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86강(렘32:31-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1월 24일(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의 모든 기업을 빼앗고 그들의 보물과 사람을 모두 바벨론으로 옮기고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렘32:31-35)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대대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신 이유는 그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준 여호와의 언약을 그들이 계승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언약 가운데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임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3-4). 그것은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그 땅에 창조주 여호와의 축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에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이 어여쁜 사라를 아브라함의 여동생인 줄 알고서 궁으로 데리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아비멜렉의 여인들의 태를 모두 닫아 버리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아비멜렉 왕에게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를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창20:7). 아브라함이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자 아비멜렉의 여인들의 태가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창20:17-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는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여호와의 언약에 따라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언급하십니다(출19:4-6). 그 말씀의 뜻은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고 자신들의 죄를 진심으로 여호와 앞에서 회개할 때에는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담당하라는 것입니다(욘3:3-10, 4:9-11, 마12:39).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께 드리라는 것입니다(창18:23-32).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 강 동쪽과 서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만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1) 첫째로, 여호와의 언약을 실천하지를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가지를 실천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1) 첫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로 살아가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강조하고 계십니다(마12:39, 16:4).
2) 둘째,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의 지적과 같이 그들은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기고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마5:43).
3) 셋째, 여호와 앞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기능하지를 않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선민과 선민에게 복속이 된 족속들만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욥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며 제사장인 욥은 평소 자신의 자녀들의 잘못을 속죄하는 제사만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공박한 세 친구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크게 자신이 잘못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용서를 구하는 세 친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자 자신의 신원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욥1:5, 42:10).
(2)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종처럼 부릴 수 있는 신들을 이방인에게서 도입하거나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방의 신상들이며 우상들입니다. 그것들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바치면서 자신들의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장을 통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하나님 모독죄인 것입니다.
(3)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눈이 먼 소경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비치기만 하면 여호와께서도 그렇게 인정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율법의 준수도 제례의식도 모두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자신을 의인이라고 인정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이신 여호와를 섬기는 여호와신앙이 아니라 세상적인 인본주의 종교에 물든 신앙이며 현세적인 기복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요4:23-24, 롬12:1-2).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잘못된 신앙생활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와 같은 잘못을 청산하고 여호와께 나아와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내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자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 결과가 선민의 나라의 멸망이며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들이 본문에서는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는지를 이제부터 한 구절씩 살펴보면서 따져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렘32:31-3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렘32:31-32a); 여기서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렘32:31a)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주전 14세기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어서 정착생활을 시작합니다. 12지파는 요단 강 동족과 서쪽의 땅을 배분 받아 자신들의 성읍을 세우고 12개의 부족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사기 시대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적들이 다국적군을 형성하여 쳐들어올 때에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12개 지파가 연합하여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12지파는 하나의 왕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울 왕을 초대왕으로 삼고 성립이 된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2) 둘째, 제2대 왕인 다윗은 여호와의 은혜로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하여 조그만 왕국이 아니라 중근동에서 패권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제국을 형성합니다. 그것이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입니다. 그 제국이 주전 930년경에 둘로 쪼개어집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0지파가 솔로몬 대왕의 후반기 학정(虐政)을 견디지 못하고 르호보암 왕 2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에브라임 출신의 영웅인 여로보암을 초대왕으로 하여 성립이 된 북조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선민의 제국의 시대를 잊지 못합니다. 따라서 언제나 다윗의 후계자가 다시 와서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3) 셋째,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절기때마다 이스라엘 10지파의 백성들이 남하하여 유다 왕국 예루살렘성전의 제사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이스라엘 왕국이 유다 왕국에 흡수가 될 형편입니다. 따라서 고육지책으로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남쪽의 국경도시 벧엘에 두고, 또 하나는 북쪽의 국경도시 단에 두어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라고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왕상12:26-33). 그 정책이 200년간 계속이 되자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징벌을 행하십니다(왕하17:21-23). 구체적으로,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을 앗수르 변경으로 옮겨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버리고 마시는 것입니다(왕하17:1-6, 21-23).
4) 넷째,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 왕 때 예루살렘성과 유다의 성읍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왕하19:34-35). 그러자 선민 유대인들이 이상한 선민사상에 빠지고 맙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율법의 제례의식에 따라 대제사장이 여호와께 매년 속죄의 제사만 빠지지 않고 드리게 되면 여호와깨서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그 어떤 이방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렘28:1-4). 앗수르제국이나 그 뒤를 잇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이나 모두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만은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렘5:31, 7:10, 28:1-4).
5)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인본주의적인 종교 생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먼저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에 젖어서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을 정확하게 보시고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마저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도록 역사를 섭리하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렘32:31b-32a)는 문장이 지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렘32:32b);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들에게 주시는 뼈아픈 말씀입니다.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 선지자 예레미야를 제외하고 모든 유다 왕국의 구성원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렘32:32bb).
2) 풀이를 해보자면, 유다 왕국에서는 일반백성들은 물론 왕과 고관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까지 모두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며 자신들의 욕심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렘32:32bb).
3) 특히 그것은 100여년 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이스라엘 10지파의 모습과 같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그들과”(렘32:32ba)라는 그 첫머리의 말씀 가운데 벌써 지적하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렘32:33-34);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렘32:33a);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등을 보이고 여호와신앙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렘32:33aa). 그것은 마치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사전 상속하여 달라고 요청하여 자신의 몫을 받아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눅15:12-13).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고향집에서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십니다(사65:1-2).
2) 탕자는 대도시에서 향락에 빠져 살다가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맙니다. 먹고 살 방도가 없어서 이방인의 돼지를 치고 있습니다. 흉년이 들자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때에 탕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면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나섭니다(눅15:17-20). 그것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회개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러한 회개가 전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여기서는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렘32:33ab)라고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렘32:33b);
1) 여호와를 배신하여 떠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대로 버려 두면 그들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을 끊임없이 대언하게 하십니다(렘32:33ba).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완강합니다. 그 얼굴을 여호와께 돌이키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이 전하고 있는 회개하라는 권면의 말씀까지 전부 배척하고 맙니다(렘32:33bb, 7:13). 더구나 계속 돌아오라고 부르짖고 있는 선지자들을 미워하여 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렘20:1-3, 26:20-24).
(3)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렘32:34);
1) 선민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하고 있는지는 예루살렘성전에서 그들이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모시고 있는 그 거룩한 성전에 감히 이방신상을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렘32:34a).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렘32:34b). 여호와 앞에 대담하게도 선민들이 우상을 세운 것입니다.
2) 그것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라고 하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출32:1-10, 왕상12:26-33, 왕하17:21-23). 그 옛날 시내 산 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서 크게 진노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격노하십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전에 이방신상을 세운 그 잘못 때문에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벌써 여호와의 진노 가운데 멸망을 당할 수순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32:3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렘32:35a);
1)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여호와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섬기도록 조치하여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패망을 하고 맙니다(왕하17:21-23). 그렇다면,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적이 없는데 어째서 여호와의 진노를 사고 그 재앙으로 이제 멸망의 역사를 맞이하고 마는 것일까요?
2) 그 이유가 다음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첫째, 앞절에서 살펴본 그대로 예루살렘성전에 이방신상을 세우고 분향을 한 것입니다(렘32:34, 7:30). ②둘째, 예루살렘 성과 그 성읍 주택의 평평한 지붕에서 우상을 섬기는 분향과 전제를 드린 것입니다(렘32:29). ③셋째,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그대로 예루살렘성 남쪽 기슭 아래 ‘힌놈의 골짜기’에 바알과 몰렉의 신상을 세우고 참혹한 인신제사까지 바친 것입니다(렘32:35a, 7:31-32).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곳의 이름을 아예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렘32:35a) 또는 ‘죽임의 골짜기’(렘7:32)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차제에 본문과 관련하여 가나안 원주민들의 바알 신과 몰렉 신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어떻게 악연을 맺게 되는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첫째, 모세가 요단 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남왕국과 북왕국을 정복한 다음에 이스라엘 진영을 모압평지 싯딤에 두고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민21:24-35, 25:1). 이제는 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고 그가 새로 정비한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를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서편 가나안 땅을 정벌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 발생합니다.인근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장정들을 유혹하여 남쪽 브올 산으로 데리고 가서 바알 신에게 함께 제사를 드리고 2부 순서로 그녀들이 바알의 여사제가 되어 풍요를 비는 의식으로 이스라엘 남자들과 혼음을 즐긴 것입니다(민25:1-3). 그 때문에 대노(大怒)하신 여호와께서는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멸하고자 하십니다. 다행스럽게도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장자인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분노를 그의 창에 담아 적과 내통한 젊은 시므리 족장과 그의 연인인 미디안 공주 고스비를 처형하였기에 전염병이 2만 4천명의 희생자만 내고 중도에 사라진 것입니다(민25:6-9, 14-18).
4) 둘째, 페니키아의 가장 오랜 어업도시 시돈은 바알을 주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의 칭호도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뜻으로 ‘옛바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옛바알의 딸인 공주 이세벨이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왕자인 아합과 결혼을 하고 후에 왕비가 됩니다(왕상16:30-33). 아합 왕은 이세벨과 함께 바알 신을 이스라엘왕국에 도입하여 크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3년 6개월간 가뭄이라는 재앙을 그 땅에 임하게 하십니다(왕상17:1, 약5:17). 그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엘리야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은혜로 담대하게 백성들과 함께 바알 선지자 450명을 쳐죽이지만 그만 아합 왕과 이세벨의 군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상18:19, 37-40, 19:1-3).
5) 셋째, 몰렉은 본래 암몬 족속이 섬기던 수호신 밀곰입니다(왕상11:5).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왕국이 망하게 생겼을 때에는 왕자를 번제물로 삼아 인신제사를 밀곰에게 바치게 되면 승전을 얻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암몬의 밀곰이 주변국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따라서 주변국에서는 밀곰을 몰렉으로 부르면서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여호람 왕에게 쫓기고 있던 모압의 왕 메사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자 세자를 성위에서 전쟁의 신 몰렉에게 번제물로 바칩니다(왕하3:26-27a). 그때부터 이스라엘 군대가 전의를 상실하고 철수를 하게 됩니다(왕하3:27b). 다윗왕조의 왕들이 그 본을 보고서 몰렉의 제단 도벳에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렘7:31-32). 유다 왕 아하스가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자 승전을 얻기 위하여 왕자를 몰렉에게 번제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16:1-3). 유다 왕 므낫세 역시 강력한 앗수르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유다 왕국의 안위를 지켜 달라고 몰렉에게 자신의 왕자를 번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1:6).
6) 넷째, 가나안 원주민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바알 신 숭배는 아세라 목상과 함께 섬기면 그 땅에 풍요를 가지고 온다는 효험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산 위에 올라 바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다음에는 하늘에서 바알 신과 그 아내 신인 아세라가 합방을 하고 이 땅에 다산의 축복을 내려주는 것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땅에서는 여자들이 바알의 여사제가 되어 제사에 참석한 남자들과 혼음을 하게 됩니다(민25:1-3). 그러한 음란한 행위가 나중에는 전체 사회에 공공연하게 퍼져 나가고 맙니다(렘3:1-2). 경건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만 바알 신을 섬기는 음란한 문화에 젖어 들어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유다 왕국에서는 그 정도에 그치지를 않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 몰렉 신상을 세우고 그 근처에 거대한 바알 신상을 역시 세우고 있습니다(렘7:31-32, 32:35). 여사제들과 합방을 하는 것보다 더 큰 효험을 얻기 위하여 아예 가장 큰 희생의 제물로 자녀들을 인신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크게 진노하셔서 유다 왕국을 망하게 하고 그들의 시체로 그 힌놈의 골짜기를 메워버리고자 하십니다(렘7:32-34).
(2)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32:35b);
1)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이 출애굽의 신 여호와의 진면목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신상이나 우상을 섬기는 잘못을 범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북아프리카의 강력한 제국 애굽의 모든 신들을 벌하시고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애굽인들의 장자를 하룻밤에 모두 쳐죽이신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12:12, 29-30).
3) 둘째, 홍해바다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를 모두 수장시켜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14:26-30).
4) 셋째,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사막과 광야에서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존하게 하신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출13:21-22, 16:4-5, 신8:15-16).
5) 넷째, 요단 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을 전부 치시고 서편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낸 후 그 땅들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민21:24-35, 신2:24-25, 3:2, 수1:1-9, 11:16-23).
6) 그 두려우신 여호와의 능력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있었다고 하면 결코 이방신들에게 나라의 안보를 빌거나 풍년을 달라고 제사를 드리는 그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이 사사건건 자신들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경건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한 것입니다”.
7)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세상과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한번 제멋대로 살아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32:35b). 선민들이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거룩한 여호와가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과 향락을 선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탕자의 마음입니다(눅15:12-16).
결론적으로, 그렇게 영적으로 타락하고 현세적인 기복신앙과 향락문화에 빠져버린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멸망을 시켜 버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혀 원하지 아니하는 일만을 골라서 실행한 선민들을 더 이상 보호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렘32:35b).
이방인보다도 못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선민이라고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사회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운명이 되도록 그들의 역사를 섭리하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여호와의 말씀을 명심하고서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끝까지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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