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제19강(벧전3: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8월 12일(토)
남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내들은 어떠한 믿음생활을 해야만 하는가?(벧전3:1-4)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확실하게 복음서에서 기혼자로 나타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장모가 열병이 들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급히 방문하여 낫게 한 사실이 공관복음에 공히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마8:14-15, 막1:29-31, 눅4:38-39). 따라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는 보다 현실감이 있게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부부생활에 관하여 복음적인 내용을 가르쳐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KJV)”(벧전3:1-4). 간략하게 풀이를 먼저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도 베드로는 불신자인 남편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데 있어서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3:1bd); 무엇보다도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벧전3:1a). 그것이 믿음과 구원의 첫 걸음입니다.
(2) 둘째, 말로만 하는 순종이 아니라 행실로서 그 진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벧전3:1c). 아내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깨끗한 행실과 순종의 미덕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볼 때에 남편도 아내가 믿고 있는 주님을 자신도 한번 믿어보고자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벧전3:1d-2).
(3) 셋째, 아내는 남편을 마음 속에 사랑으로 품어야만 합니다.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참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그것으로 남편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 영혼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벧전3:3). 오로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삶과 복음적인 믿음생활이 있을 때에 그것이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고 그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벧전3:4).
그와 같은 내용을 사도 베드로가 어떻게 본문 가운데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3: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벧전3:1a);
1) 사도 베드로가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내들은 자신의 남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3:1a). 그런데 그 순종의 모범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이와 같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 문단 곧 제2장 21-25절에서 이미 상세하게 설명한 바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당한 핍박과 고난에 대해서도 무력으로 맞서지 아니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자신은 오로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3) 따라서 예수님을 의롭다 하시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키어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내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그 모범을 따라서 자신들의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듯이 그렇게 남편에게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벧전3:1b);
1)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3:1).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남편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벧전3:1a)로서 불신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믿는 아내가 불신자인 남편에게 대들거나 불순종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먼저 당부합니다.
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신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이 남편을 섬기면서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와 같이 아내가 먼저 믿고 남편의 구원을 소원하면서 시종일관 에수님의 제자답게 믿음생활을 잘 한다면 그 영혼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사도 베드로가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3:1c);
1) 불신자의 특징은 함부로 상대방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자인 남편은 아내의 말을 쉽게 믿지를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받아 들이라고 좋은 말로 권하더라도 그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오로지 남편의 관심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자신의 아내가 어떠한 삶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2) 만약 아내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그 행동은 진리와 사랑에서 멀다고 하면 그것은 믿을 바가 못되는 종교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불신자인 남편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고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소원하고 있는 아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과 대속의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 행실로써 남편에게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둘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벧전3:2-3);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3:2); 예수님과 함께 3년 6개월 동안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 베드로는 무엇이 복음인가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만나기 전 시몬 베드로는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주 안식일에 고향의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랍비로부터 히브리정경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바리새인인 랍비는 율법을 잘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백성들이 율법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회당장과 랍비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인 유대교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볼 때에 율법생활에 하자가 없도록 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믿음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는 것이지(창17:1) 결코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외식적인 율법의 행위로 대신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막7:6-8, 마23장).
3) 요컨대, 구원이란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대속의 삶을 살아갈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처람 그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앞에서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 언제나 자신의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깨끗한 행실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아내가 된 성도들이여, 불신자인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어떠한 믿음생활의 본을 보여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 선 그 두려움으로 남편을 정성껏 섬긴다면 그 믿음과 행실을 보고서 남편의 마음이 바뀔 것입니다”(벧전3:2 의역).
(2)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벧전3:3); 사도 베드로의 시대나 그후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이나 별로 영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시대에도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구원에 가까워진다고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외모를 중시하는 종교적인 행사가 기독교의 거룩함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타락에 불과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사람의 중심은 그러한 치장과 외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삼상16:7). 그러므로 아내가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외모에나 신경을 쓰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화려하게 치장만 한다고 하면 불신자인 남편의 구원은 불가능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벧전3:3).
셋째로,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KJV)”(벧전3:4); 두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문장입니다; ①하나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려서 ‘속사람’으로 상정하는 경우입니다(롬7:22). ②또 하나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마음에 품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경우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후자의 해석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첫째, ‘속사람’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치가 있는 것은 겉사람이 아니고 속사람입니다. 속사람은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심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십니다(행2:1-4).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만들어 내주 역사하십니다(고전6:19). 그러므로 온유하고 고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그 속사람 속에 깃들 수 있도록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 자녀의 거룩한 행실이 나타나며 육신적 탐욕과 정욕에 휘둘리지를 않습니다. 아내에게서 그와 같은 변화된 행실이 나타나게 되면 남편들이 믿는 자의 자리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2) 둘째, ‘마음에 품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아내들은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요? 외모를 꾸미고 치장을 화려하게 하는 것으로 남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성품과 거룩한 행실로 남편을 대하고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심정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영생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고 섬긴다면 거룩한 변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의 가정생활에서부터 그러한 변화가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가 성도인 아내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남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남편들을 섬기고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라고 하겠습니다; ①첫째, 초대교회에 남자 성도보다는 여자 성도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불신앙의 남편으로부터 믿는 아내가 핍박을 받지 않도록 빨리 남편을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사도 베드로의 시대 곧 로마제국에서도 여인들이 외모를 다듬고 화려하게 치장을 함으로써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세태가 만연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러한 세속적인 풍조가 여자 성도들을 통하여 초대교회에 밀려 들어오지 않도록 경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외모를 중시하는 문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례하여 교회가 자꾸만 세속화되고 그 영적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가정생활에서부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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