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96강(렘34:4-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4일(화)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이 될 시드기야에게 어떠한 예언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전해 주라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지시하시는가?(렘34:4-7)
본문 앞에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은 시드기야 왕의 눈앞에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끌려가고 만다는 것입니다(렘34:2-3).
그 다음에는 망국의 왕 시드기야에게 어떠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일까요? 먼 미래까지 전부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하여 본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렘34:4-7);
(1) 첫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가 비록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처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바벨론에서 다윗가문이 되살아나서 훗날 다윗가문의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다윗왕조의 열왕들에게 분향할 때에 그 마지막 자리에 시드기야가 위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국의 왕 시드기야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애도의 마음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34:4-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렘34:4-5a);
1) 본문 앞의 내용은 유다 왕국과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의 결말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입니다(렘34:1-3). 그 요지는 시드기야 왕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군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패망의 역사를 맞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이 함락될 때에 유다 왕 시드기야가 친위병과 함께 도망을 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잡혀서 직접 심문과 처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34:3). 느부갓네살 황제는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을 완전히 불태워버리고 끝까지 저항을 한 유다 왕 시드기야를 결코 용서하지 아니할 것입니다(렘34:2). 그에 대한 보복으로 처참하게 시드기야를 처단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유다 왕 시드기야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 능히 예상할 수가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렘34:1-3).
2) 그런데 놀랍게도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칼에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렘34:4). 실제로 시드기야 왕은 그의 눈 앞에서 왕자들이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됩니다(왕하25:7a). 그 다음에 느부갓네살 황제의 명령으로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7b).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드기야 왕에게 보내어 그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렘34:5a). 그것은 다윗왕조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지막 배려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옛날 십계명을 어겼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칼날 위에서 살아간 다윗 왕입니다(삼하11:3-17, 12:6-15).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기에 불평 한마디 하지 아니하고 그 모진 고난의 세월을 인내로 견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선조 다윗 왕의 뒤를 따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2)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34:5b);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셨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렘34:5b). 왜냐하면, 다윗의 왕조가 다시는 역사 가운데 왕국을 형성하지 못하지만 다윗의 가문만은 보존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이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가문에 후손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바벨론에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2) 실제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기 11년 전인 주전 597년에 폐위를 당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여호야긴 왕이(왕하24:15) 37년 후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즉위할 때에 석방이 되고 그 신원이 상당히 회복이 됩니다(왕하25:27-30). 따라서 황제의 상에서 먹고 마시며 귀족의 대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그에 따라 여호야긴 왕은 비록 그 옛날 왕자 때의 이름 ‘여고냐’로 불리고 있지만 다윗의 가문은 그에 의하여 부활하게 됩니다(대상3:16-19). 여고냐는 일찍 죽은 장남 스알디엘의 양자로 똑똑한 손자 스룹바벨을 선택하고 그에게 다윗의 가문을 계승하게 합니다. 그 결과 스룹바벨이 훗날 페르시아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 되어 동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제2성전 건설에 앞장을 서게 되는 것입니다(스2:1-2, 3:2, 6:14-15).
4) 다윗의 후손들은 다윗대왕의 후계자가 장차 자신들의 가문에서 탄생을 하게 되면 그 옛날 다윗제국을 재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뿌리깊은 다윗의 가문과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다윗가문의 후손들과 유대인들은 그 옛날 다윗왕조의 열왕들에게 분향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와 같은 염원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분향을 할 때에 그 가운데 마지막 왕으로 시드기야가 그 이름을 올리게 되고 유대인들의 애도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렘34:5b).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 그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렘34:6-7);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렘34:6);
1) 여호와께서는 시드기야 왕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십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왕궁에 있는 시위대의 뜰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렘32:1-2). 그렇지만 여호와께서 위탁하신 시드기야 왕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왕에게 직접 전달하게 되는 기회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얻게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예언을 예레미야가 직접 시드기야 왕의 면전에서 대언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나라가 망하기 전에 시드기야 왕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두 차례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어떠한 변화가 없는지 직접 묻고 있습니다(렘37:17, 38:14). 그때 예레미야가 본문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왕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2) 이 대목에서 한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전파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렘35:6). 그 옛날 아브라함을 75세에 선지자로 세우시고 100년 동안 사역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창12:1-4, 25:7). 그리고 80세의 모세를 불러서 출애굽의 사명과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는 사명을 40년 동안이나 감당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3:1-10, 행7:23-30, 신34:5-7). 그와 같이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깨닫고 실천하는 복음사역이 충분하게 이루어지도록 그 인생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겠습니다.
(2) “그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렘34:7);
1)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영웅 왕입니다. 그는 주전 605년에 즉위하자 마자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섭니다(렘25:1). 메소포타미아 북쪽에서 계속 저항하고 있는 앗수르의 잔존세력을 말끔하게 소탕하고 맙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요새지 갈그미스를 정벌합니다.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는 갈그미스에서 패전을 하자 시리아 땅을 포기하고 남하하여 나일강 유역으로 후퇴를 거듭합니다. 애굽제국을 단단히 혼을 낸 다음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국을 침범합니다.
2)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 느고가 감당하지 못하는 갈대아 군대를 유다 왕 여호야김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얼른 항복을 하고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하가 되기를 자청합니다(단1:1-4). 느부갓네살 황제는 나일 강의 애굽제국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주전 601년에 원정에 나섰지만 별로 소득이 없이 물러나고 맙니다(왕하24:1). 그러자 주전 594년경 애굽제국이 가나안 땅의 약소국들을 규합하여 반(反, anti-) 바벨론 다국적군대를 형성하고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과 일전을 벌이고자 합니다(렘27:3, 28:1).
3) 그때 유다 왕 시드기야는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고무가 된 주전파 신하들의 말을 듣고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와 싸우고자 합니다(렘28:1-4).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언자로 하여 선포가 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선택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주전 587년 전투가 한창일 때 예루살렘 왕궁에 있는 시위대 뜰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맙니다(렘32:1-2). 그곳에서 다음해에 다가오는 조국의 멸망을 생각하면서 계속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에게는 부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고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보존하라고 계속하여 진언을 하고 있습니다(렘27:11-12, 38:17). 그러나 별 소용이 없습니다.
4) 시간이 갈수록 유다 왕국의 성읍들과 요새지들이 갈대아 군대의 수중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남아 있는 성읍은 예루살렘성을 제외하면 남서쪽의 군사요충지인 아세가와 라기스 뿐입니다(렘34:7). 어째서 동북 방향에서 진격을 한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 남서쪽의 요새지 아세가와 라기스를 점령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애굽제국의 구원병이 나타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원군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면 반드시 해안도로를 이용하여 북상을 하다가 라기스와 아세가 사이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5) 라기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100리 길에 있는 천혜의 요새지입니다. 그리고 아세가는 그 중간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엘라 골짜기를 방어하고 있는 기가 막힌 군사 요충지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과감하게 청야(淸野)작전을 구사하면서 애굽의 구원병들이 쉽게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군사요충지 라기스와 아세가의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두 요새가 살아남아서 갈대아 군대의 배후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예루살렘성을 공격함에 있어서 실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것입니다(렘39:1-2).
결론적으로, 성군 요시야의 막내 아들 맛다니아가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이 되고 있는 시드기야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훌륭한 왕 요시아가 주전 609년에 서거할 때 그의 막내아들인 맛다니아는 10세에 불과합니다.
주전 597년에 맛다니아는 조카 여고냐의 뒤를 이어 유다 왕국의 왕이 됩니다. 당시 18세에 불과한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은 유다 왕국을 대대적으로 침략한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를 막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맙니다.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과 귀족들은 물론 유다의 병정 만명과 기술인력 천명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유다 왕국을 다스리도록 요시야의 막내아들 맛다니아를 시드기야 왕으로 책봉한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약소국으로 전락한 유다 왕국을 다스리면서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지만 전혀 그 방법을 찾지를 못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서쪽의 애굽제국에서 반(反) 바벨론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의 부당한 내정간섭을 물리치자고 달콤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반골의식과 선민의식이 강한 선민 유대인들이 대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임을 밝히면서 신바벨론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선지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다른 영적인 지도자들은 모두 이번 전쟁으로 승리를 얻고 그동안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모두 돌아올 수 있게 된다고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잘못은 근본적으로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전혀 살피지 아니한 것입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주인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불신앙이 그의 가장 큰 잘못입니다.
(2) 또 하나는, 세력이 큰 쪽에 편승하는 줏대가 없는 왕입니다. 따라서 주전파에게 떠밀려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또한 두가지입니다;
(1) 첫째, 비록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처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바벨론에서 다윗가문이 되살아나서 훗날 유대인들과 함께 다윗왕조의 열왕들에게 분향할 때에 마지막 자리에 시드기야가 위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애도하는 슬픔의 왕이 시드기야입니다. 그 말은 나라가 망한 원망을 시드기야에게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고마운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자비로운 말씀이 어째서 여호와의 예언으로 본문에 실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전히 다윗왕조의 시작인 다윗대왕의 헌신과 회심을 귀하게 생각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대목을 훗날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설교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22-23).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과 복음적인 실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루살렘과 아세가와 라기스의 위치)
(유다로 가는 길목 엘라 골짜기를 지키는 요새지 아세가의 절묘한 위치)
(예루살렘 45km남서쪽에서 적의 침공을 차단하는 요충지 라기스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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