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26강(벧전3:21-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11. 04:26

베드로전서 강해 제26(벧전3:21-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8 19()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과 만민들에게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가?(벧전3:21-22)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 의미에 있어서 바로 앞 절의 말씀에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이라”(벧전3:20). 노아의 시대에 여호와의 홍수심판이 발생하여 노아의 가족 8명만 방주를 타고서 살아남고 그 지경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라고 하는 것은 그 의미가 하나님께서 물로써 죄인들을 심판하고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로 말미암아 노아의 가족 8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벧전 3:20). 심판과 멸망의 수단인 홍수가 오히려 노아 가족을 구원하는 방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대하여 베드로가 본문에서 답을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3:21-22). 그 의미의 대강을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물을 사용하여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십니다(28:19).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물세례를 주게 되면 영적으로 어떠한 효과가 발생하게 될까요?

1)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물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구원을 얻게 하는 세례의 표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3:21a).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도움을 받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로마서 내용을 일부 인용하고자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에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3-4).

2)    자신의 죄를 회개한 자가 물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 영적으로 성도 자신의 죽음으로 간주가 되고 있습니다. 물세례로 말미암아 죄의 육신이 죽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도가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게 되는 구원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그것이 죄 많은 육신을 죽이고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성도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벧전3:21a)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성도가 육신의 탐욕과 욕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사도 베드로의 설명,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b)에서 잘 엿볼 수가 있습니다;

1)    성도가 여전히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물세례를 받기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탐욕과 죄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는 육신의 욕구를 제어하기 위하여 칭의의 은혜를 받은 성도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자신의 육신의 탐욕을 이기기 위하여 선한 양심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벧전3:21b).

2)    그리하면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여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1-4).

3)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을 영적으로 도와줄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벧전3:21b-22).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사도 바울의 로마서 내용과 동일한 시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벧전3:21a);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신 것과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새로운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1)    사도 베드로가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는 변화는 노아의 시대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였는데 이제는 물세례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벧전3:20-21a). 그와 같은 지적이 가능한 이유는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제63-4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고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2)    예수님이 지신 그 대속의 십자가를 쳐다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물세례를 주면 영적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됩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때에 자신의 육신이 함께 장사된 것으로 간주가 됩니다(6:4).

3)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성도의 영도 부활하게 됩니다. 이제는 성령세례를 받고서 성도가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물이 더 이상 심판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의 표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b); 성도의 육신이 물세례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것으로 간주가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향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육신을 지니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육체의 탐욕과 정욕을 이기고 영적인 삶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내주하신 성령님의 도움을 얻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를 드리면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를 하십니다(벧전3:21b). 육신의 욕심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3:22);

(1)  성도들의 육신을 다시 지배하고자 악한 영들이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온갖 비진리와 교활함, 그리고 세상적인 술수로 성도들을 육신의 탐욕 가운데로 끌고가기 위하여 극성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과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육신을 확실히 이기고 악한 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을까요? 특히 로마제국의 교회탄압과 성도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성도들이 믿음으로 이겨낼 수가 있을까요?

(2)  사도 베드로는 염려하지를 말라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자리를 함께하시면서 창조주의 독생자로서의 영광과 권능을 온전히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벧전3:22a). 모든 피조물 뿐만 아니라 모든 천사들과 영들이 전부 주님에게 굴복하고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벧전3:22b).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능력 면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성령님을 통하여 얻고 있는 성도들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가장 처참한 저주를 받은 패배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시게 됨으로써 세상적인 상식이 뒤집어지고 맙니다; “패배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원수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를 말하고 있는 대속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에 따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선택이 옳다고 인정하시고 무덤 속 부활은 물론 승천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과 천사들 그리고 영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 결과 대속의 십자가를 쳐다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물세례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그 옛날 노아 시대에는 세상사람들이 물심판을 받고서 멸망을 당했는데 이제는 물세례를 받고서 구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물세례 뿐만 아니라 성령세례도 있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육신을 이기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하면 내주하신 성령님과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도우심이 각별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한 양심의 간구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