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2. 10. 04:32

상규와 아끼꼬19(손진길 소설)

 

임상규20063월에 아끼꼬와 함께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떠나 호주 시드니로 들어왔다. 처음 일년 동안은 아끼꼬가 시드니에 있는 하이스쿨에서 일본어선생으로 근무하고 임상규는 시드니대학에서 호주의 법에 대하여 몇 과목을 공부했다. 그 이유는 비록 뉴질랜드와 호주의 법체계가 같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지니스를 다루고 있는 법이 그러하다. 법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기업이나 협회의 경우 뉴질랜드와 호주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뉴질랜드에 있어서는 목축과 원예 등 1차 산업과 관광 및 유학이라고 하는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은 반면에 제2차 산업은 농축수산물에 대한 가공업을 제외하면 경공업이나 중공업 등의 제조업은 거의 없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적고 국토가 넓기 때문에 아예 가공업을 제외한 제조공업은 육성하지 아니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공장을 짓고 기술을 도입하여 제품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그 출고가격이 너무 높다. 차라리 해외에서 공산품을 수입하여 사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으로 이익인 것이다.

뉴질랜드 사람인 키위(kiwi)들은 외떨어진 섬에서 오래 살아와서 그런지 그 성격이 상당히 완고하며 까다롭다. 따라서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하는데 있어서 까다로운 반면에 그 물량이 많지가 아니하다. 소량주문을 하면서 까다로운 고객이니 수출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은 고객이 아니다.

점점 뉴질랜드 키위와의 거래를 외면하고 있다. 그에 따라 뉴질랜드의 수입업자들은 호주의 수입업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인구가 호주의 5분의 1규모이므로 호주에서 아예 6개의 물량을 수입하여 그 중 하나를 뉴질랜드에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임상규는 뉴질랜드의 경제는 거의 호주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미국의 북쪽 국경에 하나의 가로띠처럼 생활권역이 붙어 있는 나라 캐나다가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양상과 같다. 동과 서로 뚝 떨어져 있는 캐나다의 도시들은 그 남쪽에 인접하여 있는 미국의 도시들과 경제적으로 더욱 긴밀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 점 때문에 임상규는 호주의 개척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19세기 전반기에  NSW’(New South Wales) 주지사가 영국의 황실과 정부에 청원한 내용 하나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고 있다. 당시의 주지사는 원주민 마오리들에 의하여 아오테아로아’(Aotearoa, 희고 긴 구름의 나라)로 불리고 있는 뉴질랜드 땅을 NSW주에 편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청원을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1837년에 즉위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재무대신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그 청원을 거절한다. 그 이유가 두가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호주와 달리 아오테아로아는 그 지형이 영국과 흡사한 구릉지이며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특히 남섬의 퀸스타운(Queenstown)은 영국 여왕의 거주지역과 그 기후가 비슷하며 풍광이 그만큼 빼어난 곳이다;

또 하나는, 큰 땅을 가지고 있는 호주를 영국이 견제하기 위해서는 지렛대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뉴질랜드가 하는 것이 통치의 원칙에 맞다는 것이다. 어차피 빅토리아 시대의 대영제국은 식민지국가에 대하여 Divide and Rule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그 원칙에 따르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서로 견제해야 하며 새로운 땅 아오테아로아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충성하는 자치정부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결과 1840년에 마오리들과 영국 여왕은 와이탕이 조약’(the treaty of Waitangi)을 체결하고 이듬해 1841년에 신생 뉴질랜드를 대영제국의 식민지국가의 하나로 편입한다. 그 조치로 말미암아 호주가 다시는 뉴질랜드를 합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21세기를 바라보면서 호주정부는 뉴질랜드와 함께 영국여왕의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것이 쉽지가 아니하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다음 세가지이다;

(1)  첫째, 호주와 달리 뉴질랜드 정부는 원주민 마오리(Maori)들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조약을 맺어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뉴질랜드 정부가 영국왕을 떠난다고 하면 계약의 당사자인 마오리들은 조약의 직접 상대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이 뉴질랜드의 원주민 땅에 대한 마오리들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2)  둘째, 호주와 뉴질랜드가 합병하는 경우 뉴질랜드의 정치인들은 전부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한 손해를 감수할 만큼 합병의 매력이 크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비근한 사례로 1990년말에 동독연방이 해산을 하고 5개의 지방정부가 부활하여 총선거를 통하여 서독의 7개 지방정부와 함께 독일연방을 구성했다. 그 당시 동독연방이 파산을 하여 도저히 동독을 더 이상 다스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말하자면 뉴질랜드정부가 파산을 하는 지경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호주와의 합병을 거론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언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시기상조일 따름이다.

(3)  셋째, 보수적이며 완고한 섬나라 뉴질랜드의 키위들이 여전히 자신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양민 출신이며 영국의 국왕을 아직도 사랑하는 충신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옛날 죄수와 간수의 후예인 호주인들과는 그 출신성분이 처음부터 다르다고 하는 이상한 자부심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즈가 작다고 하여 호주인들에게 굽히고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 견해를 여전히 피력하고 있다.

임상규가 볼 때에는 그러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뉴질랜드에서는 국민투표에 붙여보아야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이민자들이 뉴질랜드에서 주택을 사게 되면 그 땅에 대한 권리는 영국의 국왕 크라운’(Crown)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만약에 지하에서 광맥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소유권은 크라운에게 귀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국왕은 뉴질랜드에 총독을 보내어 현지정부에 조언하면서 자신이 아직도 뉴질랜드의 국왕을 겸하고 있는 크라운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민(臣民)의 나라 뉴질랜드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는 경우 그 비용은 크라운이 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임상규는 그 옛날의 대영제국은 아직도 나름대로 하나의 공영권’(Commonwealth)이라는 이름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 국가들은 그냥 영국의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국제적인 체육대회만 개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법률체계와 선진기술을 가지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국가들인 것이다;

그러나 20세기말부터 지구촌시대가 눈앞에 빠르게 전개가 되자 21세기는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느 국가가 이익이 되는가를 더 먼저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입장에서는 지하자원을 채취하여 수출하고 있는데 가장 큰 고객이 중국이다. 그러므로 영국보다는 당연히 중국이 더 중요한 나라이다.

중국에서 철광석과 유연탄을 더 많이 수입해간다면 호주의 국내총생산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 그리고 중국사람들이 더 많이 유학을 오고 관광을 온다고 하면 호주의 제3차 산업의 부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임상규가 시드니에 들어온 그 다음해 곧 200712월에 노동당의 당수인 케빈 러드(Kevin Rudd)가 호주의 수상이 된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케빈 러드의 학력을 보면 그는 대학에서 중국 중문학을 전공했다. 그만큼 그는 호주에게 있어서 장차 중국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국가발전의 파트너라고 예견한 인물이다. 그의 예상이 적중하고 있다. 호주가 아시아의 부국에게 천연자원과 농축수산물을 수출하고 있는데 그 최대의 고객이 21세기를 전후하여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케빈 러드의 사위가 중국사람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중국에서는 호주에서 중국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중국통의 정치인 케빈 러드가 수상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 점을 2007년 말에 시드니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상규가 벌써 인지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케빈 러드는 무난하게 수상의 임기 3년을 다 채울 것으로 임상규가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아니다. 노동당 내부에서 일종의 정치적인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수상인 케빈 러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호주의 철광석 수출회사에 대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것을 수출업자들이 싫어한 것이다.

수출업자들이 협회를 통하여 노동당의 부대표이며 여성 최초의 부총리인 야심가 줄리아 길라드(Julia Eileen Gillard)에게 줄을 댔다. 세금을 줄여준다고 하면 길라드를 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이다. 길라드가 당내 유력인사들을 설득하여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진 당수 케빈 러드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대신하여 수상이 된 시점이 바로 임기 만료 6개월 전이다;

그러나 중국은 케빈 러드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수상을 지낸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국제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점을 보고서 임상규는 참으로 호주의 내각제도는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상을 지낸 인물이 외무장관을 다시 맡고 있으니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호주의 수상을 지냈기에 케빈 러드가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계속 국제사회에서 거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케빈 러드가 다시 재기하고 있다. 그가 만 3년후인 20136월에 임기를 마치고 정계를 은퇴하는 줄리아 길라드의 뒤를 이어 다시 호주의 수상자리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케빈 러드 수상의 행보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점을 임상규가 여전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