을 천천히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요컨대, 종인 성도들의 십자가는 주인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가벼운 것입니다. 그리고 철철 피를 흘리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더 무거운 십자가 더 처참한 십자가를 자기가 지겠다고 종이 함부로 나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12:1);

(1)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있다는 말씀은 이미 이 세상에서 믿음의 인생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선진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살아간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경주’(競走, 달리기 시합)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마치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믿음생활에 전력질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2)  잘 달리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몸을 가볍게 하는 방법이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가 참으로 사람의 시간을 많이 빼앗아가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물을 줄이고 높은 지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믿음의 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3)  ②또 하나는 죄의 유혹과 악한 영의 올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시고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육신의 탐욕과 정욕을 이길 수가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 결과 임재하신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강력하게 역사를 하십니다. 육신의 탐욕과 정욕을 이길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뵵니다;

(1)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a); 사도 바울은 하나의 푯대를 향하여 전심전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10-14). 그의 푯대는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결과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서 아들의 영광을 회복하신 주님이 바로 사도 바울의 신앙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주님이 사도 바울의 믿음생활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주인에게 자신과 같은 종에게도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달라고 늘 간구하고 있습니다.

(2)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b);

1)    선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나무에 매달려서 처형이 된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수치이며 저주스러운 죽음입니다(21:23, 3:13). 그런데 그러한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맞이하십니다. 어째서 그렇게 가장 저주스럽고 수치스러운 대속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탐심과 교만 그리고 죄악이라고 하는 것이 그 정도로 저주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인간들의 극악무도한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스스로 희생양이 되시고 저주스러운 십자가에서 무죄한 피를 흘려 여호와 하나님께 사죄를 하십니다. 그 결과 대속의 삶과 죽음을 모두 감당하신 예수님께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상급이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천하의 권세를 모두 얻으시게 됩니다(28:18). 그리고 심판의 권한까지 얻고 계신 것입니다(5:27). 이제 아버지 하나님 우편의 보좌에 앉으셔서 기쁨으로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복음사역을 천상의 큰 대제사장으로서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4:14-16, 6:20).

  셋째로,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12:3); 이 세상의 현실은 성도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복음사역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날로 더 힘을 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탐욕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낙심이 되고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에 지쳐서 나가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한 때에 성도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발생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거역하고 거스르고 있는 반대자들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용서와 구원을 중보기도하면서 그 고난과 핍박을 이기시고 계십니다(16:32-33). 그렇게 예수님처럼 참고 기도할 때에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12:4); 예수님처럼 성도들이 모두 저주스러운 십자가를 지고 희생양이 되어 피를 철철 흘리게 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이 그 정도의 경지까지 가도록 주님께서 내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임재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죄와 싸우되 악한 영들의 올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혜와 진리의 성령님께서 보호하시고 예방해 주십니다. 그 은혜를 믿으시고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라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생활의 본을 철저하게 보여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여 믿음의 승리가 얼마나 큰 영광을 얻게 하는지를 몸소 주님께서 보여주시니 그것을 감사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도 바울처럼 그 푯대를 향하여 성도들이 믿음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믿음의 길을 자신의 영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달려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