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15강(렘38:7-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17. 21:53

예레미야 강해 제215(38:7-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23(주일)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의 주청을 듣고 시드기야 왕이 지하감옥에서 다 죽어가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시 구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느 정도의 선심인가?(38:7-13)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수많은 왕궁 내시 가운데 어째서 애굽제국의 변방 구스 출신의 내시 에벳멜렉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살려 달라고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읍소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1)    첫째, 유다 왕 시드기야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바로를 주군으로 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군 요시야의 막내 아들인 시드기야는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괴뢰정권의 수장인 유다 왕으로 즉위한 인물입니다(왕하24:17). 그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4년 후에 애굽의 바로가 주도하는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느부갓네살 황제가 이끄는 갈대아 군대의 침입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시드기야 왕은 애굽의 바로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가 신임하는 내시를 예루살렘 왕궁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상() 이집트에 속하는 구스 출신의 내시 에벳멜렉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구스인 에벳멜렉은 두가지 점에서 보통 내시가 아닙니다; ①하나는, 유다 왕국의 종주국인 애굽 제국에서 보낸 내시이므로 그 나름대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구명을 시드기야 왕에게 부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어떻게 이디오피아 사람인 그가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오래 일하였으며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430년 동안이나 애굽의 고센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여호와를 섬기는 히브리인 총리 요셉이 7년 연속 흉년으로부터 애굽 사람들을 구원한 사실은 하나의 전설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히브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 그 독특한 유일신 사상이 범신론자인 애굽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2)    특히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켰으며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킨 기적에 대해서는 애굽제국의 백성들에게 두려운 역사로 계속 전승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적을 보고서 애굽인들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9:20-21).

3)    참고로, 시드기야 시대로부터 약 600년후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집사 빌립이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까지 온 구스인 내시 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또한 세례를 준 사실도 있습니다(8:28-39).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전파 신하들의 강압으로 시드기야 왕에 의하여 내금위 지하감옥에 수감이 된 때가 언제쯤인지 그에 대한 기록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38:9);

1)    여호와의 재앙으로 전란 중에 기근이 찾아옵니다(29:17-18). 예루살렘성에서는 양식이 떨어지자 더이상 갈대아 군대와 전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친위대를 이끌고 시드기야 왕이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시드기야 왕 114월입니다(왕하25:3).

2)    수감중인 죄수들에게 떡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몇 달 전인 시드기야 왕 10년말로 추정이 됩니다. 그 즈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하감옥에 던져진 것으로 보입니다(38:6). 그때부터는 특별히 돈을 주고 사식(私食)을 넣어주지 아니하면 죄수들이 굶어서 죽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7:21).

(4)  넷째로, 시드기야 왕의 허락의 내용과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의 활약상도 눈 여겨 볼만 합니다. 특이한 내용 두가지가 기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는, 시드기야 왕이 어째서 한 사람의 죄수를 지하감옥에서 끌어 올리는데 무려 30명을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있는가?(38:10)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선지자 예레미야를 지하감옥에서 끌어 올리는데 필요한 병사의 수가 아닙니다. 두세 사람이면 밧줄을 내려서 그를 끌어올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병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만약에 발생할 불상사에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주전파 신하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그 일을 방해할 경우에는 그것을 격파하고서라도 예레미야를 구해서 왕 앞에 데리고 오라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2)    또 하나는, 에벳멜렉이 구덩이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끌어올리기 전에 어째서 헝겊과 낡은 옷을 먼저 던져주고 있는가?(38:11-12) 하는 것입니다. 며칠간 지하감옥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예레미야는 몸이 수척하고 기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밧줄을 잡고 올라올 힘도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 헝겊과 옷가지 등으로 겨드랑이를 감싼 다음에 그곳을 둘러가면서 온몸에 밧줄을 묶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위에서 사람을 통째로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상당히 지혜가 있고 똑똑한 인물로 보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38:7-9);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38:7a);

1)    고대의 왕국에서 왕을 섬기며 지키는 자들이 왕궁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크게 보아 4종류입니다; ①첫째, 가장 측근에서 왕을 보필하고 왕의 여자를 관리하며 왕의 심부름을 하고 궁궐의 살림을 사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내시 또는 환관입니다. 특히 무술을 연마한 내시는 왕의 신변을 최종적으로 경호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기록으로 남기는 사관(史官)과 왕의 명령을 공식문서로 작성하여 시달하는 승지(承旨)들이 있습니다. ③셋째, 왕이 거주하는 궁궐내부를 지키는 내금위(內禁衛)가 있습니다. ④넷째, 왕궁과 도성(都城, 수도를 말함)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시위대(侍衛隊)가 있습니다.

2)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神政國家)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있어서는 조금 다릅니다; ①첫째, 원칙적으로 히브리인을 종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21:2, 25:39). 따라서 초기에는 히브리인이 아니라 이방인을 내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히브리인 종을 내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방인 구스 출신 내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을 내시로 사용하고 있는 다윗왕조 말기로 보면 특이한 현상입니다. 특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애굽의 바로를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바로가 보낸 내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②둘째, 내금위장의 직책을 여호야김 왕이나 시드기야 왕은 자신들의 아들인 왕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36:26, 38:6). 그것은 신하들에 의한 반역사건 및 왕의 시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③셋째, 왕궁의 뜰에는 내금위가 관장하고 있는 지하감옥이 있고 또한 시위대가 맡고 있는 일반감옥이 있습니다(37:21, 38:6, 13, 28).

3)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재차 대군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성을 포위공격하고 있는 주전 587년말 곧 시드기야 왕 10년말부터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애굽의 바로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야 하는 특명을 에굽의 황궁으로부터 받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주전파 신하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드기야 왕의 허락을 얻어 내금위 지하감옥에 가두어 버린 사실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38:7a). 그는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2)  그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38:7b-8);

1)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한참 공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해발 780m에 이르는 높은 시온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가파른 벼랑에 수많은 참호를 파고서 아주 조금씩 전진하면서 계속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지형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성의 삼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북쪽이 조금 완만합니다. 그곳은 유대 땅의 북쪽에 있는 베냐민 땅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2)    그러므로 소위 베냐민 문이라고 불리는 두개의 성문 곧 양문’(羊門, the Sheep Gate)어문’(魚門, the Fish Gate)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적의 공격에 취약한 북쪽 성곽이므로 시드기야 왕이 나가서 시찰을 하고 현지에서 전투의 상황에 대하여 보고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도성의 베냐민 문에 있는 왕의 시찰자리에 찾아오고 있습니다(38:7b-8). 그것은 왕궁에서 급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급보가 과연 무엇일까요?

(3)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38:9a);

1)    유다 왕 시드기야 4년에 다윗왕조는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을 더 이상 섬기지 아니하고 애굽의 바로를 섬기기로 결정합니다(27:3, 28:1-11). 그 이유는 애굽의 바로가 주도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하여 느부갓네살 황제의 내정간섭을 물리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 초기에 정권을 담당하고 있던 친() 바벨론파의 신하들이 대거 물러가고 이제는 친() 애굽파의 신하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과 동맹군의 힘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를 물리치자고 하는 이른바 주전론자’(主戰論者)들입니다.

2)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따라 유다 왕국이 우상문화를 척결하지 아니한 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와 전쟁을 벌일 경우에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25:1-11, 38:2-3). 그러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선포는 신바벨론과의 화친을 주장하고 있는 주화파’(主和派) 신하들에게는 좋게 들리지만 주전론자인 권신(權臣)들에게는 듣기 싫은 것입니다. 따라서 주전론자들이 시드기야 왕의 허락을 얻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여버리려고 왕궁에 있는 내금위의 지하감옥에 던져버린 것입니다(38:1-6).

3)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애굽제국에 속하는 남방 이디오피아 출신입니다. 에굽제국은 솔로몬 대왕이 즉위하는 시점 곧 주전 970년경부터 제3중간기로 접어 들어 통일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긴 세월 분열시기를 겪게 됩니다. 특히 주전 747년경부터는 수단과 이디오피아의 제25왕조의 세력이 강하여 하() 이집트를 지배하고 바로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전 701년경에는 바로의 동생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군대를 이끌고 히스기야 왕을 도와주고자 원정에 나서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기도 합니다(왕하19:8-9).

4)    시드기야 왕 9년인 주전 588년에는 제26왕조의 바로인 아프리에스가 동맹군을 이끌고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를 물러가게 합니다(37:5, 11). 그러나 그 다음해에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국을 재침하였을 때에는 공동통치자 와히브레의 반대로 구원병을 보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제국이 동맹국과 힘을 합하여 세계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느냐? 아니면, 현실론적인 입장에서 고립주의를 선택하여 자국과 지역의 안보에만 충실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애굽제국 내에서의 정세를 잘 모르고 있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본문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5)    에벳멜렉은 친 애굽 노선인 주전파 신하들이 잡아 넣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도리어 구해주고자 합니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친 애굽 인사들을 악하다고 규탄하고 있습니다(38:9a). 그렇다면 에벳멜렉은 자신의 조국인 애굽제국보다 무엇을 더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믿음의 실체는 조국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인이면서도 여호와신앙을 선택하고 있는 그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얼마후에 그를 위한 특별한 예언을 예레미야에게 주십니다(39:15-18).

6)    그 내용은 비록 유다 왕국이 망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만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놀라운 예언입니다(39:15-18).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으로 미루어 에벳멜렉의 이름자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기도 합니다; “본래 에벳이고 멜렉입니다. 그러므로 에벳멜렉은 바로나 왕의 종이 맞습니다. 그러나 구스인 에벳멜렉의 경우에는 그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있는 종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멜렉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4)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38:9b);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1)    하나는, 여호와께서 우상을 섬기고 죄악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셔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겠다고 예언하십니다(38:2-3). 그러므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예루살렘성에 먼저 기근의 재앙이 찾아온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전체적으로 식량이 모자라고 있습니다. 아직 애굽의 바로는 구원병을 보내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군대의 공격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왕조는 자체적으로 예루살렘 성중의 식량소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당장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는 국가가 떡을 주지 않습니다. 돈을 주고 시중에서 떡을 구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내금위의 지하감옥에 갇혀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사(餓死)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38:9b). 그와 같은 사실을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 급히 시드기야 왕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38:8-9).

둘째로,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30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이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 내라.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38:10-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30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이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 내라”(38:10);

1)    놀랍게도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음에서 구하고자 급히 나서고 있습니다(38:10). 갈대아 군대의 공격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가 어째서 그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신실하게 섬기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힘이라도 빌려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보전하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근위병 30명을 데리고 가서 빨리 예레미야를 구출하라고 내시 에벳멜렉에게 긴급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2)    일부 학자들은 두세명의 군사만 보내어도 충분하게 구덩이에서 예레미야를 끌어올릴 수가 있을 텐데 어째서 30명의 병사를 붙여주는가?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것은 3명을 30명으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전시상황을 염두에 두면 그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누가 왕인지 누가 권신인지 모릅니다. 어차피 왕국이 망하게 된다면 부하가 많은 자가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왕명이 주전파가 장악하고 있는 지하감옥의 군사들에게 먹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 시드기야 왕은 급히 30명이나 되는 근위병을 내시 에벳멜렉에게 붙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이며 현명한 조치라고 하겠습니다.

(2)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38:11); 에벳멜렉 역시 똑똑한 인물입니다. 그는 먼저 군량미가 저장이 되고 있는 곳간으로 군사들을 데리고 달려갑니다. 그곳 지하실에는 옷가지와 헝겊 등이 보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당장 한번 사용하고 버려도 아깝지 아니한 헝겊과 낡은 옷을 찾아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수감되어 있는 내금위의 지하감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38:11a). 그곳에서 30명의 근위병들을 자신의 주위에 배치하고 예레미야의 구명작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무리가 있으면 철저하게 막아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나서 헝겊과 낡은 옷을 밧줄에 묶어서 예레미야에게 내려 보내고 있습니다(38:11b).

셋째로,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38:12-1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38:12-13a);

1)    예레미야가 그 진창인 지하감옥에 며칠 동안 갇혀 있었는지 모릅니다. 보통사람은 물과 음식을 주지 아니하면 3-4일 또는 길어야 7일이면 사망합니다. 그러므로 며칠만에 그는 초췌하고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끌어올리자면 보통 방법으로는 안됩니다. 따라서 내시 에벳멜렉이 영리하게 머리를 쓰고 있습니다.

2)    위에서 밧줄에 묶어 함께 내려 보낸 헝겊과 옷가지를 먼저 두 겨드랑이 안에 두고서 그 위를 밧줄로 온몸에 강하게 묶으라는 것입니다(38:12). 그리하면 두세사람이 힘껏 그를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가까스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덩이에서 구출이 되어 세상 빛을 다시 보게 됩니다(38:13a).

(2)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38:13b);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출하여 역시 왕궁의 뜰에 위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일반감옥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에서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하게 한 다음에 감옥살이를 계속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왕궁의 재정으로 시중에서 떡과 물을 구하여 사식을 넣어 주도록 조치를 합니다. 그것은 얼마 전에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요청으로 취해준 조치와 동일한 것입니다(37:21). 그와 같은 예레미야 구출작전을 완전히 끝낸 내시 에벳멜렉이 시드기야 왕에게 보고를 드립니다. 그 다음에 시드기야 왕은 어떻게 예레미야를 만나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될까요? 그러한 내용이 본문 다음에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방인 출신 내시 에벳멜렉이 세상의 임금을 섬기기에 앞서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신앙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행태와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 의하여 기록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그 초점이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를 시종일관 묻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는 멸망의 와중에서도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처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선민 유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멸시한 자는 구원을 얻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벌써 새 언약과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레미야의 기록을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과 실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에벳멜렉의 믿음)

 

(애굽의 제3중간기와 말기; 자료는 위키백과에서 발췌한 것임)

25왕조[편집]

누비아 인들이 기원전 747 이집트로 침입하여 왕좌를 차지하고 25왕조를 세워 기원전 656까지 다스렸다.

이름 초상 재위 기간 비고
피이   기원전 752 ~ 기원전 721  
샤바카   기원전 721 ~ 기원전 707  
셰비쿠   기원전 707 ~ 기원전 690  
타하르카   기원전 690 ~ 기원전 664  
타누타멘   기원전 664 ~ 기원전 656  

26왕조[편집]

사이스에 세워진 왕조.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많이 등장한다기원전 664 ~ 기원전 525

이름 초상 재위 기간 비고
네카우 1 
네코 1
  기원전 665 ~ 기원전 664  
프삼티크 1 
프삼메티코스 1
  기원전 664 ~ 기원전 610  
네카우 2 
네코 2
  기원전 610 ~ 기원전 595 지중해-홍해를 잇는 운하 건설 최초로 시도
프삼티크 2 
프삼메티코스 2
  기원전 595 ~ 기원전 589  
와히브레 
아프리에스
  기원전 589 ~ 기원전 570  
아흐모세 2 
아마시스
  기원전 570 ~ 기원전 526  
프삼티크 3 
프삼메티코스 3
  기원전 526 ~ 기원전 525  

27왕조 -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편집]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 ~ 다리우스 2까지 통치한 왕조이다기원전 525 이집트는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정복되었고 기원전 404까지 페르시아에 복속되어 있었다. 아케메네스의 황제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겸했으며, 이것이 27왕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