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02강(렘35: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10일(월)
여호와께서는 레갑 사람들은 중시조 요나답의 유훈을 잘 지키고 있는데 선민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질책을 하시는가?(렘35:11-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내에서 레갑 사람들을 찾고 있을 때에 야아사냐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렘35:1-3). 그들은 당시 예루살렘 성내에 머물고 있었기에 쉽게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성전의 뜰 가장자리 2층 고라 자손들의 방에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도록 대접하고 있는 자리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그 방의 주인들은 레갑 사람들의 특이한 경건생활의 방식에 대하여 설명을 듣게 됩니다(렘35:4-10).
그런데 한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레갑 사람들이 중시조인 요나답의 유훈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지금 유목민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성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자랑삼아 말한 여호와신앙과 중시조의 유훈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설명은 거짓이 아닐까요? 그에 대하여 해명을 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제11절입니다; “여호야김 왕 4년인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가 되자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몰아내면서 남하하여 가나안 땅을 정벌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군대의 칼날을 피하여 가나안 땅을 떠돌던 레갑 유목민들이 임시로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렘35:11).
그 해명이 있은 다음 제12-1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레갑 사람들의 사례와 대조하면서 참으로 알기 쉽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18-19절에서는 경건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유목민 레갑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제15절까지만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렘35:11-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렘35:11a);
1)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침공한 적이 한번 있습니다(렘35:11aa). 주전 605년입니다(렘25:1). 그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가 된 느부갓네살은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사정없이 격파하고 그들을 나일강 유역으로 밀어 부칩니다. 그리고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 느고를 섬기고 있는 유다 왕 여호야김을 혼내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침범한 것입니다(왕하23:34-35).
2) 그때 가나안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레갑의 사람들이 전란을 피하여 철옹성인 예루살렘으로 피난을 옵니다(렘35:11b). 본문에서 레갑 사람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렘35:11ab). 그것은 느부갓네살 황제가 영리하게도 자신이 정복한 시리아의 군인들을 전장에 앞장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참고로, 주전 597년에도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범합니다. 그때에는 마침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 왕이 즉위하여 통치를 하고 있던 초창기입니다(왕하24:10-16). 여호야긴 왕은 신바벨론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하고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렘35:11b-12); 본문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선민들과 여호와신앙을 가진 이방인들은 여호와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예루살렘성전은 이방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정벌할 수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왕하19:34-35, 렘28:1-4).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레갑 사람들이 예루살렘성으로 피신한 것입니다(렘35:11b).
2) 또 하나는, 레갑 사람들의 중시조인 요나답이 정착생활을 하지 말고 유목을 하면서 장막생활을 영위하라고 유훈을 주었지만 전란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산성과 같은 안전한 요새에 피신하지 아니하고 그냥 들판에서 목축을 하고 있다가는 목숨이 위험합니다.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이 유목민을 해치고 그 가축을 빼앗아 군대의 식량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가나안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레갑 사람들은 북방 시리아 지역에서부터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남하를 하자 얼른 양떼를 몰고서 가장 안전한 예루살렘성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전쟁의 위험과 성내에서의 피난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온세상을 제집같이 여기고 자유스럽게 떠도는 유목민의 삶에 있어서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4) 그때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을 만나 성전 내 고라 자손의 방으로 초대하여 포도주를 권한 것입니다(렘35:2-5). 그때 레갑 자손들이 한사코 포도주 마시기를 고사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경건생활의 방식에 관하여 설명을 합니다(렘35:6-10). 그 설명을 듣게 한 다음에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말씀이 그 방에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고라 자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렘35:12).
둘째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35:13-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5:13);
1) ‘만군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앞서고 있습니다(렘35:13a).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선민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창조주 여호와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야만 합니다(렘35:13b). 그렇다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 말기의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자신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에게 대언하고 동시에 온 세상 만민들에게 전파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2) 첫째,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경건한 유대인들 및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자신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말씀이 같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선민 유대인사회에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3) 둘째, 온 세상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남겨야만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인들도 대선지서 예레미야의 글을 읽고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2)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35:14);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언자로 하여 본문에서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과 온 세상 만민에게 전달하고 있는 말씀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방인 출신이면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레갑 사람들은 중시조인 요나답의 유훈을 따라 200년 이상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째서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교훈과 가르침을 벌써 잊어버리고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일깨어 주어도 끝까지 외면하고 있는가? 하는 질책입니다(렘35:14).
2) 한마디로, 이방인보다도 못한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구분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하는 불순종자로 구분하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을 받들어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새 언약’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축복과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렘31:31-34). 그 반면에 끝까지 여호와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멸망의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렘35:15);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렘35:15a);
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언약을 그들에게 승계하게 하십니다(창12:1-5, 출19:4-6). 그 언약의 내용은 두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2) 첫째, 십계명에 명시된 그대로 창조주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섬기며 다른 신이나 우상을 절대로 만들어 섬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아 자손대대로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렘35:15a). 그것이 ‘축복의 언약’입니다(신8:1, 27:12).
3) 둘째,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끝까지 무시하고 배척하게 되면 선민의 지위와 이 땅의 기업을 빼앗기고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신8:19-20). 그것이 소위 ‘저주의 언약’입니다(신27:13).
(2)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렘35:15b);
1) 이제 멀지 아니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저주의 언약이 임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저버리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렘35:15ba). 더구나 선민 유대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고서도 선민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배척하고 맙니다(렘35:15bb).
2) 예를 들면, 유다 왕 여호야김은 겁도 없이 선지자 우리야를 살해하고 맙니다(렘26:20-23).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마저 해치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예레미야를 아끼는 고위 관리 아히감이 그를 사전에 피신하도록 일러줌으로써 가까스로 예레미야가 죽임을 면하고 있습니다(렘26:24).
결론적으로, 이방인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유목민 레갑 자손들의 사례를 가지고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기 쉽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 본문입니다. 그렇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선민의 지위와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기업을 잃어버리게 되면 새로운 미래가 동이 트게 됩니다. 그것은 선민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구별을 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호와 경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을 찾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새 언약’과 복음의 의미가 풍성한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만민구원의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대선지서 예레미야를 공부하시면서 풍성하게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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