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92강(렘33:14-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6. 14:39

예레미야 강해 제192(33:14-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130()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시대를 어떻게 묘사하고 계시는가?(33:14-18)  

 

본문에 수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의 요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새 예루살렘성에서 그 옛날 다윗대왕처럼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데 그 나라가 다윗왕조와는 달리 영원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인지 조금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뜻은 이 세상을 멸망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3:16-17).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세계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6:39).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11:4-9).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해하고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켜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19:4-5). 그들이 애굽의 노예로 대대로 살아왔기에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19:6, 22:21, 3:1-10, 5:44, 12:39). 그러나 그들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행한 그 사역을 전혀 계승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12:3).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만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향유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현세적인 이기주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계속 삼을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3)  셋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속이는 외식적(外飾的)인 율법생활을 선택하고 있습니다(23:13-29). 율법규정에 따른 제례의식을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일년간 지은 모든 죄를 형식적으로 용서받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16:29-34). 여전히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왕하17:21-23). 그러면서도 선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므로 자신들을 적군의 침략으로부터 언제나 보호하고 지켜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7:9-10, 28:1-4). 그것은 십계명의 위반이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실로에서 선포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선민들에게 임하고 맙니다(삼상2:29-30). 여호와를 멸시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경멸하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시고 선민의 지위를 빼앗아 버리신 것입니다(7:12-16).

(4)  넷째로, 그렇다면 온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성도로 삼고 그들을 새 예루살렘성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실까요? 본문에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한 다윗대왕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그리스도는 다윗대왕과는 달리 이 땅에서 정의와 공의를 모두 구현하십니다(33:15). 다윗은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 남편인 부하를 살인 교사함으로써 여호와의 십계명은 물론 사회의 정의마저 어긴 자입니다(삼하11:3-17). 그러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계명은 물론 집단적인 정의의 차원을 넘어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에 따라 만민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대속의 십자가를 지십니다.

2)    둘째, 그리스도가 만민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성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다스리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만의 구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기도의 제목과는 다른 것입니다(33:16-17).

3)    셋째, 여호와 앞에서 각종 제사를 드리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패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대신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33:18). 그러므로 그 옛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에게 기대하였던 그 메시아의 일을 이제는 선민의 나라가 모두 망하고 나자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게 다시 그 기대를 걸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13:22-23, 19: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33:14-1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33:14);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1)    첫째,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다 왕국으로 나누어져서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제국이 둘로 쪼개어졌지만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전히 동일한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선하신 뜻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기대를 하십니다(19:4-6). 그 뜻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여호와께서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12:2-3) 이스라엘 자손들 역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복을 전파하는 거룩한 백성 곧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3)    셋째,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신정국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을 주십니다.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제사장들이 드림으로써 백성들에게 속죄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제는 선민들이 이방인들 가운데 여호와께 속죄를 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 앞에서 선민의 거룩한 의무입니다.  

4)    그러한 여호와의 기대는 선민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고 맙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미워하고 있으며 이웃을 정복하여 속국의 백성이나 노예로 삼고자 합니다(5:43). 그러므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선하신 뜻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선하신 뜻은 언제 누구에 의하여 성취가 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새 언약에 의한 복음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구절입니다(31:31-34). 선민의 나라가 철저히 망하고 먼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야만 여호와의 선하신 뜻이 성취가 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2)  그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33:15);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에 어디에서 누구의 후손으로 오시게 되는지를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에 참여하고 있는 2지파와 레위인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등장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아버지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35). 그리고 어머니는 아론의 후손인 마리아입니다(1:5, 36).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그 의붓아버지 목수 요셉에 의하여 다윗의 가문에 장자로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다 왕국의 구성원은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인들입니다.

3)    셋째, “그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33:15a)라는 문구는 다윗왕이 미처 실천하지 못한 하나님의 공의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하게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을 하나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영광을 위하여 주변의 이방인들을 칼로써 무찌르고 그들을 복속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선민들의 현세적인 정의의 실현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의 만민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4)    넷째,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33:15b)는 말은 선민사회에 있어서는 정의를 구현하고 이웃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 선민사회에서도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세적인 욕심과 이기심이 극대화됨으로써 사회적인 약자와 무죄한 자들의 피가 그 사회에 흘러 넘치게 되고 맙니다(왕하21:16).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그러한 약육강식의 육신적인 사회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에게 부어주어 하나님 자녀로서의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8:1-4).

둘째로,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33:16);

(1)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날에 발생하게 되는 일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정반대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부터 예루살렘 왕궁에 있는 시위대의 뜰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32:1-2). 그는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성이 함락이 되고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32:3-5).

(2)  그런데 지금 그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그와 정반대입니다; 

1)    첫째,  유다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예루살렘이 적에게 함락이 되지 아니하고 그 주민들이 참으로 안전하게 살게 되는 그러한 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예루살렘성의 이름이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를 드러내는 성이라고 하는 칭송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그렇게 꿈과 같은 미래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날을 이 세상에 이루게 하는 동인(動因)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반드시 그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답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러한 놀라운 시대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할 수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러한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를 하고 그 나라가 전부 멸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놀라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대속의 그리스도로 오시고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심으로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33:17-18);

(1)  선민의 나라와 다윗의 왕조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여호와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주전 930년경 다윗왕조를 버리고 독립한 이스라엘 10지파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설치하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섬기기를 시작합니다(왕상12:16-20, 26-33). 그것은 절기 때에 남조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는 이스라엘 10지파의 행렬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명백하게 여호와의 십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2)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제사장의 직무를 맡지 아니하고자 탈북을 하고 맙니다. 그들은 그 옛날 시내 산 앞에서 대제사장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하면서 섬기라고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2:1-10, 20-30).

3)    그러므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에서는 레위인이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생활을 200년이나 지속합니다(왕상12:30, 왕하17:22). 그 결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가서 그 선민의 족보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7:1-6, 21-23).

4)    둘째, 여호와께서는 젊은 다윗의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고서 그를 새로운 이스라엘왕국의 왕으로 삼고자 하십니다(삼상16:7, 12-13, 17:45-50).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이 청년장군 다윗을 시기합니다(삼상18:8-11). 그때문에 다윗은 도망자신세가 되어 10년 세월을 사울 왕에게 쫓기게 됩니다(삼상19:18-20, 24:1-2, 26:1-2). 그동안에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두차례나 시험하십니다. 은밀하게 사울 왕의 목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5)    그러나 청년장군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을 부은 자의 목을 자신이 여호와의 허락이 없이 함부로 취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삼상24:6-7, 26:9-12). 그것은 간단하게 이스라엘왕국의 왕이 되고 도망자신세를 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그것과 여호와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고 하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조그만 이스라엘왕국이 아니라 중근동의 패권국인 이스라엘제국을 형성하도록 도와 주십니다(삼하8:1-14).

6)    그러나 위대한 대왕 다윗도 여호와의 십계명을 어기는 중한 죄인이 되고 맙니다. ‘왕자무치’(王者無恥, 왕은 죄를 범하고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 잘못을 물을 수가 없다는 것)의 사상에 젖어 그만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고 장군 우리야를 흉계로 살해한 것입니다(삼하11:2-5, 14-17). 여호와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잘못을 질책하는 한편 남은 인생 가운데 그 처벌로 칼날 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삼하12:1-15).

7)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죄인의 심정으로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대왕의 위대한 신앙은 잘못을 전혀 범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그 잘못에 대하여 징벌하시는 여호와의 조치에 철저하게 복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는 훗날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110:1-7).

(2)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지파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멸망을 당했으며 위대한 신앙인 다윗왕이 십계명을 어기고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죄인으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더구나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이방 강대국에게 멸망을 당하도록 재앙을 내리고 마십니다(7:12-16, 30-34, 25:11-12).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여호와의 종인 선민도 없으며 다윗왕도 끝까지 여호와의 마음에 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다윗왕조 역시 우상을 섬기고 이방인처럼 살아가다가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33:17-18)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본문의 예언은 역사적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다윗의 왕가를 염두에 두고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31장에 벌써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에 따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새 언약은 이 세상에 대속의 그리스도와 또다른 보혜사로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가동이 됩니다. 선민이나 이방인 가운데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성도로 삼아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임재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셋째,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의 심령속에서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뜻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

4)    넷째, 선민들이 아니라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성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양하는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영원한 제사장들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풍성한 본문입니다. 31장에 벌써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의 취지를 대입하여 본문의 내용을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복음의 시대를 염두에 두지 아니하고 본문의 말씀을 직역하게 되면 모순 투성이의 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요컨대, 신약의 복음사상을 생각하면서 히브리정경을 읽어 볼 때에 어째서 우리 인생의 구원을 위하여 절실하게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한지를 재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민의 나라의 멸망 가운데 벌써 만민구원이라고 하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