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21강(렘40: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29일(토)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출한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황제의 특명으로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지 아니하고 유다의 신임 총독 그다랴에게 몸을 의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렘40:1-6)
예레미야는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지 말고 화해를 청하는 것이 유다 왕국이 망하지 아니하는 길이라고 동족들에게 외쳤던 선지자입니다(렘27:11, 38:17, 20). 그는 전쟁론자가 아니고 화평론자입니다. 그러한 그가 어째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요?(렘40:1)
그것은 옥석(玉石)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처사임을 하맛 땅 립나에 주둔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가 먼저 깨닫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망한 유다 왕국의 신하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주화파의 존재를 거듭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명문가인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집안이 신바벨론과의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주화론자의 리더입니다. 그들은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지 말고 화해를 하라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외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렘26:24).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나안 땅에 남게 되는 유대인들은 물론 선지자 예레미야의 앞날에 큰 영향을 마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예루살렘 왕궁의 시위대 감옥에 수감이 되어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서 그를 석방하고 또한 그가 원하는 대로 잘 대접하라고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긴급하게 지시합니다(렘39:11-12).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점령하고 왕궁을 접수합니다. 그때 시위대의 감옥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죄인의 몸으로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죄수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북송(北送)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포로들이 벌써 예루살렘 북쪽 8km지점인 라마에 이르고 있습니다(렘40:1). 그때 예루살렘의 현지 사령관이 보낸 전령이 북송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에게 당도합니다. 죄수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를 가려내어 급히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만나도록 조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석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 둘째, 예루살렘에 되돌아온 선지자 예레미야를 만난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다음과 같이 그에게 황제의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의 손에 맡겨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렘40:2-3). ②그러한 사실을 일찍 선포한 바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느부갓네살 황제가 기억하고 현지 사령관인 자신에게 특명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③황제의 명령은 먼저 선지자 예레미야를 석방하고 그 다음에 그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④그러므로 황제의 특명에 따라 자신이 도움을 줄 것이니 어디로 가시고 싶은지 말씀을 하시라는 것입니다(렘39:12).
3) 셋째, 황제의 뜻에 따라 사령관인 자신은 예레미야가 원하면 바벨론으로 안전하게 보내 줄 수도 있으며(렘40:4a), 만약 예레미야가 그것을 원하지 아니하면 이곳을 다스리게 되는 신임 총독 그다랴의 총독부로 보내어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렘40:4b).
4) 넷째, 그 말을 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선택은 무엇일까요?(렘40:6) 예레미야의 결정을 듣고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기뻐하면서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렘40:5). 어째서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가 총독 그다랴를 돕고자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나안 땅에 남게 되는 유대인들이 신바벨론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지 아니하도록 설득하는 일에 예레미야의 선지자활동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그들이 벌써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유다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삼고 있으며 그의 신하들이 그 결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렘39:14, 40:5);
1) 그와 관련하여, 특히 황제의 사위이며 궁중대신인 네르갈사레셀과 그를 도와서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신하들이 그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차제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 총독 그다랴를 도와서 가나안에 남게 되는 유대인들을 잘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라고 입을 모아서 진언하고 있습니다(렘39:13-14). 그들은 예루살렘 현지에서 주화파의 존재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하여 벌써 정보를 수집한 적이 있어서 그와 같은 계책을 황제에게 진언한 것으로 보입니다(렘39:3).
2) 그러한 판단은 갈대아 군대에서 총사령관 네르갈사레셀을 보좌했던 삼갈네부 곧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경우에도 같습니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만나서 황제의 뜻을 전달하면서 그가 원하는 대로 조치를 하고자 합니다(렘39:13-14, 40:4). 바벨론으로 함께 가겠다고 하면 기꺼이 그렇게 돕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생각으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가나안 땅에 남아서 신임 총독 그다랴를 도와 주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렘40: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 봅니다;
첫째로,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렘40: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렘40:1);
1)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태양력으로 주전 586년 7월경에 예루살렘성을 점령합니다(렘39:2). 당시 갈대아 군대의 총사령관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사위이며 궁중대신인 네르갈사레셀입니다(렘39:3). 그때 총사령관을 보좌한 삼갈네부가 그 공로로 현지의 사령관이 되고 황제로부터 귀한 이름 ‘느부사라단’을 하사(下賜)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렘39:3, 9).
2)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황제의 명령으로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에서 전쟁 후의 뒷처리를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예루살렘성과 유다의 성읍을 불태우고 사람들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렘39:8). ②둘째, 신바벨론제국에 앙심을 품을 만한 유대인들을 전부 체포하여 바벨론으로 북송하는 것입니다(렘39:6-7, 9, 40:1). ⑤셋째, 가나안 땅의 포도원과 밭을 경영하고 황제에게 조공을 바칠 수 있도록 도시의 빈민들과 땅이 없는 농민들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넓은 땅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렘39:10). ④넷째, 가나안 땅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또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가 명령하는 바를 시행할 수 있도록 총독부를 세우는 것입니다(렘39:13-14, 40:5).
3) 그 가운데 본문과 관련이 되고 있는 것은 두번째와 네번째의 항목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왕궁의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을 갈대아 군대는 전부 위험한 인물들로 판단하여 바벨론으로 북송 중에 있는데(렘40:1a). 갑자기 하맛 땅 립나에 주둔하고 있는 황제로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급보가 날아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죄수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서 그를 보호하고 선대하라는 것입니다(렘39:11). 특히 예레미야가 신임 유대인 총독 그다랴를 도와서 가나안 땅에 남게 되는 유대인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 주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것입니다(렘39:14)”.
4)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급하게 조치를 취하였기에 예루살렘에서 8km북쪽에 있는 라마를 지나고 있던 예레미야가 포로의 행렬에서 풀려납니다(렘40:1b). 그는 북송이 되지 아니하고 반대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어째서 예레미야 자신을 석방하고 또 어떤 요청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면서 그 점이 궁금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 그 답을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으로 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남아서 총독 그다랴를 도와 유다의 남은 백성들을 돌보라고 하시는 말씀을 그에게 준 것으로 풀이가 됩니다(렘40:1c).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렘40:2);
1)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특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먼저 서두(序頭)를 다음과 같이 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이 재난 가운데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렘40:2). 그 말은 지난 40년간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선포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2) 그러므로 느부사라단 사령관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를 미워하지 말고 부디 그를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과연 예레미야가 느부갓네살 황제를 위하여 가나안 땅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 속내를 선지자 예레미야는 벌써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짐작하고 있습니다(렘40:1c).
둘째로,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렘40:3-4);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렘40:3);
1) 신바벨론제국도 유다 왕국과 동일한 범죄를 여호와 앞에 범하게 되면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렘40:3).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시고 유대인들에게는 멸망의 역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그는 유대인들보다 신바벨론이 더 의롭고 선하다는 근거로 받아 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렘25:11, 40:3).
2)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신바벨론제국이 선하고 의로워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멸망의 순서가 바벨론이라고 하는 경고를 벌써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렘25:12). 이제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였으므로 70년 이내에 신바벨론제국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렘25:11-12).
3) 그리고 그 뒤를 다른 이방나라들이 줄줄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렘25:29). 그러한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를 유다 왕국의 역사를 통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에 불과합니다(렘25:11-12). 요컨대, 모든 이방나라와 민족들에게 선례가 되는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가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먼저 주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25:29).
(2)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렘40:4a);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한 느부갓네살 황제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렘39:11-12). 따라서 그를 자신의 휘하에 두고 있다가 나중에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황제에게 소개하면서 차제에 자신도 황제의 칭찬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잘 돌보아 주라는 황제의 특명을 제대로 수행했으니 틀림없이 황제의 칭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자신과 같이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본문에서 제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렘40:4a).
(3)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렘40:4b);
1) 그렇지만 느부갓네살 황제의 명령은 무조건 선지자 예레미야가 원하는 대로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그가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겠다고 하면 그것을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점에 유의하면서 느부사라단 사령관은 예레미야에게,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렘40:4b)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는 어떠한 마음의 결정을 할까요?
2) 바벨론이냐? 아니면 가나안 땅이냐? 양자택일 가운데 아무래도 전자가 아니고 후자일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동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사령관 느부사라단도 역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부탁한 옛날 상관 궁중대신 네르갈사레셀의 전언을 참조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신임 가나안 총독 그다랴에게 보내어 그를 돕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입니다(렘39:13-14). 따라서 예레미야가 미처 말문을 열기 전에 그가 먼저 선수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렘40:5).
셋째로,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김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렘40: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김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렘40:5);
1)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본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기 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의미심장한 말이 먼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고 있는 본심입니다; “그것은 신임 유다 총독인 그다랴에게 가서 그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렘40:5a).
2) 그렇지만 황제의 명령에는 예레미야가 선택하는 대로 무조건 도와 주라고 하시니 자신은 예레미야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력을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렘40:5b).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인사치례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총독 그다랴에게로 가서 남은 유다의 백성들을 잘 돌보겠다고 답변을 하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너무나 기뻐하면서 많은 길양식과 선물을 예레미야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렘40:5c).
(2)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렘40:6);
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가나안에 남겨지는 백성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해주기를 원하십니다(렘42:10-12).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을 진작에 알고 있는 예레미야는(렘40:1) 유다 땅 미스바에 세워지고 있는 그다랴 총독의 관저로 가서 그를 돕고자 합니다(렘40:6). 그러나 몇 년 후의 역사는 예레미야의 의도와는 달리 전개가 되고 맙니다.
2)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을 이방 강대국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를 불러서 멸망시키신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남은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그들을 여호와신앙으로 바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렘42:10). 그 일을 위하여 주화파 집안의 아들인 그다랴를 유다의 총독으로 삼고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그를 돕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그러나 훗날 유대인 저항세력이 나타나 미스바의 총독부를 치고 친(親) 애굽 사대주의자들이 나타나 저항세력을 분쇄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그의 제자인 서기관 바룩을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과 함께 애굽의 난민촌으로 끌고 갑니다(렘43:4-7).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곧 가나안 땅에 머물 것이며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애굽을 치시는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대언하게 하십니다(렘42:13-17, 44:1-30).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여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의 백성들을 여호와신앙 위에 바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주화파 가문의 계승자인 유다 총독 그다랴와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하여 미스바에서 전개가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것이 여호와의 뜻인 줄 알고 그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렘40:6). 그러나 훗날의 역사는 그의 뜻과는 달리 유대인 저항세력이 나타나 유다 총독 그다랴를 암살하고 친(親) 애굽 사대주의자들이 나타나 저항세력을 분쇄하면서 유다 백성은 물론 예레미야마저 애굽으로 끌어가고 맙니다.
그에 따라 장차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애굽제국의 멸망과 신바벨론제국의 멸망 그리고 기타 이방나라와 민족들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애굽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시면서 대선지서 예레미야를 계속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미스바의 위치; 예루살렘 북쪽 12km지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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