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34강(렘44:15-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30. 00:02

예레미야 강해 제234(44:15-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111()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드로스에서 유대인 피난민들이 항변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며 그에 대한 예레미야의 답변이 무엇인가?(44:15-23)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그 논쟁이 발생하고 있는 장소가 바드로스입니다. 그 위치는 상() 이집트의 수도인 테베를 지나 더 남하를 한 지점이며 오늘날의 수단에 해당합니다.  

그 기록을 깊이 있게 이해하자면 다음 4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폭넓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유다 왕국이 망한 후 유대인들의 난민촌이 수단의 바드로스에 형성이 된 때가 언제인가?

1)    예레미야 제43장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의 귀족 출신인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여러 지휘관들의 도움을 받아 유다 땅에 남겨진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가서 정착한 곳이 고센 땅 동부 다바네스입니다(43:4-7). 그런데 제44장에 들어오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멀지 않아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가 애굽을 침입할 것인데 그들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믹돌’, ‘다바네스’, ‘’, ‘바드로스등지에 세워진 유대인들의 난민촌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44:1-14).

2)    일반적으로, 망국의 백성들은 실향민이 되어서도 고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관행에 입각하여 생각해보면, 유대인들이 조국의 멸망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홍해를 건너온 지점인 믹돌에 자리를 잡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살기가 힘든 황량한 지역이므로 유다의 귀족인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이끌고 다바네스에 정착촌을 건설한 것으로 보입니다(43:7).

3)    그러나 4년후인 느부갓네살 황제 제23년에 갈대아 군대가 애굽을 침입합니다(52:30). 막강한 갈대아 군대는 믹돌을 점령하고 다바네스를 공격합니다. 유대인들이 애굽의 수도인 으로 피난을 갑니다. 그러나 멤피스도 함락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나일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도망을 치지만 갈대아 군대의 추격이 무척 빠릅니다. () 이집트의 수도인 테베도 점령을 당하고 맙니다. 그 결과 유대인 피난민들은 수단 땅에 들어가서 바드로스에 다시 정착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발생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태양신 논쟁입니다. 그러므로 그 논쟁의 발생시기는 주전 582년인 느부갓네살 황제 23년 이후입니다.

(2)  둘째로, 애굽의 태양신을 유대인들은 언제부터 섬겨왔으며 바드로스에서는 어째서 여호와신앙의 회복과 관련하여 태양신 논쟁이 발생하고 있는가?

1)    본래 태양신은 농경민족의 신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는 일조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대 애굽인들은 나일강 유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태양신을 주신(主神, 으뜸 신)으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 숭배의 장소가 나일 삼각주가 온전히 시작이 되는 지점 인데 그곳 헬리오폴리스에 태양신 의 신전이 있으며 또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식 농업생활을 영위하게 되자 풍작을 기원하기 위하여 가나안 원주민들의 농경신 바알뿐만 아니라 애굽의 태양신까지 도입하여 섬기게 됩니다. 그러한 우상숭배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에서 뿐만 아니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태양신을 하늘의 여왕으로 섬기면 풍년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44:17).

3)    그런데 갈대아 군대의 침입으로 유다 왕국이 망하고 이제는 애굽으로 피난 온 유대인들에게 또 갈대아 군대가 따라오고 있습니다(39:2, 52:30).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이 태양신과 같은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신앙을 버렸기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44:20-23).

4)    그러나 바드로스에서 유대인들이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들 유대인들의 남자들이 태양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의식을 치르고 있지만 아직도 전쟁의 위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44:18). 따라서 태양신을 그대로 섬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3)  셋째로 태양신을 섬기는 유대인과 애굽인을 여호와께서는 언제 어떻게 처벌하시는가?

1)    태양신을 섬기고 있는 애굽인들이 나일강변에서 풍요를 누리며 수천년간 잘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인들의 땅에 망국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살게 되면서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살고 있다고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뒤따라와서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대인들의 정착촌부터 파괴하고 있습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유대인 난민촌에서부터 발생하여 그것이 애굽 전체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부터 처벌하시면서 그 주변의 이방인들까지 동심원적으로 처벌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이제는 애굽인들에게 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25:29).

3)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고자 온세상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자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이 유대인들을 뒤쫓아 온세상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온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여호와의 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25:29).

4)    그러나 역사심판의 와중에서도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함께 전파하십니다(24:14, 3:16-17, 1:8). 그러므로 선민이 사라진 그 순간부터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23:4-8, 11:10-12, 19:22-25, 11:29-36).

(4)  넷째로, 애굽의 태양신이 수단과 이디오피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역사는 쿠시 왕조와 어떻게 관련이 되고 있는가?

1)    나일강 유역에서 고대문명이 탄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종적으로 보아 크게 세가지입니다; 상류의 구스인, 중류의 누비아인, 하류의 미스라임인들입니다. 그 가운데 미스라임인들의 땅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비옥한 땅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이 먼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 이집트의 지역이 고대 애굽 문명의 중심이 됩니다.

2)    평야인 에서는 농경신으로 태양신인 을 섬기고 있으며 산지인 에서는 그 평야를 지키는 군사력을 키우고 있으므로 하() 이집트의 수도인 멤피스가 그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12장에 따르면, 주전 21세기에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 바로를 만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멤피스입니다.

3)    주전 19세기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는 중왕국의 시대인데 그때는 상() 이집트에서 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지배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 이집트의 수도는 인데 테베를 말합니다. 그곳에서는 언덕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신으로 숭상하였는데 그 신의 이름이 아몬입니다.

4)    () 이집트를 정복한 중왕국에서는 태양신 와 합하여 아몬라를 주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전 18세기에는 카스피해에서 발흥한 힉소스인들이 쳐들어와서 하() 이집트를 정복하고 힉소스인의 왕이 바로가 됩니다. 그러나 주전 16세기에는 상() 이집트의 모세 왕가가 힉소스인들을 내쫓고 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신왕국 시대를 열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주전 1,446년에 애굽을 탈출하는데 그 시대가 신왕국의 시대에 해당합니다.

5)    그런데 나일강 상류 구스 땅에서 발흥한 쿠시 왕조가 점점 강성해집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악어를 신으로 숭상하고 있습니다. 주전 1,000년경에 다윗대왕의 이스라엘제국이 애굽제국을 압박하게 되자 이집트의 바로의 힘이 약해집니다. 그때 쿠시 왕조가 북상하여 누비아인들의 땅을 점령하고 맙니다. 그후 주전 760년에는 상() 이집트를 정복하고 주전 715년에는 하() 이집트까지 정복하여 제25왕조를 열게 됩니다. 그 수도가 멤피스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태양신은 쿠시 왕조에 의하여 수단과 이디오피아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6)    주전 701년에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유다 왕국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있을 때에 쿠시 왕조의 바로는 그의 동생인 이디오피아의 왕 디르하가로 하여금 구원병을 이끌고 산헤립의 군대를 치라고 합니다(왕하19:8-9). 그러나 그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훗날 주전 664년에는 앗수르의 아슈르바니팔 황제의 침입으로 애굽의 제25왕조가 무너지고 앗수르와 제휴하는 제26왕조가 시작이 됩니다.

7)    주전 609년에는 앗수르가 신바벨론에 의하여 약해지자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지원하는 척하면서 갈그미스 요새지와 시리아 땅을 차지하고 맙니다(왕하23:29). 그리고 회군하는 길에 유다를 복속시키고 괴뢰정부의 유다 왕으로 여호야김을 세웁니다(왕하23:34-35). 주전 586년에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지만 제26왕조에서는 두 사람의 바로가 공동통치를 계속하고 있으므로 그 힘이 약하여 끝까지 돕지를 못합니다(37:5-10). 주전 582년에는 갈대아 군대의 애굽 침입을 막는데 실패하게 됩니다(44:1, 15, 52:30). 그 결과 쿠시 왕조는 바드로스까지를 상실하고 구스 땅의 왕조로 다시 위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44:15-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44:15);

1)    여기서 그리하여”(44:15a)는 다음과 같은 그동안의 전쟁의 경과를 말하고 있는 접속사입니다; 주전 582년에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갈대아 군대가 애굽 땅을 침범하여 삽시간이 국경지대 믹돌다바네스를 점령합니다. 애굽의 제26왕조는 그 수도인 의 산지 곧 멤피스에서 강력하게 저항을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하() 이집트를 적에게 내주고 아예 상() 이집트로 물러나 땅인 테베에서 항거를 하지만 그것도 성공적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에서 피난길에 나선 유대인들이 멀리 테베의 남쪽인 수단의 도시 바드로스에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44:1).

2)    바로 그때 그곳에 온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유대인 난민들이 모여들어서 그에게 모종의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44:15c). 그런데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묘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44:15b). 그 의미는 자기 아내들이 애굽의 주신인 태양신에게 분향을 하는 줄 번연히 알고 있는 남편들이 시침을 뚝 떼고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우상을 섬긴다고 하더라도 잘 살고 복만 많이 받고 세상적으로 형통하더라는 것입니다(44:17).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들에게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틀렸다는 지적입니다.

(2)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44:16-17);

1)    다윗왕조 말기 유다 왕국에서는 왕과 고관들이 백성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애굽의 태양신을 자신들의 하늘의 여왕으로 삼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유다 왕국에서 조상들이 하늘의 여왕을 섬긴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오경에서 피조물을 형상화하여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을 절대 금지하고 있습니다(20:4-5). 그렇지만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에서 애굽의 태양신을 하늘의 여왕으로 삼아 분향하고 전제의 제사를 드려도 아무런 재앙이 발생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풍년이 들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렸다는 것입니다(44:16-17).

2)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고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을 그만 두었더니 그때부터 세상적인 환난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바드로스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에게 몰려와서 이제부터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시 그 옛날처럼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의 제사를 드려서 그 옛날의 풍요를 되찾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4:16-17). 그것은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어려움을 당하자 일제히 모세와 아론을 크게 원망한 일과 비슷합니다(15:24, 16:2).

둘째로,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이르되”(44:18-2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44:18); 유대인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우기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들이 피난생활 가운데 태양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섬기게 되면서부터 세상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와서 동족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 계속 피난생활을 하고 있으니 기근과 궁핍함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여왕을 섬긴 것과 여호와를 섬긴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여왕에 대한 분향과 전제의 제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움이 찾아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는 백성들의 하소연입니다.  

(2)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이르되”(44:19-20);

1)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백성들 가운데서 남자들의 주장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는 단서가 여인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는 일을 그동안 여자들에게 맡겨 놓고 집안의 가장인 남자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참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44:19). 요컨대, 눈속임으로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는 진술입니다.

2)    그것은 유다 왕국 말기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왕조의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신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풍작과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간구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답습하고 있는 유대인 피난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남자들이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은 태양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섬겼는데 어째서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드디어 선지자 예레미야의 답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44:20).  

셋째로,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고관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고 그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44:21-2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고관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고 그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아닌가? ”(44:21);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신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조상 때부터 계속하여 유다 왕국의 말기에 이를 때까지 이방신상을 도입하여 섬기며 우상들에게 분향하고 전제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상을 섬긴 유대인들의 잘못을 기억하셨다가 보응할 날에 그 잘못에 대하여 징계를 행하신 것이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답변입니다(44:21, 32:34-35).

(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44:22); 조국이 망하고 이방 땅 애굽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전혀 달라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마음대로 이방신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가증한 이중적인 신앙생활까지 자행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에게는 태양신을 섬기도록 만들어 놓고 자신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척 가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서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아니하시고 갈대아 군대를 불러서 난민의 정착촌을 모두 초토화시키고 유대인들을 계속 쫓아내시는 것입니다(44:22).

(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44:23); 여호와께서 난민 유대인들에게 계속 재난이 발생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이유가 다음 세가지 잘못 때문이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요약을 해주고 있습니다; ①첫째, 애굽의 태양신에게 분향하는 잘못을 여호와 앞에 저질렀기 때문입니다(44:23a). ②둘째, 여호와의 말씀을 경외하지 아니하며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예언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아니한 것입니다(44:23b). ③셋째,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가 기록이 되어 있는 히브리정경의 말씀 그대로 역사가 섭리되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굳이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44:23c).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역사의 섭리자이시고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제 욕심껏 살아가고자 하고 있으니 그것이 멸망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세상적으로는 인생 가운데 남이 보기에 형통한 것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10:28, 16:19-31, 22:28-30, 8:15-18).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중적이며 가식적인 종교생활을 버리고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정직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