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45강(히9:16-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9. 04:17

히브리서 강해 제45(9:16-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9()

 

가축의 피로 맺은 첫 언약과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과의 차이에 대하여(9:16-22);

 

첫 언약과 새 언약과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그 공통점에 대하여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언약은 마치 유언과 같아서 그 제물이 죽어야 발효를 한다는 것입니다(9:16-17). 그러므로 첫 언약을 세울 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지시하여 제물을 가지고 백성들과의 언약식을 준비하게 하십니다(24:3-8). 소를 잡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들에게 낭독한 후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맹세를 하게 합니다(24:5, 7). 그리고 제물의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리는 것입니다(24:6, 8). 새 언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피와 살을 희생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피 흘림이 없이는 언약이 성립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9:18). 그러므로 언약식을 거행하면서 모세가 제물의 피를 제단과 두루마리와 백성들에게 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약의 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 제물의 피를 언약의 쌍방인 여호와의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림으로써 이제 언약이 성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언약을 일방적으로 어기게 되면 당사자의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 점은 예수님의 피흘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함을 받고 의인이 된 성도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과 남은 인생을 걸고서 복음전파와 예수님 제자의 양성과 파송에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와 같은 공통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요한 차이점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 가축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은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피조물인 가축의 죽음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가축의 죽음은 그 제물의 성격이 한시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영원한 제사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 언약에 따라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경우에는 만약 다시 죄를 범하게 되면 다음해 대 속죄일에 다시 가축을 제물로 바치고 사면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제물인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드린 영원한 속죄의 제사이므로 그것이 처음이며 마지막인 대속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그 점을 깊이 인식하고서 이제는 성도들이 다시 죄를 범하지 아니하도록 영적인 삶에 매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억지로 끌어다가 속죄의 제물로 사용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 사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자 가축을 대신 희생시킨 것입니다. 죄가 없는 가축을 희생양으로 삼았으니 그것이 부득이하다고 하더라도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러한 강제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희생입니다.

(3)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소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아시고 독생자께서 스스로 이 땅에 인자(人子)로 태어나셨으며 또한 공생애 끝에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스스로 바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발적인 헌신과 희생을 바라볼 때에 죄인인 사람들의 마음이 미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큰 슬픔을 경험하시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고서 부디 더 이상 죄인으로 살지 아니하도록 도와 달라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후회와 회개 그리고 결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하여 능력의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임재를 하시는 것입니다.

(4)  셋째, 가축을 제물로 사용한 경우에는 그 피가 지나간 한해 동안의 백성들의 잘못과 허물만을 속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피와 살을 회개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보혈을 흘리시는 그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후에 승천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24:1-7, 24:50-51, 1:3-11).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는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게 됩니다(1:8, 2:1-4). 그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면서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뒤를 따라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9:16-18);

(1)  피는 피조물의 죽음과 삶을 가르고 있습니다. 피가 피조물의 폐쇄회로를 여전히 돌고 있기 때문에 살아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그 피가 모두 흘러나가 버리게 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물학적인 삶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피이기에 중요한 언약은 피를 매개로 하여 성립을 시키고 있습니다(9:18). 그 의미는 언약을 지키면 삶이 보장이 됩니다. 반대로 언약을 일방적으로 어기게 되면 목숨을 내어놓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 같은 비장한 의미의 피로 세운 언약을 마치 유언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언장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가 죽어야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9:16). 그러므로 피로 세운 언약도 죽음을 통하여 그 효력을 발생시킵니다. 그와 같은 이치에 맞추어 첫 언약을 발효하기 위하여 가축을 죽여서 그 피로써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준행하겠다고 하는 언약을 어기게 되면 그 제물의 가축처럼 자신의 죽음으로 사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3)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 같은 비장한 맹세가 들어 있는 것이 첫 언약의 의미라고 상기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진심으로 준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편리하게 매년 자신들을 대신하여 가축을 속죄물로 바치고 그 피로 제사를 드리게 되면 무난하게 한해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고서 또다시 한해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근본적인 치유나 영적인 회복이 없이 형식적인 제례의식만으로 육신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선민들의 처지가 딱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살아 있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과 같은 선민들의 율법생활은 이제 종말을 고해야만 합니다. 영적으로 무의미한 육신적인 신앙생활은 율법과 함께 죽고 그 죽음으로써 새 언약을 맞아 들여야만 합니다(9:17). 계속 자신들이 선민으로서 의롭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새 언약을 영접하지 못하는 불행이 계속될 뿐입니다. 선민우월사상을 버리고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결단이 있을 때에 선민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과 붉은 양털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9:19-20); 히브리서의 저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여호와의 율법을 모두 지키겠다고 맹세를 했을 때에 가축의 피를 사용하여 엄숙하게 언약식을 거행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모세가 자신이 시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배운 말씀을 신정국가의 법률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먼저 백성들에게 율법체계로 선포합니다(9:19a, 24:7).

(2)  둘째, 출애굽기 제24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시내 산 앞에서의 최초의 언약식을 참조하면 제물은 소이며 그 피를 받아서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리고 있습니다(24:5-6, 8).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제물이 송아지와 염소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피를 물과 함께 두루마리로 된 히브리정경과 백성들에게 뿌렸다고 적고 있습니다(9:19b, d). 그것은 출애굽기의 기록이 아니라 구전이 되고 있는 히브리인들의 전승을 원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셋째, 피를 뿌리는 도구로서 우슬초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애굽에서의 최초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른 경우와 같습니다(12:22). 그런데 우슬초에 더하여 붉은 양털까지 거론하고 있는데(9:19c) 그것은 물을 사용하여 정결 예식을 행할 때에 사용하는 도구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14:52, 19:9).

(4)  넷째, 모세가 언약식 끝에 제물인 소의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면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24:8). 그 대목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9:20).

셋째로, “또한 이와 같이 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1-22);

(1)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막과 성물을 정결하게 하고자 할 때에도 제물의 피를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기 제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행하고 있는 제물의 피를 뿌리는 의식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7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7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16:14-19).

(2)  대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속죄물인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와 그 주변, 그리고 회막에 뿌리고 마지막으로 성막의 뜰에 있는 제단의 뿔에도 바른다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제물의 피 뿌림의 의미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1-22).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대 속죄일에 제물의 피가 성막과 성물까지 모두 성결하게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피조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성결하게 하는데 사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면서 그 피와 물을 흘려 주신 것이 이 땅을 새롭게 하는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9:21-22, 19:34).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그날이 바로 모든 인류와 이 세상의 대 속죄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삼고 희생하심으로써 그 피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유언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9:16-17).

그러므로 성도들이 할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들이 제사장이 되어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거룩하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대 속죄의 시대가 시작이 되었기에 당연히 성도들이 그러한 사명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새로운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소망과 은혜를 생각하시고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