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97강(렘34: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2월 5일(수)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잘한 일 한가지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이 큰 빛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신하들이 어찌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가?(렘34:8-11)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역사서에서 악한 왕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왕하24:18-20).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모두 악한 왕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왕하23:25-27).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제멋대로 유다 왕국을 다스렸기에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시드기야 왕 11년에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고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바로 앞에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폐위가 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 운명의 시드기야 왕에게 두가지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라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렘34:4-6);
(1) 하나는, 그가 바벨론에서 처형을 당하지 아니하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다윗가문이 바벨론에서 보전이 되고 훗날 다윗의 자손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다윗왕조의 열왕들에게 분향을 할 때에 시드기야가 슬픔의 왕으로 백성들의 애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유대인들이 망국의 왕이라고 시드기야를 지탄하기보다는 그의 비참한 운명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그 명예를 회복하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반전이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제7절과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는 그의 통치 9년인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가 지휘하는 대군의 침략을 받게 되자 반(反) 바벨론 동맹의 수장인 애굽제국의 바로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1) 애굽의 황제인 바로는 애굽의 군대를 비롯한 연합군을 동원하여 가나안 해변길을 따라 북상하여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라기스와 아세가 성채의 아래길을 지나게 됩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총공격을 하고 있던 느부갓네살 황제는 배후에서 다국적군대의 공격을 받게 됨에 따라 부득이 작전상 후퇴를 하고 맙니다(렘37:5-7, 11).
2) 이듬해 느부갓네살 황제는 군비를 더욱 강화하여 재침하면서 배후의 공격을 받지 아니하기 위하여 아예 유다 왕국의 남서쪽 요새지 라기스와 아세가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수도인 예루살렘을 물샐틈없이 포위하여 공격합니다(렘34:7, 39:1-2).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가 그 대비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의 군사를 전략요충지 라기스와 아세가에 집중시켜 철저하게 신바벨론의 군대를 막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렘34:7).
3) 그 때문에 시드기야 왕 10년과 11년 두 해 동안 예루살렘성이 그 강한 갈대아 군대의 공격에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하였던 애굽의 구원병이 이번에는 오지를 않습니다(렘37:6-8). 따라서 예루살렘성이 주전 586년에 갈대아 군대에게 점령이 되고 시드기야 왕은 도망을 치다가 전쟁포로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5:1-7).
(2) 둘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가 참으로 여호와의 마음에 드는 정책 하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종을 출애굽기 제2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6년간만 종으로 부리고 제7년 안식년이 되면 자유민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출21:1-6, 렘34:8-10);
1) 그것은 시드기야 왕이 여호와 앞에서 모든 신하들과 유대인들에게 선포한 위대한 왕명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모세의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총칙으로 출애굽기 제21장 첫머리에 들어 있는 그 규정을 제대로 준수한 왕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기 제21장의 히브리종에 대한 안식년 해방조항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레위기에 희년(禧年)이 되어야 히브리종을 해방한다는 규정만 대대로 지킨 것입니다(레25:10, 39-43).
2) 당시 고대사회에서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이므로 종살이 49년을 하고 50년 희년이 될 때에 해방이 된다고 하는 것은 죽고 나서야 종 노릇에서 해방이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이방인 출신 종에 대해서는 희년의 해방도 적용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레25:44-46).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늬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탐욕과 이기주의가 대단한 민족입니다.
3) 그에 따라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유다 왕 시드기야의 그 훌륭한 정책은 실패로 끝납니다. 신하들과 부자들이 자유민이 된 히브리종들을 다시 잡아들여서 여전히 종으로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렘34:11). 그들은 안식년 해방이 아니라 다시 희년 해방의 율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집단이기적으로 해석하고 여호와의 뜻을 왜곡시키고 변질하여 적용하고 있는 선민들의 죄악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4) 하지만 히브리종에 대한 안식년 해방을 주도했던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의 노력에 대해서 여호와께서는 잊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비록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나름대로 여호와의 뜻에 맞게 한번 경영해보고자 꿈틀거린 시드기야 왕의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시드기야의 명예를 일부 회복시켜주고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도록 배려해주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렘34:4-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렘34:8-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렘34:8a);
1) 유다 왕 시드기야 9년인 주전 588년경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침략합니다(왕하25:1). 왕도인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기 위하여 포위공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때 반(反) 바벨론 동맹을 이끌고 있는 애굽의 바로가 연합군을 이끌고 가나안 해변길을 따라 북상하면서 남서쪽으로부터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를 치고자 합니다(렘37:5). 배후에서 공격을 받게 된 느부갓네살 황제는 작전상 퇴각을 하고 맙니다(렘37:11).
2)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잠시 후퇴를 했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재침을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구원병은 적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서 철수를 하고 맙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다윗왕조의 신하들 그리고 성내의 주민인 부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을 움직여서 신바벨론의 군대를 물러가게 해주셨으니 여호와께서는 다음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맨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래서 유다 왕 시드기야와 대신들이 예루살렘성의 부자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한가지 서원을 합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성에서 모든 백성들이 자유를 구가할 수 있도록 선민 유대인들이 솔선수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히브리종을 해방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는 자유를 누리는 예루살렘성을 이방인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렘34:8a). 그것은 예루살렘성을 일종의 자유해방구로 선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이방인의 침입을 막아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서약인 것입니다.
(2)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렘34:8b-9);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다윗왕조의 신하들 그리고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 살고 있는 도성 예루살렘에서 그와 같은 서원이 있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이유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기 제21장 첫머리에 기록이 되어 있는 히브리종의 안식년 해방에 관한 율법을 그동안 무시했기 때문입니다(출21:1-4).
2) 그 대신에 그들은 레위기 제25장에 희년이 되면 히브리종을 해방시켜준다는 조항을 만들어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레25:10, 39-42). 그것은 실효성이 없는 조항입니다. 왜냐하면 평균 나이 40세에 인생을 마감하는 고대사회에서 종살이한지 50년이 되면 자유민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제도화하고 있으니 그것은 죽을 때까지 동족을 종으로 부려먹겠다고 하는 심보인 것입니다.
3) 그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악함과 율법에 대한 왜곡 및 변질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 왕국이 망하기 일년 전에 그나마 약간 정신을 차리고 히브리종에 한하여 자유를 주겠다고 맹세하고 있으니 그것을 한번 지켜보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기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본문의 말씀을 계속하십니다(렘34:8b-9).
둘째로,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順服, 순종하고 복종함)하여 놓았더니,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렘34:10-1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順服, 순종하고 복종함)하여 놓았더니”(렘34:10);
1)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현세적인 자신의 이익에 매우 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지한 자와 사회적인 약자를 억누르고 착취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 같으면 자신들이 편리하게 부리고 있는 히브리종에게 결코 자유를 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루살렘 성내에서 불순한 무리들이 조직적으로 적과 내통을 한다면 그야말로 유다 왕국이 종말을 맞이하기 십상입니다.
2) 성내에서 가장 위험한 세력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같은 동족이면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전쟁의 승패에 상관이 없습니다. 전쟁에 이겨도 여전히 동족인 유대인들의 종입니다. 전쟁에 진다고 하면 바벨론 사람들을 주인으로 섬기면 됩니다. 그런데 약간 모험적이기는 하지만, 적진에 예루살렘성의 내부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종의 신세를 면하고 도리어 부귀와 영화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반역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은 위기를 유다 왕 시드기야와 신하들 그리고 부자들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차제에 히브리종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을 유대인 병사로 동원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아주 좋은 정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順服, 순종하고 복종함)하여 놓았더니”(렘34:10)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안전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렘34:11);
1)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재침하여 예루살렘성을 계속하여 포위공격하고 있지만 도무지 함락을 시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서쪽 애굽으로 통하는 길목이 불안합니다. 요새지의 철옹성 라기스와 아세가에서 유다의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항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애굽의 바로가 구원병을 파견해올지 모릅니다.
2) 생각보다 라기스와 아세가 성에서 유다의 병사들이 잘 버티어 주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성을 방어하고 있는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 그리고 부자들이 한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본전생각이 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 종이라고 하면 언어가 같으므로 참으로 부리기 좋은 노예입니다. 그 몸값만 하더라도 장정이면 은 30세겔이고 어려도 은 20세겔입니다(창37:28, 출21:32, 마26:15, 27:9).
3) 이제 위기국면에서 좀 벗어나고 있는 것 같으므로 그들을 다시 잡아 들여서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렘34:11). 그 모습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조치하실까요? 끝까지 이행하지 아니하는 서원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애굽의 구원병이 도착하지 못하고(렘37:7) 아세가와 라기스 성 그리고 예루살렘성이 모두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도록 역사를 섭리하고 마시는 것입니다(렘37:8). 그와 같은 의미가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렘34:11)라는 구절에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비록 비상시국에 취해진 조치라고 하더라도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안으로 다윗왕조의 신하들과 예루살렘성의 부자들이 한마음으로 히브리종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맹세한 것을 여호와께서는 좋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그 서원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전쟁 중에 가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그만 본전생각에 젖어 듭니다. 따라서 위력으로 히브리종들을 다시 잡아 들여 노예로 삼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십니다;
(1) 첫째, 그러한 좋은 정책을 제안한 유다 왕 시드기야에 대해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다가 평안 가운데 임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렘34:4-5a, 32:5). 그리고 바벨론에서 다윗의 가문이 명맥을 유지하고 훗날 열조들에게 분향을 할 때에 다윗왕조의 왕으로 시드기야 역시 분향을 받고 애도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렘34:5b).
(2) 둘째, 예루살렘 성안에서 잠시 여유가 생기자 현세적인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동족들을 다시 잡아들여 종으로 부리고자 한 유다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여호와께서는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성이 끝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고 성내의 모든 건물들이 불타게 됩니다. 그리고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여호와의 조치에 비추어보면 성도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 서원한 바를 정확하게 이행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이 역동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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