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7강(벧전1:13-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1. 15:31

베드로전서 강해 제7(벧전1: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30(주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전한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생활을 유지해야만 하는가?(벧전1:13-16)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온전한 믿음생활의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벧전1:13). 장차 주어질 자신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게 해주는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은 미래의 것이고 고달픈 삶과 환난은 당장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에서 넘어지고 실족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그에 따라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동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기신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가 성령님의 역사로 성도들에게 각인이 되고 그 생명을 살리는 능력으로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입니다(1:8, 8:1-6).

(2)  둘째,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따르던 사욕(私慾,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벧전1:14).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본성을 충동질하여 마귀와 악한 영들이 사람들을 자꾸만 죄와 사망의 나락으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기 전에는 그것이 죄와 죽음의 길인지도 모르고 사욕의 길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행실이 달라져야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욕을 버릴 수가 있을까요?

1)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의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그 질문에 응답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을 받는 진실로 이상적인 믿음의 공동체가 초창기 예루살렘교회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37-47, 4:32-37).

2)    그것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의한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것이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생활공동체, 믿음공동체, 전도와 선교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고자 결단했을 때에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사회가 국가권력으로 아무리 추구해도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 한때 예루살렘교회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3)  셋째,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모든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1:15). 사도 베드로는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본문에서 히브리정경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벧전1:16). 베드로가 인용하고 있는 말씀을 참조하면, 거룩한 행실의 분야는 다음 세가지입니다; ①십계명을 지키는 것(19:2), ②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11:44), ③그리고 우상문화에 빠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20: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벧전1:13a);

1)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을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면서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풍파와 환난 앞에서 그 마음이 흐트러지고 제멋대로 처신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우선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소아시아 북부와 동부의 초대교회들이 그러합니다.

2)    로마황제 네로가 로마시에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그곳 소아시아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그곳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과연 믿음을 지키고 그 엄청난 박해와 핍박을 이겨낼 수가 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로마황제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선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자신들의 마음부터 믿음으로 단단히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10:28, 벧전1:13a).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벧전1:13b);

1)    사람들은 아무리 사도 베드로가 권면을 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허리를 동이고 행동을 조심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미래에 얻을 상급과 영광이 충분하게 보장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가져다 주신다는 것입니다”(벧전1:13b 의역).

2)    그 상급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 제22장에 실려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3)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c); 상급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급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자에게 주어지는 법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온전히 신앙생활을 잘하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시는 그 놀라운 상급을 모두 받도록 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벧전1:13c). 그 말씀의 뜻은 로마제국의 박해와 환난을 겁내지 말고 주님께서 장차 주신다고 하는 영생의 상급을 바라보고서 믿음으로 극복하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벧전1:14);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영적인 아버지를 알지 못하던 때에 모르고서 행하던 육신적인 삶과 이제 영적인 아버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이 실천해야만 하는 새로운 삶에 대하여 가장 명쾌하게 여기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벧전1:14-15 의역).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비교할 때에 사람들의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아주 개인적인 이기심과 집단적인 이기심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개인적인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삼고서 행동을 합니다. 타인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를 않습니다. 자신의 배만 불리면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집단적인 이기주의는 개인적인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개인적으로 이기주의를 추구한다고 하는 것과 자신이 소속이 된 집단이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일치가 될 수도 있지만 불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면 자신의 토지가 헐값에 국가나 지방정부에 수용이 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주의에 비추어 보게 되면 그것은 본인의 손해를 초래하므로 절대로 국가나 지방정부의 요구에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국가나 지방정부의 수용계획을 지지하고 있는 이웃들의 눈초리가 따갑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공권력을 일개 개인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는 손해이지만 토지가 그만 강제적으로 수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입니다.  

2)    세계 제2차 대전 후에 칼 포퍼’(Karl Popper)가 재미있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 제목이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입니다. 저자는 세계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 독재체제가 어떻게 작동이 되었는지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후 20세기에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 있는 독일이나 일본의 국민들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시민들입니다. , 개인으로 보자면 상당히 도덕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전쟁을 벌였을 때에는 더 이상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동조성향과 전체주의 사상에 물들어 그만 국가적으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이웃나라의 국민들을 살해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개인적인 이타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동조하게 되면 그것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인간의 정의(justice)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자신들의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면서 상호 정의의 전쟁’(war of justice)을 벌일 정도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러한 부작용이 선민 유대인들의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사상에도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그 일을 역사 가운데 재현시켜줄 메시아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만의 구원사상이 아니고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을 함께 구원하기 위한 만민구원의 사상입니다.

1)    만약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이 원하고 있는 메시아를 그 땅에 보내어 주신다고 하면 그것은 이웃나라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재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옛날 출애굽기의 재앙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제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 애굽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30-32).   

3)    이제는 선민 이스라엘이 사욕을 버리고 창조주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의사 누가는 그것이 선민의 영광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집단이기주의마저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만 합니다(벧전1:14).

셋째로,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16);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는 모세를 호렙 산으로 부르십니다. 모세는 산 중턱 가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것이 도무지 꺼지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그곳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

(2)  성도들의 믿음생활의 목표는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그 영생의 영광을 주님과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 가까이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신발을 벗고 거룩한 마음과 행실을 지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3:5, 벧전1:15). 그렇다면 어떠한 분야에서 먼저 성도들이 거룩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가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대목을 찾아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벧전1:16).

(3)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는 구절이 히브리정경 레위기에서 다음과 같이 세 차례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1)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11:44).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부정한 식재료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11).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심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19:2-3). 한 마디로 십계명을 지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20:1-17).

3)    접신한 자와 박수 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20:6-7). 우상문화를 버리고 오로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써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황제를 현인신으로 섬기는 우상문화를 따라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는 그 고난의 세월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기게 되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생의 천국으로 자신을 인도하실 줄 믿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치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믿음의 본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따라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고전11:1, 벧전1:13-16). 지금 로마시에서 실루아노의 도움을 받아서 헬라어로 이 서신을 작성하고 있는 베드로는 자신이 로마시에서 당하고 있는 작금의 환난이 소아시아 북부와 동부에까지 번져서 그곳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벧전 1:1-2, 5:12).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정치적인 박해 때문에 믿음생활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기도하면서 이 편지를 작성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의 절실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베드로의 권면과 같이 믿음생활에서 승리하셔서 천국의 영생을 누리시는 오늘날의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