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48강(히10: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0. 14:18

히브리서 강해 제48(10: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13()

 

좋은 것을 나중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먼저 율법을 주셔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철저하게 깨닫도록 만들고 계시는가?(10:1-4)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민 유대인들이 구원의 징표로 믿고 있는 그들의 성소, 제사, 제물, 대제사장, 율법 등에 대하여 그 모든 것들은 하늘에 있는 참 것의 모형이며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8:5). 그러한 것들은 첫 언약에 따라 주어진 것들인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율법과 제례의식만을 크게 의지하는 한편 첫 언약의 기본정신이 되고 있는 선민의 의무사항 곧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와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께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첫 언약 안에 머물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새 언약으로 대체를 하고 있습니다(8:9)..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통하여 새 언약에 따라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이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이 다음과 같이 첫 언약을 새 언약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반복되는 속죄의 제사의 시대를 마감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이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선민만의 속죄와 구원에 집착하고 있던 유대교의 선민사상이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됩니다.

(3)  셋째, 율법에 따라 세습이 되고 있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제례의식을 집전하던 시대가 끝나고 있습니다. 가축의 피를 사용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시대가 끝이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어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믿고서 구원을 얻으라고 외치는 복음의 시대가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벌써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첫 언약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8:6-7).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번 더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완전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시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에 그 의로 말미암아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후에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24:44-53).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천상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6:20).

(2)  둘째, 천상의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께서 그 직분을 행하시는 성소가 어디일까요? 그곳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 하늘의 보좌입니다. 그곳의 형상과 모양을 모방하여 이 땅에서는 지상의 성소가 건설이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시면서 천상의 성막의 모습을 시내 산에 펼쳐 보이신 것입니다(25:8-9).

(3)  셋째,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법률의 형태인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면서 성막을 운영하는 규례를 정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지성소에 설치가 되어 있는 언약궤와 속죄소에 여호와께서 임재를 하시는 것으로 간주가 되고 있습니다(25:21-22).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지성소 휘장 바깥인 성소에서 성물들을 돌보면서 평소에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다만 대제사장은 매년 대 속죄일 하루 동안 지나간 한해 동안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16:29-34). 그 결과 속죄소에서 울려 나오는 여호와의 대 사면의 음성을 듣고서 성막의 뜰에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죄 사함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됩니다.

(4)  넷째, 율법에 의하여 세워진 지상의 성막과 그것을 섬기고 운영하는 대제사장과 속죄의 제사 그리고 율법 자체에 하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대제사장은 혈통에 따라 세습이 되고 있습니다. 아론의 수명이 다하게 될 때에 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예복을 물려 받고서 그 직분을 계승하고 있습니다(29:29). 그와 같은 승계가 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대제사장은 지상에 없습니다. 오로지 율법이 아니라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직접 명령으로 임명이 되는 천상의 대제사장이신 주님만이 영원할 뿐입니다(7:16-17).

2)    둘째, 예루살렘성전의 속죄의 제사에 하자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피조물인 제사장들이 가축의 피를 사용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제사는 스스로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고자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그러한 희생이 아니므로 마음이 아니라 육신에 대한 속죄이며 동시에 한시적인 속죄의 효과만이 있습니다. 따라서 매년 대 속죄일에 그 제사가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3)    셋째, 그러한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마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성육신하게 됩니다. 육신을 입으신 독생자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할 것이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전파하십니다.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창조주께 드린 그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자신의 죄를 대속하는 것임을 믿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가 온전하게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다섯째, 예수님께서 드리신 그 제사로 말미암아 율법상의 그 모든 속죄의 제사가 마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속죄의 제사가 반복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사실을 믿고서 성도들이 거듭난 영적인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희생하고서 얻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그것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인생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 제자로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인생입니다(28:18-20). 

(6)  여섯째, 천상의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성도들을 도와 주십니다. 하늘의 지성소 곧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성도들의 믿음생활과 지상명령의 실천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십니다(24:49, 14:16-17, 1:8, 2:1-4). 그리고 세상을 이기고 승천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을 천국에서 준비하십니다(22:28-30, 14:1-3, 3:20-21, 21:7).

요컨대,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천국에서의 소망을 믿고서 거듭난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새 언약 안에 머물고 있는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소망이 헛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주기 위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의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과연 그 내용과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율법장차 올 좋은 일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10: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율법장차 올 좋은 일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10:1a); 율법이 그림자라면 그 본체와 실상이 되고 있는 참 형상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림자와 모형이 먼저 나타나고 실상과 본체는 더 좋은 것이므로 나중에 역사 가운데 나타난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며 어째서 그러한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일까요?

1)    참 형상이라고 하는 용어를 히브리서의 저자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창세기 제1장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참 형상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가 된 만물의 영장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어긋나지 않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그 기대가 어긋나고 있습니다. 그 마음과 양심 가운데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고서 인간들이 제멋대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의 그림자에 불과한 그들의 이성과 지성으로 만물을 능히 다스릴 수가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들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을 자신들이 최초로 발명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가 안중에도 없으며 자신들이 바로 창조를 하는 자라고 주장하는 목이 곧은 백성들입니다.

3)    어떻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욕심껏 살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두 단계로 그 대책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으로 은연중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내비치고 있습니다; ①첫째 단계는 율법에 따라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②둘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영원한 속죄의 제사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4)    모세오경에 따르게 되면, 여호와께서는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 언약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제사장나라로 출발시키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의 법률로 삼도록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십니다. 그 율법에 따라 성막문화와 제례의식이 규례화됩니다. 율법에 따라 세습이 되는 대제사장이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가축의 피를 사용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모든 백성들의 죄 사함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하면 지난 일년간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율법에 따른 첫째 단계의 죄 사함의 제사로써는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저자가 자세하게 설명을 한 바와 같습니다. 그 내용은 의미상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①피조물 곧 수명을 가진 한시적인 존재인 대제사장이 드리고 있는 제사에 불과함. ②죄를 범한 자신이 아니라 가축을 대신 희생양으로 사용하여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임. 그 결과 일년짜리 용서만을 받고 있으며 그것도 마음과 양심의 회개가 없이 그저 육신적인 죄 사함에 불과함. ③매년 반복이 되고 있는 대 속죄일의 제사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불완전한 율법과 속죄의 제사만으로써도 충분히 선민들이 의인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 한 마디로, 비양심적이고도 세속적인 유대교리와 집단 이기적인 선민사상이 만연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10:1b);

1)    매년 대 속죄일에 모든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가 대제사장에 의하여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제사가 일년 동안의 죄를 용서해주는 효과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백성들의 영혼과 심령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는 속죄의 제사였다고 한다면 그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2)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그저 대 속죄일에 자기 대신에 가축을 제물로 대신 바치고 대제사장으로부터 사면령을 받고 나면 그만입니다. 또 다시 같은 죄를 재발하는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를 않습니다. 내년에 다시 대 속죄일 제사를 가축으로 드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죄악의 악순환과 속죄의 제사의 반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둘째로,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10:2); 히브리서의 저자가 역발상(逆發想, 반대로 상상하여 생각을 전개하여 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만약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드리는 가축의 피가 완전한 죄 사함의 효과를 영원히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사건이 전개가 되는 것일까요?

1)    첫째, 그 제사를 위임한 모든 백성들이 단번에 마음과 양심까지 전부 정결하게 되어 다시는 죄의식이 없이 의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    둘째, 그에 따라 다시는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것은 율법에 따른 대제사장의 속죄의 제사로써는 이룰 수가 없는 꿈에 불과합니다. 그저 역발상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예루살렘성전에서 가축을 희생양으로 사용하는 속죄의 제사가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저자의 그 역발상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셔서 스스로 속죄의 제물이  되어 단번에 만민을 위한 대속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실마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10:3-4); 더 나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가 있기 전까지 예루살렘성전에서 드려지는 대제사장의 속죄의 제사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마음과 양심까지 회개를 시키고 그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에 따라 백성들은 똑같은 죄악을 다시 범하게 됩니다. 죄 의식과 양심의 가책이 다시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10:3-4).

결론적으로, 더 나은 영원한 속죄의 방법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독생자를 이 세상에 성육신시키시고 공생애를 통하여 저희들에게 복음을 알게 하시고 또한 신성이 깃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저희들의 죄악을 도말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주신 그 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저희 성도들의 마음에 늘 뿌려 주시고 성령님께서 저희들의 신앙 양심을 항상 주장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남은 인생을 지상명령을 실천하다가 부활 승천하여 저희들의 참 형상이 계시는 그곳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간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