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47강(히9:26-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0. 14:17

히브리서 강해 제47(9:26-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11(주일)

 

마지막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에 대하여(9:26-28);

 

천상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서 과연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은 단 한번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속죄의 제사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속죄의 제사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완전한 대속의 제물로 오신 것입니다(9:26).

(2)  둘째,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제사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의 신성이 깃들어 있는 몸을 제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제사에 대하여 그 효과의 영원성이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준 것이기에 무죄한 그 피의 제사는 단번에 모든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씻어내며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영적인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9:13-14, 27-28a).

(3)  셋째,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영적인 만민구원의 복음으로 밝혀서 그것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는 한편 선민 유대인들의 이기주의와 현세주의를 물리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진리의 빛은 만민의 생명과 믿는 자의 영혼을 살리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1:3-4). 이제 성도들이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영적인 삶을 영위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또한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돕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서 주님께서는 영적인 대제사장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4:14-16, 6:19-20, 7:24-25, 8:1-2). 

(4)  넷째,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가 되게 되면 세상의 종말과 종말론적인 구원이 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세상에 권능으로 나타나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십니다(9:28b). 그리고 지상명령을 실천한 제자들에게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십니다(22:28-30, 5:24-29, 21:21-27).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와 같은 관념과 사상들이 반영이 되어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9:2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9:26a); 여기서 그리하면이라고 하는 것은 앞 절의 내용들을 받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늘에 있는 성소와 지상에 있는 성소와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9:24). 그 차이는 천상의 성소에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와 지상의 성소에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의 효력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9:25). 그와 관련하여 본문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천상에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는 단 한번이면 됩니다. 그 이유는 영생하는 천국이므로 그곳에서는 한번의 완전한 속죄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죄 사함의 결정은 번복함이 없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드려질 수 있는 만민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가축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양으로 사용한 것이므로(1:29) 더 좋은 제물이며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단 한번의 완전한 제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9:23, 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가 단 한번 뿐이며 다시는 드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9:26a)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    그 반면에 하늘의 성소와 그 속죄의 제사의 모습을 닮아 있기는 하지만 피조세계인 지상의 성소에서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는 반복적이며 그 효력이 한시적입니다. 그것은 피조세계가 그 수명이 한정이 되고 있는 물질과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오시는 진짜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이 피조세계에서는 영원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3:13-15). 그에 따라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된 자가 매년 대 속죄일에 모든 백성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단지 지난 일년 동안의  죄에 대해서만 사면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요컨대, 가축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그 피의 제사가 지나간 일년 동안의 죄 사함만을 담보하고 있기에 대제사장은 매년 그 속죄의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9:26b);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사시며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한 그 제사가 지상 마지막 속죄의 제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구원주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세상은 종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서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깨닫고서 눈물로 회개를 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러한 회개가 없는 자에게는 영원히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진실로 마지막 속죄의 제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끝에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9:26b).

둘째로,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심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잘 알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 본문입니다;

(1)  첫째, 심판은 두번째의 죽음입니다(5:29). 그것은 완전한 죽음 곧 영혼까지 처벌하는 영원한 죽음입니다(10:28). 그와 같은 맥락에서 처음 죽음은 육신적인 죽음에 불과합니다;

1)    이 세상에서 한시적으로 사용을 하도록 되어 있는 육신을 벗고 그 영혼이 잠을 자게 되는 것이 한번 죽는 것입니다(9:27a). 그것은 어떤 모양이든지 그 육신의 사용기간이 끝나게 되면 맞이하게 되는 운명의 시간입니다. 아무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2)    다만 히브리정경에서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그 육신이 하늘로 옮겨진 경우를 두가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과 평생동안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 에녹이 365세를 이 세상에서 살다가 휴거를 당한 것입니다(5:22-24). ②또 하나는 선지자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말과 마차를 타고서 회리바람 가운데 승천을 한 것입니다(왕하2:11).

3)    그 두 사건의 비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히브리정경에서 언급이 없기에 깊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지극히 제한적이 예외규정을 빼고 나면 히브리 저자의 언급,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9:27a)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2)  둘째,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처벌을 받게 되면 다시는 구원이 없습니다(12:31-32). 그것이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b). 영적인 처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10:28). 왜냐하면, 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피조세계를 시공간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존재의 능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24).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상의 세계에 충만합니다(1:2, 4:24, 22:1-5).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도 그 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타락한 천사들과(2:2, 6:12, 1:6) 하나님의 종인 사람들이 그 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1:26-27, 2:7);

1)    다만 천사와 사람과의 차이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육신을 입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천사들은 잠시 육신을 입은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신(現身, epiphany)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영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모태에서 태어날 때에 다시 육신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육의 합일체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독특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2)    솔로몬 왕의 설교집인 전도서의 내용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그 소재인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질 때에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는 사람의 영혼은 본래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에게로 회수가 됩니다(3:20-21). 일단 회수가 되고 있는 사람의 영혼을 창조주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그 처리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3)    이 세상의 끝에 죽음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을 심판할 때에 그 영혼을 되돌려주면서 영벌에 처할 것인지 아니면 영생으로 들어가게 할 것인지를 주님께서 판정하십니다(5:28-29). 그렇게 큰 권한을 위임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성육신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 직접 복음사역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5:27). 그러므로 자신의 체험적인 복음사역의 실태와 성도들의 삶을 일일이 비교하시는 것입니다(4:15).

4)    제자로서 합격점을 받게 되면 영생의 상급을 주십니다. 반면에 불합격이 되면 영벌의 처벌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제25장 달란트 비유의 결론이며 요한복음 제5장의 주제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5-46),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9).

셋째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9:28a);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드리신 대속의 십자가 제사는 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자 하는 제사입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에 창조주의 한 위격으로 참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희생은 당연히 모든 피조물에게 미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9:28aa).

2)    또 하나는 단 한번으로 창조주 여호와를 만족시키신 속죄의 제사입니다;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9:28ab);. 그러므로 이제는 대속의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의 효과를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 앞에 나아와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서 회개를 하느냐 아니하느냐의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회개와 적용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2)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8b);

1)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 세상의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종말의 끝은 언제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가 명쾌하게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바로 종말의 끝입니다”(9:28b의역). 그 이유는 그때 심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글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심판이라는 말보다는 구원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심판이라고 하면 죄에 대하여 문책을 하고 영벌에 처하는 두려운 것으로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렇지만 성도들에게 종말의 끝에 재림하시는 주님께서는 그러한 두려운 심판의 주가 아니십니다. 그 반대로 구원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시는 대망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주인으로 다시 오시게 되면 성도들의 모든 고난이 끝나게 됩니다.

4)    그리고 무덤속에서 잠자고 있는 성도들이 부활하게 됩니다(5:21-29).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간 성도들은 그 두려운 심판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오른쪽 주님이 계시는 그 옆으로 이동이 됩니다(25:34-40, 46). 그렇게 죄와 상관없이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앙망하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8b).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믿고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성도가 향년을 맞이하면 죽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범한 육신은 비록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성도들이 벗어 놓고 가야만 하는 의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만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사람이나 천사나 그 구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9:26-28).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벌써 성도들이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서 태어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처음의 육신을 대속의 죽음으로써 벗고 예수님의 영이 영생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치가 깊숙하게 스며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말씀의 뜻을 묵상하시면서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아무쪼록 마지막 속죄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신실하게 보답하시는 성도님의 일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