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54강(히10:32-3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2. 08:19

히브리서 강해 제54(10:32-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19()

 

고난과 핍박을 소망과 기쁨으로 이기면 그 상급이 크다는 히브리서 저자의 말씀에 대하여(10:32-35);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한 마디로, “고난이 있어야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누가복음 제2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예언, 그리고 로마서 제8장에 들어 있는 사도 바울의 견해와 같은 것입니다;

(1)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얻게 되는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모든 시험 중에 복음을 전하고 만민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예수님께서는 함께 공생애를 지내고 있는 12제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 순서가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①먼저, 예수님처럼 모든 시험 중에 복음을 전하고 만민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②그리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이 찾아오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놀라운 상급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8:15-19);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나름대로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공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처럼 복음사역을 하면서 고난을 당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상급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2:28-30, 21:7). 그와 달리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벌써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16).

2)    참고로, 그와 같은 견해는 사도 요한의 복음서에서도 동일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9-13);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벌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도 요한의 견해입니다.

3)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양자의 영을 성도들에게 임재시켜 주십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양자가 된 성도들이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8:15). 오늘날에 있어서는 흔히 양자의 권리가 적자의 권리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살던 로마제국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적자(嫡子, 적통인 아들)이거나 양자이거나 차별이 없습니다. 능력이 출중한 자가 부친의 지위와 신분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참고로 단적인 예를 들자면, 로마제국의 황제의 계승자가 그러합니다; 초대황제로 불리고 있는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는 사실 로마의 권력을 독점하고서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 로마의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가 되려고 시도했던 시저의 양아들입니다. 정확하게 그 족보를 말하자면 시저의 누나의 손자입니다.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는 어머니가 황제와 재혼하였기 때문에 황제의 양자가 되고 계승자가 됩니다. 3대 황제인 칼리쿨라는 전임황제의 양자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는 전전임 황제의 조카인데 로마군대의 지지로 황제가 됩니다. 5대 황제인 네로는 어머니가 황제와 재혼함으로써 역시 황제의 양자가 되고 황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살고 있던 로마제국에서는 그렇게 능력만 있으면 양자들이 제국의 황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자의 영이라고 하는 표현은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고 하겠습니다.

5)    셋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고난도 영광도 함께하고 있습니다(8:17); 성도들은 이 세상에 그냥 버려진 목자가 아닙니다.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영적으로 성령님의 전(殿)에 함께하고 계십니다(14:16-20). 그 성령님의 전이 성도들의 속사람 속에 그리고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고전6:19-20). 그와 같이 한 몸이 되어서 공생애를 살아가고 천국에서의 상급도 함께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성도들이 현세의 고난을 이길 수도 없으며 내세의 영광도 누릴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6)    넷째,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며 큰 것인지 현세의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8:18); 현세의 고난이란 성도들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한평생의 세월에 국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세에 얻게 되는 천국에서의 영광과 그 기업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생을 하나님나라에서 누리며 영광스러운 하나님 아들의 상속을 얻고 있으니 그것이 100년 안팎의 인생의 고난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100데나리온의 탕감을 해준 자가 천국에서 일만 달란트의 빚의 탕감을 받게 되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18:21-35). 그것은 소위 비교도 할 수 없는 무려 60만배의 축복을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7)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이 모두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나서 주기를 모든 피조물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8:19);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원주로 영접하고 그 제자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것으로 복음사역을 끝내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님을 본문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복음사역을 이 땅에서 마무리하였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의 상급을 당당하게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일에 동원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8:19)라고 기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난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10:32-33);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10:32);

1)    첫째, 복음의 빛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게 되면 세상적으로 영적인 고난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0:32a); 그저 고달픔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에 불과한 것입니다. 개인의 탐욕이 지나치고 남의 권리를 침해하였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받게 되는 보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사회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2)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이기주의와 집단이기심을 버리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대국이나 원수된 백성들의 편을 들고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집단 내에서는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의 땅에 나아가서 선교를 하게 되면 그곳의 토착적인 종교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 급기야 영적인 핍박을 받게 됩니다.

3)    둘째, 성도가 고난의 큰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있습니다(10:32b); 승리의 비결은 성도들의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이미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내주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제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전도지역 및 선교현지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그것을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경작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더 이상 돌짝 밭이 아니라 이제는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옥토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발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도우심이 있기에 성도들이 고난을 인내로써 이기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28:18-20, 천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도우심, 1:8, 성령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발휘)                  .

(2)  혹은 비난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10:33a); 선민 유대인의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기지 말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선민들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구원자로 선민들에게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인들은 멸망의 대상이고 선민 유대인들만이 구원의 대상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유대교리와는 정면으로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습니다. 선민 유대인들로부터는 비난과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죄인이 되고 사형수가 되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채찍을 맞으며 걸어가게 됩니다. 그와 같은 핍박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의 복음사역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은 비난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10:33a). 그 점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시 한번 상기를 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10:33b);

1)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시는 그 현장에 12사도들이 함께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이종동생으로 보이는 사도 요한만이 멀찍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2)    그것은 산헤드린 대 공회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의 입장은 나사렛 예수파를 모두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서운 분위기를 간파하고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자기 목숨 하나 살리자고 피신을 하거나 그 신분을 숨기기에 바쁜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선교의 현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고 그들을 돕다가 박해의 불길이 자신에게 번져오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복음사역을 하다가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게 되면 그 고난은 엄청난 내세의 영광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고자 합니다.

둘째로,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10:34);

(1)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면 두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①하나는 하나님말씀의 정확한 뜻을 예수님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으로 밝히 드러내시고 그것을 복음으로 전파하신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의 말씀만 전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사역자로 살아가게 되면 놀라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기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제자들이 살아가게 되면 동일한 상급과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  그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되면 예수님처럼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천국의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거나 자신의 재산이 사라지는 위험도 감수하고 있습니다(10:34).

  셋째로,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10:35); 끝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담대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상을 얻자면 그 고난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상과 고난이 비례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상을 얻기 위해서는 담대하여야 합니다. 더 큰 고난을 기쁘게 맞이하고자 하는 담대한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가 하나님나라에서 더 큰 상급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천국에서 더 큰 상을 얻겠다고 현실적으로 더 큰 고난과 환난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기는 힘듭니다. 그만한 담대한 믿음과 견고한 소망을 지니고 있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천국의 상급은 미래의 것입니다. 반면에 고난과 핍박은 현재의 것입니다. 당면한 생생한 위험을 감수하고 단지 약속에 불과한 미래의 영광과 상급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1)  첫째, 영적인 눈으로 미래의 자신의 기업과 상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미래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영적인 안목으로써는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리며 이 세상을 구원하고 함께 다스리고 있는 그 영광을 미리 영적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부활을 영적으로 보고서 확신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고전15:8, 22-23, 1:23, 3:10-12).

(2)  둘째, 자신에게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믿음도 소망도 영적인 담대함도 사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간구로 아버지 하나님께 빌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자신에게는 그러한 믿음과 지혜 그리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주인으로부터 얻어서 주인이 원하시는 구원사역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신실한 종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겸손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종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