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20강(렘39:11-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19. 20:28

예레미야 강해 제220(39:11-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28()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지만 가나안 땅에 남은 유대인 천민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느부갓네살 황제를 통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시는가?(39:11-18)

 

느부갓네살 황제가 그 목숨을 살려서 가나안 땅에 여전히 살 수 있도록 해주라고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을 하고 있는데 그 부류가 세가지입니다;  

(1)  첫째, 선지자 예레미야로 대표가 되고 있는 주화파(主和派) 인사들입니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황제의 특명으로 석방이 되고 신임 유다 총독으로 내정이 된 주화파 그다랴의 도움을 받도록 되었다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39:11-14). 그것은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뜻에 따라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에게 저항을 하지 말고 무조건 항복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을 했던 선지자 예레미야나 그를 지지한 유다의 주화파 신하들을 전후(戰後)에 신바벨론의 황제가 구별하여 선대해주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둘째, 이미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이방인 출신 노예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종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에 대하여 적대감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전후에 해방을 시키고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진작에 그에게 전달한 예언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39:15-18).

(3)  셋째, 유다의 성읍에 아무런 재산이 없이 품꾼이나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1)    그들 무산자(無産者)인 품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본문의 바로 앞에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벌써 취해지고 있습니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39:10).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유목민으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레갑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35:19).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요나답의 후손인 레갑 사람들이 벧학게렘 지방 곧 예루살렘 남쪽 4km에서 드고아 북쪽 2km까지의 포도원과 목축지역에서 번성하였는데 그와 같은 사실을 느헤미야의 기록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문(糞門, the Dung Gate, 예루살렘성 남쪽 문의 하나)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3: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궁중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39:11-14);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39:11-12);

1)    예루살렘성을 갈대아 군대가 점령하자 느부갓네살 황제는 전후의 뒷처리를 담당하는 현지의 사령관으로 느부사라단을 임명합니다(39:9-10). 그리고 총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궁중장관 네르갈사레셀과 고관들을 전부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둔하고 있는 하맛 땅 립나로 불러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39:3, 5). 그러한 때에 황제로부터 특명이 급하게 현지 예루살렘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에게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39:11).

2)    급한 지시의 내용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감옥에서 석방하고 그를 해치지 말며 그가 원하는 대로 선대를 하라는 것입니다(39:12). 그 명령을 받은 사령관이 즉시 부하에게 선지자 예레미야의 소재를 파악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왕궁의 감옥에 수감이 되어 있던 죄수들이 전부 사슬에 묶여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40:1).

3)    깜짝 놀란 사령관은 즉시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북쪽 8km지점 라마에서 풀려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갈대아 군대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을 만나게 됩니다(40:1-2). 과연 사령관은 예레미야에게 어떠한 특혜를 주고자 하며 예레미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40:4-6)

(2)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궁중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39:13-14a); 이 구절은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주둔하고 있는 하맛 땅 립나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관련하여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예루살렘을 점령한 갈대아 군대의 총사령관은 궁중장관인 네르갈사레셀이며 그를 보좌하는 부사령관이 삼갈네부이고 그들 사령부의 움직임을 감찰하는 황제의 사람이 내시장 살스김입니다(39:3). 전쟁이 끝나고 유다의 군대가 해체가 되었으므로 더 이상 많은 갈대아 군대를 예루살렘에 주둔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황제는 부사령관 삼갈네부를 현지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이름을 느부사라단으로 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39:9).

2)    그리고 총사령관인 황제의 사위 네르갈사레셀은 내시장을 비롯한 여러 고관들과 함께 예루살렘성에서 체포한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여리고 평지에서 사로잡은 시드기야 왕을 모두 이끌고 황제가 머물고 있는 하맛 땅 립나로 올라오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39:4-5). 그곳에서 황제는 친국을 하면서 왕자들과 주전파(主戰派) 유대인 고관들을 처형합니다(39:6). 시드기야 왕은 소경으로 만들어 바벨론으로 압송하게 합니다(39:7).

3)    그와 달리 신바벨론의 황제는 주화파(主和派) 유대인 고관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선대합니다. 그 과정 중에 유대인 주화파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왕궁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황제는 급히 사자를 보내어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서 그를 보호하고 적극 도와주라고 지시합니다(39:11-12).

4)    그러자 황제의 곁에 시립하고 있던 궁중장관 네르갈사레셀을 비롯한 바벨론의 고관들이 하나같이 친 바벨론 선지자인 예레미야로 하여금 신임 유다 총독인 그다랴를 돕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허락을 얻어서 그렇게 조치하도록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현지의 감찰 내시장인 느부사스반에게 사람을 보내어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39:13-14).

(3)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39:14b);

1)    사반의 아들인 아히감이 예레미야 당시에 주화파 신하들의 수장입니다. 그의 가문은 예루살렘에서 유명합니다. 성군 요시야가 신임한 서기관이 사반인데 그의 아들인 젊은 아히감이 요시야 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22:3, 12). 따라서 성군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차례로 유다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있던 시대에도 예루살렘의 권문세가인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집안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유다 왕국의 원로이며 주화파의 수장인 아히감이 여호야김 왕의 살해위험에서부터 선지자 예레미야를 은근히 보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6:24).

2)    시드기야 왕 때에 주화파 신하들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멀지 않아 주전파의 강경한 반() 바벨론 정책으로 말미암아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25:1-11, 37:6-10). 따라서 시드기야 왕에게 읍소를 하면서 부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화친을 요청하라고 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주화파의 세력은 약하고 주전파의 세력은 강하여 시드기야 왕이 세력이 우세한 쪽의 손을 항상 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38:1-6).

3)    그러므로 주화파 신하들은 조국이 멸망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이 좋은지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두가지 방책으로 보입니다; ①하나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신바벨론제국으로 피신시켜서 후일을 도모하게 합니다. ②또 하나는, 유다 왕국을 신바벨론이 점령하게 되면 그 땅에 남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총독의 자리를 자신들의 다음 세대에게 달라고 교섭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그리고 네르갈사레셀 등 신바벨론의 권신들의 찬성으로 가나안 땅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9:14ba).

4)    그런데 주화파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과 제휴를 해야만 한다는 현실론이 선민우월사상에 입각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이상론보다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에 의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초래가 된다는 사실을 여호와의 예언으로 선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선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5)    그와 같은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신임 총독 그다랴를 도와서 가나안 땅에 남게 되는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함께 이끄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정치적인 계산과는 별도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사랑으로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그다랴의 총독부가 자리를 잡고 있는 미스바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어루만지면서 함께 여호와를 바라며 영원한 구원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39:14bb).  

둘째로,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39:15-1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39:15-16a);

1)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전파 신하들의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 왕궁의 뜰에 있는 내금위 지하감옥에 던져져서 아사(餓死)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시드기야 왕에게 진언하여 적극적으로 예레미야의 구명운동을 한 인물입니다(38:6-9). 그 결과 시드기야 왕의 허락을 얻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근위대와 함께 지하감옥으로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출하여 시위대의 뜰에 있는 일반감옥에 이감하고 예레미야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게 됩니다(38:10-13, 37:21).

2)    물론 여호와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을 통하여 선지자 여호와를 구해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일꾼이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는 왕을 섬기는 종이기 이전에 여호와를 섬기는 종입니다. 그 일을 기억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일반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에벳멜렉의 장래일에 대하여 예언하시면서 그 말씀을 당사자에게 전해주라고 하십니다(39:15-16a).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39:16b);

1)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살아 생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39:16b). 그러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수감중인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에게 전해주게 됩니다(39:15-16a).

2)    그 뜻은 이 세상의 종말이 오듯이 그 선례로서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종말이 이 세상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과 같은 사람들은 그 전란과 여호와의 재앙 가운데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세상사람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다음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예언하고 계십니다.

셋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39:17-1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39:17-18a);

1)    여호와께서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고 두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재차 강조가 되어 있으므로 그 예언의 말씀은 확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벳멜렉은 반드시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를 구원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2)    그것은 두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전란 가운데 칼에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목숨 뿐만 아니라 마치 영혼까지 멸하는 것처럼 다가오고 있는 그 공포 가운데서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가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에게만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믿음을 파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음 구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  네가 노략물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39:18b);

1)    한마디로, 누구나 여호와를 경외하며 창조주의 전능하신 능력을 인정하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로부터 놀라운 구원의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39:18b, 15:6).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    첫째, 피조물인 사람은 유한한 목숨을 가지고 한시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누리시는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생을 얻고자 하면 그것은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4:26, 21:33).

3)    둘째, 영생의 선물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얻기 위해서는 피조물인 사람이 두가지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야만 합니다; ①하나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해야만 합니다(15:6, 18:27). ②또 하나는, 그 선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친히 사람들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19:23-27, 110:1-7, 17:3, 4:12).

4)    셋째,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 그 뜻을 먼저 받드는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간 사람에게는 피조물이 누릴 수가 없는 하나님의 속성인 영생의 구원이 그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삼상2:29-30). 그것을 놀랍게도 본문에서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얻을 수가 있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례입니다. 이제 에벳멜렉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누구나 동일한 구원의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노략물이라는 용어가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전쟁으로 멸망을 당하는 과정에 있어서 여호와의 예언에 따라 구원을 얻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선지자 예레미야와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임금을 섬기는 왕의 종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동족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그 마음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12:30-31).

그와 같은 사실을 기억하면서 본문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끝까지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