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44강(히9:13-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8. 11:05

히브리서 강해 제44(9: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8()

 

가축제물의 피는 육체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과 영을 살려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9:13-15);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세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율법에 따라 가축으로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경우 그 제물의 피와 재는 사람들의 부정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효과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9:13). 반면에 흠 없는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께 대속의 제물로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9:14).

(2)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그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두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9:14a). ②또 하나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구원자인 그리스도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입니다(9:14b).

(3)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하는 말의 뜻을(9:15a) 두가지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첫 언약에 따라 매년 반복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이제는 단번에 영원히 속량을 해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한 것입니다(9:15b).

2)    또 하나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한 성도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고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함으로써 영원한 기업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시고 또한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주신 것입니다(9:15c, 22:28-29, 1:8, 고전6:19-20).

그 자세한 내용과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하여 먼저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염소와 황소의 와 및 암송아지의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9:13);

(1)  히브리서 저자의 히브리정경에 대한 지식이 대단합니다; ①첫째, 그는 레위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선민들의 율법에 따른 제사의 규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1-7). ②둘째, 민수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제물로 바친 암송아지의 재를 사용하여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 율례에 대하여서도 숙지를 하고 있습니다(19:1-19). ③셋째,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그와 같은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사가 단지 백성들의 육체만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9:13). 하나씩 다시 살펴봅니다;

(2)  염소와 황소의 피를 사용하여 제사장과 성물을 깨끗하게 하는 한편 제물을 태워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민수기 제19장에서는 황소가 아니라 암송아지를 태워서 그 재를 물에 타서 부정한 자에게 뿌림으로써 정결하게 하라고 하는 규정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특이합니다;

1)    첫째, 숫송아지가 아니라 암송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축의 세계에 있어서 암컷은 비싸고 수컷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암컷은 새끼를 낳고 젖을 생산하며 동시에 고기와 털가죽까지를 제공하지만 수컷은 암컷을 임신시키고 그저 고기와 털가죽만을 제공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수컷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암컷을 임신시킬 수가 있으므로 나머지는 일찍 송아지 때에 고기 값으로 도축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비싼 암송아지가 아니라 숫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번식에 사용하며 젖을 공급해주는 암컷은 백성들의 삶을 위하여 그렇게 사용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데 있어서는 그 비싼 암송아지를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과거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둘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법률인 율법으로 받게 됩니다(19:3-8).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겠다고 언약식까지 하게 됩니다(24:3-8). 그 율법의 취지는 십계명으로 요약이 되어 있습니다(20:1-17).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40일간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여호와로부터 율법을 더 배우고 있는 동안에 그만 십계명을 어기고 맙니다. 최고지도자 모세의 부재상태가 길어지자 백성들이 불안에 빠져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섬긴 것입니다(32:1-6). 그 모습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시고 여호와깨서는 크게 진노하시며 모세에게 그 백성을 모두 진멸시켜 버리시겠다고 내심을 비추십니다(32:7-10). 모세는 깜짝 놀라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 사태를 하산하여 급히 수습합니다(32:11-19).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금송아지 우상을 불태워 그 재를 시냇물에 뿌려서 모든 백성들이 마심으로써 허물을 깨끗하게 속하도록 하는 것입니다(32:20). 우상은 주로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송아지 우상은 암송아지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32:4).

(3)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는 피의 제사 그리고 암송아지를 태워서 얻은 그 재가 과연 백성들의 잘못과 허물을 온전히 사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1)    첫째, 매년 가축을 제물로 삼아서 드리는 속죄의 제사가 반복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용서함을 받았으면 마음속까지 회심을 하고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도록 절치부심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되지를 않습니다. 쉽게 다시 연약한 육신이 죄에 물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음해에 다시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16:11-34).

2)    둘째, 자신을 바치는 엄중한 제사가 아니라 단지 가축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치는 제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다시 죄를 범하면 이제는 자신의 목숨이 달아난다고 하는 각오가 마음속까지 새겨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4);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9:14a);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모태에서 태어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서 인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3:1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1:14). 그리고 영으로 함께하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아들이라고 증거를 해주시기 때문입니다(3:17, 17:5, 5:36, 8:29, 12:45, 20:28).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친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신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희생하여 대속의 대업을 성취한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2)  흠 없는 자기를”(9:14b); 죄성을 지니고 있는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 사실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대목이 공관복음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고 있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라고 하겠습니다(4:1-11, 1:12-13, 4:1-13). 40일 금식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유혹이며 시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을 풀이하여 선포하심으로써 진리를 왜곡하여 시험하던 마귀를 물러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남은 공생애를 아버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자신에게 적용하여 일관되게 살아가십니다. 그 마지막 단계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14:36).

(3)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9:14c); 신성을 가진 예수님께서 죄성을 이기신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바치게 됩니다. 신성을 가졌기에 영원한 제물입니다. 죄성을 이기고 세상을 이겼기에 그 몸은 완전한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제사를 바라보고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에게는 연약한 육신 뿐만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축을 대신 제물로 사용하여 제한적인 육신의 죄 사함만을 받던 율법적인 제사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4)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4d);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만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살아가야만 하는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16:24).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수행하라고 하시며 목자로 발령하십니다(28:18-20, 21:15-19).

셋째로,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9:15);

(1)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두가지의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첫 언약의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완전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거듭난 삶을 인도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기업을 얻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첫 언약의 제사는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이 불완전한 속죄이므로 백성들이 반복적으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또 다시 속죄의 제사를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죄를 범하지 아니한 자신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제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가 아니고 성도들이 남은 인생 가운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기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살아가시고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셨다고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을 온전히 깨끗하게 하는 효과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능력과 선례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지닌 사람의 아들이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고 마침내 복음사역을 마친 다음에는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가축제물의 피는 육체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과 영을 살려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 수 있다는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에 대하여 본문에서 깊이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1)  첫째, 간접적인 신앙이나 자신이 아니고 다른 것을 드리는 신앙생활로써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을 예물로 드리고 직접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2)  둘째,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하시면서 성도들의 삶을 거룩하게 인도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요컨대, 성도들이 그러한 자신의 영생과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하나님나라에서 자신의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영원한 기업을 얻을 수 있는 믿음생활을 끝까지 영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