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53강(히10:30-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2. 08:17

히브리서 강해 제53(10:30-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18(주일)

 

원수 갚는 심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서 그 손에 맡겨드리게 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가? 이제는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라는 말씀에 대하여(10:30-31);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차이에 대하여 역시 말하고 있습니다(10:30-31). 근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차이는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차이입니다;

(1)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선민사상에 의거하여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유월절 밤에 애굽인들의 장자들은 모두 죽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는 대문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림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면하게 하고 있습니다(12:12-14). 그리고 홍해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 난 마른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건너갑니다(14:21-22, 29). 그러나 애굽의 군대는 수장(水葬)이 되고 맙니다(14:28, 30).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신다. 선민들을 괴롭히는 이방인들을 미워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원수들을 미워하고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그들을 징벌해야 하는 것이다”.

(2)  기독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가지고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가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3-48).

(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같이 기독교는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그리스도의 복음과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자식처럼 사랑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하나같이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심판하시고 영벌에 처하고자 하는 대상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영적인 원수들입니다. 히브리전승에 따르면, 그 정체는 하늘에서 징벌을 받아 추락한 천사장 루시엘과 그를 찬양한 천사들입니다(14:12-17, 1:6). 그것이 땅에서는 성도들을 시험하고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마귀이며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입니다(3:1-7, 4:1-11, 2:2, 6:12, 20:2).

(4)  악한 영들이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두려움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2:2, 6:12).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같이 구원하고자 하십니다(8:1-2).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말씀하시고 그 뜻의 성취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성도와 교회를 통하여 복음이 온세상에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28:18-20). 그리고 그 사역을 돕기 위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셔서 내주 역사하십니다(1:8).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결코 선민이나 성도들의 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짜 영벌에 처해지는 원수가 아니며 오히려 구원의 대상입니다. 성도들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10:30);

(1)  히브리서의 저자가 신명기에 적혀져 있는 모세의 노래 가운데 본문의 내용과 의미상 연결이 되고 있는 대목을 다음과 같이 원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and there is none shut up, or left) 보시는 때에로다”(32:35-36).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성도를 실족시키는 원수에 대한 보복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직접 원수를 갚겠다고 이방인들이나 이웃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됩니다.

2)    둘째, 성도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면 주님의 보복은 생각보다 빠릅니다. 왜냐하면, 환난날이 가까우므로 그 일을 속히 처리하시기 때문입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악한 영들이 책동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위협 때문에 얼마나 곤고한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복음사역을 하고 있기에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에 무기력합니다.

4)    넷째, 성도들은 스스로 차폐를 하거나 그 시험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즉시 악한 영들을 처벌해주고 불쌍한 백성들을 구원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내주하신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대처를 하시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모세의 노래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a)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b)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c)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10:30).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원수 갚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10:30a). 왜냐하면, 그 원수는 성도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의 생각의 뿌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한 영이기 때문입니다(8:21).

2)    둘째, 그러므로 성도는 스스로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게 되면 백전백패를 하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악한 영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승리를 얻는 방법은 하나님께 그 진짜 원수인 악한 영의 처벌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워하는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역할을 성도가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을 쫓아내고 그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10:30b).

4)    넷째, 그리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10:30c). 만약 성도들이 스스로 자신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섰다고 한다면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한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처벌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로,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10:31); 두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1)  하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손에 원수 갚는 일을 맡겨 드립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을 직접 처벌하십니다.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악한 영들은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10:31). 마귀와 귀신들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들을 겁을 내지는 않습니다. 그들을 소멸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게 되면 그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을 지옥불에 던져 넣으시는 창조주 여호와 앞에 서게 되었으니 그 두려움이 엄청난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성도들이 제멋대로 사람을 미워하고 원수를 갚는 경우입니다.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죄인들입니다(3:9-1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모두의 속죄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가 미워하면서 양편이 모두 원수를 갚겠다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려 사신 사람들을 해치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죄악을 범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10:31)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로마서 제12장 말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장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9-21). 아무쪼록 그렇게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