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71강(히12:8-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3. 04:40

히브리서 강해 제71(12:8-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6()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와 영의 아버지의 징계는 어떻게 다른가?(12:8-10)

 

히브리서의 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는 세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①첫째, 사생아 ②둘째 가짜 아들 ③셋째, 육신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2:8-10). 그 의미와 특징이 무엇인지를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생아의 특징은 여기서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은 아들입니다. ②또 하나는 아버지의 훈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들입니다.

1)    첫째, 어째서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흔히 인간세상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의 핏줄인 아들을 사생아로 만들고 정식 아들로 거두어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적인 아버지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치부하시는 경우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고 있는 형상이 전혀 대물림이 되고 있지 아니한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 그 모습만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 그 속에는 전혀 하나님의 성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란 만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공의의 정신이 그 형상으로 전혀 자리를 잡고 있지 않는 자가 바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생아입니다.  

2)    그와 같은 표현이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130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5:1-3). 창세기 제1장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1:26-27).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진짜 하나님의 성품인 형상을 닮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한 자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점은 태초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남인 가인은 사람의 모습만 지니고 있지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없습니다. 따라서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살해하여 암매장을 하고 맙니다(4:7-8).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옛날 버림 받은 자들이 살고 있는 동쪽 놋 땅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4:11-16). 그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정에 희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형상을 물려 받고 있는 사람이 아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형상과 닮아 있는 아들 셋을 그 가정에 믿음의 후계자로 주신 것입니다”(4:25-5:3). 그 귀한 아들 곧 아담의 믿음의 상속자가 바로 입니다.

3)    둘째, 사생아는 누구에 의하여 자라나게 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신앙을 가지지도 못하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지도 아니한 가정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유물론적인 사고방식과 현세적인 사상만을 지니고 있는 환경 가운데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이 세상을 무주공산’(無主空山, 주인이 없는 산천)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혹시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세상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전혀 간섭을 하고 있지 않는다고 사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주인은 이제 만물의 영장 가운데 힘과 권력이 있는 인간입니다. 또한 창조주의 간섭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견책이나 징계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아버지 하나님이 죽었다고 여기고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사생아들입니다.

(2)  가짜 아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를 못합니다. 그렇다면 가짜 아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 아니하면서 단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과 위세만을 빌리고 있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모든 권력의 정당성은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13:1).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도 아니하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하나님의 이름만을 도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통치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권력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임금에 불과하며(12:31) 영적으로는 적() 그리스도인 사탄을 섬기고 있는 마치 짐승과 같은 세상의 권력자일 따름입니다(요이1:7, 17:12).

2)   가짜 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이익과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결코 자신의 생명의 원천이거나 영혼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생명의 주인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의 종이며 도구로 사용하는 자들이 바로 가짜 아들입니다. 그러한 가짜 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욕심대로 내어버려 두십니다. 결코 징계를 하여 올바른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이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1:28-29).

(3)  육신적인 아들에 대해서는 창세기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1-3). 내용을 조금 살펴봅니다;

1)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집안의 아들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회질서의 기초인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가정에 질서를 세우고 계십니다. 그 질서는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하여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monogamy)의 부부생활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모범적으로 영위하는 것입니다(2:20-25).

2)   그런데 그 기본적인 믿음생활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믿는 집안의 아들들이라고 하면서 세상적인 육신의 아름다움에 유혹을 받아 자기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들을 세상적인 부와 권력을 사용하여 전부 아내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상적으로 육신적인 힘과 권력이 있는 자 소위 네피림’(6:4)들이 아름다운 여자를 독점하게 되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polygamy)의 사회가 되고 맙니다. 그에 따라 세상적인 부와 권력이 없는 자는 결혼도 할 수가 없는 비참한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3)   그렇게 영적인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제멋대로 육신적인 정욕만을 쫓아서 파렴치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떠나 버리십니다(6:3). 이제는 그들을 징계함으로써 부디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말씀의 선포도 그 사회에서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오로지 육신적인 삶에 탐닉하고 있는 사람들을 버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찾아오게 됩니다(6:5-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 친아들이 아니니라”(12:8);

(1)  징계가 왜 필요할까요? 징계가 필요한 경우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하고자 고집을 피우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징계를 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나 고집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올바른 길을 제대로 선택하게 됩니다.  곧 징계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구속자에게 대신 징계를 행하는 경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경우가 그러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 사실을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 그리스도가 오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2)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자기 자신에게 또는 그리스도를 대속의 십자가에서 대신 처벌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에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징계의 의미를 알고서 제대로 사랑의 매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를 전혀 받지를 못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자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①첫째, 사생아이고 ②둘째, 가짜 아들들입니다. 그 용어의 의미와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하게 모두(冒頭, 앞머리인 머리말)에서 설명을 드렸기에 간략하게 다시 정리를 해봅니다;

1)    사생아는 버림을 받은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가운데 그 성품인 형상을 전혀 물려받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양은 사람인데 전혀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지를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경영하라고 한 것입니다(1:26-27). 그 경영의 방법이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지기의 역할인데 그 사명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사생아들은 피조물의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    가짜 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이용하고 그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세상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창조주의 이름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세를 자신들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창조주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그들의 주인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권력의 정당성을 제공하며 그들이 원하고 있는 부귀영화를 가져다 주는 종이며 일종의 우상일 따름입니다.  

둘째로,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12:9);

(1)  이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소위 내리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사랑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서 딱딱한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식물의 싹을 트게 합니다. 하늘의 천체에서 빛이 내려와서 이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피조세계를 밝히고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이 세상에서 육신의 아버지가 아들이 잘 되도록 사랑의 매를 들고 징계를 합니다. 그것은 엇나가고 있는 아들의 행동을 어려서부터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부디 올바르게 자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잘 경영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그와 같은 징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자식들은 매를 맞으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효자는 늙으신 부모님의 채찍에서 힘이 빠지게 되면 그것을 오히려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사람들이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12:9)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아들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참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징계를 통해서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아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징계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두가지입니다;

1)    성도들이 그 두가지의 징계의 의미를 깨닫고 아버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①하나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끝까지 구원해주시기 위하여 인생 가운데 언제나 징계를 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두가지 종류의 징계를 모두 얻고 있으니 참으로 자신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입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의 그 구원과 사랑의 마음을 알고서 이제 남은 인생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속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사는 성도의 삶입니다(12:9).

셋째로,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2:10); 육신의 아버지의 자식 징계와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징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 차이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명쾌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육신의 아버지의 자식들에 대한 징계는 그것이 아무리 사랑의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징계라고 하더라도 다음 두가지 효용성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    하나는 수십년간 이 세상을 살아온 육신의 아버지의 판단에 따른 징계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한 징계가 되지를 못합니다. 자식을 완전히 올바르게 자라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모가 바라보는 세상이나 이기적으로 바라고 있는 미래에 맞추려고 하는 징계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아무리 징계를 잘 해보아도 그 자식이 100년 안팎의 인생을 살고 나면 그만입니다(12:10a). 영생을 줄 수 있는 징계나 구원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둘째,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는 그와 다릅니다. 그 징계의 목적은 사람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평생을 살아감으로써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생에 이르는 거룩한 자녀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12:10b). 그와 같은 모범을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성육신하셔서 공생애를 통하여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특히 대속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진노와 징계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대신 감당하셨는가를 보게 합니다. 그에 따라 죄인들이 회개를 하고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누구나 그리스도처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옛날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도 동일합니다. 선민들에게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19:4-6).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구원을 만끽하고 세상적인 복락을 누리고자 추구를 합니다. 그 결과 그 죄악을 청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바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이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달리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대신 강력하게 징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차제에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빨리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 정도로 강력한 징계가 자신에게 내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빨리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거듭난 삶을 살아가면서도 온전한 믿음생활을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징계를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어긋날 길을 바로잡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그 징계에 대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같은 징계가 없으면 이미 내어버린 자식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매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 나갈 때에 하나님 자녀의 거룩함을 이루고 사명을 끝까지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깨달음과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