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14강(렘3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22일(토)
시드기야 왕 10년에 주전파 신하들이 시드기야 왕에게 주청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어떠한 죽음의 위기에 내몰고 있는가?(렘38:1-6)
본문의 앞에 있는 제37장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주전파 신하들이 주화파의 입장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변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탄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박해할 수 있는 이유는 백성들의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전 588년말 곧 유다 왕 시드기야 9년말까지 변함없이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왕조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석고대죄를 하고서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모두 바벨론 포로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25:1-11).
그에 따라 원로 아히감과 그마랴를 비롯한 서기관들로 구성이 된 주화파 신하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지지하면서 시드기야 왕에게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지 말고 항복을 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보전하자고 진언하고 있습니다(렘26:24, 36:25). 하지만 그들은 소수의 세력입니다.
더구나 시드기야 왕 9년에 쳐들어온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국 바깥으로 물러가고 맙니다(렘37:5, 11). 왜냐하면, 애굽의 바로가 이끄는 동맹군에 의하여 갈대아 군대의 배후가 공격을 당할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주전파 신하들이 쾌재를 부르며 득세를 하게 됩니다.
선민 유대인들도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그를 배척합니다. 예레미야는 작전상 후퇴한 갈대아 군대가 재침할 것이며 그때에는 애굽의 구원병이 오지를 못하고 조국이 망하게 된다는 구체적인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외치지만 그것은 헛된 메아리가 되고 맙니다(렘37:6-10).
그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평소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집안의 원한을 가지고 있는 하나냐의 손자 이리야가 거짓 죄목을 만들어 예레미야를 체포하고 그 신병을 주전파 신하들에게 넘겨버립니다(렘37:13-14). 그 결과 예레미야는 그들의 비밀감옥에 갇혀서 아사(餓死, 굶어서 죽는 것)의 위기에 내몰리게 됩니다(렘37:15-16, 20).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움직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해 주십니다(렘37:16-17). 시드기야 왕은 전란이 끝날 때까지 예레미야를 예루살렘 왕궁의 뜰에 있는 시위대의 알반감옥에 수감을 하고 빵과 물을 공급하도록 조치를 합니다(렘37:21).
그러나 본문에 들어오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렘38:1-6). 주전 587년 곧 시드기야 왕 10년에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과 같이 갈대아 군대가 재침을 한 것입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불안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주전파 신하들의 입지가 줄어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강수(强手)를 두고 있습니다(렘38:1).
스바댜를 위시한 주전파 권신(權臣)들이 시드기야 왕에게 몰려와서 전쟁의 위기 가운데 국론이 분열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빨리 선지자 예레미야를 처형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청하고 있습니다(렘38:1-4). 예레미야가 왕궁의 뜰에 있는 감옥에 갇혀서도 계속 백성들에게 전쟁을 하지 말고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을 하여 유다 왕국을 보전하라고 외치고 있으니 그것이 이적(利敵,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렘38:2-3).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정책결정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주전파와 주화파 신하들 가운데 어느 쪽의 세력이 더 큰지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언제나 매파의 목소리가 비둘기파의 목소리보다 더 큰 법입니다. 더구나 다윗왕조에 있어서는 선민우월사상이 남아 있어 이방인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 왕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자신도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하면서 그를 왕자 말기야가 관장하고 있는 내금위(內禁衛)의 지하감옥에 던져 넣고 음식을 주지 말도록 조치하고 마는 것입니다(렘38:5-6). 다시 한번 완벽하게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여호와깨서는 이제 어떠한 방법으로 그를 다시 살리실까요?(렘38:7-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렘38: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렘38:1);
1) 시드기야 왕 9년말에 일단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국에서 물러나자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전파 신하들에게 잡혀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렘37:11-16). 그때 여호와께서는 시드기야 왕을 움직여서 그를 구출하여 왕궁의 뜰에 있는 시위대의 일반감옥에 수감합니다(렘37:21a). 그리고 왕명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받게 합니다(렘37:21b). 그 은혜를 알고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서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열심입니다(렘38:1b). 그 소식을 주전파 신하들이 듣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자신들과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주화파를 지지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다음해가 되자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가 다시 쳐들어 와서 단숨에 유다 왕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애굽의 바로가 신속하게 구원병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가 타고 있는 주전파 신하들은 일단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부터 봉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 효율적으로 갈대아 군대와 대적을 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왕궁의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해치우고자 시드기야 왕을 배알하고 있는 것입니다(렘38:1). 그들 주전파 신하들의 대표자 4명의 이름이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렘38:1a). 그들 4명은 과연 누구일까요?
3) 첫째, 맛단의 아들 스바댜가 주전파 신하들의 수령으로 보입니다. 그들 주전파는 애굽의 바로가 이끄는 반(反) 바벨론 동맹의 힘을 의지하여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를 물리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뿌리는 애굽의 바로가 유다의 왕으로 세운 여호야김을 도와준 가문들입니다. 그 가운데 예루살렘성의 명문가인 맛단의 집안에서 스바댜가 시드기야 왕 때에 애굽을 섬기는 사대주의 세력의 수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해에 예루살렘성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자 적에게 붙잡혀서 립나로 끌려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참살이 되고 맙니다(렘39:6).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 시대에 스룹바벨과 함께 대부분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에스라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바댜 자손이 372명이요”(스2:4).
4) 둘째,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해치고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집안이 예레미야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다랴의 부친인 바스훌은 벌써 여호야김 왕 때에 성전의 총감독을 지내고 있습니다(렘20:1). 그는 주화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미워하여 성전의 뜰에서 자신의 수하인 레위인들을 시켜 예레미야를 체포하고 태형을 가합니다(렘20:2a). 그리고 예레미야의 목에 큰칼을 채워 하룻밤 성전의 뜰 2층에 있는 형벌방에 가두어 두기도 합니다(렘20:2b).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스훌이 반드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서 죽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렘20:6). 그러므로 바스훌의 아들인 그다랴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악감정이 많은 것입니다.
5) 셋째,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의 이름을 벌써 앞부분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드기야 왕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수집하기 위하여 그를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문의 순서는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서열과는 반대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렘21:1),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렘37:3). 시드기야 왕이 처음에는 낮은 계급의 신하인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사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전쟁이 위급하므로 더 높은 관리인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급히 보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넷째,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두 차례 사절을 보내면서 그와 친한 제사장 스바냐를 동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스바냐는 시드기야 왕 때에 일약 성전의 총감독의 자리에 올라갑니다(렘29:25-27). 그 자리는 대제사장 다음으로 성전에서는 제2인자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록에 따르면, 스뱌냐의 전임자는 여호야다이고 그 앞에는 바스훌입니다(렘20:1, 29:26). 성전의 총감독인 스바냐는 예레미야를 처벌해달라는 청원을 묵살하고 도리어 그를 보호해주고 있습니다(렘29:29-30). 그러한 대인관계를 고려하여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시드기야 왕도 보통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일설에서는 주후 2005년과 2008년에 히브리대학교 교수가 예루살렘에서 고대 점토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 그다랴와 유갈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렘38:2); 때는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인 주전 587년입니다. 재침한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가 유다의 지방도시를 점령하고서 다시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서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화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왕궁의 뜰 시위대 일반감옥에 갇혀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렘38:2)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일방적으로 주화파의 신하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반면에 주전파 신하들에게는 심각한 위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전파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봉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흥분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몰려온 이유입니다.
둘째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렘38: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렘38:3-4a);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신체가 자유스러울 때나 구금이 되어 있을 때나 일관되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 요지가 세가지입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셔서 마침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7:11-15, 25:7-11, 37:6-10).
2) 둘째,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멸망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유다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구원을 호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렘25:5-6). 그리하면 그 옛날 이방도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처럼 멸망의 심판 대신에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욘3:1-10).
3) 셋째, 시드기야 왕 9년부터 벌써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명맥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피하고 항복을 함으로써 화친을 도모하라는 것입니다(렘27:11-12, 38:17). 그리하면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가 있다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4) 그 세가지 가운데 주전파 신하들은 본문에서 교묘하게도 한가지만을 발췌하여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렘38:3-4a). 그것은 한마디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민족의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고자 하는 속셈입니다.
(2)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렘38:4b);
1) 주전파 신하들이 시드기야 왕에게 선지자 예레미야의 거짓 예언은 용서할 수 없는 두가지의 죄를 범한 것이므로 반드시 죽음으로 그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렘38:4b). 그 두가지의 죄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국론을 분열시킨 죄입니다.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통합하여 강력하게 적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국론의 분열을 조장하고 힘의 결집에 누수현상을 발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이 갈대아 군대와 싸우면 나라가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에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적 앞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심각한 죄인 것입니다.
3) 둘째,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한 죄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유대인들은 싸워보지도 아니하고 벌써 패배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반면에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는 신이 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호신인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번 전쟁에서 유다 왕국이 망하고 신바벨론이 이긴다고 예언하셨다고 하므로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이적행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4) 주전파 신하들의 말만 듣고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처형을 당해야 할 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한가지만을 발췌하여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꾸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왜곡과 변질은 본래 거짓선지자나 적그리스도의 행태입니다. 뱀의 꾀를 따라가고 있으므로 주전파 신하들이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자 적군에게 사로잡혀서 하나같이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렘39:6).
셋째로,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 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렘38:5-6);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렘38:5);
1) 시드기야 왕의 결정은 두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왕의 뜻이 너희들의 뜻과 같다는 것입니다(렘38:5b). 그것은 세력이 강한 주전파의 손을 시드기야 왕이 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선지자 예레미야를 처벌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너희들의 손에 맡길 터이니 알아서 너희들의 생각대로 예레미야를 처리하라는 것입니다(렘38:5a). 시드기야 왕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훗날 나사렛 예수를 불법으로 체포하여 이단으로 정죄한 예루살렘 산헤드린 대공회의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이 그 처형을 로마총독인 빌라도의 손을 빌려서 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요18:28-31).
2) 그러한 음모적인 악행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19:11).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두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의 음모와 흉계를 모두 보시고 그들에게 로마총독보다 더 중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훗날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해임을 당하는데 불과하지만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가 비록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음의 감옥에서 끄집어 내어 일반감옥에 수감을 하고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식으로 넣어 주도록 선심을 베풀어주고는 있지만 시드기야 왕이 기본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전파의 손을 들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함락이 되자 그는 친위대와 함께 도망을 치다가 사로잡히게 됩니다(렘39:2-5a). 립나로 끌려가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친국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왕자들이 처형을 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렘39:5b-6a). 마침내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렘39:7). 그리고 주전파의 고관들 역시 립나에서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렘39:6b).
(2)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렘38:6a);
1) 주전파 신하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아예 죽여버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왕궁의 뜰에 설치가 되어 있는 지하감옥에 그를 수감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라고 불리고 있는 지하감옥인데 내금위(內禁衛)의 수장인 말기야가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로 미루어 보아 내금위장인 왕자 말기야는 주전파 신하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다음해 예루살렘성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자 그가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렘39:6).
2) 유다 왕국의 궁궐의 뜰에는 두가지 종류의 감옥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반역을 한 중죄인을 지하감옥에 가두고 내금위가 그것을 관리합니다. 그 수장이 내금위장인 왕자입니다. ②또 하나는, 시위대가 관리하고 있는 왕궁 뜰의 일반감옥입니다. 일반감옥은 지상에 건설이 되어 있으므로 죄수에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햇빛을 쪼일 수가 있으며 사람들의 면회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두차례 일반감옥에 수감이 됩니다(렘37:21, 38:28). 그는 그곳에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렘38:1b, 4b).
3) 참고로, 다윗왕조 말기에는 왕이 신임하는 왕자에게 내금위의 군사를 지휘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야김 왕은 왕자 여라므엘에게 그 소임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서기관 바룩을 체포하는 총책임을 왕자 여라므엘이 맡게 되는 것입니다(렘36:26). 본문에서는 내금위의 감옥을 시드기야 왕의 아들인 말기야가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시드기야 왕이 내금위의 수장으로 왕자 말기야를 임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 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렘38:6b);
1) 예루살렘 왕궁의 뜰에 있는 내금위의 지하감옥은 상당히 깊습니다. 따라서 죄인이 되어버린 예레미야를 긴 줄에 달아서 구덩이 속으로 내리고 있습니다(렘38:6ba). 완전히 구덩이에 내린 다음에는 그 줄을 걷어서 올려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함정에 빠진 짐승처럼 자력으로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2) 그 웅덩이는 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습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마치 진창에 빠진 짐승의 꼴이 되고 맙니다(렘38:6bb). 먹을 것이나 마실 것도 주지를 않습니다. 그저 일주일 정도 견디다가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참혹한 살인의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옛날 17세의 요셉이 이복형들에 의하여 던져진 그 구덩이와 같은 형국입니다(창37:24). 과연 누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출해줄까요?
결론적으로, 시드기야 왕 9년의 말에 이어 다음해에 다시 지하감옥에 갇히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예레미야입니다. 그가 그렇게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유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동족들에게 대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신앙과 죄악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선포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정직하게 대언하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지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면 그에게 영생의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마10:28, 눅22:28-30, 롬8:17-18).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서 회개를 하는 자는 예레미야의 동족인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한 성도 곧 그리스도의 제자인 복음의 용사의 모습을 예레미야에게서 벌써 발견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신실하고도 정직한 여호와의 종으로 선지자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시는 성도들 곧 복음의 용사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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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강해 제212강(렘37:11-1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11.14 |
예레미야 강해 제211강(렘37:5-10)(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