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98강(렘34:1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6일(목)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히브리종에 관한 율법을 변개하고 지키지 아니하였기에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렘34:12-17)
본문의 말씀의 뜻을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께서 관심을 두고 계시는 율법조항은 출애굽기 제2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히브리 종에 대한 규정입니다(렘34:13, 출21:1-6). 그 내용은 6년간 종으로 생활을 하였으면 동족인 히브리 종에 대해서는 제7년 안식년에 해방을 시켜 주라는 것입니다(렘34:14, 출21:2).
(2) 둘째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호한 율법규정은 애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율법의 총칙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제21장의 안식년 해방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레위기 제25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히브리 종에 대한 희년(禧年)의 해방 규정입니다(레25:10, 39-42);
1) 그것은 이방인 종에 대해서는 영구히 노예로 부리고(레25:46), 동족인 히브리 종에 대해서는 49년간 종으로 부리고 50년째 희년이 되면 해방을 시켜주는 것입니다(레25:39-41). 고대사회에서는 평균 생존연령이 40세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동안 종 노릇을 하다가 죽어서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무늬만 노예의 해방이지 사실은 해방이 아닙니다.
2) 여호와의 뜻은,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레25:42)는 규정에 정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여호와께서는 레뮈기 제25장 희년 해방에 대하여 일체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초의 여호와의 뜻과는 먼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로, 이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적의 침략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 중에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선민 유대인들이 마음을 돌려서 모든 종에 대한 해방과 자유를 예루살렘성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과 맺는 새로운 계약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렘34:15);
1) 그것은 예레미야 제31장에서 예언하신 ‘새 언약’의 목표와 같은 것입니다(렘31:31-34). 왜냐하면, 선민과 이방인 구별을 하지 아니하고 죄와 사망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만민들에게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해방과 구원을 주고자 하는 것이 ‘새 언약’의 취지 곧 복음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요3:16-17, 5:24, 6:39, 롬8:1-4).
2)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새로운 계약을 선민 유대인들이 끝까지 지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렘34:16). 그에 따라 예루살렘성의 멸망과 마지막 선민의 나라의 멸망이 끝내 유다 사회에 여호와의 재앙으로 임하고 마는 것입니다(렘34:1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7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줄 것이니라. 그가 6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선지자의 대언에)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렘34:12-1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34:12-13a); ‘여호와의 말씀’과 ‘여호와’가 따로 역사를 하시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여호와’께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나와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는 ‘로고스 그리스도론’과 더불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하시며 선지자에게 계시하시는 성자 하나님의 존재성”(마11:27)을 진작에 암시해주고 있는 표현법입니다. 그와 같은 표현기법은 창세기 제15장에서 벌써 다음과 같이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창15:1).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에게 임재하여 계시하고 있는 그 말씀은 3위1체 하나님께서 벌써 합의하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자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나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진리성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계십니다; “그들이 이르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요8:25-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2)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7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줄 것이니라. 그가 6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선지자의 대언에)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렘34:13b-14);
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초에 종이 없습니다. 그들 자신들이 애굽에서 대대로 노예로 살아왔는데 히브리인들에게 무슨 노예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광야생활을 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히브리 종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요인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그것을 율법에 따라 갑절로 배상하지 못하게 되면 그 주인의 종이 됩니다(출22:3-4). ②둘째,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종이 됩니다(출21:30-31). ③셋째, 먹고 살 방도가 없으면 그 몸을 종으로 팔게 됩니다(창47:19).
2) 그렇게 동족을 종으로 부리게 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답게 히브리 종을 너무 심하게 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7년 안식년이 되면 해방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제21장에 율법의 총칙으로 규정이 되고 있는 중요한 규정입니다(출21:1-6). 그 의미는 출애굽의 구원을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안식년 히브리 종의 해방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삶의 풍요를 누리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배은망덕하게 행동하기를 시작합니다.
3) 그들은 현세적인 이기주의에 물들어 약한 자를 힘으로 누르고 가난한 자를 종으로 부리려고 합니다. 그 결과 노예제도와 관련하여 두가지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히브리 종을 제7년 안식년에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50년 희년에 해방시키는 것으로 율법규정을 추가하여 그것을 시행하고 맙니다(레25:10, 39-41). 그것은 여호와의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제34장에서는 히브리 종에 대한 희년 해방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렘34:9-16). 그것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4) ②또 하나는, 히브리 종 뿐만 아니라 이방인 종까지 전부 해방을 시키고 자유를 주고자 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의 본래 취지입니다(레25:10, 42, 렘34:15).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온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인류와 피조물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지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선민들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주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여호와 앞에서 다하여야 합니다(출19:6).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역사적으로 전혀 없습니다(마12:39).
5)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선민들의 회개를 계속 종용하고 있습니다(렘34:14, 7:13, 25). 그러나 그들은 요지부동입니다(렘7:26). 그 때문에 그들은 선민의 신분과 기업을 상실하고 선민의 나라의 멸망과 함께 이방인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역사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드기야 왕 말기에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예루살렘성에서 발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획기적인 하나의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주 짧은 기간 일회성으로 그것도 아주 제한적인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일년 내에 예루살렘성이 적군에게 넘어가고 유다 왕국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둘째로,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렘34:15);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렘34:15a);
1) 때는 시드기야 왕 10년입니다. 장소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입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성의 멸망이 내년입니다(왕하25:1-7). 당시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재침하여 유다의 전역을 휩쓸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한해 전에 유다 왕국을 침공하고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다가 물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의 바로가 동맹군을 이끌고 서남방향에서 갈대아 군대의 후방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렘37:5). 앞뒤로 적을 두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는 작전상 후퇴를 하고 만 것입니다(렘37:11).
2) 그 다음해에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쳐들어오면서 느부갓네살 황제는 아예 군사를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쪽으로 들어와서 가장 빠르게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해변도로를 타고서 남하하여 예루살렘 서남쪽의 요충지 라기스와 아세가를 공격하는 한편 애굽군이 진격하는 통로를 봉쇄한 것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 황제의 영리한 전략전술 때문에 예루살렘성에 갇혀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전파 신하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3) 무엇을 맹세하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그 정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렘34:15a). 이 대목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말씀의 뜻에 맞는 바른 일이 무엇인가를 그들 유대인들이 벌써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4:15aa). 알면서도 그동안 실천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경우 자신들의 희생과 부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므로 작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합니다.
4) ②둘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귀하게 인간대접을 해주고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같은 창조주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한 이유는 그것이 전면적인 노예해방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람을 종으로 부리고 편하게 살고자 하지 결코 자신이 남을 섬기는 자로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생리적으로 그대로 실천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적군에게 모조리 사로잡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으므로 신위적인 여호와의 도우심이 100여년 전 히스기야 왕 때처럼 절실하기 때문입니다(왕하19:34-35). 따라서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에서 앞으로 모든 노예를 해방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간대접을 받고 자유스럽게 살도록 하겠다는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렘34:15ab).
(2)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렘34:15b);
1) 여호와께서는 비록 전시(戰時)에 나타난 선민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특히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대접을 해주고 노예상태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니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에서 그대로 엿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2) 유다 왕 시드기야가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을 모두 대동하고 예루살렘성전으로 들어와서 여호와 앞에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렘34:15ba).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계약인 ‘새 언약’으로 받아 들이십니다(렘34:15bb). 이제는 그 새로운 계약을 선민 유대인들이 끝까지 준수하는지를 지켜보고자 하십니다. 만약 그들이 서원한 대로 이행을 하게 되면 여호와께서도 기꺼이 마지막 선민의 나라를 구해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렘34:16-1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렘34:16);
1) 갑자기 라기스와 아세가 요새지에서 낭보가 예루살렘성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가 계속 두 요새를 공격하고 있지만 아직 유다의 병사들이 굳건하게 수비를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4:7). 그러므로 애굽의 바로가 동맹군을 이끌고 해변길로 올라오게 되면 그 통로를 이용하여 예루살렘성을 구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게 되자 유다 왕 시드기야와 신하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부자들은 생각이 달라지고 맙니다.
2) 이제 세상적으로 살 길이 열릴 수도 있으므로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구태여 노예를 해방시켜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방시켜준 종들을 다시 잡아 들입니다(렘34:16b). 그리고 권세와 힘으로 그들을 굴복시킵니다(렘34:16c). 그 전처럼 종 노릇을 하도록 기필코 만들고 맙니다(렘34:16d). 그들은 순식간에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서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계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고 모독한 참람한 행동입니다(렘34:16a). 따라서 여호와께서 격노하십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렘34:17a);
1) 비록 전시상황이지만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귀족들 그리고 예루살렘성의 부자들이 여호와를 찾아가서 그 성전에서 맺은 새로운 계약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임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선민들이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그대로 형제인 히브리 종과 이웃인 이방인 종에게 자유를 준다면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성과 유다의 성읍을 전부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로부터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②둘째, 반대의 경우에는 여호와의 저주의 언약이 임할 수가 있습니다.
2)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가 예루살렘성에서 곧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렘34:17aa). 그러므로 정확하게 여호와의 저주의 언약이 다음과 같이 임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렘34:17ab). 여기서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축복의 언약도 저주의 언약도 모두 백성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마지막 선택에 따라 그들에게 전염병과 기근의 발생이라는 하늘의 재앙과 전쟁으로 망하는 인간적인 재해가 전부 임하도록 그것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렘34:17b);
1)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전시상황에서 여호와께 잠시 회개하고 돌아오는 모양을 취하다가 끝내 그 새로운 맹세를 지키지 아니하고 맙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멸망을 하고 대부분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렘34:17b)라고 예언하십니다. 그 대목은 다음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 하나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끝나더라도 유대인들의 자손들이 온세상에 흩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페르시아 고레스 황제의 칙령으로 자유를 얻게 된 유대인들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온 수는 1할 정도에 불과합니다(스2:3-65).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자손들이 십중팔구는 온세상에 흩어지는 것이 맞습니다.
3) 또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처럼 여호와 앞에서 서원한 맹세를 어기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이익을 쫓아 살아가게 되면 오늘날에도 그러한 민족은 나라가 망하고 온세상에 망국의 백성으로 떠돌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그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민 또는 이방인이라고 하는 차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예루살렘성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유다 왕 시드기야가 신하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에 따라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니 부디 창조주의 능력으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물리쳐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규정을 넘어서고 있는 새로운 맹세이며 서원입니다. 왜냐하면, 동족인 히브리 종 뿐만 아니라 이방인 종에 이르기까지 해방과 자유를 주겠다고 하는 위대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예레미야 제3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의 취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서원과 맹세가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지키고 이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전세가 약간 호전이 되자 선민 유대인들은 그 맹세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노하신 여호와에 의하여 재앙과 전쟁으로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그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 그 다음에는 온세상을 떠도는 민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저주의 언약이 아니라 축복의 언약이 임하도록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서 실천하는 일에 정진해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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