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36강(렘45: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30. 22:20

예레미야 강해 제236(45: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113(주일)

 

유다 왕 여호야김 4년에 발생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때 서기관 바룩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여호와의 위로의 말씀이 무엇인가?(45:1-5)

 

다윗왕조 말기의 왕 4명이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인데 그들은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요시야 왕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여호야긴 왕은 요시야 왕의 손자이고 나머지 3왕은 모두 요시야 왕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요시야 왕의 여호와신앙을 대물림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열왕기하 제23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왕하23:25-27).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다윗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성군 요시야와 그의 조부인 므낫세 왕은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여 다윗왕조의 멸망을 막고자 노력한 왕이라고 한다면(왕하22:10-23:23), 므낫세 왕은 그 반대입니다(왕하21:1-16).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철저하게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깁니다(왕하21:1-5). 그리고 앗수르의 황제 에살핫돈과 아슈르바니팔 시대의 강성함에 겁을 먹고서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방신에게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왕자를 번제로 바칩니다(왕하21:6).

2)    둘째,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 아모리 족속보다 더 악한 므낫세 왕의 행적을 보고서 유다의 백성들이 모두 세상적인 탐욕과 음욕에 물들고 맙니다(15:16, 왕하21:9). 그 결과 무죄한 자의 피가 예루살렘에 흘러 넘치고 있는 광경을 보시고(왕하21:16) 여호와께서는 므낫세와 같이 행동을 하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대하여 반드시 멸망을 시켜버리고자 결심하십니다(왕하21:10-14). 여호와의 결심이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과 여호와신앙의 회복운동을 지켜 보시면서 한때 주춤하셨으나 그 뒤를 잇고 있는 요시야의 3아들과 1사람의 손자가 하나같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모습을 보시고서는(왕하23:32, 37, 24:9, 19) 마침내 애초의 결심대로 마지막 선민의 나라를 멸망시켜버리고 마시는 것입니다(왕하23:25-27).

(2)  둘째로, 주전 609년에 요시야 왕이 전쟁마당에서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급서(急逝)를 하게 되자 그 뒤를 급히 잇게 되는 왕자가 살룸입니다(22:11-12);

1)    살룸은 역대상 제3장의 족보의 기술과는 달리 세자인 엘리아김의 바로 밑의 동생이며 2살 아래입니다(대상3:15, 왕하23:31, 36). 세자가 아니지만 중신(重臣)들의 합의에 따라 요시야 왕의 뒤를 잇게 됩니다(왕하23:30). 그 이유는 그가 요시야 왕처럼 자주적인 유다 왕국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달리 세자인 엘리아김은 애굽의 바로를 섬기며 편하게 유다 왕국을 경영하고자 하는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입니다.

2)    그런데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앗수르 군대를 돕겠다고 하는 명분으로 북부 시리아 갈그미스 요새를 향하여 북상한 애굽의 바로인 느고는 두 강 사이에서 앗수르와 신바벨론이 치열하게 접전하고 있는 틈을 노려서 손쉽게 갈그미스요새를 차지하고 시리아 전역을 3개월도 지나지 아니하여 전부 손에 넣고 맙니다(왕하23:29).

3)    바로 느고가 대승을 거두고 애굽으로 회군을 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요시야의 세자인 엘리아김이 애굽 편에 서있는 신하들을 규합하여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응(內應)을 할 터이니 바로께서는 하맛의 립나에서 애굽의 군대를 예루살렘성으로 진격시켜 달라는 것입니다(왕하23:33). 바로 느고는 쾌재를 부르며 유다 왕국을 침범합니다.

4)    비상시국을 맞이하여 즉위한지 3개월도 되지 아니한 여호아하스 왕이 신하들과 함께 유다 왕국을 지키기 위하여 결사항전을 합니다. 그러나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말미암아 패전하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여호아하스 왕과 주전파(主戰派) 신하들이 모두 애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왕조의 역사상 처음으로 애굽의 바로에게 엄청난 조공을 바치고 바로를 주군으로 섬기는 유다의 왕 여호야김이 바로 느고의 책봉으로 탄생하게 됩니다(왕하23:34-35).

5)    여호야김이라는 왕의 이름은 바로 느고가 지어준 것입니다(왕하23:34). 그 의미는 성군 요시야의 세자인 엘리아김은 이제부터 애굽의 바로를 여호와로 알고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유다 왕국에서는 2가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①첫째, 성군 요시야처럼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그러한 신앙적인 자주적 노력이 유대사회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6)    ②둘째, 다윗왕조의 시조인 다윗왕처럼 여호와를 의지하여 자주독립과 선민의 나라의 번영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여호야김왕의 시대부터는 오로지 이방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이방황제의 힘을 의지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손쉽게 통치하고자 하는 사대주의 왕들과 신하들의 외교노선만이 나타나게 됩니다.  

(3)  셋째로, 주전 609년에 바로 느고에 의하여 애굽을 섬기는 유다 왕국의 왕으로 책봉이 된 여호야김4년이 지난 주전 605년에 국제정세의 변화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영웅왕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선 것입니다(25:1);

1)    느부갓네살 황제는 그때까지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끈질기게 앗수르의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반군들을 모조리 토벌하고서 애굽의 군대가 차지하고 있는 유프라테스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를 공격하여 점령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시리아 땅에서 애굽의 군대를 몰아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애굽의 군대는 본국으로 후퇴를 하고 갈대아 군대는 바로의 꼭두각시인 유다의 여호야김 왕국을 침범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오로지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 느고만을 의지하여 편하게 유다 왕국을 다스리고 있던 여호야김은 혼비백산을 하고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맙니다. 그때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 황제만을 섬기고 그의 신하가 되기로 맹세를 합니다. 매년 애굽으로 보내던 조공을 이제는 바벨론으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왕하24:1).

2)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이방 강대국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여호야김에 대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진노로 그의 왕국에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25:1-11, 26:20).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여호야김 왕은 선지자 우리야와 예레미야를 모두 잡아 들이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우리야는 애굽으로 피신하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명문거족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은밀하게 그 집에 숨어서 지내게 됩니다(26:21, 26). 아히감은 성군 요시야가 총애하던 신하이며 그의 부친인 서기관 사반보다 더욱 뛰어난 인물입니다(왕하22:12).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기어이 애굽에서 선지자 우리야를 체포하여 와서 예루살렘에서 그를 처형하고 맙니다(26:22-23).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야김 왕 4년인 주전 605년부터 선지자 예레미야는 더욱 깊이 숨어서 백성들 앞에 전혀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3)    그 대신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임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글로 적어서 그것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라고 선지자인 자신의 생도이며 유다 왕국의 젊은 서기관인 바룩에게 당부합니다(36:1-8). 여호야김 왕이 죽게 되는 주전 598년까지 7년의 세월을 숨어서 지내고 있는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술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 제자인 서기관 바룩이 양피지에 글로 적어서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읽어주는 소위 미크라경전의 시대가 그렇게 전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36:5-10). 하지만, 7년의 세월은 참으로 위험한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야김 왕이 처음에는 바로를 섬기다가 도중에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을 하고 그때부터는 그를 주군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왕조의 왕으로서는 불합격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하여 여호야김은 국내적으로 폭군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서기관 바룩이 여호와의 예언의 글을 백성들에게 읽어주는 참으로 위험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신앙적으로 보자면, 여호야김의 주군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고 오로지 세상의 패권국의 황제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다윗왕조의 유다 왕으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우국지사들과 여호와신앙인들이 격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움직임을 무력으로 그리고 참혹한 고문으로 다스리고 있는 여호야김 왕입니다(26:20-24). 그러한 시대에 운동권의 앞장을 서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서기관 바룩인 것입니다(45:3). 바룩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술하여 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양피지에 기록하여 그것을 예루살렘성전의 뜰에 들어가서 백성들에게 낭독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5)    그 모습을 지켜 보신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그의 신변을 신위적으로 보호하여 줄 것이며 바룩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시는 여호와의 놀라운 상급을(38:2, 39:18) 이 세상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5). 그 말씀 그대로 서기관 바룩은 조국이 망했지만 죽거나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들어가서 함께 예언활동을 하게 됩니다(36:26, 43:6-7).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대선지서 예레미야는 서기관 바룩의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도 합니다(36:27-3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45:1-2);

(1)  본문 제45장에 앞서 제44장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애굽에 살고 있는 유대인 피난민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주전 586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이끄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는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고 유다 왕국을 멸망시킵니다(39:2-9). 그 여세를 몰아서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바위섬 두로를 점령하고 지중해의 섬 깃딤까지 차지합니다. 그리고 남방에서는 아라비아 북부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모압과 암몬의 무장세력을 토벌하고 맙니다. 이제 남은 적은 애굽의 바로입니다. 따라서 주전 582년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를 정비하여 애굽 정복에 나선 것입니다.

(2)  당시 애굽은 두 사람의 바로가 공동통치를 하고 있는 약골 제26왕조의 시대이며 또한 분열왕국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제3중간기의 말엽입니다. 주전 715년에 이집트를 완전 정복한 이디오피아와 수단의 쿠시 왕조가 여전히 애굽의 바로를 겸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의 강력한 영웅왕 느부갓네살이 지휘하고 있는 막강한 갈대아 군대를 막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결국 이집트를 완전히 내주고 수단으로 밀려서 유대인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하고 있는 바드로스까지 적군에게 넘겨주고 마는 것입니다(44:1, 12, 27). 그와 같은 비극을 맞이하고 있는 바로 호브라의 최후에 대하여 여호와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제44장이 끝나고 있습니다(44:30).

(3)  그런데 제45장의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①첫째, 그것은 애굽에서의 이야기가 아니고 예루살렘에서의 이야기입니다. ②둘째, 신바벨론과 애굽 사이의 전쟁의 이야기가 아니고 서기관 바룩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개인적인 예언의 말씀입니다. ③셋째, 유다 왕 시드기야나 애굽의 바로인 호브라의 최후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이 아니라 전란 가운데 서기관 바룩이 여호와의 상급으로 목숨을 보전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45:5). 여호와께서 젊은 서기관 바룩에게 그와 같은 상급을 주시는 가장 큰 이유를 본문에서 역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 왕 여호야김 4년부터 서기관 바룩이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를 도와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양피지에 기록하고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낭독한 그 공로를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45:1).

둘째로,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45:3-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45:3);

1)    선지자 예레미야의 수제자로 알려지고 있는 서기관 바룩은 그 신분과 재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의 집안이 예루살렘에서 유명합니다. 따라서 바룩의 이름자 앞에는 그의 집안의 조상들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습니다;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32:12). 그 유명세는 유다 왕국의 말기에 바룩의 형제인 스라야가 시드기야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스라야는 젊은 나이에 시드기야 왕을 수행하여 바벨론까지 병참감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51:59).

2)    ②둘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보기에는 자신의 생도인 바룩 뿐만 아니라 그 형제 스라야까지 참으로 여호와신앙이 좋습니다. 바룩은 벌써 서기관 벼슬을 하고 있으며 스라야는 시종장으로 출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형제들이 하나같이 열심입니다. 연배로 보아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의 부친인 네리야의 신앙적인 동지로 보입니다.

3)    그와 같이 여호와신앙의 뼈대가 있는 집안의 출신들이기에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마지막 선민인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보다도 못한 죄악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동족들의 영적인 타락과 세속적인 교만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데 마침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25:1-11).

4)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되니 그 망국의 슬픔이 미리 그들에게 가슴 아프게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국을 구하고 동족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는 것일까요? 왕궁에서 바쁜 시종장 스라야보다는 학문에 종사하고 있는 서기관 바룩이 아예 선지자 예레미야의 생도로 들어가서 그 방법을 찾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45:3a).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부정적입니다(45:3b-5a). 

(2)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45:4);

1)    벌써 창세기 제6장에서 노아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취지가 여기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6:5-7).

2)    애써 창조한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멸망으로 심판하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이 타락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기업을 회수하고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이방 땅으로 내어쫓아 버리시는 것입니다(45:4a).

3)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자격이 되면 약속의 땅에 그들을 심으시지만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그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지경 바깥으로 백성들을 내쫓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선민에서부터 여호와의 심판을 실시하셨으니 이제는 모든 이방나라와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시행하십니다(45:4b). 그것이 모든 피조물을 공정하게 다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의 실현인 것입니다.

셋째로,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5);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45:5a);

1)    이 세상에서 구태여 역사에 남는 큰 일을 행하겠다고 욕심껏 노력하지를 말라고 하십니다(45:5aa). 왜냐하면, 사람이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란 어차피 퇴락하고 여호와의 심판으로 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45:5ab). 그러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을 생각하면서 너무 심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개인적으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속의 삶을 자신의 인생 가운데 살아가야만 합니다(22:28-30, 12:1-2). 그 일을 행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7:21, 22:28-30, 6:39, 17:3).

(2)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5b); 서기관 바룩이 살아 생전에 반드시 모든 뜻과 정성을 다 바쳐서 시행을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고 항상 주인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는데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바룩이 여호야김 왕 4년부터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양피지에 적혀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동족들에게 낭독하고 있습니다(36:5-8). 주전파 신하들에게 잡히게 되면 목숨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서기관 바룩은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인 줄 알고서 필사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바룩이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므로 그 전리품으로 그 생명을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상급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45:5).

결론적으로, 서기관 바룩에게 주신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 그대로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 전란 가운데 살아남게 됩니다. 조국이 망하자 그들은 애굽의 난민촌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곳에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하는 사역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기관 바룩이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양피지에 기록하였기에 오늘날 성도들이 그 글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육신을 입고 있는 인생 가운데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끝까지 전파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신바벨론제국의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