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24강(렘41:4-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1일(화)
미스바에 있는 유다의 총독부를 완전히 쳐부순 유다의 왕족 이스마엘이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을 이끌고 암몬 자손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가?(렘41:4-10)
유다 왕국이 망하자 예루살렘의 귀족 출신인 그다랴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의 총독이 됩니다. 황제는 그다랴에게 미스바에 총독부를 세우고 가나안 땅에 남겨진 빈민들과 노약자들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포도원과 밭과 목축지를 배분하여 살길을 마련해주라고 지시합니다(렘39:10, 40:5). 그 일을 돕기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다랴 총독과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렘39:14, 40:6).
그다랴 총독을 찾아가면 가나안 고향의 땅에서 다시 기업을 얻을 수가 있다고 소문이 나자(렘40:7) 크게 보아 세 군데에서 각각 다른 성향의 동포와 용병들이 미스바로 몰려들고 있습니다(렘40:8);
(1) 첫째로, 예루살렘이 갈대아 군대에게 포위가 되기 전에 일부 왕족의 자손들이 이웃나라 암몬으로 망명을 합니다. 그들은 만약 조국이 망하게 되는 경우에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암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암몬 왕국마저 망하고 맙니다. 그 가운데 유다의 왕족인 이스마엘이 암몬의 왕족이 세운 아라비아의 망명정부에 머물다가 자신의 수하를 이끌고 미스바로 그다랴 총독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는 야심가입니다. 기회를 보아 그다랴 총독을 암살하고 백성들을 강제로 아라비아로 끌고가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예루살렘이 갈대아 군대에게 포위가 되기 전에 예루살렘의 귀족 중 일부가 자신의 자녀들을 종주국인 애굽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조국이 망하고 그다랴 총독이 가나안 땅을 배분하여 주자 그들 가운데 가레아의 아들들이 가신들을 이끌고 미스바로 찾아 옵니다. 그들은 미스바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엠마오와 아리마대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3) 셋째로, 갈대아 군대와의 전쟁이 끝났지만 유다의 병사들 가운데는 유대 광야로 숨어 들어 무력항쟁을 계속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병들도 일어나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장군 스라야와 의병장 에배의 아들들이 부하들을 이끌고 미스바로 찾아와 그다랴 총독에게 항복을 합니다. 그들은 부하들과 함께 가나안 땅의 일부를 분배 받아 자신들의 힘을 기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힘을 기르는 방법이 상당히 다릅니다;
1) 첫째, 장군출신인 스라야는 자신이 분배 받은 가나안 땅을 일구면서 동시에 군사력을 기르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자신의 기업을 지키고자 하는 무인으로서의 생각이 큰 것입니다.
2) 둘째, 의병장 에배의 아들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고향사람들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으므로 고향인 느도바로 돌아가자 그곳을 일구면서 아예 옛날처럼 농민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훗날 그들이 일군 고향 느도바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 친척들과 레위인들이 함께 살게 됩니다(스2:22, 대상9:16, 느12:28).
그러한 때에 주로 암몬 왕국에서 용병생활을 하던 아람의 한 줄기인 마아가 사람들이 그들을 고용한 암몬 왕국이 망하자 미스바로 찾아와서 그다랴 총독에게 항복을 합니다. 마아가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이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는 친척 관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창22:24).
따라서 이왕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것도 인자한 그다랴 총독이 다스리고 있는 곳에서 기업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지도자가 용병장 여사냐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다의 장군 출신 스라야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용병장 여사냐는 과거 암몬 왕국에서 함께 지내던 유다의 왕족 이스마엘의 야심과 그 속셈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스라야 장군에게 참고하도록 그 사실을 알려 줍니다. 장군 스라야는 그 이야기를 애굽에서 온 귀족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귀띔을 해줍니다.
귀족 출신 요하난은 역시 귀족 출신인 총독 그다랴와 친합니다. 따라서 스라야 장군과 함께 미스바 총독부를 방문하여 그다랴 총독에게 그 첩보를 알려 줍니다(렘40:13-14). 그러나 그다랴 총독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를 않습니다(렘40:15-16).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왕족 이스마엘을 견제하지 아니하였기에 그다랴 총독이 그만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렘41:1-2). 이스마엘은 용맹한 부하 10명과 함께 미스바의 총독부를 장악하고 백성들을 끌고 아라비아에 있는 암몬의 망명정부로 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속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렘41:3-10);
(1) 첫째, 왕족 이스마엘은 무장한 심복 10명 그리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과 함께 미스바 총독부에 있는 그다랴 총독의 신하들과 경비를 서고 있는 갈대아 군사를 몰살시킵니다(렘41:3). 완전히 미스바 총독부를 장악하였기에 그들이 그곳을 떠날 때까지 2일동안 아무도 그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렘41:4).
(2) 둘째,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북쪽에 있는 세겜과 사마리아와 실로에서부터 미스바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80명의 순례객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전의 터를 방문하여 다윗왕조가 망한 것을 애통해하고 자신들의 죄를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을 이스마엘은 그다랴 총독에게 안내하는 척하다가 급습하여 70명을 죽이고 10명을 살려줍니다(렘41:5-7). 그 이유는 그 10명이 구명운동을 하면서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양식을 이스마엘에게 바치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렘41:8).
(3) 셋째, 이스마엘이 미스바에서 죽인 유대인들과 갈대아 병사들의 시신을 전부 그곳에 있는 큰 웅덩이에 던져버립니다(렘41:9). 그 웅덩이는 약 300년 전에 유다 왕 아사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바아사 왕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인데 그곳에는 유사시에 백성들이 도망하여 지하에 피신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왕상15:22, 대하16:6). 비상식량과 은신처가 그 웅덩이 안에 설치가 되어 있는데 세월이 흐르자 지금은 큰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그 옛날 동족상잔의 흔적이며 다시 왕족 이스마엘의 반란으로 유대인들의 피가 그곳에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이스마엘은 부하들과 함께 미스바에 살고 있는 유다의 공주와 백성들을 모두 포로로 끌고서 암몬 자손들의 왕이 기다리고 있는 아라비아를 향하여 출발하고 있습니다(렘41:10). 그가 과연 무사히 그곳으로 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과 왕족 이스마엘의 범죄행위를 눈 여겨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때에 사람 80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렘41:4-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때에 사람 80명이”(렘41:4-5a);
1) 주전 586년 여름에 예루살렘성은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불에 타고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황제로부터 유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은 유다의 귀족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는 불타버린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 북서쪽 12km에 위치하고 있는 미스바에 총독부를 세우고 있습니다. 미스바의 중앙에는 총독부가 자리를 잡고 그 주변에는 난민들이 살도록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족인 이스마엘이 그다랴 총독을 암살하고 총독부 건물을 완전 장악하여 철통같이 보안을 유지하였기에 2일 동안이나 그 사건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렘41:4).
2) 이스마엘이 심복 10명과 함께 안가(安家)에서 그다랴 총독 및 고관들과 식사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그들을 모조리 참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가 바깥에 사전에 배치하여 둔 자신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총독부에 있는 유대인들과 갈대아 병사들을 전부 학살해버립니다. 그리고 총독부 건물 주위에 이스마엘은 자신의 군사를 배치하여 백성들의 출입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미스바의 보안에 철저를 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시 주변에 80명의 사람들이 접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렘41:5a).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2)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렘41:5b);
1)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중심도시 3군데의 이름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초기의 도성인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65km북쪽입니다(왕상12:25). ②오므리 왕때부터 수도가 된 사마리아는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11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왕상16:24-28). ③그 옛날 성막이 있었던 장소 실로는 세겜과 예루살렘의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삼상1:9, 3:21, 4:4, 렘7:12).
2)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10지파의 백성들이 앗수르제국의 변방으로 끌려가서 그 족보가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왕하17:1-6, 21-23). 앗수르제국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고토에는 변방의 잡족들을 식민으로 들여보내 살도록 조치를 했습니다(왕하17:24). 그 결과 선민 유대인들은 북쪽의 사람들을 멸망한 북조 이스라엘의 마지막 수도의 이름을 빌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잡족 혼혈이며 여호와신앙이 사라진 이방인과 같은 자들이라는 멸시의 뜻입니다(요4:9).
3)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에 사마리아 땅의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토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①주전 609년에 애굽의 바로인 느고가 앗수르가 신바벨론과 전쟁중임을 틈타 북상하여 시리아 땅과 가나안 북쪽의 땅을 차지합니다(왕하23:29). ②4년 후에는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즉위하여 시리아와 북쪽 이스라엘 땅에 주둔하고 있던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면서 그 땅을 전부 점령합니다(왕하24:1, 렘25:1). ③그러한 격변기를 틈타 시리아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상당수 조상들의 고향을 찾아 사마리아와 세겜 그리고 실로 등에 들어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스4:1-2, 눅9:52-53, 요4:9, 20).
4) 주전 586년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성이 신바벨론제국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망한 다음에 갑자기 사마리아와 세겜과 실로 등지에 살고 있던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이 80명이나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남쪽 예루살렘을 향하여 순례행렬에 나서고 있습니다(렘41:5). 그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같이 죄인의 모습과 복장을 갖추고 있으며 예루살렘성전이 불타버리고 없는데 구태여 그곳을 찾아가서 소제를 드리고 제사장에게 유향을 바치고자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남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그 왕도인 유대인들의 성지 예루살렘이 불타버린 것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후손인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인의 복색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5) 구체적으로, ①그들은 수염을 깎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남자어른의 상징인 수염을 함부로 깎지를 않습니다. 수염을 깎는 드문 경우는 하나님과 조상들에게 죄를 지은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죄인이 된 심정으로 자신들의 수염을 깎고 있는 것입니다. ②옷을 찢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참을 수 없는 통분을 느끼는 경우에 행합니다. 조국이 망했거나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을 때에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성전이 불타버린 것에 공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선민의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모님을 통하여 받은 귀중한 것이므로 함부로 상처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잘 보전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림으로써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자 하는 표시입니다.
6) 앗수르제국이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이스라엘 자손이기에 여러 해 전부터 조상들이 섬기던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고자 순례의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예루살렘성이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불타고 성전마저 무너져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예루살렘성전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그들 순례자들은 속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이한 광경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당한 때부터 남쪽의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한 선민이라고 주장하면서 혼혈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 곧 사마리아인들을 한없이 멸시하고 차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사마리아인들이 아직도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고 순례에 나서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렘41:5).
둘째로,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 그 중의 10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렘41:6-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렘41:6); 여호와에 대한 신앙심이 깊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경건한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그들 앞에 나타나고 있는 유다의 왕족 이스마엘은 참으로 교활한 자입니다. 혹시 그들 북쪽에서 온 순례객 80명이 미스바의 반역사건을 알게 되고 그것을 유다 지방에 전하지나 아니할까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미스바 중앙에 있는 그다랴의 총독부로 유인하여 암살을 하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렘41:6b). 그들을 속이기 위하여 이스마엘은 자신도 예루살렘성전의 소실과 붕괴에 대하여 진심으로 슬퍼한다는 표시로 울면서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렘41:6a).
(2)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렘41:7); 이스마엘이 그들 80명의 순례객들을 데리고 미스바 중앙에 있는 총독부 건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스마엘의 군호에 따라 총독부를 경비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칼을 빼어 그들 순례객들을 포위하고서 한 사람씩 살해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렘41:7a). 마침 미스바의 주위에는 그 옛날 유다 왕 아사가 군사적인 방어목적으로 파 둔 큰 웅덩이 해자가 있습니다. 그 구덩이에 죽은 시신을 사정없이 하나씩 던져버리고 있습니다(렘41:7b).
(3) “그 중의 10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렘41:8);
1) 그 두려운 모습을 보고서 순례객 가운데 10명이 꿇어 앉아 유다의 왕족인 이스마엘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무조건 이스마엘을 주군으로 섬길 터이니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고향 땅 밭 속에 파묻어 깊이 숨겨놓은 비상식량을 공물로 바치고 군사로 따라 나설 것이니 부디 죽이지를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렘41:8a).
2) 그것은 참으로 좋은 조건입니다; ①첫째, 전쟁 직후인지라 가나안 땅에 먹을 양식이 거들이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량미와 양식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은 좋은 조건입니다. ③둘째, 왕족 이스마엘은 백성들을 끌고 아라비아로 들어가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순례객들을 살려서 자신의 군사로 사용하면 그것은 좋은 방안인 것입니다.
3) 그러한 맥락에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렘41:8b)고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마엘이 그들 순례객 10명을 살려서 자신의 군사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형제와 같은 부하를 일부러 죽이는 바보는 없는 법입니다.
셋째로,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렘41:9-10); 역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렘41:9a); 역사적으로 약 300년 전에 유다 왕 아사가 북조 이스라엘 왕국 바아사 왕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북쪽 국경지대인 미스바에 요새지를 만들고 그 주변의 둘레에 인공적으로 큰 웅덩이를 팠습니다(왕상15:22,대하16:6, 렘41:9ab). 나중에는 그 웅덩이 속에 비상식량을 비축하고 대피소로 사용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큰 웅덩이가 왕족인 이스마엘이 자신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하여 암살한 동족들의 시신을 무자비하게 던져 넣는 비극의 장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렘41:9aa).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렘41:9b-10a);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왕족인 이스마엘은 미스바 총독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다음 4가지의 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유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어진 지도자 그다랴 총독을 암살한 것입니다(렘41:1-2).
2) 둘째, 부하들을 시켜 총독부의 관리들과 갈대아 병사는 물론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경건한 사마리아인 70명을 해치고 무조건 항복하는 10명의 재산을 압류하고 자신의 군사로 편입한 것입니다(렘41:3-8).
3) 셋째, 자신에게 반항하는 동족들을 모조리 죽여서 역사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의 상징인 그 구덩이 속에 시신을 던져버린 것입니다(렘41:9).
4) 넷째, 자신의 친척임이 분명한 시드기야 왕의 딸들과 미스바에 살고 있는 동족들을 사로잡아 모조리 굴비 엮듯이 엮어서 강제로 아라비아로 끌고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렘41:10).
(3)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렘41:10b);
1) 유다의 왕족 출신인 이스마엘은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조국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재건하는 것이 왕족인 자신의 과업이며 남은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대업을 이루자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2) 첫째,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여했던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이 모두 멸망을 당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그 자손들의 망명정부의 왕들과 협력을 하여 군사를 기르고 다시 동맹을 부활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맹결성을 하자고 왕족인 이스마엘은 벌써 암몬 자손의 왕인 바알리스와 약조를 하고 있습니다(렘40:14, 41:10b).
3) 둘째, 신바벨론제국의 황제가 임명한 유다 총독 그다랴는 민족 반역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그의 백성들을 빼앗아 아라비아로 끌고가서 유다의 망명정부를 만드는 것이 이스마엘의 목적입니다(렘41:2-3, 10b).
4) 셋째, 외세를 무찌르고 조국을 되찾아 다윗왕조를 재건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메시아적인 사명이므로 그 일에 반대를 하는 자는 모두가 악인이며 민족반역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명분 하에 그는 무자비하게 동족을 살해하고 암살하는 동족상잔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렘41:2-7).
5) 요컨대, 유다 왕족 이스마엘의 행태는 선민 유대인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대왕이 건설한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다시 중근동에 떨쳐 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반대하는 무리들은 동족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 그것은 피조물을 사랑하고 특히 사람의 목숨을 전부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 사랑의 본질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마5:44-48, 막12:30-31, 눅10:33-37). 한마디로, 그것은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황제와 임금의 논리입니다. 악한 영들의 유혹에 시험을 받은 인간들의 탐욕이 빚어내고 있는 비극적인 죄악의 모습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미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이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그것은 앗수르가 망하고 신바벨론이 득세를 하는 과정에서 앗수르의 변방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일부가 은밀하게 고토로 돌아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사마리아와 그 주변에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표자들이 예루살렘성전을 향하여 순례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3) 셋째, 사마리아의 순례객들과 비교할 때, 유다의 왕족인 이스마엘의 행동은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족의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선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가운데 누가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백성인지를 선지자 예레미야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눅10:33-37).
그러므로 아무쪼록 무늬만 선민 또는 성도로 살아가지 말고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그 뜻을 따르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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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강해 제225강(렘41:11-1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11.23 |
예레미야 강해 제223강(렘40:13-41:3)(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2.11.22 |
예레미야 강해 제222강(렘40:7-12)(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2.11.21 |
예레미야 강해 제221강(렘40:1-6)(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