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42강(히9: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6월 6일(화)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시게 됨으로써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마는가?(히9:1-8)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 들어와서 드디어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주님께서 마련하실 때까지 지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바로 첫 언약에 따른 불완전한 구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히9:1-8). 한 마디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게 되는 완전한 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문이 열리기 전 시대에 있어서는 육신적인 죄 사함을 의미하고 있는 성전의 제사만이 반복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고 있는 성막의 모습과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예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성막에는 지성소와 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언약궤 및 그 뚜껑인 속죄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특히 그 언약궤 속에는 세 가지 보물이 들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히9:4). 모세의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항아리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구절풀이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2) 둘째, 히브리서의 저자가 ‘둘째 장막’이라고 부르고 있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하루 출입을 합니다(히9:7a, 레16:11-34). 자기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대 속죄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히9:7b, 레16:29). 반드시 백성의 죄를 위임한 가축을 잡아서 바치고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히9:7c, 레1:4). 죄인인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 앞에 죽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속죄의 제물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 모세오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에 따른 성막제사의 방법이 언제까지 반복적으로 계속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큰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까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9:8). 그때부터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을 통하여 성도들이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종으로서 이 땅에서 제사장으로 복음의 사역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히9:1);
(1) 첫 언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선민의 계약을 맺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에게 대하여 세상사람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장나라가 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출19:6). 따라서 선민들 모두가 이방인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다음 세가지의 예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성소에 들어가서 세가지 성물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매일 금 등잔대에 저녁이면 불을 켜고 아침이면 불을 끕니다. 그리고 조석으로 분향제단의 향로에 향을 사르는 것입니다. 또한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 상에 떡을 바꾸어서 새 것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인 아론이 책임을 지고서 제사장들과 함께 수행하는 직무입니다.
2) 둘째, 성막의 뜰에 배치한 번제단에서 가축을 속죄나 화해의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제례의식입니다.
3) 셋째, 일년에 태양력으로 10월 10일이 되면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의 일년 동안의 잘못과 허물을 모두 한꺼번에 여호와 앞에서 속죄하게 되는 ‘대 속죄일’이 됩니다(레16:29). 그때 하루 동안은 대제사장이 향로를 들고서 지성소에 들어갑니다(레16:12). 향의 연기로 지성소의 성물들을 가리게 됩니다. 그리고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 하루 종일 언약궤와 속죄소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속죄소 뚜껑을 통하여 사람의 음성으로 울려나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마침내 일년동안 지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한다는 대사면령이 내리게 되면 대제사장이 성막의 뜰에서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와 같은 대 속죄일 대제사장의 직무가 매년 반복이 됩니다(히7:27).
(2) 히브리서의 저자가 중요한 단서를 하나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 언약에도”라는 용어입니다. 그 말의 뜻은 “새 언약에서 뿐만 아니라 첫 언약에서도”라는 것입니다. 풀이를 하자면, 성도들이 이 땅에서 천상의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지휘를 받는 제사장들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과 성소가 이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훗날 부활 승천하게 되면 천상에서도 그러한 예법과 성소가 있으며 그곳에서 영원히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히9:2);
(1) 훗날 하늘의 성소에서 제사장으로 일하게 되는 성도들이 미리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훈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언약에 따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상에 건설한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막에는 휘장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면 첫번째 방이 나타납니다. 그곳이 성소이며 세개의 성물이 놓여 있습니다; 분향제단, 진설병 상, 그리고 금 등잔대입니다(출25:23-40, 30:1-10). 그 가운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분향제단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히9:2). 그 이유는 분향제단에 놓여 있는 금 향로에 가루향을 담아서 일년에 단 하루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는 그 일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레16:12-13, 히9:3-4).
셋째로,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3-5);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히9:3);
1)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둘째 휘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성막에는 두개의 휘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휘장’은 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문’을 말하고 있습니다(출26:31-33). 그러므로 지성소와 성소를 분리하고 있는 내부의 휘장이 ‘둘째 휘장’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히9:3). 그 휘장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천사들이 수놓아져 있습니다(출26:31). 그 휘장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대제사장입니다. 그 역시 일년에 단 하루 태양력으로 10월 10일이 되는 대 속죄일에만 그곳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을 뿐입니다(레16:29).
2) 그렇지만 모세는 생전에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자주 뵙고서 율법을 배우고 있습니다(출19:3, 8, 20, 24:2, 12, 16, 32:30, 34:4). 그리고 자신의 장막인 회막 안에 성막이 세워지고 그 안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주 여호와를 뵐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출25:22, 33:7-10). 그것이 영적인 선민의 지도자이며 선지자인 모세에게 주어지고 있는 특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선지자의 인생을 그의 동족들이 모두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민11:29). 그 점이 모세의 위대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2)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히9:4a);
1) 히브리서의 저자가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와 금 향로가 배치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궤에 있어서는 맞는 말입니다(출26:34, 40:3). 하지만 금 향로와 관련하여서는 정확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 금 향로는 다만 일년에 하루 대 속죄일에 지성소에 대제사장들이 들고서 들어갈 수 있는 성물입니다(레16:12-13). 평소에는 성소의 분향제단 위에 놓여 있으며 그 속에서 언제나 가루향을 태우고 있습니다(출30:6-9).
2) 그와 같은 사실을 모세가 레위기 제16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성소의 분향제단에 한 세트로 비치가 되어 있는, 출30:6-8)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레16:11-13).
3) 그 향로가 성소의 분향제단 위에 놓여 있었기에 매일 가루향을 그곳에서 태울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그것을 유다 왕국의 웃시야 왕이 함부로 만지고 분향을 하려고 하다가 문둥이가 된 것을 역사서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대하26:19). 만약 웃시야 왕이 휘장을 젖히고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했다면 즉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출28:43).
(3)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히9:4b);
1)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언약궤에 보관이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한 됫박인 2.2L)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출16:32-34).
2) 모세가 두 돌판을 두번째로 가지고 하산을 하였는데 그 돌판에는 신성글자로 하나님께서 새기신 십계명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출34:28). 그것을 언약궤 안에 보관하도록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속죄소를 (언약)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1). 그 의미를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용서의 말씀이 울려나올 때에 창조주께서 그곳에 계시는 줄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언약궤 속에 함께 보관이 되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히9:4).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대한 기록은 민수기 제17장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아몬드)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 들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모세가 곧 그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민17:7-11).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의 기록은 정확한 것입니다.
(4)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5);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그 뚜껑이 바로 속죄소입니다(출25:16-21). 속죄소는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양쪽 위에는 천사의 상이 날개를 높이 편 자세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날개로 속죄소 중앙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덮고 있는 신성한 그곳에서 일년에 한번씩 대 속죄일에 백성들이 지난 일년 동안에 지은 모든 죄를 사면하고 탕감한다는 여호와의 대 사면의 명령이 울려 나오는 것입니다(출25:22, 레16:29). 그런데 여기서는 그와 같은 성물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히9:5).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성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초점이 제사장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 두 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에 한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히9:6-7);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의 차이를 가지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두가지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항상 일할 수가 있지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지난 일년 동안에 지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은 단 하루라는 것입니다;
1) 제사장들이 일년 동안 계속하여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속죄와 화목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지만 그것의 효과는 그리 크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들이 일년 동안에 지은 죄와 허물을 여호와 앞에 전부 용서 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대 속죄일 하루에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제물의 피로써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그러한 맥락에서 이 세상에서 아론의 후손들이 율법에 따라서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되어서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의 효과는 단기적이며 제한적인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어 단번에 드리는 영원한 제사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주님의 대속의 제사만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임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큰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는 영원히 제사장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벧전2:9);
1) 율법에 따라 지어진 이 땅의 성막에 있어서는 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제사장,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대제사장, 그리고 성막의 뜰에서 기도하면서 대제사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로 엄격하게 구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갈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마27:51). 그리고 이 세상의 성전이 무너지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새로 지으시는 성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요2:19-22). 그것은 주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큰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시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히6:20).
2) 이제 이 땅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님을 통하여 영적으로 주님의 지휘와 지시를 받아서 온 세상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 따르게 되면, 이 땅에서는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는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영광스럽게 수행이 될 것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계21:7)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요1:12-13) 이르는 것이니라”(롬8:19-21).
다섯째로,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9:8); 세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히브리서 저자는 자신이 제8절과 같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비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의 제1-7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복잡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을 요약 정리하여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체계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성령님께서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들이 머리속에서 정리가 되고 그의 마음속에 환하게 그 말씀의 의미가 빛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2) 둘째, 지상에 첫 장막이 서있는 동안이 언제까지인지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두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에 그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둘로 갈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제사장들이 지성소를 볼 수가 있게 됩니다. 대제사장만이 아니고 이제는 모든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제2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무덤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입게 된 영생의 몸으로 새로운 성소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은 장막이 그때 그 운명을 다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때가 바로 사람이 지은 모든 성소와 영적인 가치의 체계가 무너진 때입니다.
(3) 셋째, 그런데 그 대목에 대한 용어가 묘하게도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후 32년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 동안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또한 무덤 속에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는 그때 사람들이 지은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진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운명을 하실 때에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고 있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적용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가 더 필요합니다. 마치 그러한 점을 가리키고 있는 듯이 그 대목에 대한 시제가 “서 있는 동안”이 아니고 묘하게도 “서 있을 동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조금 살펴봅니다;
1) 물리적인 시간으로 보자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은 주후 70년 로마군대의 가나안 정복이 다시 있었던 때입니다.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자신의 몸으로 예루살렘성전을 대신한 것이 주후 32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보다 38년이 지난 다음입니다. 따라서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예언과 말씀의 확정이 먼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으로 역사 가운데 그 사건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이미 벌써’(already)와 ‘아니 아직’(not yet)의 차이입니다.
2) 개인적으로 믿음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하늘의 뜻이 먼저 확정이 됩니다. 그 사실을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미리 전해 주십니다. 성도들이 그 사실을 마음속에 믿고서 기도로 나아가게 되면(마6:10) 역사 가운데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시간적인 지체’(time lag)를 극복하는 것이 영적인 삶이며 곧 ‘성도의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제27장 제5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운명을 하실 때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일하고 있는 제사장들이 모두 마치 대제사장처럼 지성소의 언약궤와 속죄소에 임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제2장 제19-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시면 새로운 성전을 부활의 몸으로 지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하늘의 성소는 벌써 주후 32년 무교절 기간 동안에 지상의 성도들을 위하여 마련이 되고 또한 개방이 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하늘의 지성소에 지금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셔서 큰 대제사장으로서 직분을 수행하시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의 성격은 ①첫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②둘째, 땅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는 성도들은 지상에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인도로 훗날 천국에서도 제사장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성소에 임재하여 계시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과 함께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깊숙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히브리서 저자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하늘의 지성소에서 창조주를 뵙고 영생을 누릴 때까지 지상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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