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11강(렘37:5-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19일(수)
시드기야 왕 9년과 10년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이 무엇이며 제2-3절을 참조할 때 시드기야 왕의 유다 왕국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렘37:5-10)
본문에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 9년 곧 주전 588년에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렘37:5, 왕하25:1). 그때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포위공격을 하고 있습니다(왕하25:1, 렘37:5b).
그러나 갑자기 후방에서 애굽의 바로가 이끄는 반(反) 바벨론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첩보를 얻게 됩니다(렘37:5a). 앞과 뒤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면 신바벨론의 원정군이 위험합니다. 따라서 전략에 밝은 느부갓네살 황제가 일단 후퇴를 하고 맙니다(렘37:5c).
그러한 상황을 두고서 유다 왕국 내에서는 두가지의 견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주전파(主戰派)의 의견이고(렘37:5, 9a, 10a) ②또 하나는, 주화파(主和派)의 견해입니다(렘37:7-8, 9b, 10b). 서로 맞서고 있는 그 두 견해의 기초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주전파 신하들은 자신들의 국력 및 군사력 판단이 맞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비록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국력과 그 군사력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나일강과 북부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는 애굽제국을 위시하여 가나안 일대의 6개 왕국이 견고하게 동맹을 맺고 있는 한(렘27:3) 가나안 땅을 침공하여 승리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렘37:11).
2) 둘째, 상대방의 요새를 점령하자면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통상 3배의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그 많은 수의 적군이 이동을 해올 수가 있겠습니까? 원정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결코 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는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실제의 전투에 있어서는 원정군의 집요한 공격에 예루살렘성이 잠시 위기를 맛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이 가입하고 있는 반(反) 바벨론 동맹이 그것을 좌시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동맹군을 이끌고 적의 배후를 슬쩍 공격만 하더라도 위기를 느낀 신바벨론의 황제는 이번처럼 다시 도망을 치고 말 것입니다(렘37:5, 11).
4) 그러므로 유다 왕국의 주전파 신하들은 자신들의 군사력과 전쟁의 양상에 대한 판단이 맞았다고 강조하면서 이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장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틀렸고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주장이 옳다는 것입니다(렘28:1-12).
(2) 둘째로, 주화파 신하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전쟁의 승패는 항상 여호와의 뜻에 따라 좌우가 된 것이지 결코 군사력의 차이에 따라 결정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출17:8-16, 민14:41-45, 21:2-3, 왕하19:34-36). 선민들은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예언의 말씀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한결같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망과 정욕을 이루고자 약자를 짓밟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며 이방인보다도 더 죄악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악한 길에서 완전히 돌이키고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다시 살아가지 아니하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25:1-11).
2) 그에 따라 반(反) 바벨론 동맹이 잠시 갈대아 군대를 물리치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여호와의 심판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여호와 앞에 뉘우치고 한마음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선민의 나라가 신바벨론에 의하여 망하고 그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예언으로 다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생생하게 임하고 있습니다(렘37:6-1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렘37:5-6);
(1) 주전 588년 유다 왕 시드기야 9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 옵니다(왕하25:1a). 그의 갈대아 군대는 파죽지세로 유다의 성읍들을 진멸하고 빠른 길로 예루살렘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사면 골짜기에서 그 위 정상에 있는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서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왕하25:1b, 렘37:5b). 느부갓네살 황제는 반드시 이번 기회에 유다 왕 시드기야를 사로잡고 그를 처벌하고자 합니다.
(2) 왜냐하면, 주전 597년에 자신이 예루살렘성을 공격하여 당시의 유다 왕 여호야긴의 항복을 받고 바벨론으로 끌고가면서 대신 유다 왕으로 세운 자가 시드기야이기 때문입니다(왕하24:15-17). 그런데 괘씸하게도 유다 왕 시드기야가 주전 593년에 주군인 자신을 배신하고 애굽의 바로와 함께 반(反) 바벨론 동맹을 결성하고 만 것입니다(렘27:3). 도저히 배은망덕한 시드기야 왕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단단히 벼르고 벼른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는 그 공격력이 대단하고 집요합니다.
(3) 그와 같은 때에 애굽의 바로가 반(反) 바벨론 동맹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성을 구원하고자 나서고 있습니다(렘37:5a). 한참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고 있던 느부갓네살 황제는 사태가 불리함을 깨닫게 됩니다. 앞뒤로 적을 두고 싸우게 되면 패전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감하게 용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하고 일단 갈대아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렘37:5b).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서 예루살렘성을 사수하던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전파 신하들이 기세가 등등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도 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애굽을 수장으로 하는 반 바벨론 동맹의 연합군 앞에 끽 소리도 못하고 물러갔으니 이제는 신바벨론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단과 예언이 틀렸으며 자신들의 인간적인 판단이 더 옳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적인 교만과 자랑에 빠지 선민 유대인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발하십니다(렘37:6).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렘37:7-10)
둘째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렘37:7-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37:7a);
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렘35:13)이라는 표현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렘37:7a)라고 하는 표현은 그 강조점이 좀 다릅니다. 전자는 이 세상 어떤 피조물보다 더 강력하신 창조주 여호와이심을 먼저 선언하고 있습니다(출3:14, 롬8:38-39). 그렇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그 역사섭리의 원리를 만민들에게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와 그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모든 이방나라와 세상의 만민들에게 동일한 경우에 그대로 적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와 달리 후자의 표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그 주안점이 이스라엘의 수호신이시며 보호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자 모든 방법을 강구하십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을 쫓아 제멋대로 경영하고자 합니다.
3)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자신들의 집단 이기적인 요구를 들어 주시면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러하지 아니하시면 우상처럼 섬기다가 버려버리겠다는 것입니다”(출17:7). 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패역한 행동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방 강대국을 사용하여 그들의 나라를 없애 버리고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어 버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그 옛날 여호와의 말씀 대신에 마귀의 화신인 뱀의 말을 따라서 행동한 아담부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일과 같은 것입니다(창3:1-8, 22-24).
4) 그렇다면 아담부부의 자손들이 훗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통하여 구원을 얻듯이(창3:15), 가나안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게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훗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1:12-14, 롬11:25-36). 그들이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동일한 성도가 되어 영생의 구원의 축복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사11:10-12, 65:1-2, 66:18-21, 요1:12-14).
5)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벌써 제31장에서 기록한 여호와의 예언인 ‘새 언약’의 깊은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2)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렘37:7b);
1) 유다 왕 시드기야는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의 왕이 되고(왕하24:17) 4년 후에는 애굽의 바로가 제창한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여합니다(렘27:3, 28:1). 그가 느부갓네살 황제를 배신한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매년 바벨론으로 보내야만 하는 조공의 부담이 엄청나서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②또 하나는, 자신이 물려 받은 유다 왕국은 갈대아 군대로부터 심하게 약탈을 당하여 너무나 피폐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왕하24:13-17).
2) 그런데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5년간 군비를 강화하여 마침내 시드기야 왕 9년에 침입합니다. 그렇지만 애굽의 바로가 이끄는 반 바벨론 동맹군이 그 배후를 공격하자 일시 물러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내에서는 승리에 도취가 된 주전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마냥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정비하여 재침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다시 신하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변화가 있는지를 살피게 합니다(렘37:3, 7b).
3) 그러한 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가까운 미래에 관한 정확한 예언의 말씀을 다시 주십니다. 그것은 주전파의 주장이 틀렸고 주화파의 주장이 옳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대언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이 외세를 이기고 여호와신앙을 이웃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국내적으로는 여호와의 정의를 실천하고 국제적으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렘22:3, 25:5-6, 26:3).
4) ②또 하나는, 그러한 전면적인 회개가 없이 외세를 배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잘못입니다.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와 전쟁을 하면 참패를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이 왕국이라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항복을 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것입니다(렘27:11-12, 38:2, 17). 그와 같은 기조에서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다소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더욱 강경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그 한결같은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7:7c-10). 그러한 내용을 선지자 에레미야를 찾아온 신하들이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렘37:7b).
(3)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렘37:7c-8);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유다 왕국은 더욱 황폐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성에는 식량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으로 개선하고 있는 바로의 군대와 반 바벨론 동맹국의 군대들도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과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렘37:7c). 그렇게 되면 멀지 않아 다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재침을 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렘37:8).
셋째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렘37:9-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렘37:9);
1) 100년 전에 유다 왕국을 침공했던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의 군대는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사를 죽여버리자 다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왕하19:34-37, 대하32:22-23). 그러나 금번 시드기야 왕 때의 경우는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적군을 섬멸하신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바로가 이끄는 구원병이 배후에 접근을 하고 있으므로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보전하고자 재빨리 작전상 후퇴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2) 그러므로 애굽의 구원병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느부갓네살 황제는 틈을 보아 다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 점을 여호와께서 지적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가 대패하여 본국으로 도망을 쳤다고 그렇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벡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이며 언제나 적의 침략을 물리칠 수가 있다고 허세를 부리지 말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렘37:9). 그렇게 오판을 하게 되면 재침을 받게 되고 유다 왕국은 망국의 길로 접어 들게 될 것입니다.
(2)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렘37:10);
1)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무지 회개할 줄을 모르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완전히 버려버린 선민 유대인들을 망국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리고자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이방 강대국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지상에서 없애 버리고자 하십니다.
2) 그러한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정확한 방법입니다. ②또 하나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시드기야 왕이 항복을 하고 다윗왕조와 유다 왕국의 명맥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 어느 것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은 선택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대아 군대가 전투에서 불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뜻에 따라 반드시 유다 왕국을 끝장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아주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렘37:10);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재앙 가운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옛날 출애굽에 여호와께서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그 사이 사이에 그러한 간격이 존재하고 있습니다(출7:24-25, 8:15, 31-32, 9:32-34, 10:19-20, 22). 그러므로 바로가 오판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도 별 수가 없다고 하는 교만과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자 하는 완악함이 그래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사건이 주전 588년 시드기야 왕 9년에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단숨에 유다 왕국의 성읍들을 유린하고 드디어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서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던 때에 애굽의 바로가 그 배후를 공격하고자 한 것입니다.
불리함을 깨달은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급히 후방으로 퇴각시키고 맙니다. 예루살렘 성안의 시드기야 왕과 주전파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환호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동맹군을 지휘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신바벨론의 침공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전면적으로 회개를 하지도 아니하고 갈대아 군대에게 항복을 청하지도 아니하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반드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25:3-11, 37:10).
따라서 세상의 유불리(有不利)에 가볍게 휘둘리지를 말고 근본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교만하게도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과 탐욕을 달성하고자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면 유다 왕국처럼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한 종으로 바로 서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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