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13강(렘37:17-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21일(금)
시드기야 왕 9년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서기관 요나단의 집 지하 웅덩이 감옥에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찾아 일단 구해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렘37:17-21)
본분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처지와 입장을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성군 요시야는 아들이 4명입니다(대상3:15). 그 가운데 훗날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는 시드기야는 요시야 왕의 막내인 4남 맛다니아입니다(왕하24:17);
1) 맛다니아 왕자는 유다의 왕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막내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 그의 형 두 사람이 먼저 유다의 왕이 되고 장조카인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마저 3개월간 왕을 지낸 다음에 뒤늦게 여호야긴 왕의 뒤를 이어 그의 막내 숙부인 자신이 느닷없이 유다의 왕이 된 것입니다(왕하24:17). 따라서 시드기야 왕은 어떠한 정견(政見, 정치적인 견해)이나 왕의 포부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2) 그저 어쩔 수 없는 요시야 왕의 왕자의 하나라는 신분 때문에 신바벨론을 섬기는 괴뢰정권의 수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이 되는 시드기야 왕은 11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지만 제대로 국왕의 포부를 펼쳐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힘이 있는 신하들의 눈치를 보고 세력이 강한 신하들의 그룹에 편승하여 그들의 뜻에 맞게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2) 둘째로, 그와 같이 외로운 시드기야 왕의 처지는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참조할 때 더욱 분명하게 파악이 됩니다;
1) 첫째, 성군 요시야의 죽음은 물론 그 후에 왕좌에 오르게 되는 그의 3아들과 1손자의 운명이 모두 외세에 의하여 지배가 되고 맙니다. 성군 요시야는 아들이 4명입니다(대상3:15). 장남 요하난이 일찍 죽고 차남 엘리아김이 세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전 609년에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변복을 하고 군대를 지휘하다가 저격병이 쏜 화살에 중상을 입고 후송 도중에 죽고 맙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애굽의 황제인 바로 느고가 의도한 것입니다.
2) 참고로, 당시의 상황을 조금 살펴봅니다; 주전 609년에 애굽의 바로 느고가 갑자기 시리아 땅을 정복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해변길로 북상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바로의 군대가 말머리를 돌려 유다 왕국을 침략하지는 아니할까 염려가 되어 전방요새의 방어태세를 철저히 점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바로 느고가 유다의 뛰어난 왕 요시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애굽제국의 황제인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차제에 그를 암살하고자 합니다.
3) 바로 느고가 활을 잘 쏘는 궁사들을 유다 진영에 은밀하게 침투시켜서 왕복을 벗고 신분을 감춘 채 유다의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요시야 왕을 찾아서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바로 느고의 계책이 성공을 거둡니다. 불의의 화살을 맞은 성군 요시야가 예루살렘으로 후송이 되는 도중에 서거하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3:29). 급보를 받은 중신(重臣, 중책을 맡은 신하)들이 긴급회의를 하여 후계왕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지하는 왕자는 세자인 엘리아김이 아닙니다. 그는 애굽을 상국으로 모시고자 하는 사대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둘째, 성군 요시야를 모시던 충신들은 하나같이 성군 요시야의 노선인 자주독립정신을 지니고 있는 왕자 살룸을 요시야 왕의 후계자로 삼고자 합니다(왕하23:30, 렘22:11-12). 그를 여호아하스 왕으로 삼고 중신들은 시리아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바로 느고의 군대를 막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자신의 왕좌를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분노하는 엘리아김은 대내적으로 사대주의 세력을 모으고 대외적으로 남하하고 있는 바로 느고와 내통을 합니다. 그 결과 여호아하스와 자주독립을 원하는 신하들이 전쟁에서 패하고 애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3:33-34).
5) 셋째, 엘리아김이 바로 느고에 의하여 유다 왕 여호야김으로 책봉이 되자 다윗왕조의 역사상 치욕스러운 괴뢰정권이 탄생하고 맙니다(왕하23:34). 그때부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운명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결정이 되다가 끝내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야김 왕 4년인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의 황제의 자리에 오른 느부갓네살이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애굽까지 쳐들어갑니다. 나일강변을 잃지 않기 위하여 애굽이 완강하게 버티었기에 본국은 무사했으나 식민지는 모두 상실하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야김 왕은 얼른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을 합니다.
6) 조공을 바치고 신바벨론의 신하의 나라가 되기로 맹세한 것입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외교노선이 또 달라집니다.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애굽을 복속시키기 위하여 원정에 나섰다가 패전을 하고 아무 소득이 없이 물러나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야김 왕은 다시 애굽의 바로를 섬기고자 합니다(왕하24:1). 느부갓네살 황제는 여호야김을 괘씸하게 생각하고서 주전 597년에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범합니다. 마침 여호야김 왕이 죽고 세자인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이 되어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입니다. 여호야긴 왕이 항복을 하고 폐위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왕하24:12-15).
(3) 셋째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국이 다시는 반역을 할 수 없도록 다음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합니다;
1) 첫째, 여호야긴 왕의 일가족과 신하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왕하24:15).
2) 둘째, 유다의 병사 1만명과 장정들을 끌고 가고 기술자 1천명도 끌고 갑니다(왕하24:14, 16).
3) 셋째, 유다 왕국의 모든 보화를 약탈하여 바벨론으로 가지고 갑니다(왕하24:13).
4) 넷째, 괴뢰정부의 허수아비 왕으로 시드기야를 세운 것입니다(왕하24:17).
5)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이 물려받은 것은 피폐한 왕국입니다. 인재(人才)도 인력도 재화도 모두 부족한 나라입니다. 도대체 나라다운 나라가 아닙니다. 시드기야 왕은 기가 막힙니다.
(4) 넷째로, 시드기야 왕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1) 첫째, 농업과 목축을 장려하여 느부갓네살 황제가 원하는 조공을 바치기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2) 둘째, 어려운 일이 있으면 수시로 사절을 보내고(렘29:3) 중요한 사안은 유다 왕인 자신이 직접 바벨론을 방문하여 황제에게 알현을 청하고 그 뜻을 적극 받들도록 하는 것입니다(렘51:59).
3) 셋째, 신하들의 의견을 골고루 듣고 세력이 강한 쪽의 의사를 존중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렘38:5).
4) 넷째, 세월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므로 약한 세력의 의견도 듣고 적절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렘37:17, 38:14).
(5) 다섯째로, 선민 유대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선민우월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두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사대주의로 일관했고, 시드기야 왕은 피폐해진 나라를 다스리는 허수아비 왕에 불과합니다;
1)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 4년에 애굽의 바로가 반(反) 바벨론 동맹을 결성하자고 주창할 때에 유다 왕국의 신하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렘28:1-4). 그들은 애굽의 바로가 앞장을 서고 가나안 주변의 5왕국과 유다 왕국이 합세를 한다면 충분히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를 물리칠 수가 있다고 장담합니다(렘27:3, 37:5). 야심도 줏대도 없는 유다 왕 시드기야는 귀가 솔깃합니다(왕하24:20).
2)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의 경우가 걱정입니다. 따라서 그는 주화파의 선지자가 되고 있는 예레미야를 살려 두고서 끝까지 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어떠한 변화가 없는지 계속 확인하고자 합니다(렘37:6-10, 16-21, 38:14-28). 그렇지만 소수파에 속하는 주화파의 견해를 채택하지 아니하는 것은 시종일관 같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렘37: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렘37:17a);
1) 주전파(主戰派) 신하들이 자신들의 파당(派黨)의 감옥 곧 서기관 요나단의 집 비밀감옥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가두어 버린 사실이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첩보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도 완전히 예레미야를 죽여버리고자 음식과 물을 전혀 공급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7:15, 20). 그 말을 듣게 된 시드기야 왕은 만약의 경우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2)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대언한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렘1:1-3). 자신의 생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그가 선민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혀 있는 여호와의 종임에 틀림없습니다.
3) 그러한 선지자를 유다의 권신(權臣, 권세가 있는 신하)들이 살해해버린다면 그에 대한 여호와의 보복은 왕인 자신에게 닥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를 살리는 것이 바로 시드기야 왕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에 따라 시드기야 왕은 신하를 파견하여 서기관 요나단의 지하감옥에서 무조건 선지자 예레미야를 데리고 나와 왕궁으로 같이 오도록 조치한 것입니다(렘37:17aa). 그것은 겉으로 보면, 시드기야 왕이 잘한 일로 보입니다.
4)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숨을 살리고자 유다 왕 시드기야를 활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은 주전파 신하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자신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렇게 하였다는 말을 퍼뜨리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다윗왕조의 장래에 대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어떠한지 은밀하게 예레미야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렘37:17ab).
(2)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렘37:17b);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서기관 요나단의 집 뜰에 있는 비밀감옥에 갇혀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을 구해준 시드기야 왕이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자신을 구해주신 여호와의 보호하심이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에 따라 시드기야 왕의 왕국을 멸망에서 구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석고대죄를 하면서 구원을 호소하지 아니하는 이상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입니다(렘25:1-11, 37:17b).
2) 선지자 예레미야는 누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해야만 할까요? 그는 끝까지 여호와의 진실한 종으로 살고 싶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 왕이 그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어떠한 변화가 없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있을 때에(렘37:17ba) 왕이 듣기에 심히 섭섭한 여호와의 역사섭리 곧 그 예언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대언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렘37:17bb). 그 말을 들은 시드기야 왕이 화가 나서 예레미야 자신을 그 지하감옥으로 다시 돌려보낸다면 그는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전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영생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마10:28).
둘째로,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신하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렘37:18-1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렘37:18);
1) 참으로 여호와의 신실한 종답게 정직하고 또한 대범한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개인적으로 섭섭하고 화가 나서 자신을 그 지하감옥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차제에 당당하게 한번 따져보고자 합니다;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렘37:18).
2) 그의 질문 가운데에는 두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유다 왕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의한 일에 대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유다 왕인 시드기야 당신이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전파 신하들이 모의를 하여 선지자 예레미야 자신을 은밀하게 그들의 비밀감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한 것도 시드기야 왕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3) ②또 하나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사전허락이 없고서야 어찌 감히 그 신하들이 합세하여 선지자인 예레미야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 감옥에 보내고 굶겨서 죽이고자 획책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의 경우에 있어서 그 답변을 하기에 참으로 시드기야 왕의 입장이 난처합니다.
(2)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신하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렘37:19);
1) 선지자 예레미야의 질문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주전파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애굽이 주도하는 반(反) 바벨론 동맹에 유다 왕국이 참여하게 되면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겁을 집어 먹고 아예 유다 왕국을 침범할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고 주전파 신하들이 시드기야 왕 4년인 주전 593년에 열변을 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시드기야 왕 9년인 주전 588에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성을 제외하고 전국의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말았으니 그들 주전파 신하들이 오판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뻔뻔하게도 애굽의 구원병이 당도하여 갈대아 군대가 쫓겨서 물러갔으므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로 장담하면서 어설픈 승전의 축배를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7:19 의역).
2) 선지자 예레미야의 주장은 그해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전파 신하들이 주장한 내용은 사실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국이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하여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승전을 하게 되고 2년내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의 포로들이 송환이 되고 빼앗긴 보물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8:1-4). 그러므로 유다 왕 시드기야 9년 말에 해당하는 당시로 보면 일단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가 쫓겨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군의 전투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직 포로의 귀환이나 보물의 반환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3) 그렇지만 일단 갈대아 군대가 쫓겨갔으므로 주전파 신하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틀렸다고 강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예언을 한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합니다(렘37:15, 38:6). 그렇지만 예레미야가 일시 물러간 갈대아 군대가 곧 재침할 것이며 그때에는 애굽의 구원병도 없을 것이고 유다 왕국은 속절없이 패망하고 말 것이라고 다시 예언을 하고 있으니 그 추이를 더 지켜보아야 합니다(렘37:6-10). 그러한 여호와의 예언까지 듣고 있는 시드기야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의 결정이 어중간하게 마지막 구절과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렘37:21).
셋째로, “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렘37:20-2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렘37:20); 선지자 예레미야의 장점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꾸밈이 없고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드기야 왕 앞에서 인간적으로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있는 비밀감옥으로 자신을 돌려보내게 되면 굶어 죽기 십상이므로 참으로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도록 시드기야 왕께서 도와 주십시오 라는 탄원입니다”(렘37:20 의역).
(2)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렘37:21); 유다 왕 시드기야가 솔직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요나단의 감옥이 아니라 왕궁의 뜰에 있는 감옥에서 지내게 합니다(렘37:21a).
2) 둘째, 예루살렘 성중에 있는 빵가게에서 매일 굽는 빵을 하나씩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사식(私食)으로 물과 함께 넣어 주도록 하라고 조치합니다(렘37:21b). 따라서 예레미야는 당시 유대인 달력으로 시드기야 왕 11년 4월9일 예루살렘성에 먹을 것이 떨어지는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됩니다(왕하25:3).
3) 셋째, 시드기야 왕이 돌보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주전파 신하들에게 주지시킨 것입니다(렘37:21c).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일시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진작에 다음과 같이 예언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그와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서 아무쪼록 끝까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일관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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