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55강(렘49:23-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2월 1일(금)
앗수르, 애굽, 신바벨론 등에게 차례로 유린을 당하던 시리아의 성읍들이 결국 어떻게 다시 멸망을 당하고 만다고 여호와께서 예언하시는가?(렘49:23-27)
오늘날에도 시리아의 내전으로 그 나라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합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시리아의 운명에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주요한 사항만 살펴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주전 733년경 앗수르제국이 시리아의 아람왕국을 멸망시킵니다(왕하16:9). 그것은 겉으로 보자면, 유다 왕 아하스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당시 아람왕국의 왕 르신이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베가 왕과 함께 남조 다윗왕국의 유다 왕국을 침략합니다(왕하16:5). 졸지에 북쪽 두 나라의 침입을 당하여 정신이 없는 유다 왕 아하스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한 앗수르제국의 황제 디글랏 빌레셀에게 많은 예물과 함께 사신을 보내어 부디 그 나라들을 정벌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왕하16:7-8). 마침 앗수르제국은 그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서쪽으로 정복전쟁에 나서고자 준비를 하고 있던 중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 아하스가 범의 아가리에 먹이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환언하면, “두 마리의 이리를 피하려고 그만 산중의 왕인 범을 끌어 들인 어리석음을 범한 것”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군을 이끌고 서진한 앗수르 황제는 주전 733년에 다메섹의 아람왕국을 멸망시킵니다(왕하16:9). 이어서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왕국마저 멸망을 시키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7:5-6). 그리고 주전 714년과 701년에는 두차례나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왕하18:13-17). 여호와의 신위적인 도우심으로 히스기야 왕의 유다 왕국이 범의 아가리에서 겨우 살아나오게 됩니다(왕하19:34-36).
(2) 둘째로, 주전 612년에 앗수르제국이 어이가 없게도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공격에 수도 니느웨를 빼앗기고 맙니다. 니느웨를 탈환하기 위하여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앗수르의 군대가 두 나라의 군대와 계속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동부전선에 올인(all in)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프라데스 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와 그 서쪽의 북부 시리아 땅이 텅 비게 됩니다. 그 틈을 엿보고서 애굽의 바로 느고2세가 대군을 이끌고 북상을 하고 있습니다. 해변길을 막던 유다의 성군 요시야가 중상을 입고 물러나자 바로의 군대는 그대로 북상하여 갈그미스를 치고 시리아 땅을 점령합니다(왕하23:29). 그때 다메섹과 그 북쪽 하맛과 아르밧이 전부 애굽의 군대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그렇지만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집니다(렘25:1).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저항을 하고 있는 앗수르 잔당을 완전히 소탕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를 탈환합니다. 애굽의 주둔군은 갈대아 군대를 두려워하여 한없이 남하하여 본토 나일 강 유역으로 후퇴를 하고 맙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시리아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항복까지 받게 됩니다(왕하24:1). 시리아의 다메섹과 하맛과 아르밧이 다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의 손에 들어간 것입니다(렘49:23).
(3) 셋째로, 주전 594년경 애굽의 바로가 반(反) 바벨론 동맹을 가나안 일대의 왕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이듬해 성사가 된 그 동맹에 참여한 왕국들이 북쪽에서는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리고 유다 왕국과 그 동쪽의 모압과 암몬입니다. 남쪽에서는 에돔 왕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렘27:3). 물론 그 동맹의 수장은 애굽 제26왕조의 바로입니다(렘37:5, 11). 당시 시리아의 그 옛날 작은 왕국들이 있던 도시 다메섹과 하맛과 아르밧에서는 독립적인 왕국이 없어 그 동맹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시리아의 여러 왕국들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주전 609년과 605년의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렘49:23-27). 그것은 블레셋의 멸망과 같은 시기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 잡았도다”(렘49:23-2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렘49:23a);
1)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렘39:1-10, 왕하25:1-7). 그리고 페니키아의 시돈이 멸망을 당하고 철옹성인 바위섬 요새지 두로만이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그 흉한 패망의 소식을 듣고서 시리아의 세 도시 다메섹과 그 북쪽의 도성 하맛 그리고 그 북쪽의 성읍 아르밧의 주민들이 하나같이 낙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 시리아 사람들은 다시는 독립왕국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2) 다메섹의 경우 그들의 아람왕국이 주전 733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망한 다음 그 도시의 주인이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왕하16:9). 주전 609년에는 애굽의 바로가 쳐들어와서 그들에게 점령이 됩니다(왕하23:29). 4년후인 주전 605년에는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쳐들어와서 또 정복이 됩니다(렘25:1, 왕하24:1). 다메섹 주민들은 그 옛날 사라진 아람 왕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반(反) 바벨론 동맹군에게 패하도록 기원하고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지고 만 것입니다.
3) 이 세상에서 그 상대가 없는 워낙 막강한 갈대아 군대의 힘 앞에 이제는 다메섹의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꿈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사정은 그 옛날 시리아 북왕국의 수도인 하맛에 사는 주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북방에 있는 도시 아르밧에서는 그 옛날 북왕국의 영광은 이제 한갓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신들의 왕국을 재건할 꿈을 꾸지도 못하게 된 시리아의 불쌍하고도 수치스러운 백성들이라고 하겠습니다(렘49:23a).
(2)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 잡았도다”(렘49:23b-24); 그 옛날 아람 왕국의 수도인 다메섹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제국의 횡포 앞에 큰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 특히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속국의 백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다메섹의 총독에게 명령하여 아람의 군대를 동원하여 유다 왕국을 치라고 합니다(왕하24:1-2). 이미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에 복속이 된 다메섹의 백성들은 도망을 칠 수가 없습니다(렘49:23b-24). 꼼짝 없이 갈대아 군대의 보조군사가 되어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②둘째, 주전 58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사해 남쪽의 에돔 왕국을 칠 때에 다메섹의 장정을 위시한 아람의 백성들이 또 징집을 당하고 있습니다(렘49:14). 제국의 앞잡이로 살아가는 다메섹과 시리아 사람들의 운명이 참으로 비참합니다.
둘째로,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렘49:25-2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9:25-26a); 자신의 마음에 맞는 다윗왕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삼하8:1-18, 행13:22). 그 결과 아람왕국과 그 수도인 다메섹이 다윗의 제국에 속하게 됩니다(삼하8:6). 아람왕국의 북쪽에는 시리아의 소바 왕국과 하맛 왕국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스라엘 군대는 그 두 왕국을 치고 시리아 전체를 정복합니다. 그들 시리아의 왕국들을 신하의 나라로 삼고 매년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리아의 왕국들은 이스라엘제국의 치하에서 여호와신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그때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뜻이 담겨 있기에 본문에서는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9:25-26a)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 시리아 사람들은 다윗의 여호와신앙을 배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제국이 남북으로 분열이 되자 재빨리 독립을 하고 다시 우상을 섬기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눈 밖에 나게 되는 결과를 역사적으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2)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렘49:26b);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말하고자 할 때에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구절을 먼저 선포합니다.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의 역사 가운데 언제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21세기에 발생하고 있는 시리아의 내전 사태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의 뜻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강대국들이 시리아의 이권을 나누고 그 재물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시리아에서 대신 치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시리아의 장정들이 영문도 모르고 전쟁마당에서 희생이 되고 있습니다(렘49:26ba).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서 편을 갈라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의 병사들만 불쌍할 따름입니다(렘49:26bb).
(3)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렘49:27);
1) 아람왕국이 멸망을 당한 때와 그 수도 다메섹에 있는 벤하닷의 궁전이 불에 타버린 때는 언제일까요? 주전 633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아람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수도인 다메섹을 점령하였을 때에 유다 왕 아하스가 그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하스 왕은 앗수르제국의 황제 디글랏 빌레셀을 만났으며 다메섹에 건립이 되어 있는 앗수르의 큰 제단을 보게 됩니다(왕하16:10). 그러므로 앗수르 군대가 다메섹을 불태우거나 붕괴시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렇다면 아람의 왕이었던 벤하닷의 궁전을 불에 태워버린 자들은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복하는 나라들의 궁전과 신전을 모조리 불에 태워버리고 붕괴를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25:9, 렘48:8-9). 그러므로 다메섹에 있는 아람왕국의 벤하닷 궁전이 불에 타버린 것은 주전 605년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만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블레셋과 시리아 여러 왕국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47장과 제49장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지역의 나라들은 주전 609년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하여 정복을 당했으며 주전 605년에는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다시 점령이 된 지역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일년 전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 왕국 등이 줄줄이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제26왕조는 주전 582년에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나일 강 유역 좋은 땅을 거의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블레셋과 시리아의 여러 왕국의 멸망을 그보다 20여년 후에 망한 나라들과 함께 거론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가지의 뜻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1) 하나는, 중근동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 신바벨론제국과 나일 강 유역의 애굽제국 사이에서 전쟁터가 되고 있는 것이 블레셋과 시리아의 여러 왕국들이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2,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팔레스틴과 시리아가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과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강의 이해가 시리아의 내전을 둘러싸고서 첨예합니다.
요컨대, 주후 21세기에도 여전히 풀리지 아니하고 있는 분쟁지역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성경말씀 가운데 깊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블레셋과 시리아의 문제를 묵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인류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고대 시리아 지도)
(다윗제국과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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