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01강(렘35:6-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9일(주일)
레갑 사람들이 그들의 중시조 요나답의 유훈(遺訓, 후손들에게 남긴 교훈)이 무엇이기에 그것을 그토록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가?(렘35:6-10)
레갑 사람들의 중시조가 되고 있는 여호나답 또는 요나답은 어째서 그의 자손들에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정착식 농업을 경영하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생활을 영위하라고 하는 유훈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만 합니다;
(1) 첫째, 겐 족속의 한 갈래인 레갑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2) 둘째,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서 바알 우상을 섬긴 아합 왕가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군대장관 예후를 여호나답이 돕고 있는데 그는 어떤 성향의 사람일까요?
(3) 셋째, 예후가 북조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그를 도운 친구인 여호나답은 어째서 그를 떠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세가지 질문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첫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유목민들이 겐 족속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의 땅 야베스 지역에 정착을 하게 되면서 ‘레갑 사람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째서 전통적인 겐 족속의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유대인들과 함께 야베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겐 족속 가운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아들인 호밥이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으며(민10:29-32) 그의 후손이 유다 지파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삿1:16);
1) 이드로는 미디안 자손이며 제사장입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에게서 얻은 6명의 아들에게 여호와신앙을 물려주고 그들에게 재산을 주어 동방 땅으로 떠나가서 살게 합니다(창25:1-6). 미디안 족속은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곳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미디안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에게서 많은 신앙적인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출3:1-12, 4:18, 18:7-12, 19-27).
2) 제사장 이드로는 딸들이 모두 출가를 하고 나자 유목민 겐 족속의 여인을 후저로 맞이하여 아들 호밥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출2:16, 민10:29). 호밥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으며 매형인 모세에게 광야생활 가운데 도움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의 자손들이 훗날 포용력이 큰 유다 지파와 행동을 같이하면서 헤브론 이남의 땅을 정벌하게 됩니다(삿1:16). 호밥의 자손들은 야베스 지역에 거주하면서 유다 지파와 함께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대상2:55a).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가진 겐 족속이라는 의미로 서기관인 레갑 사람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대상2:55b).
(2) 둘째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땅 세겜과 사마리아 부근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레갑 사람의 중시조가 바로 여호나답입니다. 그는 어째서 유다 지파의 땅 야베스를 떠나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레갑 사람들에게는 두가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유목민의 삶을 동경하는 유전적인 피입니다. ②또 하나는, 호밥에게서 시작이 된 여호와신앙의 피입니다. 그 두가지의 피를 뜨겁게 지니고 있는 여호나답이 유다 지파의 땅 야베스를 떠나 북쪽 이스라엘왕국 세겜과 사마리아 초원지대를 떠돌면서 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10:15).
(3) 셋째로, 예후가 아합의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그의 친구 여호나답이 어째서 예후가 왕이 되자 그를 떠나고 있는 것일까요?
1) 기본적으로, 여호나답은 정치적인 권력을 잡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바알 우상을 철거하고 우상문화를 제거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바알 신을 주신으로 섬기고 있는 아합의 왕가를 끝장내는데 있어서 그는 친구인 예후와 적극적으로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왕하10:15-17, 23). 그러나 예후는 너무 피를 많이 흘리고 있습니다. 아합 왕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어 있는 인물이라면 모조리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여호나답은 예후의 진심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2) 군대장관인 예후가 왕좌를 탐내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바알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가를 끝장내려고 한 것일까요? 아니면, 바알 우상을 쳐부수고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열심 때문에 아합 왕가를 도말한 것일까요? 여호나답은 예후가 정치적인 야심과 절대적인 권력을 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그러한 행보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그것은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왕하10:28-31).
3)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시고 돌보시고 있는 사람의 피를 무자비하게 너무 많이 흘린 것입니다. 훗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피값을 예후의 왕가에 반드시 찾으실 것입니다(호1:4).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여호나답은 아무런 미련이 없이 북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친구 예후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여호나답은 이스라엘 왕 예후를 떠나면서 스스로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첫째로, 바알 신과 같은 우상을 철폐하고 우상문화를 제거하기 위하여 군대장관 예후와 힘을 합하여 우상숭배자들을 쳐부순 자신이지만 여호나답의 그 순수한 여호와신앙에 대한 열심은 세상적인 권력과 절대적인 왕권을 탐하는 예후에게 이용을 당한 결과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손 가운데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비극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여호나답은 자신이 모색한 신앙적인 생활방식을 자손들에게 유훈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2) 둘째로, 일종의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생각하고 있는 여호나답입니다. 그는 그의 자손들이 다음과 같은 방식의 고행과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1) 첫째,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포도주는 그 옛날 의인 노아까지 술에 취하여 실수를 하게 한 주범입니다(창9:20-25). 실제로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예후와 같은 친구를 호탕하게 사귀었기에 자신이 그 반란사건에 참여하게 되고 비록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쳐부순다고 하는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왕하10:23-25). 그러므로 애초부터 나실인들처럼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는 것이 그러한 실수를 예방하는 길입니다(민6:3).
2) 둘째, 유목생활을 계속하며 이 세상 임시의 거처인 장막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의 자기 집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 한해를 살게 되면 세상적인 풍요에 빠져서 교만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한 위험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힘이 들더라도 광야를 떠도는 유목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임시 거처인 천막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원한 거처인 그곳 천성으로 가기를 소망하는 그 신앙이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창21:3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렘3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렘35:6a);
1) 잔치자리에서는 포도주가 빠지지를 않습니다. 많이 마시고 취하게 되면 추태가 연출이 되고 문제거리가 되겠지만 사교적인 성격에서 몇 잔의 포도주를 서로 나누는 것은 친교와 우애의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인 야아사냐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인 레갑 사람들을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고라 자손들의 방에 초청하여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자 포도주를 권하고 있는 자리입니다(렘35:3-5).
2) 아직도 가나안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레갑 사람들은 여호와신앙심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대상2:55, 왕하10:15-17, 23).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을 모처럼 초청하여 성전에서 여호와의 일꾼으로 중책을 수행하고 있는 고라의 자손 하난의 아들들과 사귐의 기회를 가지게 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 깊은 자리에서 레갑 사람들은 하나같이 절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렘35:6a). 그것은 그들이 유목민이므로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과는 교제를 하지 않겠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렘35:6b);
1) 레갑 사람들의 조상은 유목민인 겐 족속입니다(대상2:55).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과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겐 족속의 한 갈래가 모세의 처남인 호밥이며 그의 후손들입니다(민10:29-32, 삿1:16). 그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생활에 있어서 길안내를 해준 공로가 있으므로 후에 유다 지파의 땅 야베스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들은 조상인 호밥의 부친이며 제사장인 이드로의 여호와신앙을 대물림하고 있어 야베스 지역에서 율법에 밝은 ‘서기관 가문’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대상2:55). 그들이 속칭 레갑 사람들입니다.
2) 그 가운데 일부가 야베스 지역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겜 땅에서 목축을 크게 하고 있는 요나답 또는 여호나답이 그러합니다(왕하10:15, 렘35:6ba). 그는 군대장관 예후가 아합 왕가의 바알 숭배사상을 끝장 내는데 친구로서 크게 공헌합니다. 하지만 막상 예후가 왕이 되자 그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절대로 포도주를 마시며 권력을 탐하는 정착민들과 어울리지 말하고 유훈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렘35:6bb). 그렇게 되면 자신처럼 경건한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가 그들에게 속아 그들의 정치적인 야욕을 채우고자 하는 일에 이용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렘35:7);
(1) 가나안 땅을 떠돌면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레갑 사람들은 중시조인 요나답의 유훈 두가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포두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렘35:6b). ②또 하나는, 정착생활을 하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생활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렘35:7a). 정착생활과 유목생활 가운데 어느 것이 여호와신앙을 파수하는데 있어서 더 유리한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2) 그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위적인 능력에 의지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자 그 땅의 풍요에 취하여 여호와신앙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모세가 신명기 제8장에서 우려한 일이 현실로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신8:12-20). 따라서 레갑 사람 요나답이 자손들에게 유목생활을 계속하면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라고 유언으로 명령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렘35:7a).
(3) 평생동안 유목민으로 떠돌면서 장막에서 여호와를 열심히 섬기면 이 땅에서 장수를 누리게 되는 것일까요?(렘35:7b) 그것은 모세의 신명기의 기록을 따르게 되면 여호와께서 성도들의 생명이며 장수이시기 때문에 분명히 그러한 은혜가 임하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신30:19-20).
(4)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의 성곽을 재건할 때에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으로,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성곽의 ‘분문’(糞門, the Dung Gate)을 중수하고 있는 것입니다(느3:14). 그것은 레갑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와서 크게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렘35:8-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렘35:8a); 믿음의 조상들의 유훈을 잊지 않고 명심하여 그대로 지킨다고 하는 것이 여호와신앙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겸손하게 살아갔더라면 선민의 나라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망하고 그 백성들이 이방인의 노예로 살아가는 비극적인 역사는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본문을 비롯하여 예레미야 제35장에서 레갑 사람들의 경우를 본받으라고 선민 유대인들이게 가르쳐 주십니다(렘35:1-10). 요컨대, 레갑 사람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믿음의 조상들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그 인생이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렘35:8a).
(2)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렘35:8b-10);
1) 레갑 사람들은 말로써만 중시조인 요나답의 유훈을 지키겠다고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렘35:8a). 그들은 실제적인 삶으로써 조상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렘35:8b-10).
2)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도 가나안 땅의 풍요에 취하여 편리하게 바알 신을 섬기면서 풍년을 마냥 기원해서는 안됩니다. 포도주를 마시며 세상적인 연락과 향락에 취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 옛날 광야생활에 있어서 여호와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얼마나 큰 영적인 축복이었는지를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들이 고행과 금욕적인 삶을 그 옛날 엣세네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정착생활을 하면서도 그러한 유목민의 마음가짐으로 경건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의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지시하시기를, 레갑 사람들을 성전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포도주를 마시도록 한번 권해보라고 하십니다(렘35:1-2).
그 결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고라의 자손들은 레갑 사람들이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서 유목생활과 장막생활을 계속했던 중시조 요나답의 유훈을 정확하게 지금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렘35:3-10).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목숨을 걸고 지켜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하신 믿음의 열조들의 유훈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살아간 선민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레갑 사람들의 선례는 성도들이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포도주와 독주에 취하지 말고 유목민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평생 경건하게 여호와신앙을 파수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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