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14강(벧후2:15-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3. 20:19

베드로후서 강해 제14(벧후2:15-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9 17(주일)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고 있는 잘못된 성도의 두가지 특징은 무엇인가?(벧후2:15-16, 2:14)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선지자의 삶을 올바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고 교회 내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벧후2:1). 특히 본문에서는 동방사람의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벧후2:15-16, 22:5). 사도 베드로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무법자이며 약탈자인 아말렉 족속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물리치고(17:8-16) 시나이 반도와 그 주변의 광야에서 38년간 지내고 있습니다(2:14). 기성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나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에돔과 모압을 우회하여 요단강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22:1). 그러자 겁에 질린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의 힘을 빌려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북진을 막고자 합니다(22:2-7).

(2)  둘째, 모압 왕이 예물과 함께 신하들을 동방 땅으로 보내어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을 초빙하고자 합니다(22:7-8). 그러나 발람은 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모압 왕에게 가지도 말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22:12).

(3)  셋째, 그러자 모압 왕 발락이 더 많은 재물과 더 높은 자리를 약속하면서 높은 신분의 신하들을 발람에게 보내어 계속 초청을 합니다(22:15-17). 발람은 많은 재물을 준다고 하더라도 결코 갈 수가 없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 마음속에 미련이 남아서 모압의 귀족들을 자기 집에 유숙시키면서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22:18-19). 그 모양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어쩔 수 없이 가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결코 저주를 해서는 안된다고 다시 강조하십니다(22:20).

(4)  넷째, 길을 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발람이 거짓 선지자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도록 강력하게 주의를 주십니다. 먼저 사자를 보내어 길을 막고서 칼을 잡고 있는 광경을 보여줍니다(22:22-23). 그러나 욕심 때문에 영안이 어두워진 선지자 발람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합니다(22:23-27).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서 사람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22:28-30). 그리고 그의 영안을 밝힙니다(22:31a). 그때서야 발람이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22:31b).

(5)  결국, 사도 베드로가 진정으로 여기서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권면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성도들은 탐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굽히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하면 발람의 경우처럼 그 영안이 어두워지고 맙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벧후2:15).

2)    둘째, 하나님의 뜻을 구부리고 계속 발람처럼 자신의 욕심을 쫓아가게 되면 종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불법을 행하게 됩니다(벧후2:16). 벌써 탐욕으로 영안이 어두워져 있기에 불법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만약 자신의 욕심을 쫓아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22:33). 그러므로 권력자들이나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삼가해야만 합니다(22:12, 3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벧후2:15);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벧후2:15a);여기서 그들은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벧후2:1).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올바른 길을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악한 영들의 유혹에 미혹이 되어 시험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벧후2:14, 15a).

(2)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벧후2:15b); 모압의 동쪽과 유프라데스 강 서쪽에는 동방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셈족은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습니다(9:26). 따라서 족장의 시대 동방의 의인인 욥의 이야기가 히브리정경에 실려 있습니다(1:1). 또한 민수기 제22장에는  동방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리는 발람의 이야기도 적혀 있습니다(22:5-6). 모세오경에 실려 있는 선지자 발람은 후세의 선지자들에게 두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①하나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탐욕으로 영안이 어두워진 채 계속 행하게 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불법을 행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벧후2:15c);

1)    애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발람에게 명령하신 사항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모압의 귀족과 함께 모압 왕에게 가지를 말라는 것입니다(22:12a). ②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를 말라는 것입니다(22:12b). 그런데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필히 청빙하기 위하여 높은 신하들을 보내며 그를 크게 우대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는 왕의 약속을 전하게 합니다(22:15-17). 선지자 발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2)    발람은 모압 왕이 아무리 재화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엄청난 보상의 약속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22:18). 그래서 발람은 신하들을 자신의 집에 유숙시키면서 하나님의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22:19).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아시고 모압 왕에게 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22:20). 그렇지만 달리 변심을 하여 불법한 예언을 하지 아니하도록 길 가는 도중에 천사를 보내어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22:20-31). 만약 영안이 어두워진 채 욕심에 이끌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잘못된 예언을 행하게 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22:32-33).

둘째로,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2:16);

(1)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육신의 탐욕 때문에 영안이 어두워지면 어떠한 형편이 되고 마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짐승이 되고 만다고 사도 베드로가 벌써 말하고 있습니다(벧후2:12, 13:1-2). 이성이 없는 짐승은 악한 영에게 이끌리어 창조주의 이름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해치는데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13:5-7).

(2)  여기서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서 제멋대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니다. 그 반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영벌에 처하십니다

(3)  그러므로 자신의 육신적인 탐욕을 쫓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성도들이거나 로마의 당국자들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먼저 발람처럼 겸손하게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22:31).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2:33). 그러므로 발람의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서 길을 막고 있는 광경을 보고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그냥 진행을 하게 되면 주인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덕분에 발람이 영안이 열리고 겸손하게 회개를 하게 됩니다. 목숨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참고로, 브올의 아들인 발람은 모압 왕인 발락이 자신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주해 달라고 세 차례나 거듭 부탁을 하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오히려 축복의 예언을 남기고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23-24). 그렇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들은 모압의 신 바알브올을 섬기고 그 제물을 먹으며 모압의 여인들과 몸을 섞고 있습니다(25:1-3). 모세는 그러한 선민들의 잘못이 브올의 아들인 발람의 꾀를 쫓아간 것과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세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31:16). 발람의 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적인 탐욕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뜻을 변경시키고자 하는 것인데 그러한 불법행위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도 발견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방신을 섬기고 그 제물을 먹으며 이방여인들과 음란한 행동까지 일삼고 있으니 그것은 발람의 꾀  그 이상의 영적인 타락이라고 하겠습니다(2:14).

결론적으로, 사람이 육신의 탐욕에 이끌리게 되면 어느 정도로 타락을 하게 될까요? 사도 베드로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변한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벧후2:12). 베드로는 본문에서 적절한 예를 민수기 제22장에서 들고 있습니다. 선지자 발람의 경우입니다.

발람은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어 모압 왕에게로 가고 있습니다. 그대로 버려두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는 불법을 저지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발람도 살리고 그 불법행위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천사를 파송하여 길을 막게 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발람은 자신의 나귀보다도 못합니다. 영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사자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눈치 채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육신의 탐욕과 불법행위는 저주스러운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벧후2:12, 15-16). 참고로, 사도 요한도 그의 계시록에서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2:14).

그러므로 발람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성도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모두 회개를 하고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짧은 인생 가운데 영생을 얻는 방법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