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25강(렘41:11-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2일(수)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이끄는 무리들이 누구이기에 암몬 자손에게 가고자 하는 유다의 왕족 이스마엘을 쳐부수고 유다의 유민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고자 하는가?(렘41:11-18)
주전 586년 여름에 예루살렘이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자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렘39:2-10).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은 온건한 유다의 귀족 출신인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하고 유다 땅에 남겨진 빈민과 노약자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황제의 땅이 된 유다의 땅을 배분하여 포도원을 만들고 밭을 개간하여 소출을 내고 매년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렘39:10, 40:7).
그다랴 총독은 완전히 불타버린 예루살렘 대신에 그 북쪽 12km에 위치하고 있는 미스바에 총독부를 세우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도움을 받아 동족들에게 땅을 나누어 줍니다(렘40:5-7). 그렇지만, 갈대아 군대가 유대인들을 너무 많이 바벨론으로 끌어가 버렸기에 노동력이 부족합니다(렘39:9-10). 따라서 그다랴 총독은 해외에 망명하거나 피신하여 있던 동족들이 고토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고 그들에게도 땅을 배분하여 줍니다(렘40:7-12).
그렇게 돌아온 해외의 세력 가운데 크게 보아 무장을 한 두 갈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왕족 이스마엘과 그 부하들인데 그들은 아라비아에 있는 암몬의 망명정부의 왕인 바알리스와 제휴하고 있는 세력입니다. ②또 하나는, 귀족인 가레아의 아들들인데 그들은 애굽에서 돌아온 세력입니다.
그들 두 세력이 유다 땅에서 서로 세력을 넓히려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1) 먼저 신바벨론의 황제가 임명한 총독 그다랴를 해치고자 나선 자가 왕족인 이스마엘입니다. 그는 반란에 성공하여 총독 그다랴를 암살하고 미스바의 총독부를 장악한 후 유다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아라비아로 떠나고 있습니다(렘41:1-10).
(2) 그 정보를 3일 후에 알게 된 귀족 출신 가레아의 아들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규합하여 반격에 나섭니다(렘41:4, 11). 그 반격의 장소가 미스바에서 10리 정도 남쪽에 있는 기브온입니다(렘41:12).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던 유다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하려 온 가레아의 아들들과 여러 지휘관들을 환영합니다(렘41:13-14). 세력에서 밀린 왕족 이스마엘과 그의 부하들은 패하여 아라비아로 도망을 치고 맙니다(렘41:15).
(3) 그렇지만 기브온의 전투로 말미암아 유다 지역에 사병을 거느린 군벌들이 있으며 그들이 그다랴 총독을 살해했다는 소식이 시리아 총독부와 바벨론의 황제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갈대아 군대가 다시 유대 땅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변이 위험함을 깨닫고 가레아의 아들들과 여러 지휘관들은 백성들을 이끌고 아예 애굽으로 들어가 유대인들의 정착촌을 만들고자 합니다(렘41:18).
그와 같은 내용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주전 588년에 유다 왕 시드기야가 천혜의 요새 예루살렘성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와 결사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렘39:1).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용맹한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파죽지세로 유다의 전역을 짓밟고 그 수도인 예루살렘성의 공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때 애굽의 바로가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의 구원에 나섭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배후를 공격 받게 되었으므로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작전상 유다 왕국 바깥으로 갈대아 군대를 물리고 맙니다(렘37:5);
1) 그런데 예루살렘성에 바로의 군대가 오래 주둔할 수가 없습니다(렘37:7). 예루살렘성의 군량미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애굽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을 지키던 주전파 신하들이 갈대아 군대의 재침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자녀들을 일부 가병(家兵)과 함께 안전하게 애굽으로 피신을 시키고 있습니다.
2) 주전 586년에 재침한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고 미스바에 유다를 다스리는 총독부가 건설이 되자 애굽으로 피신한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이 가병들을 이끌고 그다랴 총독을 찾아 옵니다. 같은 예루살렘의 귀족 출신이며 평소 친분이 있었기에 총독 그다랴는 그들을 환영하고 베들레헴의 남서쪽 ‘게롯김함’의 땅을 그들 가문에 준 것으로 보입니다(렘41:17). 그곳은 베들레헴의 남동쪽에 있는 ‘느도바’와는 반대 방향입니다(렘40:8).
(2) 둘째로, 성군 요시야가 주전 609년에 애굽의 바로 느고가 시리아를 치기 위하여 대군을 이끌고 해변길로 북상을 하자 그들이 말머리를 돌려 혹시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오지 아니할까 염려하여 요시야 왕이 직접 변복(變服)을 하고 므깃도 요새지에 들어가서 정탐과 척후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느고는 성군으로 불리고 있는 요시야가 애굽의 패권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여 차제에 그를 살해하고자 합니다. 저격수를 보내어 므깃도 인근에서 유다의 병사를 지휘하고 있는 요시야를 찾아 내어 강력한 장거리 화살로 중상을 입힙니다. 그때문에 급히 예루살렘으로 후송 중에 요시야 왕이 죽고 맙니다(왕하23:29);
1) 유다의 중신(重臣)들은 바로 느고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똑똑한 왕자 살룸을 후계왕으로 세우고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렘22:11, 왕하23:30). 그러나 3개월후에 시리아를 정벌하고 바로 느고가 남하를 하자 유다 왕국 내에서는 살룸의 형인 엘리아김이 바로와 내통을 하고 친(親) 애굽 사대주의 세력을 모아 반역을 도모합니다(대상3:15). 내우외환에 시달린 살룸 곧 여호아하스 왕은 적을 막지 못하고 사로잡혀서 애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3:31-34, 렘22:11-12). 그 결과 엘리아김은 바로 느고에 의하여 유다 왕 여호야김으로 즉위를 하고 애굽의 바로에게 엄청난 금은보화를 주고 맙니다(왕하23:34-35).
2) 다윗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그 유례(類例)가 없는 괴뢰정부가 들어선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요시야의 동생들이 여호야김 시대 후반기에 조국을 버리고 요단 강을 건너 암몬 왕국으로 망명을 하고 맙니다(렘26:24, 36:5, 12, 40:14, 41:1).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어서 동쪽의 암몬 왕국도 망하고 맙니다. 그때 유다의 왕족인 이스마엘이 가병들을 이끌고 암몬의 왕족인 친구 바알리스와 함께 아라비아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바알리스가 암몬 자손들의 왕으로 추대가 되고 망명정부를 세우게 됩니다(렘40:14).
3) 그 모습을 보고서 유다 왕족 이스마엘도 스스로 아라비아에 유다의 망명정부를 세우고 자신이 유다 자손의 왕이 되려는 야망을 가집니다(렘41:10). 그 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먼저 미스바로 총독 그다랴를 찾아가서 그의 친구가 됩니다(렘40:16-41:1). 그리고 기회를 보아 그다랴를 암살하고 총독부를 장악한 후 백성들을 강제로 끌고서 암몬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아라비아로 떠납니다(렘41:2-10).
4) 그렇지만 미스바의 총독부가 왕족 이스마엘의 손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3일만에 알게 된 유대 땅의 무장세력들 곧 귀족인 가레아의 아들들과 유다의 장군출신인 스라야 및 용병장인 여사냐 등이 사병을 모아 왕족 이스마엘의 군사를 치고자 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렘41:11-1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렘41:11);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미스바 총독부에서 발생한 왕족 이스마엘 일당의 반역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이틀이 완전히 지난 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렘41:4). 당시 예레미야가 그다랴 총독과 함께 미스바에서 유민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의 기업을 배분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그것은 정확한 증언입니다(렘40:5-6). 3일만에 그 놀라운 사건을 듣게 된 귀족 출신인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은 예루살렘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러 지역의 무장세력들에게 급히 통발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도(叛徒) 이스마엘 일당을 쳐부수기 위하여 총궐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2) 본문에서 “모든 군 지휘관”이라고 말하고 있는 자들은 유다의 장군 출신인 스라야와 마아가 출신의 용병장 여사냐(대상19:7) 등입니다(렘40:8, 42:1). 훗날의 역사를 참조하면, 느도바 출신의 의병장 에배의 아들들은 벌써 무장을 해제하고 느도바 고향에서 농사만 짓고 있기에 더 이상 그 일에 참여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스2:22, 대상9:16, 느12:28). 어쨌든 빠른 시간 내에 장군 스라야와 용병장 여사냐 등이 군사를 몰고 와서 귀족출신인 가레아의 아들들과 합세한 것을 보면(렘41:11) 베들레헴의 남서쪽 게롯김함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가레아 집안이 평소 무인들에게 평판이 높고 또한 금력이 막강한 것으로 보입니다(렘40:13-16, 41:17).
(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렘41:12);
1) 귀족인 가레아의 아들들이 유다 지방의 군벌(軍閥)들의 도움을 받아 북쪽 미스바를 향하여 진격하고 있습니다(렘41:12a). 군사력으로 비교하면 그들이 왕족인 이스마엘 일당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사기가 충천합니다. 미스바에서 10리 남방에 있는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들은 이스마엘 일당을 만나게 됩니다(렘41:12b).
2) 유다의 총독인 그다랴를 암살하고 미스바의 총독부를 장악한 후 그곳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아라비아로 가기 위하여 남하를 하고 있는 왕족 이스마엘 일당들은 참으로 행진속도가 느립니다. 자신들의 군사수에 비하여 너무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있기에 그 걸음이 굉장히 느린 것입니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많은 백성들을 사로잡아 끌고가는 이유는 아라비아에 유다 자손의 망명정부를 세우자면 백성의 수가 무조건 많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렘41:13); 가나안 땅에 다시 살게 된 유대인들이 볼 때에는 왕족인 이스마엘이나 귀족인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나 모두가 동족입니다. 그런데 왕족 이스마엘은 자신들을 체포하여 포로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귀족인 요하난은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하여 군사를 끌고 온 것입니다. 유대의 백성들은 당연히 해방군인 요하난과 그의 지휘관들을 반기며 환영하고 있습니다(렘41:13). 그들은 포승만 풀어주면 하나같이 요하난을 도와서 이스마엘 일당을 쳐부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8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렘41:14-16); 역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8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렘41:14-15);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족 이스마엘과 귀족인 요하난 사이에 발생한 동족상잔의 전투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기록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슬픈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망국의 땅에서 서로가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동족을 해치고 있는 것이므로 그 자세한 내용을 구태여 살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유다의 땅에 남겨진 백성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백성들의 지지와 선택에 따라 전투의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보고 있습니다. 요컨대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이나 왕국은 여호와께서 버리시는 카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포로로 취급하고 있는 왕족 이스마엘을 버리고 이스마엘 일당을 쳐부수기 위하여 당도한 귀족 요하난과 지휘관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렘41:14).
3) 그것으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전투의 결과는 이스마엘 군대의 패전입니다. 왕족 이스마엘의 심복 10명이 이끄는 군대가 참패를 하고 이스마엘은 살아남은 심복 8명과 함께 정신없이 남쪽으로 암몬 자손들의 망명정부가 있는 아라비아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렘41:15).
(2)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렘41:16a);
1) 왕족 이스마엘과 그의 심복 8명이 죽은 군사와 부상을 당한 군사를 버려 두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남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을 쳐버리자 순식간에 승리는 귀족 요하난과 지휘관들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묶여 있는 유다의 백성들의 줄을 끊어주고 있습니다.
2) 그리고 그들 포로들의 신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렘41:16a); ①미스바 총독부에 살고 있던 유다 왕 시드기야의 딸들과 내시들이 들어 있습니다(렘41:10). ②그리고 이스마엘 일당이 군사로 사용하고자 잡아 가고 있는 유다의 군사와 장정들이 들어 있습니다. ③나머지는 노약자들입니다.
3) 이제는 그들에게 길양식을 주고 각각 자신들이 배정을 받은 기업으로 돌려보내면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귀족인 요하난과 그가 동원하고 있는 군벌들이 백성들과는 다른 꿈을 역시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렘41:16b); 귀족인 요하난과 그를 지지하고 있는 지방의 군벌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왕족 이스마엘이 빼앗아 가지고 남쪽으로 운반하고 있는 총독부의 재물과 유대인 백성들입니다. 재물은 전리품으로 차지하고 백성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군벌들의 기업으로 끌고 가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또한 군사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렘41:16b)라고 선지자 에레미야가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꿈이 쉽게 이루어질까요? 자신의 동족들을 노예처럼 사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꿈은 여호와께서 여전히 지켜 보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는 어림도 없으며 다시는 성취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렘41:17-18);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렘41:17);
1) 귀족 출신인 요하난은 자신을 지지하는 군벌들과 함께 왕족인 이스마엘 일당을 쳐부수고 얻은 전리품과 포로들을 데리고 일단 베들레헴 서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자신의 고향이며 본거지인 게롯김함에 도착합니다(렘41:17). 그곳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자 합니다. 문제는 미스바에 있는 유다의 하급 총독부가 멸망을 하고 말았으니 이웃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신바벨론의 상급 총독이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어떻게 사후처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이 자신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리아 총독은 차제에 유다 총독인 그다랴가 잘못 처리한 정책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그것은 유다 지방에서는 일체 무장세력을 허용하지 아니하고 전부 무장해제를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항거를 하면 모조리 죽음으로 다스리겠다고 막강한 갈대아 군대를 몰고 들어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는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이나 기타 군벌들이 발붙일 땅이 없어지고 맙니다. 어디로 가야만 할까요?
3) 왕족 이스마엘 일당이 도망을 친 아라비아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하나입니다;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이 일찍이 친분을 쌓아 놓은 애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옛날 조상들이 살던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으로 들어가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그곳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교섭을 가레아의 아들인 요하난과 요나단이 맡기로 하고 있습니다(렘40:8, 41:16-17). 따라서 요하난이 그 무리들의 수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렘43:4-5).
(2)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렘41:18);
1) 사실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이나 유다의 장군 출신인 스라야나 마아가 용병들의 지휘관인 여사냐 등은 미스바에 있는 그다랴 총독의 암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총독 그다랴에게 왕족 이스마엘의 흉계를 알고서 사전에 잘 대처하시라고 미리 고급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렘40: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감각과 안보적인 관념이 절대 부족한 귀공자 타입의 그다랴 총독이 그만 일을 그르쳐버린 것입니다.
2) 그러한 자초지종의 설명이 시리아 총독에게 통할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신바벨론의 총독부를 제외하고 그 다스림을 받고 있는 땅에서 군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리아 총독이 이끄는 갈대아 군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 즉시 유다 땅의 군벌인 자신들은 초주검입니다(렘41:18). 그러한 위기를 느낀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과 장군 스라야 그리고 용병장 여사냐는 재빨리 재산을 정리하여 유다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렘41:17-18).
3) 그들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까지 애굽으로 끌고가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렘42:10-11, 43:4-7).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지도자인 선지자 예레미야가 애굽의 정착촌에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설득과정이 제42장에서 자세하게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이 망한 다음에 해외에서 돌아온 두 세력이 유대 땅에서 세력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세력이 ①하나는, 암몬의 망명정부의 왕과 친한 유다의 왕족 이스마엘과 그 부하들이고 ②또 하나는, 애굽의 귀족과 친한 유다의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지휘관들입니다.
과연 어느 세력이 승리를 하게 될까요?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그 뒤가 좋지를 못합니다. 무력충돌을 하였기에 그만 그 소식이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신바벨론의 상급 총독에게 전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총독은 곧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의 정벌에 나설 것입니다.
위기를 느낀 가레아의 아들들과 스라야 장군 그리고 용병장 여사냐가 유다의 백성들을 강제로 이끌고 애굽의 고센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이 정착한 다바네스가 훗날 헬라의 문명과 히브리사상이 합체가 되는 학문과 종교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발전하게 됩니다(사19:23-25, 행18:24).
그곳은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면서 동방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기지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긴 안목과 복음전파의 관점에서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유심하게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레미야 선지자가 무엇을 기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깊이 깨달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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