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를 보는 눈

한국은 힘있는 게임어가 될 수 있는가?(작성자; 손진길 박사)

손진길 2020. 10. 19. 01:00

제목; “한국은 힘있는 게임어가 될 수 있는가?

작성일; 주후 20201019()

작성자; 손진길 박사(정치학)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게임어(gamer)는 두가지 종류로 분류가 될 수 있다. 하나는, 핵무장을 하고 있는 게임어들이다. 그들은 힘이 있는 게임어이다. 또 하나는, 핵무장을 하고 있지 못한 게임어들이다. 그들은 별로 힘이 없는 게임어이다.

구체적으로, 두가지 종류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전자와 후자 사이의 게임은 가능한 것일까? 한반도의 위기상황과 관련하여 그 점을 따져보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기본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행동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손해가 막심할 것이다.

먼저 핵무장을 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의 게임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핵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상호보복능력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다고 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누가 먼저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하더라도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가 없다. 상대국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사용하여 금방 보복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약간의 시간의 차이를 두고서 결국은 두나라가 모두 지상에서 사라지는 운명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서로 군사적으로 위협만 가하는데 그치고 있다. 실제로는 군사적인 모험을 감히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전쟁 억제력이다. 결국, 핵무장을 하고 있는 양국 사이의 게임은 일종의 치킨게임에 불과할 따름이다.

둘째로, 핵무장을 하고 있는 양국 사이에서는 군사적인 대결에 제동이 걸리고 있으므로 다른 방법으로 서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이 두가지인데 하나는 역사적으로 나타난 바가 있고 또 하나는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군사대결 대신에 경제적인 대결을 선택하는 것이다. 서로가 핵무장을 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자신의 핵무기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가 없다. 나아가서 자신의 핵무기로 상대방을 위협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없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핵무기가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사는 군사, 경제는 경제라는 이분법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에 미국과 소련이 서로 체제경쟁을 하다가 소련이 국가부도를 맞이하여 그만 연방이 해체가 되고 말았다. 결국 소련이 사라지고 러시아연방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선례가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패권국 미국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신흥 강대국인 중국에 대하여 강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것이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둘째, 상대국을 고립시키고 내부붕괴를 유도하는 것이다. 상대국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을 모두 포섭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인도, 아세안, 일본, 남북한, 몽골 등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장차 남북한 관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내부붕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상대국 체제에 대한 불안요인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권에 대한 탄압,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경제활동에 대한 불합리한 정부의 간섭 등이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의 원초적인 자유와 개방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게 되면 권위주의적인 봉건체제는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핵무장을 못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 있어서는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군사적인 대결은 어느 일방이 먼저 핵무장을 하게 되면 더 이상 계속될 수가 없다. 핵공격을 받게 되면 회복할 수가 없는 처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어의 지위를 상실하고 만다.

어떻게 하면 계속 게임어가 될 수가 있는가?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체제경쟁의 상대국이 핵무장을 하고 있다면 자국도 안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리고 힘이 있는 게임어가 되기 위하여 핵무장을 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이웃 강대국의 핵우산을 빌려서 게임어가 되고자 시도를 한다면 그 앞날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두가지 폐해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는, 핵우산의 혜택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공짜가 아니다. 핵우산 제공국의 속국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단 속국의 처지가 되고 나면 더 이상 힘이 있는 핵무장국가들 사이의 게임에 참여할 수가 없다. 자국의 안보적인 상황과 미래의 국가발전 어느 하나 자신의 힘으로 결정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또 하나는, 상대국과 핵우산 제공국이 서로 게임어가 되어서 협상을 벌이는 테이블에서 제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이 달린 협상이므로 게임어로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핵무장을 하고 있지 못하므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약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자비로운 국가란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게임어의 지위가 확연한 것이 국제사회이다. 그런데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안타깝게도 자국의 경제적인 실력이 미국과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핵무력을 완성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북한의 위협을 대수롭지 아니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고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며 한국을 위하여 대신 게임어가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면 1970년대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국이 월남을 버리지 아니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미국은 월맹과 협상하여 월남에서 과감하게 철수하고 만다. 그 대신에 남하하는 중공의 세력을 통일 베트남이 대신 막아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개방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에게 호의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핵무장을 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국제사회에서 결코 힘이 있는 게임어(gamer)가 아니다. 북한에 비하여 수십배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당당하게 게임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을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한국의 미래를 자력으로 개척해 나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