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6(손진길 소설)
2. 백제 동부전선의 2호와 2룡
서기 641년 3월 46살의 늦은 나이로 백제의 국왕이 된 의자는 지난 10년 동안 태자시절에 벌써 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적지 아니한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백제의 왕이 되자 그 옛날 신라에게 잃어버린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신하들에게 전쟁계획을 수립하라고 먼저 지시한다.
당시 의자왕을 보좌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문신 성충과 흥수 그리고 무신 윤충과 계백 등이다. 그들이 여러차례 회의를 통하여 하나의 대전략을 수립한다;
그 내용을 좌평 성충이 대표로 의자왕에게 보고한다; “먼저 성동격서의 방법을 사용해야합니다. 신라는 우리가 한강유역 곧 북쪽으로 쳐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의표를 찔러 지금은 동쪽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탁견이다. 따라서 의자왕이 성충을 통하여 수고한 문신과 무신들에게 칭찬의 말을 전하게 하고 세부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이듬해 642년 여름에 백제의 대군이 동쪽으로 진격하여 신라의 서부에 있는 성들을 일거에 공격한다. 마침내 그해 8월 장군 윤충이 지휘하고 있는 백제군이 신라의 관문인 대야성을 함락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신라의 선덕여왕은 서부에 있는 40개의 성을 한꺼번에 백제군에게 빼앗기게 되자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낀다. 따라서 자신을 보좌하고 있는 문신 김춘추와 무신 김유신을 불러서 급히 의논한다.
그 자리에서 김춘추가 눈물을 흘리며 개인적으로 이모가 되는 선덕여왕에게 보고한다; “신의 불충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40개의 성을 백제에게 빼앗긴 것도 원통한데 서라벌로 들어오는 요충지 대야성마저 잃었습니다. 그곳에서 경산지역 압량성을 치고 동진하면 곧바로 왕도인 서라벌로 쳐들어오게 됩니다… “.
그 말을 듣자 선덕여왕이 말한다; “그렇지요. 이제는 왕도인 서라벌이 위험하지요. 그렇지만 금번 대야성이 함락됨으로써 성주 김품석과 성주부인 고타소가 전부 죽임을 당했지요. 그들은 공의 사위와 딸이 아닙니까? 짐은 춘추공과 마찬가지로 그 일에 가슴이 아파요!... “;
그 말에 김춘추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신은 반드시 그 혈채를 백제왕 의자에게서 받아내고 싶습니다. 비밀리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만나 동맹을 맺어볼 생각입니다;
만약 그것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바다를 건너가 당나라 태종과 동맹을 맺겠습니다. 소신은 반드시 의자왕의 백제를 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선덕여왕이 질끈 두 눈을 감는다. 그 다음에 눈을 뜨고서 여왕이 시립하여 있는 장군 김유신에게 질문한다; “유신공의 대책은 무엇이요?”. 김유신이 얼른 대답한다; “폐하, 소신을 압량군주로 발령하여 주십시오. 백제군을 대야성에 묶어 두고 결코 동진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서라벌의 안보를 확보하는 길입니다!”;
그 말에 선덕여왕이 대답한다; “좋습니다. 짐은 유신공을 압량군주로 임명합니다. 반드시 적의 동진을 막도록 하세요. 그리고 대야성을 탈환할 수 있도록 하세요. 헌데 유신공, 서라벌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또다른 계책은 무엇이요?”.
그 질문에 김유신이 명확하게 대답한다; “폐하, 불시에 서라벌로 쳐들어오는 적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인근산성의 군비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적들은 두 방면으로 쳐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쪽으로 우회하여 서라벌로 들어오는 지상군입니다. 또 하나는, 동쪽 바다에 상륙하여 쳐들어오는 적의 해군입니다. 따라서… “.
선덕여왕이 경청한다. 김유신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선 적의 지상군을 막기 위해서는 서라벌 남부 교외지역에 있는 고허산성의 군비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해안으로 상륙하여 쳐들어오는 적의 해군을 막기 위해서는 동부 교외지역 보문과 배반 사이에 있는 명활산성의 군비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선덕여왕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명령한다; “유신공과 춘추공은 짐에게 보고한 그대로 곧바로 실행하세요. 나아가서 한강유역 북방경계에도 만전을 기해주세요. 백제의 의자왕은 진흥대왕 시절 우리에게 빼앗긴 한강유역을 반드시 수복하고자 나설 것이니까요!... “.
김춘추와 김유신은 10년전에 즉위한 신라 최초의 여왕 덕만이 지혜가 있는 현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왕을 자신들이 충심으로 보좌하고 있는 이상 반드시 조국 신라는 원수를 갚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백제의 의자왕의 초기 위업이 대단하다. 이듬해 643년이 되자 한강유역의 주요한 요새지 당항성을 되찾고 말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신라는 바다 건너 당나라로 가는 조공의 길이 막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훗날 당나라 태종을 접견하게 되는 김춘추가 그러한 어려움을 강력하게 피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로서는 한강유역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하고자 그 지역의 수비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결과, 신라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한 백제군은 더 이상의 승전을 한강유역에서는 거두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압량성에서 군사를 조련한 김유신 장군이 대야성을 치고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시절 644년 봄에 천등산의 2호인 좌백과 무영 그리고 2룡인 기룡과 책귀가 나란히 사비성 최고의 무예도장 ‘곡나’에서 10년의 수련을 마치고 졸업한다. 그들은 여름에 실시가 된 무과시험에서 모두 합격하고 근무지에 배치가 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4사람이 전부 동부전선에 발령을 받게 된다;
어째서 무영의 부친인 근위대장 무상이 아들을 동부전선으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계백장군도 어찌하여 아우 좌백을 자신의 휘하에 두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 책귀의 경우에는 무과 뿐만 아니라 문과에도 동시에 합격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 역시 동부전선으로 가게 된다.
다만, 기룡의 경우에는 부친 유수 장군이 전사한 동부전선에 투입이 되는 것이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 문무에 두루 밝은 귀재 책귀이다.
그가 한참을 궁리한 후에 내심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 “백제의 국왕은 대야성을 위시한 동부의 40개 성을 방어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강유역을 온전히 수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동부의 성들마저 잃어버리게 되면 백제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
그와 같이 백제국왕의 고충을 파악하면서 책귀가 앞으로 조국인 백제와 이웃나라 신라 및 고구려가 당면하게 되는 지상과제를 다음과 같이 머리속에 정리하고 있다;
(1) 첫째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그 원류가 크게 보아 3줄기이다; 첫째가 남쪽바다를 통하여 남해안에 들어와 정착한 원주민들이 본래 삼한의 백성들이다. 둘째가, 중국대륙의 북쪽 황하를 타고서 동진하여 만주와 한반도의 북쪽에 자리잡은 원주민들이 바로 고조선인들이다. 셋째가, 시베리아에서 곧장 남하하여 만주에 자리를 잡고 나중에 한반도로 남하한 자들이 부여인들이다.
(2) 둘째로, 고조선은 대륙의 남쪽 장강에서 농업에 성공하여 인구가 크게 증가하자 북진한 한족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동쪽으로 밀려온 족속이다. 그들이 이번에는 북쪽에서 남진하는 부여족에게 또 밀려서 피지배민족이 되고 만다. 따라서 그 자리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가 성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여인들은 더 따뜻한 지역을 찾아 한반도에서 계속 남진을 한다. 그들은 곡창지대 호남평야를 차지하고서 백제(일명, 반도부여)를 형성한다. 또 부여족은 대륙의 동해안을 타고 남하하여 대륙부여를 세우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큰 섬 왜에도 열도부여를 형성한다;
(3) 셋째로, 백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동쪽 신라는 그 역사가 특이하다. 삼한의 원주민을 치고 그 땅을 처음 정복한 족속은 기마민족 박혁거세 일족이다. 그들의 조상이 부여족인지 고조선인인지는 분명하지가 아니하다. 그들이 세력을 확고하게 굳히기 전에 그만 강력한 해양족속이 쳐들어와서 한동안 지배한다. 그러나 그 수가 적은 해양족속 석씨 왕가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박씨가 지배하다가 결국에는 돌궐의 한 갈래인 김씨일족이 들어와서 지금까지 신라를 다스리고 있다. 돌궐은 넓은 의미에서 옛날 고조선의 한 갈래이면서 동시에 유목민의 전통을 오래 지니고 있는 족속이다. 중국대륙의 북방을 호령하던 정복민족의 순서가 대충 흉노, 돌궐, 선비, 몽골, 말갈, 거란, 여진 등이다. 그 가운데 책귀가 알고 있는 족속은 말갈까지이다 .
(4) 넷째로, 고구려와 백제는 그 정복민이 부여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신라는 다르다. 그들의 김씨왕조가 따지고 보면 돌궐이다;
그것은 북방의 전통적인 유목민들 곧 흉노, 돌궐, 선비, 몽골의 피를 가지고 있는 중국대륙의 왕조들과 관계가 깊은 것이다. 그러므로 책귀는 훗날 급해지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혈연이 다른 신라가 중국의 왕조와 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가 예견하고 있는 그대로 훗날 신라의 국왕이 된 김춘추와 그의 자손들이 당나라와 협력하여 한반도의 한민족을 일통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어쨌든 2호인 좌백과 무영 그리고 2룡인 유기룡과 책귀가 백제의 동부전선에서 하급장교의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일들을 경험하면서 날로 성장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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