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95강(렘34: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8. 11:15

예레미야 강해 제195(34: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3()

 

여호와께서는 주전파의 의견에 따라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벌이려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어떠한 예언을 전하라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가?(34:1-3)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기 일년 전부터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왕궁을 지키는 시위대의 뜰에 있는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32:1-2). 지금 예루살렘성 바깥에서는 신바벨론의 군대가 진을 치고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해발 78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철옹성 예루살렘을 정벌하기 위하여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가 무진장 애를 쓰고 있지만 그 함락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780미터나 되는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킨다고 하는 것이 독수리나 매와 같은 새가 아닌 사람의 능력으로는 심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 위에서는 계속 유다의 병사들이 아래로 화살을 쏘고 불이 붙은 통나무와 무거운 바위를 굴러 내리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바벨론군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따라서 적군들이 참호를 파고 그 앞에 엄폐물을 쌓고서 겨우 성 위에 있는 유다의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습니다(33:4).

그 다음에 다시 그 위쪽에 참호를 파고 엄폐물을 설치하자면 시간이 엄청 걸립니다. 유다 군사의 반격을 피하면서 그 작업을 바벨론 군대가 수행해야 하니 죽을 맛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시드기야 왕과 주전파 신하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적병들이 희생만 당하다가 결국에는 100여년 전의 앗수르 군대처럼 참패를 당하고 물러갈 것이라고 하는 낙관론이 우세하기 때문입니다(왕하19:34-36).

그러한 시점에 옥중에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들려오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번 전쟁에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완전히 패망을 하고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백성들은 두려운 느부갓네살 황제 앞에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34:2-3).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본문 제1절에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34:1).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전파 신하들이 신바벨론제국에 대한 국력과 군사력 평가에 있어서 크게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국에 대한 국력의 평가와 군사력의 평가를 잘못하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패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잘못을 다윗왕조가 범하고 만 것입니다;

1)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주전파 신하들은 반(, anti-) 바벨론 동맹의 군사력과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사력을 심히 단순하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나일강의 애굽제국을 정벌하기 위하여 원정을 나섰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주전 605년에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요새지 갈그미스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고 시리아 전역에서 애굽의 군대를 몰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애굽의 군대를 얕보고 주전 601년에 아예 그 본거지인 나일 강 유역을 전부 취하고자 나섰다가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2)    그에 따라 주전 590년대에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가 애굽제국의 군사력보다는 우세하지만 아주 월등한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를 비롯하여 그 주변의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등의 왕국들이 애굽제국의 군대와 힘을 합하여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를 상대한다면 당연히 자신들이 승리를 할 것으로 그렇게 편하게 군사력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입니다.

3)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만 지휘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일대에 있는 120개의 족속을 아우르고 있는 대제국입니다(6:1). 황제가 그 모든 속국에 대하여 동원령을 내리고 그 군사를 끌어 모아 전쟁에 나선다면 그것은 가히 세계대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막강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의 힘을 애굽제국이 유다 왕국을 위시한 약소국 6개국의 군사력을 모두 끌어 모아 상대를 하더라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둘째로, 현대전에 있어서도 잠재적인 적국에 대한 국력평가와 군사력 평가에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반드시 패전의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세계 제2차대전 가운데 태평양전쟁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1)    일본제국이 1910년에 조선을 합병한 이후 1932년에 만주를 침략하고 1940년에는 중국의 동해안을 거의 점령함으로써 군사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 일본 열도에서 생산한 제품을 팔게 됨으로써 후발산업국인 일본제국의 국력이 그야말로 욱일승천(旭日昇天)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일찍 진출한 서구의 열강들이 일본제국의 군대를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를 무너뜨린 중국인민들이 장개석의 군대를 앞세워 항일전쟁에 나서고는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2)    그때 세계 양차대전에서 서구를 지원하고 있던 미국이 태평양을 장악하고 그 세력을 중국에까지 펼치기 위하여 일본제국의 급소를 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창 중국대륙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일본군대의 에너지 공급원을 차단한 것입니다. 중동의 산유국에서 태평양을 거쳐 일본 열도의 정유공장으로 들어가는 원유의 항해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봉쇄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일본제국의 군대는 그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더 이상 전쟁의 수행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3)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상대방의 목줄을 쥐고서 엄청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연전연승의 궤도에 올라있는 일본제국의 군부는 그렇게 생각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서 대 모험을 시도하고 맙니다;

4)    첫째, 미국의 산업생산력을 일본보다 약간 앞서 있는 하나의 선진산업국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독립한 식민지 국가이므로 그 국력이 잘해야 영국보다 약간 앞서는 정도로 본 것입니다. 그것이 일본제국의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산업생산력은 19세기 말엽에 벌써 세계 제1인데 그것을 일제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선박으로 2개월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일본으로서는 당시에 미국의 국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5)    둘째, 수 만리 대해에 펼쳐져 있는 미국의 해군력입니다. 그들의 힘이 집중이 되어 있는 곳이 하와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태평양 사령부입니다. 그곳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비롯한 전투함들을 일본제국의 공군이 일거에 박살을 낼 수만 있다면 최소한 2년 동안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일본의 해군력과 맞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없을 것으로 일본제국의 군부가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측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1년이 못되어 다시 전함을 만들어 태평양 여러 섬들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의 군대를 쳐부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셋째, 일본제국은 일본 열도의 파수만은 자신하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미국이 무슨 방법으로 수천만명의 군대를 배로 싣고 와서 일본 열도를 공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본제국의 군부는 신민들에게 죽창이라도 주어 해안에서 상륙하는 미군들을 모조리 찔러서 죽여버리겠다고 큰 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만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급히 만든 핵무기를 가지고 19458월에 일본의 군수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히로시마와 나까사끼 두 도시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항복하지 아니하면 동경에 있는 일본 천황의 황궁이 핵폭탄으로 날라갈 형편입니다. 따라서 19458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선언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국에 대한 국력 평가 및 군사력 평가에 있어서 애초에 완전히 실패하여 자초한 참담한 결과입니다. 그와 같은 실패한 역사의 오래 전 선례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패망의 시나리오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34: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34:1a);

1)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의 황제가 된 느부갓네살은 영웅입니다. 그는 즉위하자 마자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계속 저항을 하고 있는 앗수르의 잔존세력을 모조리 소탕하고 맙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요새지 갈그미스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쳐부숩니다. 그 여세를 몰아 시리아 전역에서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면서 남하를 합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는 애굽의 군대를 나일 강유역으로 완전히 몰아내고서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옵니다.

2)    당시 애굽의 괴뢰정권을 이끌고 있던 유다의 여호야김 왕은 재빨리 항복을 하고 친() 바벨론 노선을 선택하고 맙니다(1:1-2). 그때 느부갓네살 황제는 영리하게도 유다 왕국의 귀족의 자제 가운데 차기의 동량이 될 수 있는 자들을 전부 뽑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1:3). 그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장래를 캄캄하게 만들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그리고 그들 유다의 인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들을 바벨론 황궁에서 교육시킵니다(1:3-5). 그들을 잘 키워서 유다 왕국을 영원히 통치하는데 있어서 제국의 일꾼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이 영리한 느부갓네살 황제이기에 신바벨론제국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약 중근동의 120개 나라와 족속을 속국으로 다스리는 엄청난 대국이 된 것입니다(6:1). 따라서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 여호야김을 치려고 할 때에 벌써 그 속국으로 있는 아람, 모압, 암몬 등의 군대를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4:1-2).

(2)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34:1b);

1)    여호와께서는 적진의 상황까지 전부 보고 계시는데 예루살렘 성안에 갇혀 있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전혀 성밖의 상황에 대하여 모르고 있습니다(34:1b). 따라서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원정군의 구성이 어떠한지를 도무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주력군인 갈대아군대만이 성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리아 지역에서 동원한 아람의 군대를 위시한 많은 종족들의 군대가 황제의 손발이 되어 공성(攻城)작전에 함께 투입이 되어 있습니다(34:1a).

2)    황제의 명령이 있으면 신바벨론제국의 전역에서 더 많은 수의 군대가 동원이 되어 올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막강한 전력을 예루살렘성에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주전파(主戰派) 신하들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잘못된 국력 및 군사력 평가와 거짓선지자 하나냐 등이 전해준 거짓 예언에 속아서 우상을 섬기는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다윗왕조만은 무조건 여호와께서 구원하여 주신다고 하는 실로 터무니없는 이기주의적인 선민구원사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악을 청산하지 못하고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마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자화상입니다.

둘째로,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34: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34:2a);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가 선지자들입니다. 그 가운데 대선지서를 저술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들어 있습니다(1:1-3). 그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말씀만을 듣고서 그것을 동족들에게 그대로 대언하였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34:2aa)라고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    오늘날에는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곧 성도들이 그 옛날의 선지자들과 같습니다(벧전2:9, 11:27).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만을 정확하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말씀으로 만민에게 전달해야 합니다(14:26).

3)    만약 그 원칙에 충실하지 아니하게 되면 거짓선지자와 거짓 예언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28:15-17). 한편,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는 자들도 그 말씀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인지 아니면 진리와 비()진리를 섞어서 교묘하게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하고 있는 거짓말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없게 되면 에덴동산의 아담부부의 비극을 다시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3:1-8).

4)    선지자들과 성도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종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사자들이기 때문에 그 지위와 신분이 참으로 높습니다(1:1-3, 11:27, 28:18-20). 그렇지만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동족들의 왕에게 겸손하라고 은근히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34:2ab)이라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더라도 이 물적인 세계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 위임을 받아 다스리고 있는 왕들에게 예의를 갖추라는 것입니다(13:1, 7). 물론 그 세상의 임금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완악하게 행동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창조주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34:3, 5:25-31, 12:31, 12:23).

(2)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34:2b);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지성소에 임재하십니다(25:22). 그곳에서 매년 태양력으로 1010일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받으시고 지난 일년 동안 모든 백성들이 지은 죄를 사해 주십니다(16:29-34). 그 성막이 솔로몬의 성전 안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성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왕상9:3). 하지만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이 그 성전을 떠나고 있습니다.

2)    여전히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을 그곳에서 제사장들이 드리고 있지만 선민 유대인들은 그 성전의 제사를 그저 자신들의 죄 사함을 쉽게 받는 방법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살면서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이방신상과 우상에게 분향하고 인신제사까지 바치고 있습니다(7:31-32).

3)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여호와께서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었지만 그 말씀을 배척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해치고 맙니다(7:13, 25-26, 11:19-21, 26:20-24).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무늬만 선민인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그 나라를 멸망하게 하십니다(34:2ba, 왕하25:1-7). 그리고 가식적인 제사를 드린 장소 솔로몬의 성전을 아예 적군에 의하여 전소(全燒)가 되도록 만들고 마시는 것입니다(34:2bb, 왕하25:9). 그것은 여호와의 격노하심을 상징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셋째로,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마지막으로)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참혹한 것을)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끌려) 가리라”(34:3);

(1)  옥중에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된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그 말씀을 시드기야 왕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십니다. 옥중에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드기야 왕이 불러서 그에게 어떠한 예언의 말씀의 변화가 있는지를 묻고자 한 것입니다(38:13-14). 그러나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히기 전에 선포한 말씀과(32:3-5) 나중에 시드기야 왕에게 불려 가서 진언한 말씀을(38:18, 23)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2)  참고로 그 관련구절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냐?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32:3-5),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38:18), “네 아들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려가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읍으로 불사름을 당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38:23).

(3)  더구나 역사적으로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임한 처참한 심판이 다음과 같이 예레미야가 대언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5:7).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은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며 사회적인 약자를 착취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고 있기 때문에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여호와께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그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7:8-16, 26:1-7, 27:5-8).

그러나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한결같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배척하고 거짓선지자의 거짓 예언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벌이고자 합니다. 그러한 주전파의 견해가 거짓 예언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유다 왕 시드기야는 나라가 망하기 1년 전에 그만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

본문에서는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마지막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아니하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할 것이며,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불에 타고, 시드기야 왕은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라는 마지막 경고입니다.

그러한 취지의 여호와의 예언을 끝까지 따르지 아니하던 시드기야 왕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왕이 되어 두 눈이 뽑힌 채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을 범한 백성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방법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살길을 열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자신이 의롭다고 강변하지를 말고 여호와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도 바울처럼(고전11:1)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대속의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