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66강(렘5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2. 17. 08:45

예레미야 강해 제266(5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212()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을 치듯이 어떠한 나라와 백성을 치시며 그 전쟁의 특징이 무엇인가?(51:1-4)

 

여호와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51:1). 여기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편에 서서 여호와를 공격하는 나라와 백성은 모두 여호와께서 전쟁을 통하여 멸망시키고 심판하는 그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데 그 점을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을 통하여 사전에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신바벨론제국을 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는 전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입니다;

(1)  첫째, 아리안족은 오랜 세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점령하고자 노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강대국들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서로 쟁패를 하고 있는데 아리안족은 그들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중근동에서 가장 먼저 문명의 꽃을 피운 지역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그곳에서 청동기문명과 철기문명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옥한 토지에서 풍부한 농산물이 생산이 되고 있기에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가 적은 유목민 출신인 아리안족이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인구를 가진 강대국을 상대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열등한 그들이 어떻게 문명인들을 상대하여 승리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 메소포타미아의 농경민들과 그들의 제국들에 대하여 열등감을 지니고 있는 유목민 출신의 아리안족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들 아리안족의 왕국 메대와 바사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메대왕국과 바사왕국의 지도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십니다(51:1). 메대의 다리오 왕과 바사의 고레스 왕에게 그들이 연합하면 능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를 쳐부술 수가 있다고 하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2)  둘째, 중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입니다. 그들의 제국의 북쪽에는 미개한 유목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아라비아 사막과 광야에 반군(叛軍)들이 득세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때 신바벨론제국의 영웅인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앗수르의 잔당을 전멸시키고 시리아와 가나안 일대의 모든 왕국들을 패망시켜 버렸기에 제국에게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나일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애굽제국이 라이벌인데 그들에 대해서도 주전 582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정벌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 비옥한 나일 강 유역을 전부 차지하고 말았기에 애굽은 이제 빈껍데기와 같습니다. 그렇게 천하가 갈대아인들의 것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사후(死後)에 누가 다음 황제가 되느냐? 를 가지고 서로 내분(內紛)에 휩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여호와께서는 외환(外患)을 일으키십니다. 아리안족인 메대와 바사가 신바벨론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방에 대한 제국의 통제가 느슨해지자 아라비아 반도에서 다시 망국의 백성들이 부흥운동을 강하게 전개합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는 제국의 중심에 내홍(內訌)을 일으키고 변방에서는 타국인을 동원하여 일시에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51:2).  

(3)  셋째,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대항하여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무기체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리안족이 지니고 있는 강궁(强弓)이며 그들의 놀라운 기마술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가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약점이 둘 있습니다;

1)   하나는, 인구가 조밀한 농경지역에서 차출이 된 군사들이므로 밀집대형으로 적을 공격할 때 곧 백병전에 있어서는 강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서로 전투를 할 때에는 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목민 출신이라 눈이 밝은 아리안족의 군대가 강궁으로 멀리서 갈대아 군대를 공격하게 되면 속수무책입니다.

2)   또 하나는, 농경민의 군대가 말을 다루는 솜씨와 유목민인 아리안족이 말을 다루는 솜씨가 다릅니다. 농경민 출신인 갈대아 군대는 큰 말을 타고 진격하여 긴 칼과 긴 창으로 적을 베고 찌르고자 합니다. 그에 비하여 유목민 출신인 아리안 군대는 자신들의 몸에 맞는 작은 말을 타고서 자유자재로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말위에서 화살과 투창을 날리고 있습니다(51:3). 그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갈대아 군대가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4)  넷째, 아리안족들은 인구가 많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장정들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군인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 제국의 지배 족속인 갈애아인들만 섬멸하고 가능하면 그 속국의 백성들은 전부 항복을 시켜 자신들의 신민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한 전략을 선택하고 있기에 가장 먼저 신바벨론제국의 지배계급이 살고 있는 수도인 바벨론을 급습합니다(5:30-31). 그리고 그곳에서 갈대아인들을 전멸시키고 그 땅을 초토화시키고 맙니다(51:4). 그 반면에 제국의 지방인 120개의 도에 대해서는 항복을 권유합니다(6:1). 갈대아인들보다 아리안족인 자신들이 속국의 백성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사실 유목민들은 포용력이 큽니다. 넓은 초원을 떠돌며 유목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여러 족속들이 서로 형제가 되어 초원에서 평화를 누리며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신바벨론제국 다음에 등장하는 아리안족의 페르시아제국은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큰 대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 창건자인 고레스 황제가 바벨론 포로를 해방하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특징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내용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5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51:1a);

1)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영이십니다(1:1-2, 4:24). 영이신 여호와께서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임재를 하실 때에 흙으로 만든 그 육신에 임재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육신 안에 있는 그 심령(心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적인 힘)에 임재를 하십니다(17:20-21, 24:32). 심령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곳에 임재를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창세기 제2장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약간의 풀이가 필요합니다;

2)    사람의 육신을 짓는데 사용이 된 소재는 땅의 흙입니다. 그것은 성분으로 볼 때, 고체이거나 액체를 머금고 있는 고체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 육신이 살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그것도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그 뜻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2:7a). 그 성분은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닙니다. 기체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불어 넣어 주시는 그 생명의 기체로 말미암아 사람의 육신이 움직이며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일종의 혼적인 존재생령’(living soul)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7b).

3)    사람은 그 심령이 곤고해지면 상대와 싸워서 결코 승리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직접 싸워서 결판을 내기도 전에 열패의식(劣敗意識,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젖고 낙담에 빠져서 지레 도망을 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투에 있어서 전력평가를 위하여 두가지를 따지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군비와 군사력의 차이입니다. ②또 하나는 정신전력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마치 축구경기에 있어서 양팀이 직접 붙어 보아야 그 승패를 알 수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공이 둥글듯이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를 넘어서는 정신전력의 차이에 따라 상대적인 비교우위가 다시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한 맥락에서 여호와께서는 지금까지 열패의식에 젖어서 한번도 제대로 상대방과 자웅을 겨루어 보지 아니한 나라의 군대를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 군대의 사기를 불러 일으켜 감히 더 힘이 센 상대국과 전쟁을 하고자 합니다(51:1a).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벌써 출애굽기 제17장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그 군대가 필승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17:10-16). 그것은 여호와 닛시의 영광이 역사 가운데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오늘날에도 재현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51:1b);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강하게 하여 하나님의 적을 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그 주적(主敵)이 둘입니다;

1)    하나는, 신바벨론제국과 같은 세상의 제국입니다(51:1ba). 그들은 한때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칼로 쓰임을 받아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빠져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던 선민의 나라와 이방인들의 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25:1-11). 그러나 그들을 정복하여 제국이 된 다음에는 지배 족속인 갈대아인들이 그들의 세상 지배를 영원히 공고하게 하고자 망국의 백성들을 학대하면서 노예로 부리고 있습니다(50:33). 그리고 자신들의 토착신 말둑을 창조의 신이며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속국의 백성들에게 강요합니다(50:2). 그러한 피정복민에 대한 학대와 우상문화의 보급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25:12).

2)    또 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감히 대적하여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려고 하는 대적자 사탄을 말하고 있습니다(51:1bb, 14:12-14). 사탄은 이 세상에서 천하를 꾀는 자 마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20:2). 세상의 패권국과 손을 잡고 무력으로 만민을 지배하며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고 있습니다(17:1-5). 그리고 힘을 모아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와 성도들을 쳐부수고자 합니다(20:7-9).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들을 치고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3:16-17, 19:11-21).

둘째로,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며, 그의 땅을 비게 하리니, 재난의 날에 그를 에워싸고 치리로다”(51:2);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며, 그의 땅을 비게 하리니”(51:2a);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을 비롯하여 가나안 주변의 여러 족속들이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을 심하게 범하자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신바벨론제국을 그 도구로 사용하십니다(25:1-11). 그와 마찬가지로 신바벨론제국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피지배 족속을 노예로 부리면서 크게 학대를 행하자 그들을 멸하기 위하여 그 이웃에 사는 타국인의 군대를 사용하고자 하십니다(51:2aa).

2)    여호와께서는 정정당당한 대결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아리안족인 메대와 바사의 군대를 동원하여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와 정면승부를 겨루게 하십니다. 그것은 흔히 세상에서 제국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상대국에 대한 야비한 전술들 예를 들면, 동족상잔이나 내부분열책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내분에 이어서 외환이 발생하며 내홍이 적의 내침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신바벨론제국에 있어서도 느부갓네살 황제의 사후에 심각한 내분이 발생하고 황제의 자리를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반역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탐욕이 초래하고 있는 비극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러한 내분을 직접 조장하시지는 아니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여호와께서는 타국의 군대를 사용하셔서 신바벨론제국을 치신다고 하더라도 그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하십니다. 지나친 피를 흘리는 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국의 주체인 갈대아인들을 전멸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며 기타 족속에 대해서는 그 땅의 소유권만 빼앗고 죽이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요컨대, 키질로 지배 족속과 피지배 족속을 구별하며, 그 땅에서 지배 족속인 갈대안인들은 섬멸하되 기타 족속은 건드리지를 말라고 여호와께서 사전에 명령하시는 것입니다(51:2ab).

(2)  재난의 날에 그를 에워싸고 치리로다”(51:2b); 여호와께서는 메대와 바사의 지도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연합하여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을 기습할 때에는 그 주위를 완전 포위하고 한꺼번에 공략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밤중에 예기치 아니한 적의 공격을 받게 되는 갈대아 군대가 우왕좌왕하면서 저희들끼리 분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이상한 전쟁의 양상이 히브리정경에서 여러 차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4:24-25, 7:22, 왕하6:18-23, 19:35).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 전투에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셋째로,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옷을 입고 일어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의 활을 당길 것이라.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키라. 무리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요, 관통상을 당한 자가 거리에 있으리라”(51: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옷을 입고 일어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의 활을 당길 것이라.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키라”(51:3); 적의 도성 바벨론을 에워싸고서 메대와 바사의 군사들은 어떻게 전투를 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는 말위에서 강궁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51:3). 아리안족의 활은 그 사정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갈대아 군인이 쏘는 화살보다 장거리이므로 멀리서 포위만 하고서 그 강궁으로 화살을 날리게 되면 죽는 쪽은 갈대아 군인들입니다(51:3a).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강궁에서 발사가 되는 아리안족의 강한 화살을 막지 못합니다(51:3b). 그것은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미물인 쥐도 아닌데 아무리 적이라고 하지만 갈대아 군인을 그렇게 섬멸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쏘는 자는 그의 활을 당길 것이라).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키라”(51:3c).

(2)  무리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요, 관통상을 당한 자가 거리에 있으리라”(51:4);

1)    신바벨론제국의 지배 족속인 갈대안인들이 황궁이 있는 도성 바벨론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이 갈대아 우르의 중심지역이며 그들의 본래 고향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국의 수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갈대아인들을 전부 죽이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그날 밤 바벨론 도성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호와의 재앙은 끔찍한 것입니다. 도성을 완전 포위하고서 메대와 바사의 기병들이 강궁으로 도시를 빠져나오고 있는 갈대아인들을 전부 살해하고 말기 때문입니다(51:4a).

2)    그 결과 주전 539년 바벨론 도성에서는 갈대아 군인의 시신이 즐비하며, 화살을 맞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고통 가운데 죽어가고 있습니다(51:4b). 그것은 47년 전인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비극과 같은 것입니다;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7:33-34).

결론적으로, 예레미야는 신바벨론제국이 주전 539년에 메대와 바사의 공격으로 수도를 빼앗기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완전히 패망한 사건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다의 성군 요시야 제 13년인 주전 627년에 약관의 나이로 선지자가 되어 활동을 하다가 조국이 망하자 애굽에서 주전 580년경에 70세 가까운 나이로 소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신바베론제국의 멸망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참으로 구체적이고 상세합니다. 마치 눈으로 그 전투의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에 그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경우에는 그대로 적용이 되고 마는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이십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인정하고서 아무쪼록 평생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정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