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18강(렘39: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26일(수)
열왕기하 제25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에 관한 기록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다시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렘39:1-5)
히브리정경에서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멸망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①첫째가 열왕기하 제25장이고, ②둘째가 역대하 제36장이며, ③셋째가 예레미야 제39장입니다. 그 기록의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열왕기의 기록은 그 이름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왕들의 기록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다윗대왕이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고 그에게 이스라엘제국을 넘겨준 이야기와 솔로몬의 이스라엘제국의 경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솔로몬대왕의 후계자 르호브암 왕 때에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윗왕조를 버리고 독립하여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건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초대 왕 여로보암1세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왕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들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셋째, 다윗왕조의 세번째 왕인 르호보암은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윗왕조를 버리고 분리하여 독립이 되고 나자 남쪽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인들로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계속 통치하게 됩니다.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계속이 되다가 시드기야 왕 11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열왕기는 유다 왕국의 왕들의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역대기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망국마저 외세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다음에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기록한 역사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정통성을 다윗왕조와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체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역대상 제1장부터 제8장까지에는 다윗왕조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①먼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②그 다음에 약속의 아들 이삭의 형인 이스마엘의 족보와 야곱의 형인 에서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③그 다음에 유다의 자손들의 족보를 기록하는데 특히 다윗의 가계를 중심으로 적고 있습니다. ④끝으로, 기타 이스라엘 지파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특히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의 가계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역대상 제9장에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을 기록하면서 유다 자손, 베냐민 자손, 레위 자손으로 적고 있습니다. 참고로, 베냐민 지파의 족보에 사울 왕의 가계가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대상9:35-44).
3) 셋째, 역대상 제10장부터는 다윗왕조의 성립과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먼저 이스라엘왕국의 초대왕인 사울의 전사(戰死)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록한 다음에 다윗이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것도 다윗왕조를 도운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그리고 기타 지파의 순서로 적고 있습니다(대상 12장). ②그리고 다윗왕조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역할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대상24-26장). ③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하고 성전건축을 지시하는 다윗왕의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역대상이 끝나고 있습니다.
4) 넷째, 역대하에서는 예루살셈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 시대, 북쪽 지파들의 배반(대하 10장), 그리고 르호보암의 남조 유다 왕국의 흥망성쇠의 과정을 다윗왕조의 왕들의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11-36장).
(3) 셋째로, 본문을 포함하는 예레미야 제39장 제1-10절에서는 열왕기하 제25장의 기록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을 다시 적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역사가 성취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살아간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 결과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9년 10째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 제11년 4째달 9째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렘39: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9년 10째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렘39:1);
1) 고대 유대인 달력으로 유다 왕 시드기야 9년 10월이므로 그것을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주전 587년 1월에 해당합니다(렘39:1a, 출12:1-3). 그때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시드기야 왕의 유다 왕국을 침략합니다. 그가 원정에 나선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여호야긴 왕의 유다 왕국을 쳐서 항복을 받고 예루살렘의 보물을 전부 약탈하였으며 다시는 반항을 할 수 없도록 여호야긴 왕과 귀족들은 물론 유다의 군사 1만 명과 장정들 그리고 기술자 1천 명을 바벨론으로 끌고가고 맙니다(왕하24:10-16). 그러나 4-5년이 지나자 유다 왕국이 애굽의 바로가 주도하고 있는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가하고 바벨론으로 가는 조공은 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왕하24:20).
2) ②또 하나는,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 가면서 친 바벨론 괴뢰정권의 수장으로 요시야 왕의 막내 아들인 왕자 맛다니아를 유다 왕 시드기야로 책봉하였는데 괘씸하게도 시드기야가 애굽을 믿고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도저히 그 배신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착실하게 4년간이나 군비를 확충하여 드디어 주전 587년 초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끝장내기 위하여 출전한 것입니다(왕하25:1). 강력한 갈대아 군대의 위용 앞에 유다 왕국의 병사들이 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수도인 예루살렘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서남방의 요충지인 라기스와 아세가에서만 저항을 계속하고 있을 뿐 나머지 유다의 성읍들이 모두 적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맙니다(렘34:7).
3) 시드기야 왕은 주전파 신하들과 함께 정예병을 모아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용맹무쌍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라고 하지만 무려 780m의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동서남 삼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입니다. 다소 완만한 북쪽면에서 공격을 시도하려고 해도 그 위에 버티고 있는 예루살렘의 성곽이 너무 견고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퍼붓고 있는 화살과 뜨거운 물 그리고 돌과 통나무 등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대아 군대는 참호를 파고서 그 위에 토성과 같은 엄폐물을 쌓으면서 아주 조금씩 위로 전진할 수밖에 없습니다(렘39:1b, 왕하25:1).
4) 보통 평지의 성을 점령하는데 있어서도 공격하는 군사가 방어군에 비하여 3배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을 정복하는데 있어서는 그 몇배의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승패를 쉽게 점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때에 애굽의 바로가 동맹군을 이끌고 갈대아 군대의 배후를 노리고 북상을 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작전상 후퇴라는 용단을 내리고 맙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37장에서 다른 역사서와 달리 특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렘37:5, 11).
(2) “시드기야 제11년 4째달 9째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렘39:2);
1) 애굽의 바로가 구원병을 몰고 북상을 하였기에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잠시 유다 왕국의 바깥으로 물러납니다. 그것을 보고서 예루살렘성의 주전파 신하들은 그들이 전쟁에서 완전히 이긴 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작전상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을 완전한 철수이며 다시는 침략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성이나 유다 지방의 성읍에는 먹을 양식이 턱없이 부족하여 애굽의 군대나 동맹군들이 유다 왕국에 주둔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구원병들이 곧 철수를 하고 맙니다(렘37:7). 유다 왕국은 다시 강한 적들 앞에 취약한 상태로 노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37:8).
2) 다윗왕조의 왕인 시드기야가 주전파 신하들 곧 애굽의 바로를 크게 의지하고 있는 매파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렘38:5-6, 19).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승패는 세상의 일시적인 구원병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출17:9-16). 창조주를 경외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신실하게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면 다윗왕조를 여호와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하지만 시드기야 왕과 주전파 신하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더라도 애굽과 반(反) 바벨론 동맹이 도와주면 얼마든지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를 물리칠 수가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3) 그것이 망할 장본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있는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에게 격노하신 여호와께서는 잠시 물러난 갈대아 군대를 다시 불러서 기어코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을 끝장을 내고 마시는 것입니다(대하36:12-20). 제37장 제6-10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현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시드기야 제11년 4째달 9째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렘39:2)라는 예례미야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렘39: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렘39:3a);
1) 시드기야 왕 11년 4월이 되자 예루살렘성에서 양식이 전부 떨어지고 맙니다(왕하25:9). 군사들이 먹지 아니하고서는 전투를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굶어 죽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제 때 초상을 치르지 못하여 그만 전염병이 성내에 창궐하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전투의지를 상실하고 적에게 투항하는 유대인 병사들이 늘어납니다. 그 결과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성이 그만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고 맙니다.
2) 물밀듯이 베냐민 문으로 밀려들고 있는 갈대아 군대의 뒤를 따라 신 바벨론제국의 사령관들이 예루살렘성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북쪽에 있는 높은 성곽 곧 중문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렘39:3a). 고대사회에서는 성의 가장 큰 문이 있는 그 중문의 위에 고위 관리들이 앉아서 회의와 재판을 시행합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하들이 재빨리 예루살렘성을 점령하고 전범(戰犯)들을 그곳에서 일차 재판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렘39:3b);
1) 예루살렘성이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에게 함락이 된 때가 주전 586년 4월 9일인데 그 날은 태양력으로는 7월 9일입니다. 여름철이므로 예루살렘 근방은 덥습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공기가 좋고 시원한 갈릴리 동북면 하맛 땅 립나에 주둔을 하고 있습니다(렘39:5). 그에 따라 예루살렘성으로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먼저 입성한 자들은 황제가 아니고 그의 신하들입니다.
2) 그 가운데 총사령관이 ‘네르갈사레셀’인데 그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큰 사위입니다(렘39:3b). 그가 황제의 사위가 될 수 있는 배경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그의 집안이 신바벨론제국에서 유력한 가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당사자인 네르갈사레셀이 문무에 뛰어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갈대아 원정군의 총사령관이면서 동시에 궁중장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렘39:3b). 훗날 그는 손아래 처남인 황제 에윌므로닥을 치고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왕하25:27).
3) 총사령관을 보좌하고 있는 장군의 이름이 ‘삼갈네부’입니다(렘39:3b). 그는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킨 공로를 인정 받아 사령관이 되고 전후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에 대한 모든 뒷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삼갈네부’가 진급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렘39:9-10, 13). 느부갓네살 황제는 원정군의 지휘를 사령관과 그 보좌관에게 맡기고 있지만 항상 그들을 감찰하는 황제의 내시부의 심복을 동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내시장 ‘살스김’입니다(렘39:3b). 그리고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는 내시장 ‘느부사스반’을 붙이고 있습니다(렘39:13).
4) 그것은 원정군이 제멋대로 회군하여 황제를 치는 반역을 도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내시장 ‘살스김’과 ‘느부사스반’ 가운데 누가 더 고위직인 환관장일까요? 일설에서는 바그다드 인근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주전 595년경 바벨론 사원에 거액의 금을 기부한 환관장의 이름이 ‘살스김’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그가 더 고위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살스김 이전 주전 605년경 신바벨론의 환관장의 이름은 다니엘의 기록에서 ‘아스부나스’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단1:3).
셋째로,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렘39:4-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렘39:4);
1) 유다 왕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성을 사수하면서 갈대아 군대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시상황에서 왕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내의 양식이 바닥이 나자 유다의 병사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적군에게 투항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4월 9일 한밤중에 자신의 근위대만 이끌고 은밀하게 예루살렘성을 빠져나갑니다. 왕이 도망을 친 경로를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렘39: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①첫째, 예루살렘성 남동쪽에 기혼 샘이 있으며 그 주변에 왕의 동산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②둘째, 시드기야 왕과 근위대는 야음을 틈타 분문의 샛문을 이용하여 성을 벗어나 동산의 나무 사이로 몸을 숨깁니다. ③셋째,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만나고 있는 그쪽으로 탈출을 하고 있습니다. ④넷째, 북쪽에서 쳐들어온 갈대아 군대이므로 그들은 남쪽 아라바 계곡을 향하여 도망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 탈출이 성공할 수가 있을까요?
(2)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렘39:5a);
1) 무려 2년에 걸쳐서 예루살렘성을 공격하느라고 엄청난 희생을 치룬 갈대아 군대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유다 왕 시드기야에 대하여 원한이 깊습니다.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자 그들은 시드기야 왕을 체포하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음을 타고서 일단의 무리가 남쪽의 작은 샛문으로 빠져 나와 숲에 몸을 숨기면서 남쪽 아라바 황무지로 도망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근위대로 보입니다.
2) 따라서 갈대아 군대가 죽기 살기로 그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한 무리로 도망을 치면 모두가 잡힐 것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은 두 패로 나누어 도망을 치면서 자신은 길을 돌이켜 북동쪽 여리고로 향합니다. 그러나 발이 빠른 갈대아 군대를 완전히 따돌리지 못하고 결국은 여리고 평원에서 사로잡히고 맙니다(렘39:5a). 이제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요?
(3)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렘39:5b);
1) 가나안 땅의 북쪽에는 갈릴리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의 물은 북동쪽에 있는 높은 산 ‘헬몬’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헬몬 산 아래에는 골란고원이 있는데 고온다습(高溫多濕)한 기후 덕택에 우림지역(雨林地域)입니다.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가 발생하고 풍부한 수자원이 생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가나안 땅의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서늘한 골란고원의 남부 하맛 땅 립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2) 마침내 예루살렘성을 함락하였다는 낭보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유다 왕 시드기야를 사로잡았다는 쾌보까지 도달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왕과 왕족들 그리고 귀족들을 모두 립나로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들 전범자들을 엄하게 친국(親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렘39:5b)라고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고대사회에서는 황제가 거처하고 있는 그곳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따라서 ‘올라가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그의 선지서에 가장 먼저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식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나 선민 유대인들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는 역대기보다 더 먼저 기록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가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40년간이나 동족들에게 선포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일점일획(一点一劃)의 틀림도 없이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 그 역사가 성취된 사실을 대조하면서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명심하고서 믿음 가운데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신바벨론 왕가의 족보)
(옛성 예루살렘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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